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까지의 길목에는 여러 히들이 있다. 가족이나 타인의 몰이해, 무관심, 비난일 때도 있고 거대한 벽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허들인 경우도 있다. 상처 입은 당사자 자신이 공감의 허들일 때도 많다. 공감을 방해하는 허들이 무엇이든 그것을 만나면 단호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 그렇게 허들을 넘어설 수 있어야 홀가분하게 공감을 경험하고 자유를 얻는다. 그래서 공감자는 ‘다정한 전사‘라야 한다. - P212
충분히 공감받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기쉽지 않다. 공감하며 사는 사람은 꽤 만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가 한개별적 존재로 충분히 공감받고 사는가에 시선이 미치면 그렇다고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누구나 한결같이 공감받고 공감하며 살길 원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살기 힘든 건 공감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라서 일 수도 있지만 공감까지 가는 길목에서 여러 허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 허들을 잘넘어야 마침내 공감에 도달할 수 있다. 그토록 원하는 공감받고 공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허들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대표적인 허들이 감정에 대한 통념이다. - P216
전문가들뿐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공감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사람은 더 많이 오해하고 실망하고 그렇게 서로를 상처투성이로 만든다. 서로에 대한 정서적 욕구 욕망이 더 많아서 그렇다. 옆집 사는 이웃에게는 친절하고 배려심 있게 대해도 내 배우자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 어렵다. 남에게는 특별한 기대나 개인적 욕망이 덜해서다. 그러나 내 배우자나 가족이라면 얘기가다르다. 그로부터 받고 싶은 나의 개별적 욕구와 욕망이 있다. 그 욕구만큼이나 좌절과 결핍이 쌓인다. - P228
타인을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공감까지 가는 길 굽이굽이마다 자신을 만나야 하는 숙제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은문제를 해결하며 한고비 한고비 넘는 스무 고개 같은 길이다. 하지만그녀가 그랬듯 수십 년 전에 헤어졌던 혈육을 찾은 것처럼 쪼개졌던내 심장의 일부를 찾는 뜨거운 설렘과 횡재의 길이기도 하다. - P245
공감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감정적 교류다. 공감은둘 다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지는 황금분할 지점을 찾는 과정이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공감이다.
- P266
모든 인간은 각각 개별적 존재, 모두가 서로 다른 유일한 존재들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같은 감정을 갖지 않는다. 다르다. 그러므로공감한다는 것은 네가 느끼는 것을 부정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 비합리적인 일이라고 함부로 규정하지 않고 밀어내지 않는 것이다. 관심을 갖고 그의 속마음을 알 때까지 끝까지 집중해서 물어봐 주고끝까지 이해하려는 태도 그 자체다. 그것이 공감적 태도다. 공감적 태도가 공감이다. 그 태도는 상대방을 안전하게 느끼게 하고 믿게 하고자기 마음을 더 열게 만든다. - P272
누군가의 속마음에 깊이 주목하고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 반드시자기 내면의 여러 마음들이 떠오른다. 타인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고통이자 축복이다. 자기 내면을 알 수 있고 치유할 수있는 기회라서 축복이고 힘들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과정을 거쳐야해서 고통이다. 그녀도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깊이 고민하던 끝에 자기를 만난 것이다. - P274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일이다. 자신이 공감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공간하는 일은 감정 노동이른 아니든 공감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를 공감하는 일은 시늉할 수 없다. 남들은 몰라도 자기를 속일 방법은 없다. 누구든 타인을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가 자극돼 떠오르고 뒤섞이면 혼란에 빠진다. 그때의 혼란은 자기 치유와 내면의 성숙을 위한 통과 의례 같은 반가운 혼란이다. 이떤 종류이는 혼란은 힘들다. 에너지 소모가 극심해서다. 그럼에도 나에 대한 혼란은 반가운손님이다. 꽃 본 듯 반겨야 한다. 그 혼란에 주목하고 집중해야 한다. - P276
상처를 떠올리고 말해서 힘든 게 아니라 내 상처가 거부당하는 느낌,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아픈 것이다. 상처를 말하는 일이 더 큰 고통과 상처로 이어졌던 경험 때문에 힘든 것인데, 그걸 상처를 얘기하는 것이 당사자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이라고 오판한다. 반복하자면 아팠던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게 고통스러운 것은 그얘기가 외면당하고 공감받지 못해서다. 거기에 더해 내 고통이 충조평판의 대상으로 전락할 때다. 상처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파서 못 꺼내는 것이 아니라 꺼낸 고통위에 소금이 뿌려졌던 경험이 상처를 꺼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이중 삼중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기 전까지 상처를 다시 꺼내기가어렵다. 심약한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 - P284
공감이 그렇다. 옴짝달싹할 수 없을 것처럼 숨 막히는 고통과 상저 속에서도 공감이 몸에 배인 사람은 순식간에 공간을 만들어낼수 있다. 없는 것 같던 공간이 순식간에 눈 앞에 펼쳐진다. 사람들마음속에서 공감이 하는 일이다. 사람은 그렇게 해서 사지를 빠져나올 수 있다. 공감의 힘이다. 그렇게 놀랍고 아름다운 공감의 힘을 내가 가진 경험과 정성을 다해 펼쳐놓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것이지금 내가 가진 나의 모든 것이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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