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 - 벤처 대부의 거꾸로 인생론
정문술 지음 / 키와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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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스토리를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한창 벤처붐이 일 때도 벤처란 일확천금을 누리는 젊은이들이 벌이는 일쯤으로 여기고 신경을 끄고 살았던 탓에 미래산업이 어떤 기업인지 사장이 누군지 관심도 없었다. 최근에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를 읽다가 사원들에게 ‘제발, 보고서 좀 올리지 마시오.’라고 하는 기업인이 있다길래 ‘어, 이 사람 봐라.’ 이런 호기심이 일어 『왜 벌써 절망합니까』를 읽고, 연이어 이 책까지 읽게 되었다.

하청업체의 피를 빨아 살집을 키우는 대기업의 횡포는 그 옛날 약자를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던 ‘양반’들의 그 모습과 닮았다. 그래도, 성취감을 느끼며 채워가는 즐거움보다, 좋은 조건을 좇아 그런 대기업으로, 대기업으로를 외치는 마당에 대기업은 자신들의 생리와 맞지 않는다며 미래산업을 찾는 젊은이들도 인상적이지만, 소신과 인간을 생각하는 기업정신으로 기업이란 이렇게 운영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신 분이기에 이 책이 무척 인상적이다. 막힌 속이 뻥뻥 뚫리는 기분이라고 할까... 자생할 수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걸 도전과 모험정신으로 몸소 보여주신 모습에 감동과 전율을 느낀다.

쉽지 않았을 퇴진 결심이 다른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다. 자살까지 생각했을 만큼 바닥까지 떨어졌던 현실을 딛고 미래산업을 만들어 이제 그런 어려움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는데, 정작 정문술 사장은 퇴진을 결심했다. 사장의 배만 불리는 기업을 사양하고, 사장은 인재가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실천했고, 기업은 사원 모두의 것이라는 기업철학을 가졌던 분답게 무대에서 퇴장하는 모습 또한 정문술 사장다웠다. 평소에 ‘유산은 독’이라고 강조해두었던 아들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퇴장함과 동시에, ‘기획’된 인재보다 ‘방목’된 인재를 선호했던 만큼, 퇴장 후에도 미래산업의 운명에 일체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소인은 자신이 빠지면 안 되도록 상황을 연출해 놓는다.
모든 사람이 그를 쓸모있는 사람으로 여길 때 만족한다.
대인은 자기가 없어도 일이 잘 돌아가도록 조정해 둔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필요없는 사람으로 여길 때 만족한다.

이 말이 딱 어울리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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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왜 여우같은 여자를 좋아할까?
셰리 야곱 지음, 노진선 옮김 / 명진출판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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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자는 남자의 도전욕구에 부응해야 하니까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라 그 이상은 없다. 다시 말해서, 남자들은 이러이러한 여자를 좋아하니까 여자여 당신은 자신 본래의 모습을 버리고 남자가 좋아하는 모습(질투 안 느끼는 척, 남자인 자신에게 매달리지 않는 척, 척척척)을 보여라 그런 얘기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해도 되지만, 여자는 남자의 눈에 들도록 노력해야지 남자를 적극적으로 사랑해서는 안 된다? 휴... 이런 메시지는 고리타분하다.

제목부터 저게 뭔가? 여자를 남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대상’이 아닌 ‘주체’로 본다면 제목을 저렇게 지었을까? 여성을 여성 자신의 눈높이에서 보지 못하고 남자인 타자의 눈높이에서 자신을 보랜다. 차라리 『여자들은 왜 남자한테 사랑고백을 안 할까?』 뭐 이런 책이 여자들에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면, 이 책 내용대로라면 『이렇게 하면 남자를 조종할 수 있다』 이런 제목이 더 어울리겠다. 이 책을 읽다가 『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라는 책이 생각났다. 제목에 거부감이 들어서 읽어보지는 않은 책이지만 이 책이 딱 그 책 제목과 어울린다.

이 책은 남자의 심리를 읽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남자친구를 대하는 여자의 모습에는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서로의 진실을 가장한 채 안 그런 척 머리를 굴려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은들 그게 사랑이련가.

남자친구가 이쁜여자를 쳐다보면? 그냥 쳐다보게 내버려두는 게 장땡이다.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를 쳐다볼 때 자신이 실제로 질투를 느끼느냐 않느냐가 관건이지 이책은 질투를 느끼더라도 아닌 척하란다. 그건 자기 기만이다. 나라면 차라리 다른 여자를 쳐다보니까 질투가 난다, 소외감 느낀다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것 같다. 꾹 참고 여자친구 앞에서는 이쁜 여자를 못본 척 하는 남자나 질투 느낀다고 남자친구를 못살게 구는 여자나 피장파장일 뿐이다.

남자나 여자나 착 딱하다. 본심을 감추고 남자를 조정하듯 해야 하는 여자나 쉬운 방법 두고 참 어렵게 여자친구의 마음을 얻는 남자나 사랑을 참 피곤한 방법으로 서로를 볶으면서 하다니...

저자가 말하는 ‘여우’는 ‘현명한’, ‘당당한’ 모습에 무게를 둔 말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여우’는 약삭빠르고, 잔꾀가 많고, 약아빠진 이런 부정적인 인상이 강한 말이다. 이런 걸 떠나 마더 콤플렉스가 번지르르 흐르는 한국 남자들과 남자를 내밥줄로 아는 한국 여자들에게 이 책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한국남녀의 시각과는 거리가 먼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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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2009-04-26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원래는 님처럼 생각했답니다. 나는 내식대로 연애할 거라고. 좋으면 좋은거고, 싫으면 싫은거지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거라고.
그런데 님...
그렇게 착해빠져 살다가 제대로 뒤통수 맞고 피눈물 흘리고 나니까 정신이 차려집디다.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그사람을 사랑해도, 한발짝 뒤로 물러서서 테크닉을 살짝만 써준다면, 두사람이 서로 더욱 잘 지낼수 있을것 같아요.
정말 제 입장에서는 이 글에서 나온 '착해빠진 여자' 예문이 다 저와 들어맞았기 때문에 저는 이 책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네요.

사고뭉치 2009-04-29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보면 각자의 경험 세계가 녹아들어 와닿는 내용도 각자 다른 거 같아요.
 
절대로 일하지 마라
배남석 지음 / 북앤월드(EYE)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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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번의 배낭여행을 하고 난 후 난 우리나라 직장의 근무환경과 직장인들의 직업의식이 문제가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여행했던 여러 나라에서 일터에 노인들이 많이 보이고, 나이나 성별 차별없이 인력을 사용한다는 인상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보니 나이 제한을 두고, 실력보다는 외모로 사람을 뽑는 게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30살도 한참 안 된 여자가 나이가 많다고 지원을 거절당하는 현실을 보며 웃어야될지 울어야될지 난감할 지경이었다.

이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여기저기서 주워들어 대충 알고 있던 내용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확인하던 정도였기에 하나하나 보면 그리 놀랍지는 않지만, 책을 읽고 전체적인 흐름이 파악되고 보니 한국의 직장이 웬만큼 굴러가는 거 자체가 희한하게 생각될 정도다.

저자는 미국과 한국의 근무환경이 어떻게 다른 지 언급하면서 한국도 근무환경을 바꾸려면 많이 변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왜 다른가에 대한 원인분석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좀 아쉬운 책이다. 개인개인이 살아있는 문화권과 개인을 집단에 함몰시켜 소속감을 중시하는 문화권의 차이, 과정을 추구하는 문화권과 결과지향주의 문화권의 차이가, 판이하게 다른 근무환경과 직업의식을 낳는 것 같다.

저자는 책 전반에서 JOB IQ를 거론하고 있지만 한국은 개인개인의 JOB IQ 문제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관한 고민부터 해야 답이 나올 것 같다. 내가 누구인가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가정도 내팽개치고 자신을 회사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킬까?

모든 개인시간을 담보잡힌 채 기업의 부속품이 되어 회사에 충성해야 겨우 살아남는 한국의 근무환경은 남편들로 하여근 가정을 포기하고, 사생활을 포기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가정과 개인이 기업에 담보잡혀 있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우리가 직업에 대한 의식 자체가 내 능력을 회사와 거래한다는 직업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할까? 직업이란 그저 식구들을 먹여살리는 수단과 출세수단으로 여기는 우린데?

내 생각에는 개인적 자아와 직업적 자아를 구분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미래의 한국은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본다. 우리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일보다는 인간관계 위주로 돌아가고, 업무 외적인 요소가 너무 많이 개입하고, 나이나 직위에 입각해 상하수직 구조로 돌아가다 보니 제대로 된 근무환경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 근무환경이 효율적이지 못하다 보니, 똑같은 성과를 얻어내는 데도 훨씬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훨씬 많은 낭비가 생긴다. 하긴, 농경사회였던 우리가 몸으로 때우는 것만 알지 시스템 구축을 알 리가 있나...

바보같은 한국 남자들은 정치에만 매달리는데, 정치를 바꾸는 것보다 더 빠른 사회 변혁의 길은 직장의 근무시간을 “9시 출근, 6시 칼퇴근”으로 바꾸는 길이다. 우리도 밀도 높게 일하고, 쉴 땐 확실히 쉬는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직장문화를 만든다면 상승한국이 될 것이다. 한국의 여성문제 역시 이 점에 주목해야 발전할 수 있다. 나는 퇴근시간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일이 한국 사회 전반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해 가는 출발이 되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이걸 주목하지 않아서 탈이지만. 젊은 사람들은 ‘개선’을 생각하기보다 기득권에 흡수되어 적당히 '적응'하고 몸을 사려서 '출세'하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대기업이나 직장에서 한자리 한다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대화가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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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의사의 부당의료에 속고있다 - 어느 의사의 고백
로버트 S. 멘델존 지음, 김세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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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의 전 공중보건국장 허버트 래트너 박사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64~65).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라는 저자의 책을 읽고 이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대구에 놀러갔다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25년이라는 세월과 미국이라는 공간의 갭이 있지만, 가까이는 내 가족부터 주변의 친구들에게서 접하는 현실이나 여기저기 글과 뉴스를 통해 접하는 한국의 현실은 이 책에 많은 공감을 하게 만들었다. 꼭 2년 전 ‘인물과 사상’이라는 잡지에서 ‘야만적인 한국의 출산문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양돈업자가 우량돼지를 많이 얻는 이유를 설명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자신이 11년 전 병원에서 아이 낳을 때 모습을 기억하며 사람의 출산이 돼지의 출산보다 못하다고까지 출산문화를 비판한 글이었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의사의 입으로 수많은 문제점을 다발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산부인과가 생겨난 역사 자체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무지와 지배의식, 그리고 수입을 늘리려는 동기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아이를 낳는 일은 집안의 축제로 산파의 도움을 받아 산모가 가족들의 정서적 지원을 받는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던 일이었는데, 의사가 개입하게 되면서 출산을 ‘병’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역사는 출산을 의사 자신들의 ‘수입’ 문제로 생각해서 산파들을 몰아내고 병원에서 아이를 낳도록 만들었다. 의사들은 경제적 동기에서 산모(환자?)들을 병원으로 끌어들이려면 자신들의 말에 따르게 할 필요가 있었고, 그 필요에 의해 아이와 산모에게 해가 되는 각종 약물투약과 쓸데없는 여러 검사가 실시되었다. 저자는 각종 약물투여와 검사는 아이와 산모를 위해 이루어지는 치료(?)가 아니라 의사 자신을 위해 하는 치료이고, 그런 치료들이 오히려 산모의 몸을 악화시켜 산모를 병원으로 오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의사들의 그런 치료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되자 집에서 아기를 낳는 것처럼 집안 분위기로 꾸미는 트릭을 써서 산부인과 병실을 바꿔놓았고, 산모나 그 가족들은 거기 속아넘어가고 있다.

무대를 우리나라로 돌려보자. 우리나라 역시 우리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병원에 가서 아기를 낳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내 엄마는 주사 한 대 맞지 않고 우리 네 명을 낳았다. 물론, 내 엄마 뿐이겠는가. 그런데, 지금은 당연히 병원에서 낳아야 되는 일이 되어버렸다. 아기를 낳는 건 여자인데, 산부인과 의사는 왜 대부분 남자일까? 이 문제를 풀어가다 보면 우리나라도 산부인과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까? 

아기가 빨리 나오도록 의사가 손을 질속으로 집어넣고 막 돌리더라는 친구 동생의 얘기, 음모를 밀어내더라는 친구의 얘기, 회음부를 절개한다는 책속의 수많은 얘기, 자기들 점심시간이니까 빨리 (애가 나오게)하자는 잡지에 나온 경험담, 옆구리를 얼마나 눌러대던지 아이를 낳고 나서 갈비뼈가 우드득 나간 얼마전 애를 낳은 내 먼친척의 최근 얘기까지 듣자면 애낳는 일이 야만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니나 다를까 동생의 아내(올케?) 역시 병원에서 애를 낳으며 여자로서 상당히 굴욕적인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난 산모의 남편에게 자신의 아내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의사의 행동을 지켜보게 한다면 아기 낳고 싶어하는 남편이 있을까 그런 생각마저 든다. 

저자의 책 두 권을 읽고 나니까 병원이 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병을 만드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약회사와 의사의 담합이 멀쩡한 사람들도 환자로 만들고 그런 환자들을 의사의 실험도구로 삼는 곳이 병원이다. 이 책을 읽은 이상 난 그 치욕과 의사의 횡포를 감당하며 도저히 애를 못 낳을 것 같다. 임신은 미친 짓이다. 적어도,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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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렉 버렌트 외 지음, 공경희 옮김 / 해냄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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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이 남자 말은 화끈하고 시원하게 잘 하는데 너무 자기 위주잖아?’는 인상을 가졌던 책이다. 저자는 대부분 결론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보라,로 대안 제시를 하고 있다. 과연, 사랑이라는 게 지금 만나는 남자랑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남자를 차버리고 새로운 상대를 찾아가는 것만이 최선일까? 그런 경우도 있겠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여자들이 만나는 남자들은 관계를 발전시켜 보려는 노력조차 해볼 가치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남자들인 걸까? 보다 나은 관계를 위한 발전적 충고라면 남자도 꼭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내가 이 남자에게 여전히 마음이 있다면 불만을 토로하고, 시정요구를 해서 개선의 정도를 본 다음 그래도 가망이 없어 보이면 그때 떠나도 늦지 않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저자의 충고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남자랑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라고 조언해주기 보다 당신이 만나고 있는 남자보다 더 훌륭한 남자가 널렸으니 그런 남자를 찾아보라고 한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그런 남자를 계속 방치하는 거 자체가 여성 자신이 남자에게 가진 바로 그 불만을 더 키우고 있는 건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의 메시지는 “당신은 사랑을 해서는 안 되고, 사랑을 받기만 해야되는 존재예요. 그러니 다른 남자 찾아봐요.” 줄곧 이런 메시지를 띤다. 정작 필요한 조언은 당신과 당신이 만나는 남자의 문제는 이러이러한 점인 것 같으니 이러이러한 점은 당신이 고쳐보는 게 어떠냐, 이러이러한 점은 남자분에게 말해보라, 그래도 안 되면 다른 남자를 찾아봐라 이런 발전적 조언 아닌가.

부분부분 새겨들을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이 저자의 말은 여성이 자신을 주체적 존재로 인식하는 걸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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