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계단을 보라
윤대녕 지음 / 세계사 / 2003년 7월
구판절판


혹은 내가 투구게처럼 갑갑하게 느껴지고 이 한줌 하찮은 삶도 갑자기 자갈밭을 갈고 있는 보습처럼 못 견디게 더워져서, 마침내 삶의 화두 뻗쳐 올라와 물집투성이인 얼굴이 되었을 때 다시금 나는 떠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석굴암 본존 불상과 경주에서 강릉까지 가는 칠번 국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불현듯 행장을 꾸리고 나는 정말 투구게 같은 모습으로 남몰래 어깆어깆 길에 올랐다.

[신라의 푸른 길] 中 -35쪽

때로 그게 사랑이라는 것은 아니어도, 어스름한 저녁에 깨어나 지붕에 후득이는 빗소리를 들을 때처럼 마음이 간절하게 사무치는 때가 있다. 벽구석에 몸을 말아붙이고 앉아 손가락 하나로 아무렇게나 건반을 꾹꾹 눌러보고 싶은 순산이 있다.

[신라의 푸른 길] 中
-59쪽

아버지를 모르고 큰 사람은 더불어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는 사실이 내게도 자격지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리는 대개 가까운 사람의 부재(不在)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이란 어떤 일을 겪고 난 다음에야 늘 그것에 대해 깨닫게 되는 법인가 보다. 남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한 나는 또다시 가까운 사람이 내게서 홀연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까워지지 못하고 또 그럴 만한 기회가 있어도 망설이다가는 결국 상대를 떠나보내고 말았던 기억이 나는 잦은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에 시간은 지체없이 흘러가고 똑같은 기회가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깨달아가고 있었다.

[가족사진첩 ] 中 -173-174 쪽

어딘지 모르게 그대의 조임쇠가 풀려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아까부터 눈길을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다. 혹은 내가 그렇게 함부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쪽이 먼저든 그런 느낌이 들면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엔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는 편이다. 좀 억지스런 말이지만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또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 누군가를 지독히 가까이했다가 그만큼 지독한 꼴을 당한 일이 있어서겠지

[사막의 거리, 바다의 거리 ] 中 -206쪽

나는 너무 지친 사람들만 만나며 살아왔다. 이제는 몸과 마음이 모두 정갈하고 혼자 있어도 추해지지 않는 그런 사람 곁에 있고 싶다. 나는 너무 상처받은 사람들만 만나왔다. 아니 상처받지 않으면 못 배기는 사람들하고만 술을 마셔왔다. 하지만 상처란 눈에 보이는 그런 게 아닐 것이다. 그건 상처라고 기억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음 저 깊은 곳에 숨어 살며 소리 없이 영혼을 갉아대고 있는 어떤 짐승의 그림자 같은 것일 게다. 이를테면 저 망루에서 서성이는 그림자 같은 거. 그러니까 어쨌든 술안주 따위는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사막의 거리, 바다의 거리 ] 中 -215쪽

사막은 가령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 너와 나 사이에 팽팽하게 지속되고 있던 긴장의 끈이 한순간에 끊어지고 그리하여 아득한 거리고 밀려나면서 그 사이에 황량한 모래벌판이 가로놓이게 된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 中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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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1-27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에 잠기게 하는 글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