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연구 발제. 존 롤즈, 『사회정의론』(황경식 옮김) 2장 요약>
정의론은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째는 선택될법한 다양한 원리들을 정식화하는 부분, 그리고 그 원리들 가운데 실제로 어떤 것이 채택될지를 논증하는 부분이다. 이 장에서 논의되는 것은 첫째 부분 가운데서 정의의 원리들에 관한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제도와 형식적 정의, 절차적 정의의 종류, 좋음(the good)에 관한 이론의 위치, 정의의 원리들이 평등주의적이라는 말의 의미 등등이다.
10. 제도들과 형식적 정의
사회적 정의의 주제는 사회의 기본적인 구조다. 사회의 기본적인 구조는 권리와 의무를 할당하고 이득과 부담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방법을 규정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권리와 의무, 권한과 면책권 등을 동반하는 공직이나 위치 등을 규정하는 공적인 규칙체계로서 제도를 이해할 수 있다. 제도는 허용되거나 금지되는 행위의 목록을 포함하며, 위반했을 때 그에 관한 처벌이 뒤따른다. 사회의 기본적인 구조는 이런 제도들 사이의 조정이다. 제도는 추상적인 제도와 구체적인 제도로 나눠진다. 만약에 우리가 어떤 제도에 관해서 정의로운가 부정의한가를 이야기하려 한다면 우리는 구체적인 의미에서 현실화된 제도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추상적인 제도가 정의로운지 그렇지 않은지는 보통 그것이 현실화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해보고 그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도는 언제 존재하는 것일까? 제도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제도를 구성하는 규칙의 체계에 따라야 한다는 공공적인 이해에 부합해 이행되는 상태에서 존재한다고 말해질 수 있다. 즉, 제도는 다양한 실천들을 일일이 규정하며, 이를 일관된 계획 아래 조직한다. 또 이 제도에 동의한 특정한 사람들은 상호적으로 이것에 따라 행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실제로 그것을 수행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한 제도의 영향 아래 놓여있고 그것에 동의했다면, 그는 그 제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제도가 그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안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서로가 제도로부터 요구받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서로가 알고 있으며,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는 실제로 시행되는 제도들에 비추어 어긋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관해 논의할 때 생각할 수 있을 법한 합리적인 가정이다. 이것이 제도의 공공성(공지성)이다. 이것이 잘 구현된 사회는 잘 조직된(well-ordered)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허용되고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알고, 정의가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정의로운 것과 부정의한 것에 관한 이해가 공적이다. 이런 공공성은 계약론자들의 이론에서 핵심적이다.
우리는 몇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우선 제도를 구성하는 규칙들과, 특정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수행되는 전략과 격률을 나눠보자. 전략과 격률은 내가 내 관심사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분석한 것을 토대로 구성된다. 이는 이미 특정한 제도와 규칙, 정의에 관한 관점을 가정한다. 반면 제도는 이런 전략과 격률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목적들을 추구하게끔 조직해야 한다. 이는 의도되거나 예측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제도 속에서 펼쳐지는 전략과 격률은 제도를 평가하는 데 좋은 지표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제도는 아니다. 또, 규칙과 제도, 사회의 기본적 구조를 나눠보자. 이 셋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어느 한 쪽이 부정의하다고 다른 것들까지 반드시 부정의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정의는 규칙들이나 제도들의 묶음으로부터 발생하는 일종의 결과다. 우리는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매우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사회를 이렇게 바라본다는 것은, 크고 작은 맥락에 따라 제도를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보통 정의는 기존하는 의식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우리들이 실제로 알고 있는 것 가운데서 명백하게 부정의를 저지르는 사례들이 많고, 그러므로 정의는 언제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관해 논의하기로 했으므로, 논의의 방향을 이런 거대한 사례연구로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체계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실제로 정의에 관한 어떤 생각이 있고, 그와 함께 제도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가정에서 보이는 내용은 그 제도의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점에서 정의에 관한 이론을 함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만약 우리가 편중되지 않고 일관되게 관리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것일까? 이런 상황을 형식적 정의라고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공정함 내지는 공평함을 정의에 관해 생각할 때 항상 떠올리곤 한다. 이 말은 법률이나 제도가 사람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공평하고 일관되다는 것은 특수한 경우에 관해 다룰 때 고려되는 부적절한 고려사항들을 판결 또는 사회적 권위와 결부시키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물론 아주 말도 안되는 제도가 공평하고 일관되게 관리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제도가 임의적으로 운영되는 것보다는 낫다. 제도가 공평하고 일관되게 관리된다면, 그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은 그 제도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는지를 알고, 그에 알맞은 전술을 세울 수 있다. 반면에 제도 자체가 임의적으로 관리될 경우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런 원리에 따라, 형식적 정의는 결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어떤 것을 정의의 원리들에서 배제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밝히기에, 일반적으로 편파적이고 제멋대로인 제도는 거의 모든 경우에서 부정의하다. 그런 제도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자유를 경멸하는 것을 체득하며, 이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만든 제도가 편중되지 않고 일관될 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제도는 양심은 잠재우고 임의성만 늘린다. 반면 편중되지 않고 일관된 제도는 그 제도 아래에서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을 편중되지 않고 일관되게 대하려는 욕망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므로 형식적 정의가 지켜지는 제도 속에서 본질적인 정의를 찾기가 더욱 쉬울 것이라는 주장은 지지를 받는다.
11. 정의에 관한 두 원리들
정의에 관한 두 원리는 잠정적인 형식으로 제시된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이 원리는 가설적인 것이다. 이후의 논의에서 이것이 단순히 가설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 해명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여러 단계를 거칠 것이다. 두 원리에 관한 첫 번째 진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각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한 비슷한 자유와 양립하는 가장 넓고 기본적인 자유를 향한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둘째,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불평등들은 그들(불평등들)이 (a) 모든 이의 이점이 되리라고 합리적으로 기대되고, 동시에 (b) 모두에게 열려있는 위치들과 공직들이 덧붙여지도록 조정된다. 이 원리는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적용되는 것이다.
두 부분은 각각 기본적 자유가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나눠진다는 것을 보장하는 부분과,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불평등을 규정하는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원리가 보장하려`는 기본적 자유란 발화와 집회의 자유, 양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개인적인) 사유재산을 가질 권리에 따라오는 한 사람의 자유, 그리고 법의 규칙의 개념에 의해 정의된 것으로서 임의적인 체포와 압류로부터의 자유 등과 함께인 정치적 자유(선거권과 피선거권)를 가리킨다. 두 번째 원리는 수입과 부의 배분 그리고 권위, 책임과 명령의 연쇄에서 차이를 사용하도록 하는 조직들의 고안에 적용된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이뤄져야 하며, 권위를 갖는 직위는 모두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이 둘 사이에는 순서가 있으며, 이를 통해 어떤 사회적, 경제적인 보상도 평등한 자유의 제도를 정당화하거나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정의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 즉 불평등한 분배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생각의 한 특수한 경우이기도 하다.
사회의 기본적인 구조는 사회적으로 기본적인 좋은 것들을 분배한다. 이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계획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것들로서, 권리와 자유, 힘과 기회, 수입과 부 등으로 단순화된다. 우리는 이들이 공평하게 분배된 최초의 상황을 가정할 수 있는데, 이는 어떤 상황을 개선하는 데 기준이 된다. 만약 이들을 불공평하게 분배함으로써 이런 가설적인 시작점의 측면에서 나아지게끔 한다면, 이 불공평함은 정의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본적 자유와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수입증가를 서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널리 퍼져있다. 정의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은 이것을 방지하지 않는다. 반면 정의에 관한 두 원리는 이런 교환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조건에서 기본적 자유가 우선한다는 두 원리의 순서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정의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에 미뤄봤을 때 이렇게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이 더 특수한 경우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 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이 두 원리들을 제도에 적용하면 특정한 결과들이 나온다. 우선 권리와 자유는 기본적인 구조의 공공적 규칙에 의해 규정된다. 즉, 자유는 사회적인 것이다. 첫 번째 원리는 자유를 규정하는 모든 규칙들은 그 제도의 영향 아래 놓인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서 가능한 한 가장 넓은 범위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자유에 제한이 놓이는 경우는 오직 다른 사람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을 때 뿐이다.
그리고 정의의 주제가 구체적인 조건들을 최대한 고려하지 않은 사회의 기본적인 구조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논의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조건들이 거의 고려되지 않은 대표적 사람이다. 그는 특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가질만한 합리적인 기대치들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두 번째 원리에서 불평등한 분배가 적용되는 대상은 대표적 사람이다. 만약 특정한 구체적인 사람에게 재화를 몰아주는 것으로 두 번째 원리를 생각할 경우, 그것은 더 이상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관한 생각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재화를 몰아주는 일이 좋은 효과를 거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옳은 것과는 별 관계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두 번째 원리가 의미하는 것은, 만약 불평등이 허용된다면 그 불평등으로부터 모든 대표적 개인들이 이익을 보고 그러므로 그런 불평등에 관해 모든 대표적 개인들이 합리적으로 동의해야만 그 불평등이 정당하다는 점이다. 공리의 원리은 특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손해가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의 이익으로 벌충되는 것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정의에 관한 두 원리는 이런 벌충을 허용하지 않는다.
12. 두 번째 원리의 해석
두 번째 원리에 들어가 있는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말과 ‘모두에게 직위가 열려있다’는 말은 애매하기 때문에, 이것이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규명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는 각각이 두 가지를 의미할 수 있고, 그러면 두 번째 원리는 총 네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정의에 관한 첫 번째 원리는 충족되고 있다고 가정한다. 또한 경제체제는 자유로운 시장 체제라는 것도 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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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의 이점” |
“공평하게 열려있다” |
효율성의 원리 |
차이 원리 |
I.재능에 열려있는 경력 |
자연적인 자유의 체계 |
자연적인 귀족지배 |
II.공정한 기회의 평등 |
자유로운 평등 |
민주적 평등 |
먼저 자연적인 자유의 체계에 관해 살펴보자. 이 체계는 효율성의 원리를 충족시키는 기본적인 구조(즉 제도들 간의 조정)가 있으며 또한 직위들이 재능을 가진 자들에게 분배될 경우 정의롭다고 간주하는 체계다.
효율성 원리는 기본적 구조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정식화된, 최적 상태에 관한 파레토 원리이다. 여기에서 최적의 상태란, 어떤 사람들을 빈곤하게 하지 않으면서 어떤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 가능성이 더 이상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것을 분배의 문제에 적용해보면, 어떤 특정한 분배의 방식이 그 이외에 다른 사람들을 더 불리하게 만들면서 또 다른 사람들을 더 유리하게 만드는 방식이 없는 경우 그 방식은 최적의 분배의 방식이다. 생산의 문제에 적용해보면, 고정적인 투입을 이용해서 다른 상품을 더 적게 생산하지 않고 동시에 또 다른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없다면 최적의 상태이다. 이 원리에 비춰봤을 때 생산과 분배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어떤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서 다른 사람들을 유리하게 만드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원초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받아들일법한 원리 가운데 하나다.
효율성의 원리
그림 3은 일정한 재화를 두 사람에게 분배하는 방식의 집합을 나타내는 그래프다. 즉, 어떤 한 사람(X1)이 가져갈 재화의 양을 기준으로, 두 사람(X1과 X2)에게 분배될 재화의 상대적인 양을 나타낸 것이다. 곡선 AB는 파레토 최적의 상태를 만족하는 점의 집합이다. X1이 a만큼 가져간다면, X2는 최대 b만큼 가져갈 수 있으며, 만약 실제로 이렇게 되었다면(D) 이는 최적의 상태다. 그러므로 최적 상태를 만족하지 못하는 그림 4의 E나 F는 최적 상태가 아닌데, 이는 C나 D에 대해서만 그렇다. C와 D는 모두 최적상태이므로 비교가 불가능하고, E와 F 사이의 비교도 불가능하다. E나 F는 위로 옮겨가든 오른쪽으로 옮겨가든 개선의 여지가 있다. E의 경우 그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분배의 방식의 영역이 빗금친 삼각형으로 나타난다. 이 이외의 다른 영역과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또한 D의 경우, D는 사각형 ObDa 안에 있는 모든 분배의 방식보다 우월하지만 그 밖의 다른 점(즉 분배의 방식)과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같은 논증은 효율성의 원리에만 의지했을 때 가능한 논증이다. 우리는 잠정적으로 X1과 X2가 똑같은 재화를 가져가는 분배의 방식의 집합을 공평한 분배로서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것이 그림 4의 점선이다. 만약 이것을 우리가 공정한 분배라고 가정한다면, 점선과의 거리에 의해서 그 분배의 방식이 얼마나 공정한지를 판별해볼 수도 있다.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리들은 바로 이런 고려를 집어넣어 분배의 방식을 고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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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의 원리에서 최적의 분배 방식이 여러 개인 이유는 그 정의 때문이다. 한 사람이 모든 좋은 것을 가져간다고 가정하면, 그 사람에게 손해를 주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분배의 방식은 없기 때문이다. 이를 교환의 측면에서 다시 설명해보면, 사람들이 교환을 하려고 한다는 것은 좋은 것들을 더 좋게 나누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잘 분배되었다면, 교환을 해서 좋은 것들의 위치를 바꾸려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는 분배의 방식은 다른 사람들이 교환을 위해 내놓을 어떤 것이 없고 그래서 교환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서라도 효율적인 분배 방식이다. 이를 사회의 기본적 구조와 대표적 사람들에게 적용해보면, 권리와 의무 그리고 이득과 부담을 나눌 때 어떤 대표적 사람들에게는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어떤 다른 대표적 개인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그것이 최적의 분배 방식일 것이다. 정의의 첫 번째 원리에 의해서 기본적인 자유는 분배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 분배의 대상이 되는 좋은 것들은 소득이나 부, 권력이나 협동적인 활동을 규제하는 권위 등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런 수많은 효율적인 분배의 방식 가운데서 어떤 것을 정의롭다고 해야할지를 선택하고, 왜 그런지를 논증하는 일이다. 몇몇 사람들이 좋은 것을 다 가져가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말은 이상하게 들리며, 그러므로 우리는 직감적으로 효율성을 정의의 원리로 삼는 것이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효율적인 분배의 방식 가운데서 정의롭다고 할만한 것을 찾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것과 효율적인 것 모두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우리는, 적어도 효율성의 원리만으로는 정의로운 기본적 구조가 어떤 것인지 규명할 수 없다는 것은 알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적인 자유의 체계는 효율성의 원리에 제한을 거는 조건을 제시한다. 즉, 특정한 효율적 분배는 자유로운 시장 경제 체제 안에서 가정되는 것들, 즉 최초의 소득, 부, 재능 등의 분배에 의해서 달성된다. 또한 자유로운 시장에서 가정되듯, 모든 사람들이 유리한 사회적 공직을 제한 없이 얻을 수 있다는 형식적인 기회의 균등이 보장된다. 이 두 가지가 자연적인 자유의 체계에서 정의로 간주될 제한 조건들이다. 그러나 최초의 분배는 시간이 갈수록 여러 요소들이 영향을 주면서 반드시 변화한다. 그리고 이런 변화 가운데 상당수는 개인의 능력에 달려있다기 보다는 일종의 도덕적 운의 영향이 훨씬 크다. 따라서 자연적인 자유의 체계는 임의적인 운이 분배를 좌우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부정의하다고 간주할 만하다.
정의에 관한 두 번째 원리에 관한 자유로운 평등이라는 해석은 이런 상황을 교정하기 위해서 공정한 기회의 평등이라는 제한 조건을 추가시켰다. 이는 유리한 직위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형식적이지 않고 실제로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 이 해석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러므로 비슷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비슷한 수준으로 살아야 하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그 재능을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재능 이외의 요소가 그들의 삶의 비전을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연한 요소들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시장 체제와 그것을 지지하는 효율성의 원리에 좀 더 근본적인 제약을 가해야 한다. 이 방식은 자연적인 자유의 체계보다는 진전되긴 했지만,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인 재능에 의해서 생기는 소득의 차이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미진하다. 재능 역시 우연적 요소에 속하고, 그런 점에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운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이런 재능들이 주변 환경에 의해서 잘 계발되거나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이런 재능을 어떤 방향으로 계발할지 그리고 그런 의향을 한 개인이 가지게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환경에 상당히 의존한다. 따라서 재능이 비슷한 사람들에게 비슷한 삶의 비전을 보장해준다는 것은 실제로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우리가 정의에 관한 원리를 확립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우연적 요소, 운을 분배를 결정하는 요소에서 배제하는 데 있다.
자연적인 귀족의 지배는 형식적인 기회의 균등 이외에 자연적인 요소를 분배의 방식에서 배제하려는 노력은 없지만,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이익을 얻는 것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상태가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의해서 제한된다. 재능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상태에 있는 것은, 그들의 상태가 개선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의 상태도 개선되지 않을 때에만 정당화된다. 그러나 이 또한 불안한 것인데, 자연적인 귀족의 지배 역시도 분배에 우연적인 요소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호무관심한 합리적인 대표적 개인들이 모여서 사회의 기본적 구조를 결정하려고 할 때 여러 요소들의 분배에서 우연적인 요소를 배제하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정의에 관한 두 번째 원리의 해석은 민주적 평등성이 최선의 선택이다.
13. 민주적 평등성과 차이 원리
민주적 평등성은 공정한 기회 균등과 차이 원리의 결합이다. 차이 원리를 통해서 효율성 원리가 지니는 우연적인 것에 관한 불확정성을 배제하며, 체계 내에서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들(최소수혜자)들의 기대치를 더 낫게 할 때에만 그 체계 안에서 이점을 가지는 사람들의 보다 높은 기대치가 정당화된다.
차이 원리
두 사람 사이의 분배의 방식을 나타내는 그래프를 그렸을 때, 차이 원리는 두 사람의 처지가 모두 다 낫게 해주는 그런 방식이 없다면 평등한 분배의 방식이 없다는 것을 표방하는 원리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성의 원리를 나타내는 그래프와는 달리, 차이 원리를 만족하는 점들의 집합은 45도 각도의 그래프와 수직, 수평선으로 나타난다(그림 5). 이는 한 사람의 기대치와 처지가 나아지더라도, 다른 한 사람의 기대치와 처지는 별로 나아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6을 보자. 만약 X1을 가장 이점이 많은 대표적 사람의 기대치, X2를 가장 이점이 적은 대표적 사람의 기대치라고 했을 때 곡선OP는 X1의 기대치에 따른 X2의 기대치의 관계 즉 분배의 방식의 집합이다. X1의 기대치가 너무 많을 경우 X2의 기대치는 당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위로 볼록한 곡선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 곡선의 가장 높은 부분 a는 가장 이점이 적은 대표적 사람의 기대치를 가장 많이 충족시켜주는 방식에서 가장 이점이 많은 대표적 사람들의 기대치이다. 즉, a 지점에서 분배의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
그림 7은 재화가 일정할 때 가장 이점이 많은 사람과 가장 적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그래프다. 이는 차이 원리보다 덜 평등주의적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림 8을 보자. 원점에서 출발한 그래프와 교차하는 직선들은 동일한 재화를 나누는 방식에 관한 그래프다. 이는 고전적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그려진 것인데, 이들은 동일한 재화를 나누려는 경우에만 분배의 방식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대개 이점이 많은 사람보다 이점이 적은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에, 교차하는 직선의 그래프들은 X1 축에 좀 더 가까워진다. 곡선OP는 여전히 기여도를 나타내는데, 공리주의를 기준으로 하면 재화의 양이 가장 많은 a가 최적인 반면에 차이 원리는 b를 선택한다. 하지만 a는 b보다 불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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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현실적인 예를 들어보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같은 재산소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기업가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이 미숙련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보다 더 많은 삶의 비전을 갖게 된다. 이것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차이의 원리에 따르면, 기업가의 대표적 개인의 기대치를 줄이면 미숙련 노동자의 대표적 개인의 기대치 또한 줄어들 경우에만, 그리고 이런 차이가 미숙련 노동자의 대표적 개인의 기대치를 늘릴 때에만 정당하다고 여겨진다.
차이 원리에 관해 이뤄져야 할 몇 가지 논의가 더 있다. 첫째, 이 원리가 적용된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들의 기대치가 실제로 극대화된 경우이다. 이 때는 이점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치가 바뀌어도 이들의 기대치가 더 나아지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이점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치가 이점이 적은 사람들의 기대치에 공헌하고는 있지만, 최대치는 아닌 경우다. 앞쪽은 완전히 정의로운 사회라고 부를만하고, 뒤쪽은 대체로 정의롭지만 완전히 정의롭진 않다. 이점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치가 과도하게 높은 경우, 이것이 감소하면 이점이 적은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질 것이고 따라서 정의롭지 못한 것이 된다. 차이의 원리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점이 적은 사람들의 기대치가 극대화되는 것이고, 이에 비추어 볼 때 이점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치가 적어도 이점이 적은 사람들의 기대치에 공헌하는 것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부정의하다. 이는 실제 그 적용에서 빈부간의 심각한 격차로 나타날 것이며, 민주적 평등의 원리마저도 무너뜨린다.
그렇다면 민주적 평등이라는 해석에서는 효율성의 원리가 무시되고 있는가? 효율성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는 자연적인 자유의 체계와 자유로운 평등 해석에서는 효율성의 원리를 순수하게 절차적인 정의로 제한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우연적인 것이 정의에 개입할 여지를 많이 남기고 있다. 반면 민주적 평등이라는 해석은 우선 이런 여지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위에서 확인하였다. 또한 효율성의 원리와 양립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차이 원리를 만족시킨다면, 어떤 이들이 그보다 더 손해를 보지 않고 동시에 다른 이들이 그보다 더 이익을 볼 수 있는 다른 방식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의 기본적인 구조가 부정의할 경우 어떤 이들의 기대치를 감소시켜야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고 이것은 효율성의 원리와 모순을 일으키지만, 정의는 이에 우선하고 또 완전히 정의롭다면 효율성의 원리 또한 만족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둘째, 차이 원리를 만족시키려면 단지 가장 이점이 적은 대표적 사람들의 기대치만을 극대화하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차이 원리가 실현되면 모든 사람은 이득을 본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득을 본다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기대치의 불평등이 이어져 연결되어있다면, 즉 가장 이득이 적은 사람들의 기대치를 향상시킨다면 다른 이들의 기대치 또한 잇따라 올라간다면,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들의 기대치만을 극대화하더라도 실제로 많은 다른 대표적 사람들의 기대치도 따라서 나아진다. 또 반대로 이것을 가까운 관계라고 표현하면, 다른 많은 사람들의 기대치의 변화에 따라서 가장 이득이 적은 사람들의 기대치도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특정한 불평등이 가져다주는 그에게 돌아오는 이익 자체에서 이득을 얻고,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들은 그 불평등이 기여하는 것에 의해 이득을 얻는다.
연쇄적 연결
단순하게 3명의 대표적 사람을 가정해보자. 가장 이점이 많은 사람 X1,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 X3,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사람 X2. 그림 9의 곡선은 X1의 기대치의 증가에 따른 X2와 X3의 기대치의 변화를 나타낸 곡선이다. 차이 원리는 X3이 가장 높은 위치인 a를 선택한다. 연쇄관계는 X3 곡선이 a 오른쪽에서도 올라간다면, X2 곡선 역시 마찬가지로 올라갈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하지만 X2가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X3은 여전히 떨어질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X3이 올라간다고 X2가 반드시 올라가는 것 또한 아니며(그림 10), 이 경우에 연쇄적 연결은 적용되지 않는다. |
이런 연관관계에 관한 생각을 통해서 우리는 이점이 많은 사람들의 기여가 사회의 특정한 부분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체에 두루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득이 넓은 범위에 분산된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첫째는 제도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어떤 기본적인 이익을 위해 설립되며, 둘째로 그 모든 직책과 직위는 개방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정의로운 체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모든 이의 기대치를 향상시킨다. 물론 이런 가정이 실제와 꼭 들어맞는 일은 드물지만, 적어도 정의로운 사회에 관해 이와 같은 점들이 기대되고 또 일반적으로 정의로운 사회에서 이런 면모들이 보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 가장 이점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치를 변화시켰을 때,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만 이득이 돌아가는 경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사회의 기본적 구조를 설정할 때 이런 문제가 생긴다면, 이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게 된다. 이와 같은 논의를 통해서 정의에 관한 두 번째 원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불평등들은 (a) 가장 이점이 적은 이들에게 가장 큰 이득이 가도록 하고 또한 (b) 공정한 기회의 평등의 조건 아래에서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직과 위치가 덧붙여지도록 조정될 것이다.
이러한 차이 원리와 그것이 나타내는 구상은 정의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과 쉽게 조화를 이룬다
. 이런 일반적인 생각은 이런 원리를 모든 기본적인 가치에 적용한 결과이며, 이런 서열은 사회의 여건이 좋아질수록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형식이다.
14. 기회의 공정한 평등과 순수하게 절차적인 정의
이 절에서 다루는 내용은 기회의 공정한 평등에 관한 자유주의적 원칙이다. 이 원칙은 두 원칙 전체에 관한 자유주의적 해석, 즉 민주적 평등과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자유로운 평등이라는 해석과 구별되어야 하고, 또 여러 직무들이 재능에 따라 결정된다는 식의 능력주의적 사회의 개념도 아니다. 특히 이 원칙은 순수하게 절차적인 정의라는 관념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우선, 직무가 평등하게 개방되어야 하는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특정한 개인들에게 특정한 직무를 개방하지 않으면서도 그 직무에 알맞은 재능을 지닌 사람을 뽑을 수 있고, 이 직무에 권한과 이익을 할당함으로써 더 효율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회의 공정한 평등이라는 해석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런 제한은 인간적인 좋은 것의 주요한 형식 가운데 하나인, 사회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것에서 오는 자아의 실현을 그 원천에서부터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특정한 직무에 권한과 이익을 할당하는 것은 사회의 기본적 구조의 역할이다.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그 구조가 정한 직무에 따라 행위할 것을 요구받으며, 이를 수행하면 기대치가 생겨난다. 그리고 그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여기에서 순수하게 절차적인 정의에 관한 관념이 생겨난다. 적절한 기대치에 대한 합리적 보상이 사회의 기본적 구조가 정한 과정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절차들이 ‘정의롭다’고 부를 수 있는 여러 조건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는 완전한 절차적 정의다. 몇 사람이 모여서 케이크를 먹을 때, 가장 공평하게 먹는 것은 모두 똑같은 양을 먹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되려면, 아무에게나 케이크를 자르라고 한 뒤 그는 제일 마지막에 남은 조각을 먹으라는 규칙을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해야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이 가장 많은 양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완전한 절차적 정의에서는 공평한 분할(분배)이 무엇인가에 관해 절차에 독립적인 기준이 있으며, 또한 그 기준에 알맞은 결과를 달성하는 절차가 만들어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형사 재판이다. 바람직한 재판에서는 피고가 실제로 저지른 일에 대해서, 여러 증거들을 근거로 적절한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재판에 관한 법이나 이론은 바람직한 재판이 이뤄지는 방법에 관한 연구가 된다. 그러나 여러 이유들 때문에 언제나 바람직한 재판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이런 불완전한 절차적 정의에서는 바람직한 결과에 관한 독립적인 기준은 있지만 이것을 완전히 달성할 수 있는 절차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순수하게 절차적인 정의는, 완전한 절차적 정의와 불완전한 절차적 정의와 비교해봤을 때, 바람직한 결과에 관한 독립적인 기준은 없지만 절차의 공정성에 의해서 결과의 바람직함이 담보되는 유형이다. 가장 좋은 사례는 여러 사람이 함께 벌이는 도박이다. 도박판을 벌인 이후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돈이 가면 좋은가에 관한 기준은 없다. 대신 그 판의 규칙이 있으며,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이 판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 판이 결정한 분할의 결과가 바람직한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 여부는 규칙이 특정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적용되게끔 짜였는가, 누군가가 속임수를 썼는지 등등 분할하는 과정에 속하는 사건들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실제로 공정하게 수행되었을 때, 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분할의 결과는 그것이 어떤 형태라고 하더라도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순수하게 절차적인 정의라는 생각을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적용해보자. 법과 정부가 효율적으로 작용해 시장을 유지하고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고 조세제도를 통해 재산과 부를 널리 분배하며 적절한 최소한의 사회적 생활을 보장한다면, 교육을 통해 보장되는 기회의 공정한 평등 그리고 그에 따라 오는 다른 동등한 자유도 보장된다면, 이런 기본적 구조에서 이뤄지는 소득분배는 차등의 원칙을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민주적 평등이라는 해석에서 공정한 기회의 평등 부분의 역할은 이런 해석이 순수하게 절차적인 정의라는 생각에 충족된다는 것, 따라서 민주적 평등이 주목하는 분배의 문제에서의 공정성은 구체적인 개인들에게 실제로 얼마만큼이 할당되는가라는 결과에 의존하지 않고 분배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생하는가라는 절차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 절차, 즉 사람들이 요구하는 재화의 생산과 분배의 절차는 사회의 기본적 구조가 결정한다. 절차의 공정함은 결과의 정의로움을 보증한다. 또한 공정성을 과정과 결부시키면, 공정성을 결과와 결부시켰을 때 발생하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무한히 많다는 부담을 지지 않을 수 있다. 할당의 결과와 관련된 입장에서는, 고립된 개인의 상태에 대한 고려에서 도출되는 각각의 합(만족의 양)이 가장 큰 방식으로 분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상태를 고려하는 방법은 공정한 관찰자의 눈을 빌려 만족의 계산을 한 가지 방식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제도와 절차는 이런 방식에 따라 분배를 달성하는 것에 불가피한 제한을 가하기 때문에, 완전하지 못하며 정의와 거리가 멀다.
정의의 두 원칙들 사이에는 축차적 서열이 있다고 가정된다. 민주적 평등이라는 해석의 두 가지 요소 사이에도 축차적 서열이 있다고 가정된다. 우리의 목표는 정의에 관한 정당한 생각을 최대한 단순화된 개념을 조합해 제시하는 것이고, 이것을 분배적 정의의 문제에 적용해보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낸 정의의 원칙들은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혜의 기반이 된다.
15. 기대치들의 기초로서의 일차적인 사회적 좋음들
정의에 관한 두 원칙을 만족시키는 구체적인 제도들을 논의하기 위해서 먼저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대치와 그것을 평가하는 방법이다. 이와 관련한 공리주의의 입장을 살펴보고, 정의에 관한 두 원칙과 비교해보자. 만약 우리가 공리주의적인 원칙을 채택할 경우, 모든 기대치들의 합을 가장 크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원칙은 이 모든 기대치들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손해와 이익을 비교해 우열을 비교할 수 있도록 상호 비교의 방법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 이 방법은 직관이나 편견, 이기심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공리의 원칙은 이 문제에 만족스런 해답을 주지 못한다. 또한 우리가 실제로 개인들의 행복을 비교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이런 일이 실제로 그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상호 비교의 문제에 해답이 없다는 이유로 공리의 원칙에 관한 회의주의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기대치들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그리고 그 그렇게 평가된 기대치들의 총합이 극대화된 것이 정말 원칙이 될만한 주장인지에 관한 문제다.
차이의 원칙은 기대치들 사이의 비교를 두 가지 방식으로 해결한다. 첫째,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이 확인되기만 하면, 기대치의 비교에서는 항상 그들이 우선이다. 이것이 서수적(첫째, 둘째, 셋째) 판단이다. 이에 비해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공리주의는 기수적(하나, 둘, 셋) 판단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어떤 기준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기대치를 도출할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다. 반면 차이의 원칙에서는 대표적 개인들이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관해 평가해보면 대표적 개인들 사이에서 지위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기대치에 관해 이 이외의 다른 평가의 요소는 필요하지 않다. 만약 대표적 개인의 기대치의 차이가 기본적 구조의 형태에 따라 변한다면, 기본적 구조의 형태를 바꾸어서 특정한 대표적 개인의 기대치를 개선할 수 있다.
둘째, 일차적이고 사회적인 좋은 것들로 상호 비교를 단순화한다. 기대치는 대표적 개인들이 기대할 법한 일차적이고 사회적인 좋은 것들에 관한 지표다. 어떤 개인에게 좋은 것들은 그 개인에게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가장 합리적인 삶의 계획이 무엇인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 계획은 다양한 관심사들을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조화시키고, 목표와 무관하거나 이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배제한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행복하다. 일차적으로 사회적인 좋은 것들은 위와 같은 개인들이 삶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계획하든 간에 필요로 하는 것들, 그래서 적게 가지는 것 보다는 많이 가지길 바라는 것들을 뜻한다. 권리, 자유, 기회와 권력, 소득과 부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가장 넓은 범주들이다. 이들은 어떤 목표를 성취하려고 들더라도 필수적이다.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의해 개인들에게 할당된다. 최초의 상황에 있는 개인은 자신에게 주어질 우연적인 것에 관해서는 모른다. 그러나 일차적이고 사회적인 좋은 것들은 모든 구체적인 개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최초의 상황 아래에서도 대표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끌어다 쓸 수 있는 자원이 된다.
그렇다면 지표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이것은 정의에 관한 두 원칙이 표방하는 서열에 따라 만들어진다. 기본적인 자유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보장되어야 한다. 일차적이고 사회적인 좋은 것들 가운데서 분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권위와 권력, 소득과 부 등이다. 우리가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할 지수는 가장 이점이 적은 이들의 지표다. 보통 이 좋은 것들을 더 많이 할당받을수록 이점이 많아지며, 따라서 이들에 관하 지표를 따로 만들어야 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 지표는 가장 이점이 적은 이들의 대표적 개인이 된 상황을 생각해보고, 합리적으로 숙고해봄으로써 사회의 기본적 구조가 일차적이고 사회적인 좋은 것들을 할당해주는 방식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이득인지를 떠올려보면 된다.
지표를 일차적이고 사회적인 좋은 것들과 연관시켜서 정의하는 것은 적절한가? 어떤 사람들은 계획을 통해 목표를 실현시켰을 때 만족하는 정도와 지표를 연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행복은 목표를 실현시켰을 때 달성되는 것이지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표는 사회의 기본적 구조와 관련한 것이고, 사회의 기본적 구조는 목표를 실현시켰을 때의 만족도에 관해 말해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지표는 일차적이고 사회적인 좋은 것들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지표에 관해 이 같은 방식으로 정의하는 것은 목표들 간의 우열을 가리지 않는다. 목표가 무엇인가에 상관없이, 단지 그 계획이 정의에 관한 두 원칙과 양립가능하기만 하면 된다. 이에 따라 일차적이고 사회적인 좋은 것들은 가장 이점이 적은 이들 또는 상대적으로 이점이 적은 이들의 처지를 끌어올릴 수 있을 때에만 이점이 더 많은 자들에게 더 많이 할당된다.
일차적이고 사회적인 좋은 것들을 지표로 삼는 것은 상호 비교를 위한 객관적인 기준을 세울 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 것으로 보인다. 목표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목표를 성취했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를 상호 비교하는 것은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우며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구체적인 경우에 요구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이런 식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정의에 관한 일종의 철학적인 설명이다. 그리고 이런 설명은 그것이 적용되는 사회의 도덕적 측면의 핵심을 반영한다.
16. 적절한 사회적 위치들
여기에서 정의에 관한 두 원칙을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적용하는 것에 관해 논할 때 그 대상이 되는 것은 대표적 개인이다. 이런 생각은 구체적인 개인들에 관해 고려할 때 참고할만한 적절한 일반적인 관점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모든 개인들이 대표적 개인에 걸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종류의 개인이 대표적 개인에 더 가까운지에 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에 관한 기준이 있다면, 특정한 종류의 개인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관해 더욱 적절한 관점이 될 것이다. 또한 이 기준을 떠올릴 때 우리는 정의에 관한 두 원칙이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제약을 가하는 취지, 즉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대한 자연적이거나 또는 사회적인 우연성의 영향을 가능한 한 배제하려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대표적 개인을 설정하는 방식도 이에 부합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한 시민이라는 위치와 소득과 부의 분배에 따라 정해진 위치 두 가지를 가진다. 그러므로 만약 대표적 개인을 선정하려 한다면, 그 대표적 개인은 평등한 시민이면서 동시에 소득과 부의 분배에 따라 그가 누리는 생활의 수준을 대표해야 한다. 먼저 평등한 시민의 입장에 관해 살펴보자. 정의에 관한 원칙들 가운데 평등한 자유의 원칙과 기회의 공정한 평등이라는 해석에 의해서 사회 속의 모든 이들에게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 권한이 할당된다. 그러므로 평등한 시민이라는 적절한 일반적인 관점이 설정된다. 이 관점에 의해 고려될 수 있는 사회적인 정책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공통된 이익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 어떤 제도를 이 관점에 의거해 평가하면, 모든 사람이 각각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공평하게 보장해주거나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를 좀 더 잘 달성하게 해준다면 좋은 제도가 된다. 그러므로 이 관점은 특정한 개인 또는 집단이 아닌 모든 사회의 구성원을 동등하게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하다.
둘째로 소득과 부의 분배에 따라 정해진 위치를 대표하는 개인의 입장을 살펴보자. 이는 다소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다. 단순히 소득과 부의 정도에 따라 이것이 나눠지지는 않는다. 일차적이고 사회적인 좋은 것들은 권위와 권력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들을 많이 할당받는 경우 여러 가지 관점에서 상대적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의에 관한 두 원칙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가장 이점이 적은 이들을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몇 가지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간주되는 특정한 사회적 역할을 정하고 그들의 소득과 부의 평균보다 낮은 소득과 부를 가진 사람들을 가장 이점이 적은 이들이라고 여길 수도 있고, 모든 사람들의 소득과 부를 고려해 중간값의 절반 이하(하위 25%)의 소득과 부를 가진 사람들을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가장 이점이 적은 이들의 기대치에 관한 지표를 만드는 데 기초가 될만한 자료들을 모을 수 있게끔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정도는 특수한 자료들에 기초해 규정되는 것이고, 그러므로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원초적 상황에서는 이런 기준 자체를 만드는 일이, 이를 벗어나서 실제로 어떤 기준을 설정해야 이 제도가 유효해질 수 있을지를 고려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라는 생각은 이 두 가지 위치에 기반한 적절한 일반적인 관점을 통해 사회 체계를 평가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외에도, 변하지 않는 자연적 특성에 의해 이런 관점이 생겨나는 경우도 있다. 성별, 인종, 문화 등 변할 수 없거나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이 이런 특성의 사례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일반적인 사회적 위치를 결정하는 데 요소가 될 경우 차이의 원칙이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적절한 사회적 위치의 개수가 적다.
만약 적절한 사회적 위치가 규정된다면, 구체적인 개인들에게는 이득이 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적절한 위치에서의 관점은 이를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의에 관한 두 원칙은 적절한 사회적 위치에서 내린 판단을 우선시한다. 이런 우선성은 제멋대로 내려질 가능성이 높은 구체적인 개인들 사이의 판단과 그로 인한 분쟁을 방지하고 질서를 확립하게끔 만들어준다. 게다가 대표적인 개인들의 위치가 위와 같은 방식에 따라 배정된다면, 구체적인 모든 개인들이 언제나 이득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이런 점들에 관해 동의했으므로, 우리는 이런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수용해야 한다. 적절한 사회적인 지위들은 일반적인 관점을 만들고, 이를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적용시킨다. 이렇게 대표적 개인들로 단순화한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관해 탐구하면 우리는 그 사회의 모든 시민들을 적절하게 고려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구체적인 시민들은 모두 대표적 개인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대표적 개인을 설정하고 정의에 관한 두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복지를 증진시키게 된다.
17. 평등의 경향
이 절에서 설명해야 할 것은 정의에 관한 원칙이 평등주의적이라는 말의 의미, 그리고 기회의 공정한 평등이 능력주의적 경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첫째, 차이의 원칙이란 부당한 불평등에 대한 배상(redress)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원칙의 취지에 따라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논하자면, 사회의 기본적 제도는 적은 자질과 이점이 적은 사회적 위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정의에 관한 원칙에 배상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며, 배상은 다른 것들과 비교된 뒤 우선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이는 우리의 정의감에 거의 항상 포함되는 것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차이의 원칙이 곧 배상은 아니다. 배상은 부당한 불평등을 소득과 부의 할당과 복지로 교정하려는 것이지만, 차이의 원칙은 이런 불평등이 인간적인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의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차이의 원칙은 사회의 기본적 구조가 만들어낸 시작점 자체를 교정해 기회의 공정한 평등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래서 차이의 원칙은 배상의 취지를 어느 정도는 실현시켜 준다. 또한 이런 부당한 불평등에서 생기는 이점은 오로지 개인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이점이 더 적은 이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차이의 원칙은 그런 이점을 우리 모두의 자산으로 간주한다.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볼 필요는 없지만, 이런 식으로 처리되지 않으면 이는 아주 부정의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위와 같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불평등은 부정의하면서 동시에 필연적이기 때문에 제도적 측면에서 생기는 모든 불평등에 반대하는 입장을 반박할 수 있다. 이런 불평등은 정의롭다거나 부정의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자연적 사실이다. 정의는 이런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를 처리하는 방식을 평가할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부정의한 방식은 반드시 교정되어야 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다. 사회의 기본적 제도는 인간 행위의 양식으로서,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에 관한 두 원칙은 정의로운 방식으로 이들을 처리하며, 이 양식에 사람들이 합의한다는 점을 근거로 그런 행위의 양식이 실제로 더 정의롭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 차이의 원칙은 상호성(reciprocality)을 표현한다. 차이의 원칙은 불평등에서 오는 이점이 언제나 이점이 적은 다른 사람의 처지를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런 불평등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 이점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의 처지가 나아지지 않는 경우에만 이런 불평등은 허용된다. 즉 특정한 불평등에서 오는 특정한 이점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이익을 동반한다. 하지만 이점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 큰 이익을 추구하는 데 제한이 걸린다는 점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우선은 사회의 기본적 구조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협력 체계가 없이는 어떤 사람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그리고 정의는 이런 협력 체계를 향한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즉 더 큰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사회의 협력 체계를 자발적으로 유지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아는 한, 이들은 협력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 큰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을 포기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상(desert)이 다른 사람의 이익과 항상 연계되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이는 보상이 언제나 불평등으로 인해 생긴 이점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점에 관해 일정하게 보답해주는 협력 체계의 형식에 의지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된다. 또한 이런 보상이 능력(즉 이점)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며 그들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는 주장도 이런 입장에 따라 반박해볼 수 있다. 그들이 가진 이점은 대개 그들 자신들에게 나오지 않고, 유복한 가정환경과 그것을 개발할 수 있었던 기회를 사회가 제공해주었다는 것에서 나온다. 따라서 이런 우연성들을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서 배제시키려고 생각하는 한, 이런 종류의 불평등을 근거로 보상을 바라는 것은 원래의 의미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정의에 관한 두 원칙은 평등주의적이며,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셋째, 차이의 원칙은 박애에 관한 한 해석을 보여준다. 기존에 박애는 정치적 개념이나 제도가 아닌 삶의 태도로 간주되었다. 즉 실천되지 않으면 정치적 제도들이 진정으로 목표하는 바를 성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중요하게 취급되며, 정치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아왔다. 특히 이 말은 사회가 더욱 더 넓으면 넓어질수록 희미해져 가지길 기대하기 힘든 유대감이나 정념적 측면을 표현하는 말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의 정치적 문제에서 이것이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잡을 수 없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정의에 관한 두 원칙은 박애의 정신, 자신의 이익이 타인의 손해가 된다면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제도 속에서 정식화하려는 시도로서, 실제로 사람들이 박애가 실현하고자 하는 형태의 행위를 하게끔 만드는 원칙으로 작동한다. 차이의 원칙에 의해서 나의 이익이 다른 사람의 손해가 될 때 그런 이익을 바라지 않을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민주주의에 관한 상식적인 세 가지 견해는 이와 같이 정의에 관한 두 원칙 속에서 구현되어 있다.
이처럼 정의에 관한 두 원칙을 민주적 평등으로 해석하는 것은 능력주의적 사회를 지향하지 않는다. 능력주의적 사회에서는 소득과 부의 할당 또는 보상의 기준을 재능의 소유 여부에 두며, 기회의 평등은 이런 능력들이 보여줄 합리적으로 기대할만한 발전이나 번영의 수단이 된다. 이런 제도는 사람들을 분화시키고, 그 격차를 점점 더 벌려놓는다. 따라서 능력주의적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은 실제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 위치를 정당화하는 구실로만 쓰일 수 있을 뿐이다. 반면 민주적 평등이라는 해석은 모든 사람들이 일차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를 가지고서 각자의 사회적 역할을 할 것을 권장하며, 불평등에 따른 서열(hierachy)이 생겨나는 것을 가능한 한 제한한다.
여기까지 다룬 정의의 문제가 같은 세대 사이에 생겨나는 공시적 불평등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런 원칙이 통시적으로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타고난 자질은 어쩔 수 없는 자연적 사실이지만, 그것이 실제 능력으로 얼마나 발현되는지는 그 사회가 정의로운 정도와 관련이 있다. 또한 대체로 다른 사람의 능력을 감소시키려 드는 제도는 가장 이점이 적은 이들의 이익 또한 감소시킨다. 그래서 차이의 원칙은 이런 불평등을 받아들이는 대신 여기에서 생겨나는 이점이 사회적 자산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런 이점을 가진 본인에게도 이득이다. 따라서 지금의 사람들이 이런 타고난 자질을 최대한 보존하고 이 수준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고 의도한다면, 그에 합당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 조치들은 역시 지금 세대의 사람들이 합의할만한 내용이어야 한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 우리는 모든 사람의 자질과 능력이 가장 잘 발휘되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18. 개인들을 위한 원칙들: 공정성의 원칙
정의에 관한 원칙을 탐구할 때 사회의 기본적 구조만이 고려사항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 가운데는 개인에 관한 것도 있으며, 국제법에 관한 것도 있다. 그리고 이들이 충돌할 때 어떤 것을 먼저 고려할 것인지에 관한 우선성의 원칙도 있다. 여기에서는 개인들에 관한 원칙을 거칠고 간략하게나마 다뤄볼 것이다.
우선성의 원칙은 도식을 통해 나타내볼 수 있다. 이 계통은 연역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고, 정당성에 관한 여러 원칙들을 세부적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리고 로마 숫자는 원초적 입장에서 받아들이게 될 원칙의 순서를 표시한 것이다. 이 순서에서 개인에 대한 요구사항은 허용사항보다 우선하는데, 이는 사회의 기본적 구조가 요구사항을 규정한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사회 체계와 제도가 다른 것들에 비해 우선하는 것은, 무엇이 정의롭다고 이야기할 때 그렇게 말할만한 기준이 대체로 사회적인 것이라는 정의에 관한 우리의 감각을 반영하고 있다.
정의에 관한 생각을 포함해 정당성에 관한 한 이론을 만들려 할 때, 우리는 정당성에 관한 여러 개념들을 정의할 원칙들을 채택한다. 그리고 이 개념들은 서로 관계를 맺는다. 이런 개념들에 관한 원칙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그 원칙들이 원초적 상황에 있는 대표적 개인들이 선택할 법 하다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이것은 옳음(right)에 대한 의미론적, 맥락적 분석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필수적인 것만 고려하고, 가능한 한 불확정성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데 중점을 둔다. 따라서 이는 일종의 해명이고, 불확실한 부분을 제거해나가는 작업이 될 것이다. 만약 공정성으로서의 정의와 정당성이라는 이론이 우리의 일반적인 정의에 관한 생각과 일치하거나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면, 우리는 이제 이 이론들을 일상적인 언어로 바꿔서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정의와 정당성에 관해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개인에 관한 원칙 가운데 하나는 공정성이다. 만약 어떤 제도가 정의에 관한 두 원칙을 만족시키며 동시에 사람들이 그런 조정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제도들이 제공하는 기회를 이용하려고 한다면, 사람들은 제도가 요구하는 바를 수행해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어떤 사람들이 전체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데 필요한 방식으로 자유를 제한당한다면, 그 사람들은 다른 모든 이들에 대해 그러한 방식을 따르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정의에 관한 원칙은 어떤 제도의 요구사항들이 정당한 직무인지를 판별하게 해주고,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수행하지 않는 한 협력의 체계로부터 생겨나는 이득을 기대할 수 없다.
공정성의 원칙은 두 부분으로 이뤄져있다. 첫째는 제도의 정의로움에 관련한 부분이다.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 제도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의무를 요구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 의무를 요구할 수 있으려면 제도가 어느 정도 정의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계약에 의해 생겨나는 사회적 의무라는 개념이 억압적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는 개념이 될 것이라는 비판은 정의에 관한 원칙과 사회계약론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없다. 둘째는 사회적 의무의 자발성에 관련한 부분이다. 사회적 책무는 그것이 명시적이 되었든 묵시적이 되었든, 이익에 의한 것이든 자발적 연합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또 그 내용은 언제나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이행할 의무는 그 연합을 유지하는 사람들 모두가 짊어진다.
19. 개인들을 위한 원칙들: 자연적인 의무들
사회적 의무와 대비되는 자연적 의무들이 있다. 이는 통일된 방식으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분류를 하자면 넓게 보아서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을 나눠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둘 가운데서 무엇이 먼저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정해야 하는데, 소극적인 자연적 의무들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짐작된다.
사회적 의무와 대비되는 자연적 의무의 특징은 두 가지이다. 첫째, 자연적 의무는 자발적인 연합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며, 이들을 요구하기 위해 어떤 제도가 선행할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연적 의무를 이행할 것을 요구받는다고 보아야 옳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않을 것을 제도적으로 요구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인행위를 변호하는 것은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둘째, 자연적 의무는 어떤 사람이 사회의 기본적 구조가 규정한 역할의 차이 혹은 그것이 허용한 불평등한 관계들 가운데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와 무관하게 적용된다. 즉 동등한 도덕적 인격인 인간 일반에게 해당된다.
이런 특징을 공정으로서의 정의와 연관시켜서 생각해봤을 때, 정의로운 제도를 지지하고 따르는 것은 모든 인간이 지니는 의무가 된다. 현재 제도가 정의롭다면 지켜야 하고, 막대한 희생이 뒤따르지 않는 한 현재의 제도를 더 정의롭게 바꿀 수 있다면 바꿔야 한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사회적 의무와 무관하게 제도의 구속을 받기도 하며, 그래서 자연적 의무는 사회적 의무에 대해 독립적이다. 이런 원칙은 원초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선택할만한 것들이며, 특정한 제한이 부차적으로 가해지지 않는 한 무조건적으로 적용된다. 사회적 의무로서의 공정성의 원칙과 자연적 의무로서의 정의는 사람들이 정의로운 제도에 소속되는 두 가지 방식이다. 특히 공정성의 원칙은 차이의 원칙에 의해서 이점을 더 많이 할당받은 사람들에게 더 강하게 적용된다. 즉 제도 안에서 보다 많은 이득을 보는 사람은 그 제도가 가능한 한 정의로워야 한다는 사회적 의무를 지니게 된다.
이제 개인에 관한 원칙 가운데서 허용사항이 남았다
. 정의와 정당성에 관한 원칙을 논할 때에 이 부분은 비중이 요구사항에 비해서 덜하다. 이는 허용사항의 내용들을 우리가 행해도 되고 행하지 않아도 되는 행위들이며, 따라서 정의상 자연적이거나 사회적인 의무들을 위반하지 않는 행위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들의 도덕적 지위는 자연적, 사회적 의무와의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 이런 도덕적 지위가 높은 행위들 가운데는 의무 이상을 하는 행위들이 있다. 이런 행위는 좋은 일이지만, 사람들이 반드시 그것을 해야한다고 요구받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차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주제가 아니다.
덧댐. 위쪽에 등장하는 박스의 그래프들은 인터넷에 찾아보시면 나올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