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말은 우리가 서로에게 여전히 신비로 남아 있던 날들과 이제 더 이상 그 무엇도 똑같지 않다는 뜻이다. (16쪽)

: 오래전 멘토로 삼았던 한 어른께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왕년에’ ‘한때는’ 등의 표현을 종종 쓰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이제 당신이 늙었다(라고 쓰고 퇴물이라 칭함)는 증거라는 것. 이 구절이 그래서 유독 아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조금은 남사스러워서 차마 옮기지 못 했던 바로 앞 구절의 내용까지. 어쨌거나 회복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정상’이라는 것을 찾기 위한 서글픈 노력이 참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우리는 매사에 그런 것들에 아등바등 힘쓰고 있지 않을까? 일, 사랑, 대인관계, 삶에 대한 나의 자세 등등. 모든 면에서



나는 내 앞의 훌륭한 음식에 집중해보려고 하지만, 이미 음식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친구는 말을 잇는다. 
“무감각 상태랄까? 행복한 척, 슬픈 척,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 즐거운 척, 잠을 잘 잔 척, 살아 있는 척. 그러다 보면 가상의 한계선에 다다르는 순간이 있는데, 그 한계선을 넘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닫게 돼. 그러면 더 이상 불평을 안 하게 되지. 불평을 한다는 건 아직도 무언가를 대상으로 최소한 싸우고는 있다는 뜻이거든. 결국 불평도 없는 식물인간 같은 상태를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감추려고 노력하게 돼. 그게 정말 힘든 일이야.” (31-32쪽)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들 한다. 인생을 논하기엔 아직 창창하게 젊은 나이지만, 이런 만고불변의 진리도 없는 것 같다. 사람을 겪고 삶을 살수록 항상 느낀다. 미움도 분노도 모두 사랑에 근거한 (왜곡되고 비틀렸을지언정) 누구에 대한 최소한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정말이지 모든 마음이 식고 나면 그야말로 ‘척’ 조차할 여력도 남지 않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뇌에 빠진 영혼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믿기 힘든 능력을 지녔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비애가 서로 섞이는 것이다. (53쪽)

: 허기와 절망. 그런 감정들은 행복의 변방에서 서로를 알아본 순간 경계를 넘어 조용히 연대한다. 서로 이용하지만 거짓은 끼어들지 않는다. 스치듯 짧은 포옹을 끝낸 뒤 영원히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아마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연대일 것이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116쪽)
어쩐지 이 구절이 떠올라 맘이 다시금 알싸해졌던 문장. 사랑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뭐랄까. 지나온 경험에 의하면 슬픔도 어지간한 슬픔이어야지. 고뇌, 절망, 허기 등의 수준으로 표현되는 슬픔은 그 또한 나누면 배가 될 수 있음을 느끼곤 한다. 믿기 힘든 능력이다. 



“이 갑옷이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존재의 이중성에 속박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쁨도 고통도 없이 오직 깊은 평온함만이 있는 중도를 찾아야 합니다.”
내가 왜 요가 수업을 자꾸만 빼먹었는지 알 것 같다. 존재의 이중성? 중도? 그것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칠십으로 유지하라고 말하는 주치의의 권고만큼이나 부자연스럽게 들린다. (66쪽)

: 심각하게 읽다가 갑작스레 빵 터졌던 구간.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인바디를 처음 측정한 날, 지독하게 딱딱한 목소리의 그 기계 여인은 내게 말했다. 지방을 13kg 감량하라고. 이게 무슨 말이야, 콩깍지야. 내가 10kg만 빼겠다고 해도 다들 결혼식 날 잡았냐, 아니면 실연이냐 하면서 호들갑을 떠는데. 이 헬스장에서 매일 땀 흘리며 뛰는 사람들은 정녕 그런 무게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인가. 정녕 그것만이 나를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인가, 하며 꽤나 혼란스러웠던 때. 우리의 오늘은 때로 틀에 박힌 규정에 얽매여 우리를 너무 가혹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아닌지. 그런 마음들이 우리를 저마다의 린다로 몰아가는 것은 또 아닌지…….



적당한 남자를 사랑하도록 스스로를 훈련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 있다. 문제는 부적당한 남자를 잊는 일이다. 그냥 지나치는 길이었고, 문이 열려 있으니 허락도 구하지 않고 들어온 그 남자를. (289-290쪽)

: 요즘 일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간은 점심을 일찍 먹고 난 후의 30분 가까운 짬 혹은 퇴근 후 맥주를 한 캔 마시며 안주 삼아 보는 네이트 판의 결시친(결혼/시집/친정) 카테고리에 올라온 파국을 감상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이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나의 일상에 감사하고. 사연의 레퍼토리만 다를 뿐 결국 판단의 흐름은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수렴하는데, 조언자일 때는 냉철하다가 정작 내 일일 때 모르겠다고 하는 일들이 왜 수 세기를 거쳐 인류에게 반복되는가에 대한 제법 심각한 의문까지 가지곤 한다. 언제나 그렇다. 그것이 타인의 일일 때 제법 유별나게,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 하는 당사자를 매도하지만. 그것이 내 일일 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누군가에게 납득시키려고만 애쓰는 모습들. 그러니 우리는 모두가 린다이고. 린다는 곧 우리가 아닐까. 



우리는 시간을 멈출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은 지혜와 경험이 아니다. 시간도 아니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다. 하늘을 날고 있을 때 나는 삶에 대한, 우주에 대한 내 사랑이 그 무엇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53쪽)

: 예전에는 오로지 사랑에 목숨 거는 친구들이 그렇게 싫었다. 친구는 친구일 뿐, 본질적으로 내가 존재하고 나를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겪는 배신감이 너무 커 나는 절대 그렇게 살지 말자고 다짐했고 그런 만남이 다가올 때마다 부러 쳐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지나 ‘어쩌면 이 사람일까’ 싶은 존재를 만나 스스로 변화하면서 느낀다. 사랑이 전부다. 사랑이 오직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비단 남녀 간의 그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와의 사랑이 발단이 되었을지언정 나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가족과 내 일상과 삶 그리고 친구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