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길

                       박성우

   한 여자가 빙판에 미끄러져

   뒤로 떨어졌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어쩌면 좋겠냐는 것이다

   얼음 위에서 버둥거리던 발은

   신발을 치켜들어 허공에

   가위걸음을 떼었을 것이고

   땅을 짚으려던 팔은 채 내려가기도 전에

   겨울하늘을 들어올리며 떨어졌을 것이다

   땅바닥에 바싹 붙어 있었을 미끈미끈한 빙판길은

   일자로 떨어지는 등허리를 우지직 받았을 것이다

   우지직, 금이 갔을 등허리뼈 사이로는

   차가운 공기가 집요하게 파고들었을 것이다

   정신을 놓친 머리는 얼음에 머리를 식히며

   가장 편안한 상태로 한참이나 쉬고 있었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 질끈 놀란 눈을 가려주었을 눈꺼풀은

   놀란 눈동자를 깜박깜박 닦아보았을 것이다

   소름끼치는 몸을 일으켜야겠다고

   가까스로 들어온 생각이 생각했을 때

   몸은 어거지를 피우며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나지 않았을 입은

   떨리는 입술을 벌려보았을 것이다

   아앗 하고 소리질러야 할 입 대신

   쿵 하고 소리를 질렀을 뒷머리,

   새소망병원 413호 침대 위에 뉘이고 있다

   일 안하면 안달날 수밖에 없는 늙은 여자

   금가고 벌어진 등허리뼈를 일으키려고

   칠순에 닿은 어머니가 까친 손을 내미신다

                               시집 [가뜬한 잠(창비2007)] 중에서

   쓸쓸한 접촉

     일 갔다가 편도 일차선 도로에서 사고가 났다 상대편 트럭 네 바퀴 모두 중앙선을 넘어와 내 차를 치고는 다시 중앙선을 넘어갔다 번뜩했다

     경찰차가 줄줄이 왔다 상대편 트럭 운전수는 내가 트럭을 치고는 다시 중앙선을 넘어갔다고 우겨댔다 아까부터 보고있던 옆자리 노스님이 운전수 얼굴에 침을 뱉으며 한마디 하신다 야 씨발 개새끼야

    상대편 보험회사에서 입원비도 내주고 차도 고쳐주고는 기십만원을 통장에 넣어주었다 마침, 뒷목과 어깨와 엉치뼈는 결린 안부를 전해오고 월급은 석 달째 깜깜무소식인 터이다 몸 푼 아내와 같이 맡겼던 갓난아이 찾으러 처갓집에 가야 할 터이다

     장모님 이거 안 받으시면 딸도 외손주딸도 안 데려가요, 암것도 알 리 없는 아내와 세이레 된 어린 것을 받아안고 처갓집 나선다 셋이서 살 비비면서 집으로 간다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창비2011) 중에서

     박성우시인을 읽고 있었다. 함께 있는 라디오가 온통 눈 소식이다. 제시간이면 당연하게 나올 목소리가 바뀌었다. 신년 휴가인가 생각할 찰나, 도로에 묶여서 꼼짝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함박눈은 펑펑 내리고 한파경보가 내렸다. 지금 길에 있을 이들 생각에 걱정들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모두, 무탈했으면. 속 없이 눈 오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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