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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안데르센 동화
우라야마 아키토시 지음, 구혜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어릴 때 아버지께서 사 주신 세계명작동화에는 말 그대로 세계 각국의 동화가 나라별로 한 권씩 잘 정리되어 실려있었다. 나는 그 때 만났던 '인어공주'를 두고두고 곱씹어 생각했다. 차마 왕자를 칼로 찔러 죽이지 못 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호하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왜 작가는 주인공인 인어공주를 죽이고 말았을까? 왜 더 행복한 결말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왕자는 왜 바보처럼 자신을 구해준 인어공주를 알아보지 못 하는가? 그리고 그 당시엔 글자가 없었나? 말을 못 하면 글씨를 써서 보여주지. 자신이 바로 왕자를 구해준 장본인이라고... 눈에는 말보다도 훨씬 더 깊은 표정이 있다는데, 왜 왕자는 인어공주의 눈에 실려있는 사랑을 알아보지 못 할까? 그럼, 눈에 표정이 있다는 어른들의 말은 전부 다 거짓일까?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시작된 의문은 어른이 되어서도 전혀 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른이 된 후에 그 의문은 더 깊어졌다. 커가면서 읽은 여러가지 '인어공주'의 결말이 조금씩 다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동화에서는 인어공주가 왕자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졌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동화에서는 왕자와 결혼하려던 이웃 나라 공주가 사실은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빼앗아간 마녀였고, 그 정체가 밝혀져 인어공주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되찾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인어공주가 왕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안데르센의 원래 '인어공주'는 어떤 결말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계속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의문들이 다 풀렸다. 인어공주는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원전에서는 그 후의 이야기가 더 이어진다. 영혼이 된 인어공주에게는 3백 년의 시련이 더 주어지는데, 착한 아이들을 만나면 그 기간이 짧아지고 나쁜 아이들을 만나면 그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안데르센은 이 동화를 읽는 아이들에게 착한 아이가 되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내겐 너무나 실망스러운 덧붙임(?)이었다고나 할까? 그 기나긴 안타까움과 여운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결말이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교육적일 것이라는 이유로 원작을 훼손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일까? 아이들은 어른들이 해롭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소화할 능력이 정녕 없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내 머리 속을 맴도는 의문이었다.
아이들이 읽는 글이라고 해서, 모든 이야기들이 다 행복한 결말을 지닐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안데르센이 가진 여러가지 열등감이나 부족함이 아이들에게 여과없이 전해진다고 해서, 우리의 아이들이 그 때문에 상처 받거나 불만을 품을 것 같지도 않다. 문제는 오히려 아이들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어른들에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현명하다. 게다가 이야기를 읽고 걸러낼 줄 아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어린 나이에 안데르센이 쓴 '인어공주'를 제대로 보았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여러가지 의문을 품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드는 또 한 가지 생각. 혹시 그렇게 기나긴 여운과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원작을 잘라내고 각색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독자분들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