돌이켜보니 보부아르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격당한 사람이었다. 보부아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보부아르가 여성성으로부터 일탈한것을 강조하면서 그녀가 여성으로서 ‘실패작‘ 이라고 몰아붙였다. 후은 독창성이 없고 죄다 사르트르에게서 빌려 왔으므로 사상가로서실패했다고들 했다. 또는 자신의 도덕적 이상에서 벗어났으므로 인간으로서 실패했다고들 했다. 그래서 보부아르의 사상은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곧바로 묵살되기 일쑤였다. 원칙적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 당연히 인신 공격의 오류에 발목을잡힐 수 있다. 상대의 성격이나 동기를 공격함으로써 관심을 당면한주제에서 다른 데로 돌리는 전략 말이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단순히성격 문제나 불순한 동기 때문에 비난받은 게 아니다. 그녀는 자연에역행했다고, ‘여성으로서 실패했다고 비난받았다. 최근의 심리학 연구는 이른바 ‘독자적(agentic)‘ 위치, 다시 말해 능력, 신망, 자기 주장을 포함하는 행위 주체성을 보여주는 지위를 획득한 여성들이 곧잘 "사회적 지배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여성이 전통적으로 남성이 차지하던 고위직을 노리거나 성취함으로써 젠더 위계를 깨뜨리면 거만하다거나 공격적이라는 평판이 나돌고 젠더 위계를유지하기 위해 — 때로는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 그런 여성을 끌어내리거나 깎아내리기 일쑤다. 47) - P31
보부아르의 철학은 학생 시절 일기에서부터 마지막 이론적 저작년) (1970년)에 이르기까지- 자기 되기의 두 측면을 구분한다. 하나는 ‘안에서 보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밖에서 보는 관점‘이다. 보부아르가 안에서 보았던 관점에 다가가려면 생애의 어떤 부분은 순전히 회고록에 의지해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회고록의 내용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없지 않으므로 나는 새로운 자료가 내용의 누락이나 모순을 입증하는 대목은 최대한 강조해서 다루었다. 또한 나는 자기 되기‘에 대한 보부아르의 이해가 나이를 먹으면서변했다는 데 주목했다. 알다시피 자기 자신을 보는 눈도 세월에 따라변한다. 심리학 연구들은 자기 개념이 달라지며 기억도 그에 맞추어선별된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우리는 또한 사람은자기 말을 듣는 상대에 따라서 자기를 제시하는 방식을 여러모로 달리한다는 것도 안다. - P32
이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거니와, 전기 작가의 연구 대상이 여성일 때는 더 어려워진다. 페미니스트 캐럴린 하일브런(CarolynFIeilbrun)이 지적했듯이 "여성의 진기는 기껏 집필이 되더라도 용인될 만한 논의, 무엇을 삭제해도 되겠는가에 대한 합의라는 제약 안에서 쓰인다. 5 보부아르의 삶은 관습에 저항했다.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고려나 그녀가 쓴 글의 적법성에 대한 고려는 일단 별개의 문제로뇌두더라도, 보부아르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솔직하게 털어놓았더라면 더 큰 추문이 따랐을 것이고 독자들을 더 멀어지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보부아르는 자신의 철학과 사적인 관계에서 많은 부분을 누락했다. 안에서 본 관점‘을 많이 삭제한 것이다. 그렇게 한 이유는 많았고, 우리는 그 삶의 맥락에서 그 이유가 불거질 때마다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보부아르는 철학자였으므로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질문이 있다. 왜 전기가 보부아르라는 인물의 생애와 작업에서중요한가? - P33
이 책의 집필은 정말로 겁나는 일이었고 때로는 끔찍했다. 보부아르는 한 인간이었고 나는 가장 혼란스러운 기억이든, 경외감을 자아내는 기먹이든, 불확실한 기억이는 그의 기먹을 왜곡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지료 고증이 잘 되었더라도 한 인생에 대한 자료가 진짜고 인생은 아니다. 나는 내가 저한 상황의 이익에 좌우되며 보부아르가 이미 선별 대상으로 삼았던 자료에 의존한다는 점을 의식하면서선별에 임했다. 보부아르의 인간됨을 모든 면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감과 자기 의혹, 의욕과 절망, 지적 욕구와 육제적 열정을, 나는모든 읽기, 모든 친구, 모든 연인을 다루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보부아르의 철학은 포함했다. 그 철학 없이는 보부아르의 모순이나 공헌을 진실하게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보부아르는 장대한 삶을 살았다. 지구를 누비고 다니며 20세기 문학, 철학, 페미니즘의 아이콘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파블로 피카소,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세핀 베이커, 루이 암스트롱, 마일스 데이비스와도 만났다. 찰리 채플린과 르 코르뷔지에가 그녀를 위해 일부러 뉴욕 파티에 와서 자리를 빛내주었다. - P37
하지만 철학이 없었다면 시몬 드 보부아르는 결코 시론 드 보부아르‘가 될 수 없었을 테고, 그 점은 두 가지 이유에서 중요하다. 일단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의 제자였다는 신화가 너무 오래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커플이 의견 차이가 있던 지점, 그들의 지속적인 대화가 보부아르가 그녀 자신이 되는 데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한 부분일 뿐이다. 1963년에 보부아르는 이렇게작가의 삶에서 공개된 면은 그야말로 일차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내 문학 이력과 연관된 모든 것이 내 사생활의 일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독자에게나 나 자신에게나, 공적 삶이있다는 것이 사적 관점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악하려고 애써 왔다. - P38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철학과 사랑을 비판했지만 사르트르는 첫만남 이후 바로 그랬던 것처럼 "사유의 견줄 데 없는 친구"로 그녀에게 남았다. 보부아르의 사유는 동시대인들에게 근본적인 도전이었고으레 묵살당하고 조롱과 멸시를 받았다. 그녀는 자기 정신의 가치와생산성을 인정하고 믿었기 때문에 사유하고 글 쓰는 삶을 선택했다. 보부아르는 열아홉 살에 이미 "내 삶에서 가장 뜻 깊은 부분은 나의생각들이다."라고 일기에 썼다. 그리고 59년 뒤 살면서 이뤄낸 그59)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78세의 보부아르는 여전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정신"이라고 했다. - P38
버지니아 울프는 "어떤 이야기들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 해야한다."고 썼다. 그러나 보부아르의 이야기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말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우리가 보부아르의 일기와 편지에 나오는설명을 읽고 나면, 또 철학을 향한 사랑, 전례 없는 방식의 사랑을 추구하고픈 욕망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면 우리 눈에 비치는 보부아르의 삶의 모습은 달라진다. - P39
그런 탓에 보부아르는 궁핍에서 한참 벗어난 후에도 절약 정신이투철했다. 공책에도 어찌나 깨알 같이 쓰는지 학교 선생님들이 알아보기 힘들다고 뭐라 할 정도였다. 시몬은 돈과 물자를 알뜰하게 쓸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그렇게 썼다. "나는 늘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 자신까지도 최대치로 써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시몬은 열심히공부하는 동시에 훌륭한 가톨릭 신자의 길을 익혔다. 그 노력이 얼마나 가상했던지 사제는 시몬의 어머니를 붙잡고 "눈부시게 아름다운영혼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시몬은 ‘수난의 천사들 이라**11)112)는 어린이 봉사단에도 들어갔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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