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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ㅣ 창비시선 456
이상국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이상국
산에 가 돌을 모아 탑을 쌓고 서원을 했다
돌도 나를 모르고 나도
돌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게 돌에다 한 것인지
내가 나에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탑을 쌓은 나와
탑을 쌓기 전의 내가 다르듯
탑이 된 돌들도 이미
그전의 돌은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서로 남은 아니었다
그곳이 산천이거나 떠도는 허공이거나
우리가 무엇으로든
치성을 드리고 적공을 하면
짐승들도 함부로 하지 않고
비바람도 어려워하는 것 같았는데
산에 가 돌로 탑을 쌓고 서원을 했다
돌도 돌만은 아니었다
나도 나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와 나 사이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시집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중에서
지난 5월 25일 심**님께서 돌아가셨다. 위독하셔서 119로 실려간 지 5일 만이었다.
나이트 근무였다. 출근하자마자 어르신의 용태부터 살폈다. 잠깐의 낮잠 동안 꿈으로 내게 오셨다. 엄마도 그랬다. 꿈으로 내게 오셨다 가셨다. 설마 했는데 호흡이 달랐다. 아침에 퇴근할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지셨다. 그렇게 119가 오기까지 40분쯤, 응급처치를 하느라 분주했던 시간이 지나고 십분쯤 손을 잡아드렸다. 따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셔야 한다고, 손주를 보고 가셔야 한다고 쉼 없이 말을 걸면서...... 점점 호흡은 가빠지고 산소포화도는 낮아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손을 잡은 채 계속 말을 걸었고 대답을 하셨다. 함께 있던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기도를 해주셨다. 고맙다 하신다. 그렇게 구급차로 실려가셨다. 겨우 손을 놓았다.
47년 전 아버지 임종을 보지 못했다. 그날 밤, 병풍 뒤 아버지의 관이 놓인 방에서 자다 깨었다. 동생은 무섭다고 울면서 나가는데 나는 무섭지 않았다. 35년 전 엄마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내 꿈에 오신 시간에 돌아가셨다. 입관 전 겨우 도착해서 작별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엄마 이마를 쓸던 손의 감촉이 아직도 서늘하다.
그분의 손은 따뜻했다. 따뜻한 손을 맞잡아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어서 어찌나 감사하던지. 떠나시고 나서도 한참이나 손에 감촉이 남아있어서 망연하게 손을 내려다보는데 그제서야 다리가 푹 꺾였다. 그렇게 보내드렸다. 그분은 1933년생이시다. 생애가 어떠했는지 단 한 줄도 알지 못하지만 생의 마지막 두 달쯤의 시간을 함께 해드릴 수 있었다. "돌을 모아 탑을 쌓고 서원을 했다/ 돌도 나를 모르고 나도/ 돌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게 돌에다 한 것인지/ 내가 나에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며칠 전 이 시를 읽는데 그분을 향한 나의 서원이 꼭 이랬구나 싶었다. "돌도 돌만은 아니었다/ 나도 나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와 나 사이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