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에 대고 할 말이 없습니다

                                  이승희



  상처 많은 사람처럼 자꾸만 부딪혀온다. 아무것도 담지 못한 생처럼 자꾸만 그렇게 부딪혀 온다. 세상은 그렇게 완강했다고 한없이 밀리는 나를 또 밀어댄다. 연두의 기억도 새들의 눈웃음도 맨드라미의 옆얼굴도 무엇 하나 적시지 못했는데 빈방들이 자꾸만 비명처럼 머리를 부딪혀오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지상에 닿는 무게가 되기까지 살아냈어야 할 생이 있는 것이고, 당신의 얼굴에 내리는 빗방울은 모두 당신의 이야기, 당신이 처형한 사람들의 이야기, 더 할 말도 없으면서 자꾸만 나를 붙드는 마음 같아서 유리창에 대고 마구마구 편지를 쓰네. 불빛 두어 개 붙이면 누군가의 안부처럼 쓸쓸해질 테지. 나는 자꾸만 내 얼굴을 내어준다. 그것은 허공에 대한 이야기, 이젠 허공이 된 이야기, 앞으로 허공이 될 이야기. 그러므로 저 빗방울 속에 불을 켜두고 싶은 마음. 그 사이를 비틀 만한 것도 화해랄 것도 없었다. 낯섦만 깊어져 사이로 사이만 자란다고 어떤 힘만이 사이에서 갇혀 울기도 하였는데, 아주 먼 별의 뒷덜미를 볼 수 있다면 이 진부함이 좀 용서될까. 눈코입도 없는 얼굴을 씻다가 나는 무엇으로 울어야 하나.


     시집[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중에서



  가을장마에다 태풍까지 만나서 많은 비가 오시는 휴일, 정혜윤의 【그의 슬픔과 기쁨 】을 덮고 먹먹해진 마음을 도저히 가눌 길이 없다. 가슴 안으로 폭우가 쏟아진다. 몇 자 끄적거리다 깜박거리는 커서만 들여다본다. 결국 포기하고 집어 든 맨드라미 색상의 이승희 시집, 쩝~! 정말 '빗방울에 대고 할 말이 없'다. 어쩌자고 '상처 많은 사람처럼 자꾸만 부딪혀'오는지. 김대용, 윤충렬, 박호민, 이현준, 박정만, 김정욱, 최기민, 김득중, 한윤수, 서맹섭, 이갑호, 정형구, 고동민, 이창근, 김정운, 김상구, 문기주, 복기성, 한상균, 김남오, 유제선, 박주헌, 염진영, 오석천, 김성진, 양형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담지 못한 생처럼 자꾸만 그렇게 부딪혀 온다.' 빗방울은 거세어졌다 여려졌다를 반복하는데 '아주 먼 별의 뒷덜미를 볼 수 있다면 이 진부함이 좀 용서될까'. 이 비 때문에 누군가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