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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소망 - 바벨론 세상에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를 바라보다 요한계시록
유기성 지음 / 두란노 / 2019년 10월
평점 :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해석의 논란이 되고 있는 성경은 『요한계시록』 이다.
수 많은 비유와 상징이 가득하여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고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이단이 나오고 있고 예수는 진정 이 땅에 다시 오시는가 등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여전하다.
유기성 목사님 역시도 요한계시록의 해석의 어려움을 알기에 설교의 부담이 많았으리라.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해야만 하신 그 부담감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천국의 소망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요한계시록 1장3절)
요한계시록을 읽는 이들이 받는 복은 천국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다 팔아 버리고 사야 하는 보화' 같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천국에 들어갈 사람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심판받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천국에 들어갈 믿음과 행실을 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하고 멸망의 지옥으로 간다고 말하여 줍니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까지 천국에서 나와 함께,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자고 권고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단들은 해석의 오류에 갖혀 숲을 안보고 단어 하나하나 해석하다가 14만 4천명에 들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 바코드가 사탄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알다시피 이 말은 모두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을 겁니다.)
수많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죄을 지으면서도 예수를 믿으면 천국간다고 안심하고 살아갑니다. 물론 죽을때까지 죄를 안짓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도 않하고, 회개하고도 계속 똑같이 죄를 짓고 살아가면서 천국에 갈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유명한 찬양 사역자의 집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모두 일어서서 찬양하며 손을 높이 들고 춤을 추고 하는데 제 마음에 전혀 기쁨이 없었습니다. 감동도 없었습니다. 입술은 노래를 부르고 손은 높이 들었는데 아무런 느낌도 없이 집에 가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내 마음에 천국 소망이 없구나, 예수님을 믿는 기쁨이 없구나'
성경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요한계시록 3장 16절).
현대 신앙인의 가장 문제점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고 편안히 살다가 평안히 죽는 것. 전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교수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주님의 교회에서 '개신교 밖에서 보는 교회'에 대한 강연에서 했던 말입니다.
"도마가 예수 부활의 증거로 요구한 것이 바로 고난의 흔적이었고, 에수님의 부활의 증거로 도마에게 보여 주셨던 것 또한 고난과 아픔의 상처였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할 증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진리 때문에 고난당한 흔적, 시대의 아픔에 동참한 상처 자국, 세상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감수한 희생의 흔적,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흔적과 자국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하여 보여 주는 것이라고는 집단화된 이기심, 거대한 야망, 그리고 세속화된 성공주의와 출세주의뿐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 주셨던 증거가 결단코 아닙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 당하셨던 고난의 상처와 아픔의 흔적을 보여 줄 수 있는 교회를 소개해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그 교회 교인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놀거리와 즐길거리, 볼거리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또 할 일은 얼마나 많으지요. 성경 한 줄 묵상할 시간도 없이 살아갑니다. 우리 마음에 '오직 예수' 가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의 마음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모른다면 천국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을 믿는 기쁨을 모르는데 어찌 천국의 기쁨을 기대할까요? 그래서 교회 다니면서도 기쁘지 않고 세상 살기가 힘들어서 "천국 가고 싶어요, 빨리 죽고 싶어요" 하는 것도 아니고 "죽여 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을 예언하기 보다는 오히려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기 위해서 씌여졌다고 합니다. 유기성 목사님은 '예수동행 일기' 를 쓰면서 이 기쁨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지금까지 종말론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종말의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상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면서 정작 주님이 계신 천국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마치 종말이 와도 당연히 천국에서 지구와 인류의 멸망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생각해보니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네요. 천국에 들어갈만한 믿음도 없으면서 종말을 기다리다니...
『예수 소망』 을 천국에 대한 소망을 재정립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천국은 분명 가야할 곳이고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리마인드 했습니다. 예수는 소망입니다. 천국 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