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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이별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89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8월
평점 :
무위사
류근
강진 차밭 지나다
푸른 절 배롱나무 아래서
또 우는 내 옛날을 보았다
지는 꽃 흔들리는 바람에 들어
높이 자란 등뼈 쓰다듬는 일로
하루를 다 보냈다
이윽고 저녁이 왔을 때
다행히 길은 멎고 다행히 해는 져서
모든 슬픔이
홀연 낮은 별 아래서 더 빛나는 섭리를
우물처럼 바라봤다
아주 지는 꽃
끄트머리처럼 내 그늘이 밝았다
시집 [어떻게든 이별] 중에서
아, 무위사.
너른들에 홀로 우뚝한 월출산 옆 자락에 숨은 듯, 없는 듯,
무위사(無爲寺)는 거기 천오백년 전부터 있지요.
한번이라도 그토록 소박한 극락보전을 보았다면
평생 잊을 수 없지 싶은,
지금 배롱나무가 하늘하늘 할 그 곳,
무위사는 옛날을 만나고 슬픔의 등뼈를 쓰다듬는 곳인가요.
우리도 홀로 삭여내고 비워 낼 그런 장소, 그런 하루,
각자의 무위사를 하나씩 가졌으면 좋겠지요.
내 옛날을 돌아보고 슬픔을 달래고, 피고지고 피고 지는
작은 꽃 배롱나무에 경배할 그런 하루, 그런 장소.
다행히 길은 멎고 다행히 이 뜨겁고 긴 여름도 끝나겠지요.
당신의 생애는 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