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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나무 정류장 ㅣ 창비시선 338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1년 11월
평점 :
바닥
박성우
괜찮아, 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나도 그대에게 바닥을 보여줄게, 악수
우린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위로하고 위로받았던가
그대의 바닥과 나의 바닥, 손바닥
괜찮아, 처음엔 다 서툴고 떨려
처음이 아니어서 능숙해도 괜찮아
그대와 나는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핥았던가
아, 달콤한 바닥이여, 혓바닥
괜찮아, 냄새가 나면 좀 어때
그대 바닥을 내밀어봐,
냄새나는 바닥을 내가 닦아줄게
그대와 내가 마주앉아 씻어주던 바닥, 발바닥
그래, 우리 몸엔 세 개의 바닥이 있지
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
이 세 바닥을 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겠지,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겠지
자두나무 정류장
외딴 강마을
자두나무 정류장에
비가 와서 내린다
눈이 와서 내린다
달이 와서 내린다
별이 와서 내린다
나는 자주자주
자두나무 정류장에 간다
비가 와도 가고
눈이 와도 가고
달이 와도 가고
별이 와도 간다
덜커덩덜커덩 왔는데
두근두근 바짝 왔는데
암도 없으면 서운하니까
비가 오면 비마중
눈이 오면 눈마중
달이 오면 달마중
별이 오면 별마중 간다
온다는 기별도 없이
비가 와서 후다닥 내린다
눈이 와서 휘이잉 내린다
달이 와서 찰바당찰바당 내린다
뭇별이 우르르 몰려와서 와르르 내린다
북적북적한 자두나무 정류장에는
왕왕, 장에 갔던 할매도 허청허청 섞여 내린다
나흘 폭설
폭설이다
버스는 나흘째 오지 않고
자두나무 정류장에 나온 이는 자두나무뿐이다
산마을은 발 동동거릴 일 없이 느긋하다
간혹 빈 비닐하우스를 들여다보던 발길도
점방에 담배 사러 나가던 발길도
이장선거 끝난 마을회관에 신발 한 켤레씩을 보탠다
무를 쳐 넣고 끓이는 닭국 냄새 가득한 방에는
벌써 윷판이 벌어졌고 이른 낮술도 한자리 차고앉았다
허나, 절절 끓는 마을회관 방엔 먼 또래도 없어
잠깐 끼어보는 것조차 머쓱하고 어렵다 나는
젖은 털신을 탈탈 털어 신고 다시 빈집에 든다
아까 낸 눈길조차 금시 지워지는 마당,
동치미 국물을 마시다 쓸고 치직거리는
라디오를 물리게 듣다가 쓴다 이따금
눈보라가 몰려와 한바탕씩 거들고 간다
한시도 쉬지 않고 눈을 쓸어내던
싸리나무와 조릿대와 조무래기 뽕나무는
되레 눈썹머리까지 폭설을 당겨 덮고 누웠다
하얀 어둠도 눈 발 따라 푹푹 쌓이는 저녁
이번엔 내가 먼저, 긴긴 폭설 밤을 산마을에 가둔다
흰 무채처럼 쏟아지는 찬 외로움도 예외일 순 없다
배꼽
살구꽃 자리에는 살구꽃비
자두꽃 자리에는 자두꽃비
복사꽃 자리에는 복사꽃비
아그배꽃 자리에는 아그배꽃비 온다
분홍 하양 분홍 하양 하냥다짐 온다
살구꽃비는 살구배꼽
자두꽃비는 자두배꼽
복사꽃비는 복숭배꼽
아그배꽃비는 아기배꼽 달고 간다
아내랑 아기랑
배꼽마당에 나와 배꼽비 본다
꽃비 배꼽 본다
살구나무 변소
부안 감다리집 마당에는
살구나무 변소가 있는데요
볼일 보러 변소로 가면
살구나무가 치마 내리는 것을 훔쳐보다가는요
엉덩이 까고 후딱 앉으면요 후딱
시치미 떼고 서 있는 엉큼한 살구나무가
한눈에 들어오는 변소가 있는데요
안 쳐다본 척하다가는요
볼일 다 보고 치마 올리고 일어서는 순간에요
후딱 변소 안을 들여다보는 엉큼한 살구나무가 있는데요
네 칸 널판지 조각을 대어 변소 문짝을 만들었다가는요
뜬금없이 위쪽 한 칸을 떼어내고는
오살헐 살구나무 풍경을 덧대놓은 것이 문제는 문제이겠지만요
그보담은 오살헐 살구나무와 은근한 뭣을 즐기기라도 하듯
살구나무 변소를 찾는 사람도 문제는 문제인데요
그니깐, 죽으면 죽었지 살구나무 변소에는
얼씬도 못할 줄 알았던 서울내기 제 색시가요
구린내 나는 살구나무 변소를 갔다 오더니만요
살구나무 변소 참 좋다, 하는 것도 문제는 큰 문제이겠지요
알고 보면, 살구나무 변소는요
부안 감다리 사는 울 어머니 작품이기도 하지요
목젖
평소엔 그냥 목젖이었다가
내가 목놓아 울 때
나에게 젖을 물려주는 젖
젖도 안 나오는 젖
같은 젖,
허나 쪽쪽 빨다보면
울음이 죄 삼켜지는 젖
무에 그리 슬프더냐, 나중에
나중에 내가
가장 깊고 긴 잠에 들어야 할 때
꼬옥 물고 자장자장 잠들라고
엄마가 진즉에 물려준 젖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창비2011) 중에서
그의 시는 바쁜 도시의 일상을 잠시 접어둔 채 무작정 찾아가 보고 싶은 내면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자본과 문명의 근대적 삶을 무조건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 해도,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맹목적인 변화의 속도를 조금은 늦추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시는 '의미의 소통'보다는 '감각의 촉발'을 지향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생활과 현실의 상처와 고통은 커져가는데, 시는 이러한 현실을 감싸 안는 공동체의 가치를 보여주기보다는 철저하게 개인화된 내면의 감각으로 점점 더 숨어들고 있다.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가장 감성적인 소통의 도구인 시조차 이제는 지식인의 산물로 변질되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쩌면 박성우의 시는 조금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발상과 어법을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과 문명의 속도를 따라잡기에 분주한 우리 시단의 과잉 언어에도 불구하고 생활과 현실을 중심에 놓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일관된 그의 시 세계는, 낡고 오래되었지만 오히려 가장 미래지향적인 역설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작 자기가/ 이 동네 마지막 일소인 줄도 모르고/ 황순이 앞세워 느릿느릿 비탈밭을 간다"라는 "늙다리 금수 양반"(「일소」)처럼 조금은 어리석고 무심해도 충분히 살아갈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박성우의 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계의 모습이다. "별말 없이"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계, 아마도 지금 시란 무엇인가 혹은 시는 어떠해야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이러한 마음과 생각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해설 "별말 없이"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 문학평론가 하상일
시인의 말
어떤 금기처럼
내 방에 들이지 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거울이다.
나를 온전히 비춰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쓴 시뿐이므로.
2011년 11월
박성우
이 시집의 시들은 아름답다. 투명하고 정갈하기 짝이 없는 이 시들은 가녀린 듯하면서도 강인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시들이 시인의 성품을 닮았다. 살짝 스치는 미풍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금선(琴線)의 울음처럼 여리면서도 강하다. 슬프고 쓸쓸해 보이지만, 결코 애상(哀傷)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이 시집에서 자주 익살을 부리는데, 너무 우습고, 너무 착하고 순수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남도 말맛을 사용한 그의 익살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걸직한 입담과는 전혀 다른 진경을 보여주는데, 구수하면서도 사뭇 고상한 품격을 지니고 있다. 투명하고 정갈한 아름다움. 조용하게 던지는 그의 말들이 이러한 아름다움을 담는 그릇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새로운 언어의 발견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현기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