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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운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평점 :
황시운 작가님과는 책의 출간 소식을 접하기도 전에 그냥 '소설쓰는 작가님 트친'으로 알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창비문학상에 당선되어 소설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책이 나오자마자 주저없이 구매해서 나중에 꼭 앞장에 싸인을 해주셔야 한다며 멘션도 보냈었고 올 가을에는 집에서 가까운 연희예술촌에 입주하신다는 얘기에 술도 한 잔 하자고 약속도 받아놨었다.
책은 진작 구매했지만, 나이든 고학번이 오랜만에 복학을 한 덕분에 이래저래 정신없이 학기를 보내고 또 방학 알바를 해가며 구매시기에선 한참 지나 늦여름이 다 지나갈 즈음 이 책을 펼쳐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나서는 주말을 보내는 본가 집에서 엄마일을 돕는 틈틈이 책을 펼쳐 읽을만큼 푹 빠져있었고, 그전에 트윗에서 이미 몇번의 대화를 나눠보고 내 맘대로 부여해버린 작가님의 이미지로는 전혀 기대치 못했던 느낌의 소설이라 자못 당황해 어색함이 지속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오기 바로 직전, 이지아와 서태지의 이혼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아마 이 사건때문에 작가님은 출간을 코앞에 둔 책을 두고 여러 곤란한 일에 바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각종 연예뉴스란은 물론 트위터에서도 쉽게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머리속에 온갖 잡생각들이 들어차 내내 스스로를 괴롭혔다.
만약, 그런 사실을 알기 전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사생활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신비주의의 절정과도 같은 뮤지션, 문화대통령,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콘으로 우러러보는 그를 주인공 유미처럼 바라봤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 큰 사건으로 낙인찍인 그는, 어째선지, 그 사건을 알기전의 주인공 유미양의 관점과 나를 자꾸만 비교하게되어 참 어색하고 묘했으며, 주인공 유미가 이런 사건들을 접한 이후에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도 무척 궁금해졌다.
재작년 이맘때는 시운작가님과 비슷한 또래의(아마도?) 백영옥 작가가 쓴 다이어트의 여왕이라는 책을 읽었었다. 두 작가님 모두 긴 머리가 찰랑찰랑하게 늘어서 참 여성적인 외모를 지닌 천상 작가선생님 느낌의 타입인데, 그렇게 작가의 이름을 얻기까지 어떻게 보면 조금 늦고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왔다는 것과 그 두 책이 꽤 비슷한 소재-극단적인 다이어트-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덕분에 한참도 지난 나의 리뷰(글 보기)를 뒤적여보기도 했었다.
책을 읽기 열흘 전 쯤엔 요즘 어떤 책을 읽느냐는 친한 언니의 질문에 나는 그냥 제목만 슬쩍 알려주었다. 언니는 책 소개에 대한 온라인서점 페이지를 살펴본 후 띠동갑 차이로 어린 내가 어떤 감상을 들려줄지 무척 기대된다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와서.. 그 소감으로 어떤 얘기를 전해야 할까 이전보다 더 고민하게 되었다.
음, 우선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었다는게 전체적인 감상의 후기라고 말해야겠다. 이게 만약 실제로 일어나 알려진 일이라면, 서태지의 비밀결혼 사실만큼은 아닐지라도 세간의 입에 적잖이 오르내리며 사람들은 저마다 이 시대의 모럴해저드에 대해 걱정할테고,그 와중에 '난 저런짓은 안한다'는 사실을 도구삼아 자기 자신을 자위하며 이 아픈 사건을 얼마나 쉽게 씹어댈지 상상하니, 멀미가 나다 못해 짜증이 솟구칠 지경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고도비만 환자들을 보며 '어쩌다 저렇게..'라는 말을 속으로 읊조린다. 그리고 저 말의 뒷편에는 대개 '미련하다'거나 '게으른'이라는 부정적인 가치평가가 생략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이런 문장을 적기엔 적잖이 찔리는바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 책 이후로 그런 편견을 하루빨리 떨치고자 노력하고 있으니 아주 조금만 당당한 척 해보려고 한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쉽게 자신의 평가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빈번하고 흔한 그래서 더 슬픈 실화이다. 이를테면, 내가 오늘 오후에 영화관에서 보고 '너무 아파서 단 한순간도 같이 울 수 없었던' 영화 <도가니>와 같은 경우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어떻게 감히 '그 모든걸 이해한다'라는 식의 건방을 떨 수 있겠으며, '힘을 냈으면 좋겠다'거나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아무 의미없는 응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소설속에서 유미, 지은 그리고 그 외 인물들로 그려진 우리 주변의 수많은 아픈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그 시간속에서 벗어날 수 있길 기도하는 것 외엔 달리 할 수 있는게 없을 것이라는 생각만 반복해야 했다.
어쩜 이것은 <도가니>를 보고 못다 쓴 이 책의 리뷰를 자꾸만 재촉하게 된 내 마음이 오로지 죄책감으로만 가득차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나는 유미도 지은도.. 그리고 시운 작가님도 모두가 아주 조금만 힘을 좀 냈으면 좋겠다. <도가니>에서 연두는 비록 너무 어린나이에 지울 수 없는 큰 아픔을 겪었지만, '그래도 이후로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사랑받아야 할 존재란걸 알게됐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 처럼, 책 속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그려지게 된 실제들도 하루 만큼이나마 더 빨리 그 모든 아픔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고만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오늘 밤 이 한가지 생각 때문에 결코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