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미술관 -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정혜신 지음, 전용성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몰두할 만한 무언가를 찾거나,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하거나, 자신을 울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등의 공격적인 ‘마음 대응’을 합니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응 방법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어려움을 겪고 난 일이 년 후에 몸의 건강이 나빠지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심리방어기제를 채택했던 사람들이라는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어릴 적 자전거를 배울 때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던 얘기 중 하나는 ‘넘어지려고 할 때 넘어지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어야 넘어지지 않는다’는 역설(逆說) 같은 순리(順理)였습니다.
슬프고 괴로울 때 슬픔에 충분히 젖어들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그래야 마지막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충분한 슬픔 – 55쪽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인 것 같다.  속독이라면 얼마 걸리지 않아 모두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필자의 말처럼 옆집 아저씨 전모씨(??^^) 전용성 화가의 그림도 좋고 그림을 읽어내는 필자의 목소리도 조근조근 따뜻하다. 요근래 아류작까지 등장해대는 잠언시집 같은 것보다 괜찮다.

머리맡에 두고 필자의 소리처럼 사람에 대해 생각하며, 나를 다스리는 책으로 자주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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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계단을 보라
윤대녕 지음 / 세계사 / 2003년 7월
구판절판


혹은 내가 투구게처럼 갑갑하게 느껴지고 이 한줌 하찮은 삶도 갑자기 자갈밭을 갈고 있는 보습처럼 못 견디게 더워져서, 마침내 삶의 화두 뻗쳐 올라와 물집투성이인 얼굴이 되었을 때 다시금 나는 떠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석굴암 본존 불상과 경주에서 강릉까지 가는 칠번 국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불현듯 행장을 꾸리고 나는 정말 투구게 같은 모습으로 남몰래 어깆어깆 길에 올랐다.

[신라의 푸른 길] 中 -35쪽

때로 그게 사랑이라는 것은 아니어도, 어스름한 저녁에 깨어나 지붕에 후득이는 빗소리를 들을 때처럼 마음이 간절하게 사무치는 때가 있다. 벽구석에 몸을 말아붙이고 앉아 손가락 하나로 아무렇게나 건반을 꾹꾹 눌러보고 싶은 순산이 있다.

[신라의 푸른 길] 中
-59쪽

아버지를 모르고 큰 사람은 더불어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는 사실이 내게도 자격지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리는 대개 가까운 사람의 부재(不在)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이란 어떤 일을 겪고 난 다음에야 늘 그것에 대해 깨닫게 되는 법인가 보다. 남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한 나는 또다시 가까운 사람이 내게서 홀연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까워지지 못하고 또 그럴 만한 기회가 있어도 망설이다가는 결국 상대를 떠나보내고 말았던 기억이 나는 잦은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에 시간은 지체없이 흘러가고 똑같은 기회가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깨달아가고 있었다.

[가족사진첩 ] 中 -173-174 쪽

어딘지 모르게 그대의 조임쇠가 풀려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아까부터 눈길을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다. 혹은 내가 그렇게 함부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쪽이 먼저든 그런 느낌이 들면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엔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는 편이다. 좀 억지스런 말이지만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또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 누군가를 지독히 가까이했다가 그만큼 지독한 꼴을 당한 일이 있어서겠지

[사막의 거리, 바다의 거리 ] 中 -206쪽

나는 너무 지친 사람들만 만나며 살아왔다. 이제는 몸과 마음이 모두 정갈하고 혼자 있어도 추해지지 않는 그런 사람 곁에 있고 싶다. 나는 너무 상처받은 사람들만 만나왔다. 아니 상처받지 않으면 못 배기는 사람들하고만 술을 마셔왔다. 하지만 상처란 눈에 보이는 그런 게 아닐 것이다. 그건 상처라고 기억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음 저 깊은 곳에 숨어 살며 소리 없이 영혼을 갉아대고 있는 어떤 짐승의 그림자 같은 것일 게다. 이를테면 저 망루에서 서성이는 그림자 같은 거. 그러니까 어쨌든 술안주 따위는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사막의 거리, 바다의 거리 ] 中 -215쪽

사막은 가령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 너와 나 사이에 팽팽하게 지속되고 있던 긴장의 끈이 한순간에 끊어지고 그리하여 아득한 거리고 밀려나면서 그 사이에 황량한 모래벌판이 가로놓이게 된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 中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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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1-27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에 잠기게 하는 글들.. 잘 읽고 갑니다~
 
남쪽 계단을 보라
윤대녕 지음 / 세계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딘지 모르게 그대의 조임쇠가 풀려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아까부터 눈길을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다. 혹은 내가 그렇게 함부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쪽이 먼저든 그런 느낌이 들면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엔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는 편이다. 좀 억지스런 말이지만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또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 누군가를 지독히 가까이했다가 그만큼 지독한 꼴을 당한 일이 있어서겠지
[사막의 거리, 바다의 거리 ] 中 – 206쪽   

나는 너무 지친 사람들만 만나며 살아왔다. 이제는 몸과 마음이 모두 정갈하고 혼자 있어도 추해지지 않는 그런 사람 곁에 있고 싶다. 나는 너무 상처받은 사람들만 만나왔다. 아니 상처받지 않으면 못 배기는 사람들하고만 술을 마셔왔다. 하지만 상처란 눈에 보이는 그런 게 아닐 것이다. 그건 상처라고 기억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음 저 깊은 곳에 숨어 살며 소리 없이 영혼을 갉아대고 있는 어떤 짐승의 그림자 같은 것일 게다. 이를테면 저 망루에서 서성이는 그림자 같은 거. 그러니까 어쨌든 술안주 따위는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사막의 거리, 바다의 거리 ] 中 – 215쪽

 

 좋아했던 작가의 성품은 풍문으로 들어보니 깡마른 체격만큼이나 건조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가? 그 후로는 아름다운 글귀가 고운 시선으로 봐지지 않는 병이 생겨 버린 탓일까? 그런 연후에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쓴다고 했다던 그의 이야기는 사랑이란 이름이든 뭐든 많이 결핍되고 상실되어 있는 인간들의 면상을 그리고 있는 듯 하다. 하긴 이런 모습이 요즈음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은 예전 미니북으로 읽었는데, 이 책에 실려 있어 다시 읽게 되었고,  읽으면서 나미브 사막을 화면을 통해 보게됐다. 그 뜨거우면서 황량한 사막...다들 맘에 그런 사막을 가지고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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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스톤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1
월키 콜린즈 지음, 송무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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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도 아르센 뤼팽도 등장하기 전 지금으로부터 약 150여 년 전 추리소설이란다. 거의 추리소설의 아버지뻘이라누먼.....한참을 읽다가 작가가 왠지 눈에 익어 약력을 살펴보니....이크...어지간히 지루한 문체로 씌여져 추리소설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던 [흰 옷을 입은 여인 Woman in White]를 쓴 그 작가 윌리엄 월키 콜린스이다....청소년용으로 나온 책이라 내용을 축약한 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살짝 가긴 하지만 그 지겹고 두꺼웠던 책에 비하면 같은 작가가 쓴 책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감이 있었다. 물론 여러 명의 화자를 등장시켜 상황에 맞춰 이야기 하는 방식만 아니었더라면 콜린스 작품인 줄 모르고 지났을 것이다.

종교적 의미를 가진 문스톤이라는 보석이 사라지면서 발생되는 이야기가 여러 명의 화자를 통해 추적을 해나가는 내용은 추리소설 이전의 추리 소설이라면 긴장감이 덜하긴 하지만 나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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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 미스터리
블루 발리엣 지음, 김난령 옮김, 브렛 헬퀴스트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07년 8월
품절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도 사실은 매우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무관한 듯 보이는 인생의 경험들도 사실은 펜토미노처럼 서로 이어 맞출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메세지는 시간의 간격을 떠나 전달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백 수천 변이 지났다 하더라도 말이다.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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