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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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제비

            안도현

 

 

   비 온다

   찬 없다

 

   온다간다 말없다

 

   처마 끝엔 낙숫물

   헛발 짚는 낙숫물

 

   개구리들 밥상가에

   왁자하게 울건 말건

   밀가루반죽 치대는

   조강지처 손바닥

   하얗게 쇠든 말든

 

   섰다 패를 돌리는

   저녁 빗소리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중에서

 

 

  "비가 쏟아지는 아침이다.

  오월의 잦은 비, 천수답엔 논물 대기 좋겠지만. 다른 작물들은 어떨까? 갑자기 농사꾼의 마음이 헤아려지는 싱숭생숭한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다."라고 쓴 것이 무색하게 햇살 환해진 시간. 마음도 날씨 따라 환해지는 건가, 화~ 안 하다.

  울 집 장남이 '섰다 패를 돌리는'데 정신이 팔렸던 방위 시절.

  지어놓고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장터의 우리 집이 날아가고,

  씨감자를 넣고 재 뿌리고 북해 주느라 허리 휘던 감자 한 차가 사라지고,

  자갈 논에 모심느라 손톱이 꺾어지며 수매한 나락 값이 한입에 없어지던 그해.

  우리는

   오늘은 수제비, 어제는 국수, 내일도 국수, 모레는 수제비를 물수제비뜨듯 뜨던 날들 사이에서도 엄마는

  '조리장사 치겟돈을 내서라도' 시루떡을 앉히던 날이 있다.

  객지 나가있는 언니 오빠들의 생일이었다.

  오늘도 그런 날.

  나를 업어키우고 재우고 보호자 노릇을 하던 여덟 살 위인 둘째 언니의 생일이다.

   "온다 간다 말 없"이 사는 여전한 내 보호자 울 언니,

  축하해 언니, 이제부터라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갑시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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