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창비시선 455
신미나(싱고)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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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과(破瓜) 1

                      신미나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목사님이 말했는데

   손가락이 하나 없는

   언니의 머리는

   쓰다듬어주지 않았다

   헌금함이 돌아오면

   우리는 헌금하는 시늉을 했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콧등을 내려다봤을 뿐인데

   너희는 착하구나

   부끄러움이 뭔지 아는구나

   해바라기가 해를 원망하며

   비를 기다릴 때

   고사리처럼 몸을 비틀며

   지렁이가 죽어갔다

        시집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중에서

   벌써 네 번째 시집을 펴낸 신미나 시인의 시를 처음 만났다. 시집의 첫 시 『지켜보는 사람』을 읽는데 왜 이제 만났을까 싶다.

   파과, 破瓜.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말하면서 "부끄러움이 뭔지" 알기에 착한 자매에게 친절한 어른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안겼다. 그러나 그 어른은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여전할 것이고 그런 날들을 보낸 부끄러운 자매에게 세상은 "고사리처럼 몸을 비틀"린 세월을 안겼을 것이다. 치민다. 울컥한다. 이것은 폭력의 서사다. 이 현재진행형의 폭력 앞에서 대책 없이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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