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시인선 151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므로 그래서

                                  이규리

   산책은 나무에서 나와 나무 아닌 곳으로 들어간다

   해 질 무렵이면

   마음은 곧잘 다른 마음이 되어

   노을을 낭비하였는데

   이어지는 저녁의 이야기는

   흐린 은유는

   아무때나 친절하면 안 된다는 듯

   우리는 지나가는 그늘

   공기조차 알아채지 않도록

   그건 나무에게 이름을 걸어주지 않는 이유와 같을 것

   없는 슬픔이 도와

   그러므로 그래서

   안녕히 가세요

   나의 시간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중에서

 

 

     

 

  

 

  [당신은 첫눈입니까]를 아껴 읽는 중이다. 시어들이 콕콕박혀서 부리로 쪼는 물까치 가족 같다. 어느 때는 홀로 와서 쪼면서 노래하다가 가족을 불러와서 단체 회의를 하듯이 쪼기도 한다. 홀로 왔을 때는 버스 안에서 한 편을, 5인이상 집합금지 적용을 받지 않은 총동원령이 내려진 날에는 옮겨 적으면서 몇 편을 읽는다. 여기, 시 맛집이라고 물까치가 떼로 쪼아대면서 저들끼리 왁자하다. 잔칫집이다. 니들은 좋겠다.

   '해 질 무렵'을 좋아한다. 가만히 있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마음은 곧잘 다른 마음이 되어' '나무에서 나와 나무 아닌 곳으로' 산책을 간다. 열 서너살 무렵부터 노을에 마음이 뺐겼다. 학교를 파하면 훨씬 많이 걷게 되는 둑방길로 패랭이꽃과 노을을 보러 갔다. 그 풀밭에 앉아 유장한 드들강물과 노을을 보는 것으로 애늙은이의 노곤한 하루가 저물어갔다. 집에서는 도통 말없는 아이가 학교에서는 주변이 늘 소란했다. 어느 쪽이 더 좋았는지는 매번 양가의 감정이다. 두 가지 성향을 다 가진 듯하다. 여전하다. 사람, 안 변한다. ' 없는 슬픔이 도와' 마음 깊은 곳에는 울분과 설움이 자리했다. 나이가 드니 그런데서 자유롭다는 사실이 좋다. '안녕히 가세요 나의' 시간, 나의 시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