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듯 랄랄라 - 홍대.유럽.제주의 모퉁이에서 살다, 만나다, 생각하다
황의정 글.그림.사진 / 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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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샵 엣코너의 주인 부부 이야기를 읽었다. 이렇게 천생연분일까, 싶은 만남이었고 나 역시 한참 홍대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 상수동에 엣코너가 있었으니 당시에 방문하지 못 했던 것이 무척 아쉽기만 한 기록이었다. 카페에서 쓰는 닉네임이 "랄라"이기에 동료는 농담처럼 "아무도 모르게 언제 책을 냈수?"라고 물었지만, 그래서 정감도 가고 또 한편으론 묘한 느낌으로 책장을 펼쳤다. 결국 이 만남은 무엇보다 즐거운, 그야말로 랄랄라한 시간이었다. 


*책 속에서

01 아무리 부부라 해도 물건을 고르는 취향은 각자 다르다. "우리 부부는 취향이 정말 똑같아서 어디를 가더라도 지루한지를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중략) 대체적으로 그는 스케일이 크고 쓰임새가 명확한 것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똑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그런 것에는 눈길 한번을 주지 않고 어디에 써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작고 오밀조밀한 것들만 본다. 항상 그랬다. 그가 커다란 그릇을 사면 나는 그 안에 담을 수 있을 만한 조그마한 모든 것을 살 기세로 덤벼들곤 했다. (65쪽)

=> 이제껏 수많은 커플을 보고 겪어 왔지만, 정말 취향이 똑같아서 잘 지내는 커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문단 전체를 통으로 옮겨 적고 싶었던 이 페이지의 글은 남편은 스케일이 큰 소품을, 아내는 그 안에 담을 오밀조밀한 것을 모으고 싶어 하는 취향이야말로 진짜 천생연분이 아닐까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02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많은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오랜 시간 가게를 했던 것 같다.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에게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받았다. 당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지급되었던 첫 달의 시간당 알바비는 4,500원에서 5,000원 정도였는데 그 돈은 내가 사장으로서 그들에게 주는 급여라기보다는 그 아이들을 통해 깨닫고 배우게 되는 과정에 내야 했던 인생의 수업료였을 것이다. (84쪽)

=> 이 구절을 읽고 이런 트윗을 남겼다.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줄곧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생각해 보니 주말 아르바이트조차 없이 팽팽 논 건, 운전면허를 딴 스무 살 여름방학뿐이었다. 『여행하듯 랄랄라』를 읽다가 그중에 엣코너에 머문 시간이 짤막하게나마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03 길은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때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길을 끝없이 달려야 하지만 그 길을 밝혀주는 등대 같은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여행은 끝이 나도 그 불빛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114쪽)

=> 오래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만났던 한 살 터울의 언니가 떠올랐다. 우연히 지인의 부탁을 받고 하루 관광을 맡아주었던 그녀. 마치 한국에서 온 친척간을 대하듯 참 살갑게 정성껏 대해줬던 시간들. 당시의 인연을 더 오래 붙잡지 못해 아쉬웠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이후로는 그런 만남이 찾아온다면 절대 놓치지 않으리란 다짐도 함께.

04 친구는 멀리 있어도 늘 서로에게 그늘이 되어준다는 말, 참 재미없다. 서로 민폐의 카드를 꺼내 쓴 지 또 몇 년이 흘렀으니 다시 조만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올 것이고 우리는 서로 숙명처럼 또 그 카드를 받아들 것이다. (159쪽)

=>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이 공감했던 삶의 면면들은 이렇게 불쑥 선명한 문장으로 눈앞에 다가오곤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꼭 같은 마음을 문장으로 만날 때, 나는 그 어떤 순간보다 행복해진다.

05 한 치의 예측도 할 수 없었지만 즐거움이 더 많았던 그간의 날들처럼 다시 이곳에서의 삶도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자고 나면 피어 있는 목련꽃처럼 그 앞을 알 수 없어 인생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 같다. (350쪽)

=> 소설이 아니니 마지막 문장을 옮기는 것이 딱히 스포일러라고 할 것은 없겠다고 믿으며 적는다. 이 문장이 책에서 가장 좋았다. 마지막까지 참 아름답고 읽을수록 좋은 책이었다. 고마웠다. 읽는 동안 행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잘 모르던 남이 사용하던 물건을 가져다 쓰는 일이 참 쉽지가 않다. 그나마 고가의 전자기기 또는 차량 정도라면 모를까 생활용품이나 소품 등은 언제나 새것을 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낡은 것을 좋아한다는 건 쇼핑이라는 것 자체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내게도 그리 익숙하지 않은 취향이었다. 좋게 말해 빈티지겠지만 그것에 대해 어떠한 취향적 가치도 없는 이들에겐 그저 "낡은 것" "남이 쓰던 찝찝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게 일반적인 시선에서였다면 결코 우리나라엔 들이지도 못 했을 물건들을 고이 모셔와 많은 이들에게 손때묻은 것의 가치를 알려준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내게는 제법 낯설면서도 묘하게 뭉클했다. 요즘은 그나마 많이 바뀌어 아날로그, 빈티지 등에 대한 인식이 조금 더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나마도 대중이 따르는 취향에 무분별하게 편승하거나 그럴싸한 콘텐츠만 소비하는 형태의 (나도 이런 걸 즐길 줄 안다,라고 말하고 싶은 심리) 유행이 아닐까 싶기에 늘 씁쓸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낡고 손때묻은 것들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 함께 사는 리트리버를 개자식이라고 말하지만 절대 상스러운 표현이 아닌 진짜 내 자식을 부르는 애칭인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을 만난 지금 더는 코앞의 가까운 상수동에서 그들의 공간을 만날 수 없다는 게 무척 아쉽지만, 언젠가는 제주에 새로이 둥지를 튼 그들의 쉼터에 꼭 가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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