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으로 보내는 편지

                                    박준

   오랫동안 기별이 없는 당신을 생각하면 낮고 좁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울음이 먼저 걸어나오더군요

   그러고는 바쁜 걸음으로 어느 네거리를 지나 한 시절 마른 저수지와 강을 건너 흙빛 선연한 남쪽 땅으로 가더군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땅 황토라 하면 알 굵은 육쪽마늘이며 편지지처럼 잎이 희고 넓은 겨울 배추를 자라게 하는 곳이지요 아리고 맵고 순하고 여린 것들을 불평 하나없이 안아주는 곳 말입니다

   해서 그쯤 가면 사람의 울음이나 사람의 서러움이나 사람의 분노나 사람의 슬픔 같은 것들을 계속 사람의 가슴에 묻어두기가 무안해졌던 것이었는데요

   땅 끝, 당신을 처음 만난 그곳으로 제가 자꾸 무엇들을 보내고 싶은 까닭입니다

         시집[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2012)]중에서

                                                                   

   면벽 24

                                                                              강세환

     -오래전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났던 김태정 시인의 부음을 듣고

   미황사 아래 어디

   해남 송호리 어디

   무릎께만 한 땅거미도 슬금슬금 기어들던

   푸성귀 널어논 마당을 지나

   어느 독거노인 집 건넌방에 겨우 세 들어 살던

   깍지 낀 손을 풀었다 쥐던

   흙바람 벽면에 툭 던져놓은

   창 넓은 흰색 민모자 하나

   낡고 허름한 추리닝 한 벌

   텅 빈 액자 자국 하나

   벽면에 홀로 남겨놓고

   꼭 그렇게 떠나려고 했으리라

   친구도 혈육도 세간살이도 통장 잔고도 집 한 칸도

   어떤 소식도 없이

   (······)

   그녀는 그렇듯 떠났으리라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그녀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을 돌아보고

   느릿하게 또 돌아보며

   시집 [앞마당에 그가 머물다 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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