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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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황정은

   소설가의 첫 에세이를 읽다가 책을 자주 덮었다. 답답해서, 먹먹해서, 울컥해서……. 200쪽 남짓한 얇은 책을 일주일만에 덮는다.

   한 문장 한 문장, 더듬어가며 읽었다.

 

 

 

 

    이런 걸 말해도 되는 걸까. 이런 글을 쓰고 나면 작가로서, 록산 게이가 『헝거』에서 걱정한 것처럼 이 경험을 바탕으로 비좁게 소비되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은 그러니까, 이것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이전의 내 모든 소설과 앞으로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달라붙는 글이 되지는 않을까. 내 모든 글이 이 경험을 기반으로 읽히지는 않을까.

    그러나 지금 내 삶은 그 일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 말고도 다른 일들이 내 삶에 있었고 나는 삶과 읽기와 쓰기를 통해 조금씩 학습하면서 본의든 아니든 조금씩 변해왔다. 그 일은 내 전부가 될 수 없다. 거울은 여전히 내게 문제이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나는 이제 내 얼굴의 흔을 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나를 탓하지 않는다. 그 일들을 내가 원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이렇게 된다고, 결국엔 무감해지고 괜찮아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경우엔 만날 때마다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칱척들과의 왕래를 뒤늦게나마 중단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내가 겪은 어려움이 그것만은 아니었다는 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커서…… 바벨을 데드리프트로 하루에 백번씩 들었다 내리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는 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며 내 키보드와 고양이와…… 만화책을 포함해 내가 여태 읽은 책들과 앞으로 읽을 책들에 대한 기대가 내게 도움이 되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록산 게이가 『헝거』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내 아름다운 체리 파이'를 만든느 것, 그런 즐거움을 내가 알며 그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다는 점, 그것을 내가 운 좋게 알고 있다는 점이 내게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들을 잊은 적은 없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그 일을 말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문득 말하기 시작했고 말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그 일을 말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일을 얼마나 말하고 싶어했는가도.

                                             [일기 p179~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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