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과거가 아니다. 현재이고 미래다.‘ 아니 에르노의 말을 곱씹으며 그들의 지나간 사랑의 흔적들을 본다. 쓰러진 하이힐, 뒤집어진 니트, 바닥에 버려진바지, 브래지어를 밟고 있는 남성용 부츠, 어쩌면 거기에는사랑의 행위에 대한 기억이 아닌, 육체가 빠져나간 부재의자리가 쓰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지난밤을 빌려 오늘을 이야기했고, 욕망이 끝나고 남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흔적들 사이에서 상실의 전조를 예감하고 있었다. 이 사진들이 찍힌 시기에 아니 에르노는 유방암을 앓았다. 자신의 경험을 이용하여 ‘삶‘을 쓴다는 이 작가는 몇 개월 동안 폭력적인 작업들이 벌어졌던 자신의 몸을(그녀의말처럼 지어내거나, 미화하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옮겼다. 종양이 자란 한쪽 가슴, 한 움큼씩 빠져나간 머리카락, 항암제를 부착하고 있는 체모가 없는 몸까지. 그곳에는 편재하 - P176
는 다음과 그것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있고, 작가는 그것을 육체의 ‘부재‘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거기놓여 있는 지극히 물질적인(옷, 가구, 주방, 문 등등) 요소들은 형체가 없어 손에 쥐기 힘든 모든 것들(사랑, 죽음, 욕망, 부재까지도)의 유일한 증거들이다. 나는 그녀와 그가 남겨놓은 이 사건의 현장에서 수사가나아가야 할 방향을 여러 번 잃었다. 이곳에서 사라진 것은육체인가, 사랑인가, 욕망인가. 여기에 남은 것은 부재인가죽음인가. 무엇을 증명하고,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생(生)을 위해 싸워나가는 사람(아니 에르노), 연인이 치러내는 전투를 통해 죽음을 배우는 사람(마크 마리), 우리는그들이 무음으로 주고받은 대화를, 비밀스러운 몸짓들을, 어느 날 아침, 행위가 지나가고 폐허처럼 남겨진 것들을 담은 사진 속에서 알아차린다. 이곳에서 지난밤의 사랑과 욕망은 중요치 않다. 결국에는 사라지고 말 모든 것들을 최선을 다해 붙잡는 그들의 ‘시도만이 의미를 갖게 될 뿐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그들의 계획에동참하고 만다. 육체가 빠져나간 이 에로틱한 공연의 관객으로서, 글로 쓰인 사진을 눈과 손으로 더듬으면서, 살과 뼈가 없이 이뤄지는 에로스를 받아들이면서, 단 한 번도 이겨 - P177
본 적 없는 시간을,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사진으로, 글로 뛰어넘기를 어느덧 소망하게 된다. 어느 폭염에 그들이 즐겨 듣던 음악과 풀밭 위에서의 식사, 브뤼셀의 호텔과 당신을 베니스로 데려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죽음과 함께 사는 여자의 미래가 온통 내 것이 되는 순간이 있다. 타인의 흔적은 그렇게 나의 현재가 됐다. 나는 그곳에 적힌 생을 오늘의 내 것처럼 산다. 그리고 오늘, 그들의 생을살아 버린 나의 미래를 어렴풋이 예감한다. 어쩌면 도처에널린 죽음의 신호가, 욕망과 열정의 부재가 나를 기다리고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처럼, 혹은 그처럼 그 삶을 배우고,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번역을 마치면서, 이 사진의 용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두 작가에게 이런 답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것은 언젠가 사라져야 하는, 유한한 운명을 지닌 모든것들의 가능성이라고, 하나의 순간에 갇혀 버린 상(像)이 언젠가 점과 선의 연속으로 이뤄진 시간을 탈출하여 무한히팽창해 나가는 꿈을 꾸게 만드는 희망이라고. ‘그러나 삶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을 - P178
지 않는다. 그것은 소리가 없으며, 형태도 없다. - 삶을 쓰다‘ (아니 에르노) 서문 中에서글을 쓰는 일을, 소리도 없고 형태도 없는 삶에게 자신의 인생을 빌려주는 일이라고 말하는 작가가 건네는 이 가능성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유용한 무언가가 되기를, 우리의 언어로 옮겨진 이 책의 용도가 그것이 되기를 꿈꿔본다. 2018년 9월, 클레르몽페랑에서신유진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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