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짧게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사카 고타로의 다른 책들에도 흥미가 당길 만큼. 어쩌면 제 책장에 요시모토 바나나(지금은 엄청 시들해졌지만;) 외에도 모을 일본작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 구성은 현재의 시나 시점과 2년 전의 고토미 시점이 교차되어지면서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한챕터 한챕터 확실하게 구분되어져 있고 갑자기 날짜가 엇갈리는 것과 같은 장면은 없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1인칭이 제가 좋아하는 시점이라서 더 좋았어요. 단지 고토미라는 사람이 제가 참 싫어하는 타입이라 조금 힘겹..다기 보다 짜증이. ()

  스토리는 2년 전 있었던 사건과 인물들이 현재 갑자기 등장한 시나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뭐랄까 전 이렇게 멋진 복선들을 또 보진 못할 것 같아요. 대사 한마디, 장소 하나, 엑스트라 하나까지 헛투로 볼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정말 잘 짜여진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사건들을 굉장히 설득력있게 어째서 그랬는지를 설명해줌으로써 그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로 탈바꿈 되었습니다. 또한 매력적인 캐릭터들도 한몫 단단히 했구요. 무엇보다도 옆에 있을 법 한데 어딘가 조금 현실적이지 못한 그런 캐릭터성이 좋았습니다. 한편으로 숨막히기도 했지만요.
  특히 고토미라는 캐릭터가 그랬는데요. 왜 그러는지는 이해하겠는데, 미치겠는 거에요. 그 행동 하나하나에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리.() 신고 좀 하라고..() 신고 좀 하라니까..() 아니, 그런데 더 답답한 건 어쩌면 저도 그런 상황이라면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한숨이 나온다는 것이...ㅇ<-< 그리고 시나. (그러고보니 화자들이 가장 현실성 있는 캐릭터들이었네요.) 시나는 정말 안타까워서 말이에요. 나중에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어쩐지 너무 현실성이 느껴져서 안타까울 정도. 뭐랄까 시나에게 있어서 옆집 사람과 꼬리끝동글말이와의 만남이 '마법의 가을'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 외의 가와사키나 도르지, 레이코씨도 매력적이었구요. 조금 부담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건 레이코씨의 외양에 대한 끊임없는 묘사정도. 첫묘사가 인상적이라 이제 그만해도 될텐데 싶어도 반복되더군요.
  그리고 캐릭터 이야기를 하는 김에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보자면, 레이코씨는 현대 사람들의 개인주의 성향을 극단적으로 만들어 놓는 것 같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비인간적인 느낌, 하지만 사실은 내 남자에겐 따뜻하겠...이게 아니라.. 음, 그러니까 말입니다. 한없이 개인주의이고 냉정하고 이지적이면서도 내면은 외로운, 그래서 동물들에게 그 애정을 나눠주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였어요. 가와사키도 마찬가지로 현대 인간의 어딘가 이지러진 면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구요. 무엇보다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그 애완동물살해범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들은 삶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이상할 정도로 폭력적이고 일그러져있죠. 그러니까 요는 책내용 자체도 굉장히 재미있었지만, 책 전체에서 느껴지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듯한, 그리고 나중에 그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금은 이렇긴 하지만 세상은 따뜻해요, 얼마든지 따뜻해질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듯한 그것이 좋았어요. 희망적이잖아요.
  시나와 고토미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런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듯 하고, 도르지는 우리가 지향해야할 인간상 정도로 느껴져요. 정확히는 도르지는, 이라기 보다는 도르지의 고향인 부탄이라는 나라가 말이에요. 조금 더 여유있고, 레서판다가 있고 종교가 있는. 부탄은 이상할 정도로 이상향으로 그려져 있어요. 현대일본과 대립되는 느낌으로 대치시키고 있죠. 작가가 아마 현대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책 중에는 부탄의 전통을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해서 대입하는 이기적인 모습도 보이네요. 그런 식은 아니라고 시나가 꼬집어주고 있지만. 정말로, 그걸 알고 있다면, 그걸로 좋은 걸지도 모르겠어요.
  아, 그리고 그리고 도르지를 통해서 일본인들의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불편한 감정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구요. 뭐, 그것말고도 이것저것 장치한 것이 잔뜩 있을 테지만, 알기 쉽게 제가 파악한 것은 이정도. 그런데 스쳐지나가면서 아, 했는데- 그게 뭐더라.. 한 것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ㅠ

  자, 뭐 대강 느끼셨을지도 모르겠는데, 결코 가벼운 내용의 책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팔랑팔랑 책장은 잘 넘어가네요. 흡입력은 굉장했지만,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어요. 아니, 고토미의 시선에서는 좀 더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시나의 시점에서는 정말이지 귀여워서 웃음이 나올정도. 물론 가끔 섬찟할 때가 있긴 했지만, 그건 정말 그 내용이 섬찟했기 때문이에요. 내용은 어두운데 그것을 한없이 가볍게 만드는 이상한 재주가 있네요. 요즘 일본소설들의 공통적인 속성이긴 하지만 말이에요. 이정도로까지 무거운 사건을 가볍게 그려내는 책은 처음이어서 신선했어요. 사건들 사이에 화자의 일상을 집어넣어 화자가 사건에 대한 긴장감이나 호기심을 조금씩 누그러뜨리는 것이 독자에게 그대로 적용이 되는 느낌이네요.

  여기서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듯 해요. 어느 책이나 취향을 타기 마련이고 좋다는 사람이 있으면 싫다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만, 인터넷서점에서 슬쩍 보니 이 책만큼 극단적으로 갈리는 책을 보는 건 오랜만이네요. (영화는 자주 봤지만, 책은 그다지 자주 못본 것 같거든요;)
  특히 이사카 고타로의 다른 책을 읽은 분이 굉장히 실망했다는 듯한 감상평을 남기셔서 이 작가의 다른 책이 정말로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책은 또 얼마나 재미있길래...? 라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데 영화도 굉장히 궁금해요. 영화로 만들 경우에는 아마 2년전 사건과 현재를 교차로 보여줄 순 없을 것 같은데, 감독님이 어떤 식으로 각색했을지도 궁금하구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