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을 누군가에게 권하게 된다면, 아마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할 것이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의 손에 책을 얹어주는 것으로 권함을 대신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스스로 읽고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자신의 가슴 속에 받아들여할 그 무엇인가가 작품 전체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짧은 나의 소견을 밝힌다는 게 어쩌면 이 작품을 모독하는 일이 되지는 않을런지 굉장히 염려스러울 정도지만, 그래도 조심스레 그 분위기 정도라도 다른 분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이 리뷰를 쓴다.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한 첫 날부터, 나는 '같은 장면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으로 몸서리를 쳤다.

 따뜻한 아랫목에 묻힌 나른한 느낌이라든지, 밤새 엄청나게 내린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산골 마을의 풍경이라든지 하는 부분은, 굳이 이 곳에 옮기지 않으련다. 작품의 줄거리를 말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단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토록 세밀하고 감각적인 표현, 그토록 은밀하고 고백적인 표현들은 보기 드물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 내가 온전히 잠겼다가 빠져 나온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을 경험하고 싶은 분이라면, 읽으시길 바란다.

 어쨌든 나는 일종의 문학적인 충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아직도 가슴이 얼얼하고 하얗게 눈 덮인 산골 마을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다시 한 번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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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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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로부터 고난이란 인내할 만큼 주어진다고 했다. 인내할 만한 능력이 있는 자에게 그 능력 만큼의 고난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그 고난을 스스로 이겨내며 성장해 나간다. 어쩌면 고난이란, 인간을 성장시키기 위해 준비된 신의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의 주인공 '복귀'는 애초에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을 가졌으나, 도박으로 집안의 재산을 탕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헤어날 수 없는 연이은 고난(전쟁, 굶주림, 상실과 함께 연이은 가족들의 죽음)을 겪는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고난들을 겪으면서도 삶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으며 운명을 받아들인다. 복귀가 하나하나 닥쳐오는 시련들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그 인내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게 된다.

특히 이 책의 머리말에서 작가 '위화'는, 이 소설에 '사람이 고난을 감수하는 능력과 세계에 대한 낙관적 태도'를 써나갔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소설의 내용 만큼이나 주옥같은 머리말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고단하다. 그러나, 그 고단함을 이겨내며 살아갈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그 고단함 이상으로 아름다운 것이 바로 우리네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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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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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산도르 마라이'라는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는 분명 아니지만, 이 책을 읽은 후엔 당신의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내가 왜 아직 몰랐던가!'하며 무릎을 칠 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흙 속의 진주처럼 이제서야 찾게 된 '보석'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러했다.

요즘처럼 이야기꾼은 넘쳐나지만 진정한 작가를 찾기 힘든 때에, 우연히 사서 읽게 된 <열정>은 책 읽는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소설책이지만, 철학책을 읽는 느낌마저 안겨주는 작가는 흔치 않다. '산도르 마라이'는 바로 그 '흔치 않은 작가'인 듯 하다. 사회상을 알려주고 시대의 흐름을 알려주는 '이야기'는 많다. 재미있고 슬프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많다. 요

즘 크게 유행하고 있는 인터넷 소설이나 서점가에 즐비한 소설들이 거의 그렇다. 작가들은 모두 이야기 짓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 같다. 재미있게, 독자들이 눈을 돌리지 못 하게, 신경을 자극한다. 숨차게 이야기를 몰아간다. 재미있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나면 가슴 속 깊이 남아야 할 그 무엇이 좀 부족한 듯 하다. 아쉽고 허전하다.

그런데 이 <열정>은 좀 다르다. 작가는 이야기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풀어놓는다. 이야기 보따리의 매듭을 끌러놓지도 않은 채, 손을 보따리 속에 집어넣고 조금씩 조금씩 손아귀에 잡히는 대로 끄집어내어 보여준다. 주인공들의 내면을 현미경 놓고 들여다 보듯이 깊숙히,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다 설명하는 듯 하면서도 독자의 몫은 정확히 남겨둔다. 바로 그런 점이 책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두 청년의 성장과 한 여인의 이야기로 간단히 이야기할 수도 있는 소설이지만, 이토록 인간의 내면을 깊이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작가만이 가진 역량일 것이다. 진지한 성찰과 깊이를 가진 '고전'이다. 나이가 먹어도 예전에 읽었던 고전을 다시 펼쳐들게 된다. 새롭게 나오는 소설은 차고 넘치지만, 고전을 두고두고 읽는 까닭은 고전만이 가진 진정한 인간의 모습과 작가의 살아 숨쉬는 철학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안타깝게도 진지한 작품이 드물다. 예의와 품위를 지키려는 소설도 드물다. 뼈아픈 고뇌가 보이는 소설도 드물다. <열정>은 진지하다. 그래서 반갑다. 독자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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