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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아 사랑해
이지선 지음 / 이레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되었던 것, 세가지. 하나, 장애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시각. 몸이 불편한 것 만으로도 서러울텐데 우리는 그런 장애인을 두번 좌절하게 만든다. 공공기관에서 조차 장애인을 위한 건물 배려는 미미하고 설치가 되어 있다해도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계단을 오르내릴때도, 길을 건널때도, 대중교통을 이용 할때도, 밖에만 나오면 혼자서는 돌아다닐 수 없게하는 높은 벽들 때문에 누군가 대동하지 않고서는 마음껏 거리를 누빌 수 없게 만드는 곳. 게다가 견디기 힘든 타인들의 시선. 쉽게 내뱉는 동정의 말들, 불쌍하다는 듯이 자기들끼리 주고 받는 암묵적 눈빛. 모를 것 같지만, 관심을 주는게 고마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말하기 전에, 별 것 다 본다는 듯이 무심코 쳐다보기 전에, 한번만 더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참 못할 짓을 할뻔 한 자신을 발견할 것 이다. 장애인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우리들의 값싼 동정과 시선이 비단 개인의 탓만은 아니다. 어릴때부터 장애인들은 일반사람들과 따로 교육 받고 따로 모여 있다. 같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처음부터 그들에게 선을 그어 놓고 살게 한다. 처음부터 그들은 우리사회의 이방인, 제3자 취급을 받는다.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다시 장애인을 보게되는 데는 그런 감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 이다. 잘 볼 수도, 잘 접할 수도 없었던 장애인. 그들에 대한 신기함, 편견, 이질감. 이제는 감싸안아 보다듬어야 할 우리의 친구들이다. 장애인이 아닌 장애우들이 활개를 치는 사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모습 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이지선님이 출연하는 인간극장을 두번 보았다. 한번은 집에서, 또 한번은 기독교인 캠프에서. 그 캠프는 선교적인 성격이 짙어서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많이 갔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나 였다. 이 비디오를 보여주며 하나님의 힘으로 저렇게 살 수 있었다고, 하나님을 믿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빽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간사님은 설교했다. 나는 그게 싫었다. 불행을 딛고 일어선 것은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이지선, 한 개인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밝게 살수 있기까지는 종교의 힘도 있지만 나는 무엇보다 가족간의 사랑의 힘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번이나 그 인간극장을 보며 내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이지선님에게 힘을 주는 요소 중 하나에 종교가 있었고 큰 울타리는 가족간의 믿음과 사랑. 희망을 잃지 않는 그 들의 밝은 마음임을 나는 보았다. 어떤 사람이 암을 퇴치했다면 거기에는 약의 힘도 있었고, 삶에 대한 환자의 의지, 가족의 극진한 보살핌, 식이요법, 성공적인 수술 그 모든 것이 있었기 때문일텐데, 단지 식이요법 하나로 암을 이겨냈다고 신문기사에 나오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 것도 그렇게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겪은 일이 아니다. 불행을 딛고 힘겹고 처절했던 아픔을 이겨낸 한 개인의 삶을 자기 잇속에 맞게 포장해 선전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티비에서 본 것 보다 종교의 비중은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아니 이지선님 스스로 전부라고 했다. 나약한 인간과 종교에 대해서 다시 고찰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린 결론에서도 나는 종교의 힘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보았다. 물론 종교가 여느 사람에게 기댈 수 없는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의지가 될 수는 있지만 결국 그 고난을 이겨내는 것은 신이 아닌 사람의 몫 이다. 마지막으로 인간극장을 보고 책을 읽으면서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은 바로 부러움이었다. 사람은 앞을 내다 보며 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산다. 이미 가진것에 대해 다시 뒤돌아보며 고마움을 느끼고 살 시간이 없다. 우리가 숨을 쉬고 살 수 있게 하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은 이미 누리고 있는 것이기에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 느끼기는 실로 힘들다. 그 점을 탓할 수 만은 없다. 그랬기에 인간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도를 넘었다.중도를 생각해야할 때이다. 이지선님은 가진것 모두를 잃고도 오히려 낙심하지 않고 감사해 한다.그런 그녀의 건강한 마음이 정말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