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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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에서 강연을 듣고 왔다, 학부 시절 ˝~론˝ 수업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 인지했던 나에게 내 전공의 한 분야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어서 책도 완독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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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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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퇴근하고 늦게 귀가해서 순식간에 휘리릭.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자꾸만 읽게 되더라. 근간에 접했던 각종 이슈에 대한 고민(이 나라에 대한 회의)과 많은 면면이 닿아 있는 책. 속 시원하기도 했고 그래서 술이 고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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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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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다. 그것이 타인의 일일 때 제법 유별나게,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 하는 당사자를 매도하지만. 그것이 내 일일 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누군가에게 납득시키려고만 애쓰는 모습들. 그러니 우리는 모두가 린다이고. 린다는 곧 우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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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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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돌아온다’는 말은 우리가 서로에게 여전히 신비로 남아 있던 날들과 이제 더 이상 그 무엇도 똑같지 않다는 뜻이다. (16쪽)

: 오래전 멘토로 삼았던 한 어른께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왕년에’ ‘한때는’ 등의 표현을 종종 쓰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이제 당신이 늙었다(라고 쓰고 퇴물이라 칭함)는 증거라는 것. 이 구절이 그래서 유독 아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조금은 남사스러워서 차마 옮기지 못 했던 바로 앞 구절의 내용까지. 어쨌거나 회복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정상’이라는 것을 찾기 위한 서글픈 노력이 참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우리는 매사에 그런 것들에 아등바등 힘쓰고 있지 않을까? 일, 사랑, 대인관계, 삶에 대한 나의 자세 등등. 모든 면에서



나는 내 앞의 훌륭한 음식에 집중해보려고 하지만, 이미 음식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친구는 말을 잇는다. 
“무감각 상태랄까? 행복한 척, 슬픈 척,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 즐거운 척, 잠을 잘 잔 척, 살아 있는 척. 그러다 보면 가상의 한계선에 다다르는 순간이 있는데, 그 한계선을 넘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닫게 돼. 그러면 더 이상 불평을 안 하게 되지. 불평을 한다는 건 아직도 무언가를 대상으로 최소한 싸우고는 있다는 뜻이거든. 결국 불평도 없는 식물인간 같은 상태를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감추려고 노력하게 돼. 그게 정말 힘든 일이야.” (31-32쪽)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들 한다. 인생을 논하기엔 아직 창창하게 젊은 나이지만, 이런 만고불변의 진리도 없는 것 같다. 사람을 겪고 삶을 살수록 항상 느낀다. 미움도 분노도 모두 사랑에 근거한 (왜곡되고 비틀렸을지언정) 누구에 대한 최소한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정말이지 모든 마음이 식고 나면 그야말로 ‘척’ 조차할 여력도 남지 않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뇌에 빠진 영혼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믿기 힘든 능력을 지녔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비애가 서로 섞이는 것이다. (53쪽)

: 허기와 절망. 그런 감정들은 행복의 변방에서 서로를 알아본 순간 경계를 넘어 조용히 연대한다. 서로 이용하지만 거짓은 끼어들지 않는다. 스치듯 짧은 포옹을 끝낸 뒤 영원히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아마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연대일 것이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116쪽)
어쩐지 이 구절이 떠올라 맘이 다시금 알싸해졌던 문장. 사랑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뭐랄까. 지나온 경험에 의하면 슬픔도 어지간한 슬픔이어야지. 고뇌, 절망, 허기 등의 수준으로 표현되는 슬픔은 그 또한 나누면 배가 될 수 있음을 느끼곤 한다. 믿기 힘든 능력이다. 



“이 갑옷이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존재의 이중성에 속박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쁨도 고통도 없이 오직 깊은 평온함만이 있는 중도를 찾아야 합니다.”
내가 왜 요가 수업을 자꾸만 빼먹었는지 알 것 같다. 존재의 이중성? 중도? 그것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칠십으로 유지하라고 말하는 주치의의 권고만큼이나 부자연스럽게 들린다. (66쪽)

: 심각하게 읽다가 갑작스레 빵 터졌던 구간.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인바디를 처음 측정한 날, 지독하게 딱딱한 목소리의 그 기계 여인은 내게 말했다. 지방을 13kg 감량하라고. 이게 무슨 말이야, 콩깍지야. 내가 10kg만 빼겠다고 해도 다들 결혼식 날 잡았냐, 아니면 실연이냐 하면서 호들갑을 떠는데. 이 헬스장에서 매일 땀 흘리며 뛰는 사람들은 정녕 그런 무게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인가. 정녕 그것만이 나를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인가, 하며 꽤나 혼란스러웠던 때. 우리의 오늘은 때로 틀에 박힌 규정에 얽매여 우리를 너무 가혹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아닌지. 그런 마음들이 우리를 저마다의 린다로 몰아가는 것은 또 아닌지…….



적당한 남자를 사랑하도록 스스로를 훈련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 있다. 문제는 부적당한 남자를 잊는 일이다. 그냥 지나치는 길이었고, 문이 열려 있으니 허락도 구하지 않고 들어온 그 남자를. (289-290쪽)

: 요즘 일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간은 점심을 일찍 먹고 난 후의 30분 가까운 짬 혹은 퇴근 후 맥주를 한 캔 마시며 안주 삼아 보는 네이트 판의 결시친(결혼/시집/친정) 카테고리에 올라온 파국을 감상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이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나의 일상에 감사하고. 사연의 레퍼토리만 다를 뿐 결국 판단의 흐름은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수렴하는데, 조언자일 때는 냉철하다가 정작 내 일일 때 모르겠다고 하는 일들이 왜 수 세기를 거쳐 인류에게 반복되는가에 대한 제법 심각한 의문까지 가지곤 한다. 언제나 그렇다. 그것이 타인의 일일 때 제법 유별나게,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 하는 당사자를 매도하지만. 그것이 내 일일 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누군가에게 납득시키려고만 애쓰는 모습들. 그러니 우리는 모두가 린다이고. 린다는 곧 우리가 아닐까. 



우리는 시간을 멈출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은 지혜와 경험이 아니다. 시간도 아니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다. 하늘을 날고 있을 때 나는 삶에 대한, 우주에 대한 내 사랑이 그 무엇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53쪽)

: 예전에는 오로지 사랑에 목숨 거는 친구들이 그렇게 싫었다. 친구는 친구일 뿐, 본질적으로 내가 존재하고 나를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겪는 배신감이 너무 커 나는 절대 그렇게 살지 말자고 다짐했고 그런 만남이 다가올 때마다 부러 쳐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지나 ‘어쩌면 이 사람일까’ 싶은 존재를 만나 스스로 변화하면서 느낀다. 사랑이 전부다. 사랑이 오직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비단 남녀 간의 그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와의 사랑이 발단이 되었을지언정 나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가족과 내 일상과 삶 그리고 친구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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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듯 랄랄라 - 홍대.유럽.제주의 모퉁이에서 살다, 만나다, 생각하다
황의정 글.그림.사진 / 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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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샵 엣코너의 주인 부부 이야기를 읽었다. 이렇게 천생연분일까, 싶은 만남이었고 나 역시 한참 홍대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 상수동에 엣코너가 있었으니 당시에 방문하지 못 했던 것이 무척 아쉽기만 한 기록이었다. 카페에서 쓰는 닉네임이 "랄라"이기에 동료는 농담처럼 "아무도 모르게 언제 책을 냈수?"라고 물었지만, 그래서 정감도 가고 또 한편으론 묘한 느낌으로 책장을 펼쳤다. 결국 이 만남은 무엇보다 즐거운, 그야말로 랄랄라한 시간이었다. 


*책 속에서

01 아무리 부부라 해도 물건을 고르는 취향은 각자 다르다. "우리 부부는 취향이 정말 똑같아서 어디를 가더라도 지루한지를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중략) 대체적으로 그는 스케일이 크고 쓰임새가 명확한 것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똑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그런 것에는 눈길 한번을 주지 않고 어디에 써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작고 오밀조밀한 것들만 본다. 항상 그랬다. 그가 커다란 그릇을 사면 나는 그 안에 담을 수 있을 만한 조그마한 모든 것을 살 기세로 덤벼들곤 했다. (65쪽)

=> 이제껏 수많은 커플을 보고 겪어 왔지만, 정말 취향이 똑같아서 잘 지내는 커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문단 전체를 통으로 옮겨 적고 싶었던 이 페이지의 글은 남편은 스케일이 큰 소품을, 아내는 그 안에 담을 오밀조밀한 것을 모으고 싶어 하는 취향이야말로 진짜 천생연분이 아닐까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02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많은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오랜 시간 가게를 했던 것 같다.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에게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받았다. 당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지급되었던 첫 달의 시간당 알바비는 4,500원에서 5,000원 정도였는데 그 돈은 내가 사장으로서 그들에게 주는 급여라기보다는 그 아이들을 통해 깨닫고 배우게 되는 과정에 내야 했던 인생의 수업료였을 것이다. (84쪽)

=> 이 구절을 읽고 이런 트윗을 남겼다.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줄곧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생각해 보니 주말 아르바이트조차 없이 팽팽 논 건, 운전면허를 딴 스무 살 여름방학뿐이었다. 『여행하듯 랄랄라』를 읽다가 그중에 엣코너에 머문 시간이 짤막하게나마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03 길은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때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길을 끝없이 달려야 하지만 그 길을 밝혀주는 등대 같은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여행은 끝이 나도 그 불빛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114쪽)

=> 오래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만났던 한 살 터울의 언니가 떠올랐다. 우연히 지인의 부탁을 받고 하루 관광을 맡아주었던 그녀. 마치 한국에서 온 친척간을 대하듯 참 살갑게 정성껏 대해줬던 시간들. 당시의 인연을 더 오래 붙잡지 못해 아쉬웠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이후로는 그런 만남이 찾아온다면 절대 놓치지 않으리란 다짐도 함께.

04 친구는 멀리 있어도 늘 서로에게 그늘이 되어준다는 말, 참 재미없다. 서로 민폐의 카드를 꺼내 쓴 지 또 몇 년이 흘렀으니 다시 조만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올 것이고 우리는 서로 숙명처럼 또 그 카드를 받아들 것이다. (159쪽)

=>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이 공감했던 삶의 면면들은 이렇게 불쑥 선명한 문장으로 눈앞에 다가오곤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꼭 같은 마음을 문장으로 만날 때, 나는 그 어떤 순간보다 행복해진다.

05 한 치의 예측도 할 수 없었지만 즐거움이 더 많았던 그간의 날들처럼 다시 이곳에서의 삶도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자고 나면 피어 있는 목련꽃처럼 그 앞을 알 수 없어 인생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 같다. (350쪽)

=> 소설이 아니니 마지막 문장을 옮기는 것이 딱히 스포일러라고 할 것은 없겠다고 믿으며 적는다. 이 문장이 책에서 가장 좋았다. 마지막까지 참 아름답고 읽을수록 좋은 책이었다. 고마웠다. 읽는 동안 행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잘 모르던 남이 사용하던 물건을 가져다 쓰는 일이 참 쉽지가 않다. 그나마 고가의 전자기기 또는 차량 정도라면 모를까 생활용품이나 소품 등은 언제나 새것을 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낡은 것을 좋아한다는 건 쇼핑이라는 것 자체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내게도 그리 익숙하지 않은 취향이었다. 좋게 말해 빈티지겠지만 그것에 대해 어떠한 취향적 가치도 없는 이들에겐 그저 "낡은 것" "남이 쓰던 찝찝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게 일반적인 시선에서였다면 결코 우리나라엔 들이지도 못 했을 물건들을 고이 모셔와 많은 이들에게 손때묻은 것의 가치를 알려준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내게는 제법 낯설면서도 묘하게 뭉클했다. 요즘은 그나마 많이 바뀌어 아날로그, 빈티지 등에 대한 인식이 조금 더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나마도 대중이 따르는 취향에 무분별하게 편승하거나 그럴싸한 콘텐츠만 소비하는 형태의 (나도 이런 걸 즐길 줄 안다,라고 말하고 싶은 심리) 유행이 아닐까 싶기에 늘 씁쓸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낡고 손때묻은 것들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 함께 사는 리트리버를 개자식이라고 말하지만 절대 상스러운 표현이 아닌 진짜 내 자식을 부르는 애칭인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을 만난 지금 더는 코앞의 가까운 상수동에서 그들의 공간을 만날 수 없다는 게 무척 아쉽지만, 언젠가는 제주에 새로이 둥지를 튼 그들의 쉼터에 꼭 가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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