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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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파시스트 군부 세력과 공화주의 정부 사이에 내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공화주의 정부를 지원하기 아나키스트 의용군에 자원입대하기로 결심합니다. 멋진 전투와 뜨거운 승리로 파시스트들의 기를 눌러버리겠다는 결심은 최전선에 배치되자마자 산산조각 나버립니다. 총과 총알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고 추위와 더위에 고생하는 열악한 상황, 교착된 전선에서 벌어지는 지루한 대치는 후방에 알려진 전쟁의 낭만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틈틈이 벌어지는 전투에서 의미 없이 부상당하거나 사망하는 사람이 꾸준히 발생하는 것도 견디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6개월 넘게 이어진 대치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나’는 휴가를 받아 바르셀로나에서 쉬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공화주의 정부와 무정부주의자들 사이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아 무력시위가 발생하기에 이릅니다. 파시스트 군부라는 거대한 적을 앞에 두고서도 서로를 죽일 듯이 달려드는, 더 정확히는 아나키스트들을 믿지 못해 무장해제시키려는 공화주의 정부와 공산당의 선전선동에 질린 상태가 됩니다. 게다가 아나키스트 의용군 소속이었던 자신의 생존조차 담보할 수 없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입니다. ‘나’는 그 뒤에 어떻게 될까요?

실제 스페인 내전에 공화주의 정부 진영에 자원입대해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기보단 보고서에 가까운 작품, 르포르타주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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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스페인 내전입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스페인에서 벌어진 전쟁을 가리킵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일으킨 군사반란에서 시작돼, 공화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며 토지와 소유 재분배 등 진보적인 개혁을 실시하던 당시 스페인 제2공화정을 무너뜨린 사건이죠.

프랑코의 반란군은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지원을 받아 개혁에 대한 찬반으로 혼란에 빠진 스페인 전역을 단숨에 점령해나갑니다. 반면 공화주의 정부는 스페인에서 자생한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소비에트 연방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공산당, 그리고 국제적 연대를 맺고 있는 아나키스트 의용군들 사이의 분쟁으로 인해 자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오웰이 묘사한 바르셀로나 시가전도 그 자멸의 과정에서 있었던 사건이고요.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부분은 최전선에 파견된 ‘내’가 ‘전선의 지리멸렬함’을 묘사하는 부분입니다. 이곳에는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습니다. 물자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고, 명령체계도 엉망이며, 병사들은 줄을 맞춰서 걷는 정도만 훈련받은 뒤에 바로 전투에 투입될 정도입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전투를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을까, 영국에서 태어나 제식훈련을 강하게 받은 영국인으로서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나’는 솔직히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그가 바라보는 단 하나의 희망이자 동력은 ‘평등’입니다. 그런 지리멸렬함을 모두 덮고도 남을 에너지가 바로 평등에서 나온다는 점을 ‘나’는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사람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쪼개고 나눠 차별하려 드는 파시스트 세력을 향해 대항한다는 그 명분 하나만큼은 사람들이 부여잡고 있기에, 전선의 지리멸렬함을 그나마 버티면서 심지어 소소하나마 전투에서 성과를 올리기까지 하는 것이죠.

뒷부분은 휴가를 받아 바르셀로나로 오면서 그 희망이 산산이 깨지는 부분입니다. 전선에는 물자가 부족해 총마저 돌려쓰는 처지이지만 무정부주의자를 탄압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정부 측 치안대는 한 명이 소총과 권총을 모두 사용하는 행태, 코민테른 더 정확히는 스탈린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게 분명한 공산주의자들이 다른 세력을 ‘혁명의 적’이라며 ‘트로츠키주의자’ ‘파시스트’라고 매도하고 내부투쟁에 골몰하는 꼬락서니, 이런 이들을 믿지 못해 최전선이 아닌 곳에서조차 무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바리케이드를 쌓으며 저항하는 아나키스트들까지. ‘나’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공화주의 정부와 공산주의자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수십 페이지에 걸쳐 조목조목 지적합니다.

이 뒷부분을 관통하는 감정은 ‘환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계를 파시스트로부터 구하겠다, 모두가 평등하고 차별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상이 아무리 공상 같고 낭만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세계의 변화를 이끄는 희망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모습, 공화주의 정부 내부의 분열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누가 다수 세력이 돼서 정권을 잡고 누구를 내쫓느냐만 결정하는 무의미한 다툼일 뿐이죠.

이런 스페인 내전은 파시스트와 공화주의자의 대립이라는 점과 각 진영 안에서 세부 세력들 사이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연대와 대립과 반목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2차 세계대전의 축소판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역사의 현장에 뛰어든 듯한 생생함을 이 소설에서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스페인 내전이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이와 관련된 문화콘텐츠는 정말 많습니다. 다 소개해드리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중에 청취자 여러분 모두에게 교양이 될 만한 작품만 콕 집어 선정해도 4개 정도가 떠오르네요.

분야별로 꼽아보자면, 그림으로는 20세기 최고의 화가이자 스페인 내전 당사자 중 한 명인 피카소가 그린 그림 ‘게르니카’가 있네요.

문학작품으로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한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있습니다. 같은 배경을 다룬 두 소설가의 작품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해보는 활동도 매우 가치 있을 거라 생각하고요.

영화로는 영국을 대표하는 좌파 영화감독인 켄 로치의 1995년 영화 <랜드 앤 프리덤>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가 있겠습니다. <랜드 앤 프리덤>은 내전 당시 상황을 묘사하는 데 충실한 다큐멘터리같은 작품이라면, <판의 미로>는 주인공 소녀의 꿈같은 동화세계가 현실의 참극과 만나 벌어지는 기괴한 모습을 묘사한 판타지 작품이죠.

예술작품 외에,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더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전쟁사학자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이라는 책을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단행본 중에 가장 풍부한 역사적 자료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도서입니다.

이 모든 작품이, 스페인 내전과 관련해 어른이든 청소년이든 한번은 꼭 눈여겨봐둘 만한 작품의 목록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함께 보시면서, 세계사의 결정적인 장면에 대한 여러 관점의 풍부한 정보를 얻어가신다면, 매우 좋은 독서 활동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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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세대 -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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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뉴스를 보면 우리나라에 가장 주요한 갈등은 두 가지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계층/계급 갈등입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많이 버는 자와 적게 버는 자가 자원의 분배 문제를 놓고 다투는 갈등이죠. 다른 하나는 세대 갈등입니다. 산업화 세대와 386 세대의 갈등, 386 세대와 MZ 세대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모임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킵니다. 이는 주로 자라온 배경이 달라 생기는 문화적 차이로 발생한다고들 설명하죠.

하지만 이 책 불평등의 세대의 저자 이철승 교수는 세대가 자원의 분배를 결정하는 요소라고 주장하고, 세대 갈등을 계층/계급 갈등과 이어서 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여러 요인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생산한 부를 특정한 세대, 콕 집어서 말하자면 386세대가 독점하고 나눠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게 단순히 느낌이나 감이 아니라, 여러 통계와 자료를 통해 증명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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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세대입니다.

세대는 특정 연도에 태어난 사회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고,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세 세대로 나눠지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산업화 세대와 386 세대가 많이 쓰였고, 여기에 MZ 세대가 추가됐습니다. 각각 30년대생, 60년대생, 90년대생이 세대 전체를 주도하고, 40~50년대생과 70~80년대생, 00년대생이 이들을 떠받치고 있는 모양새라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 이철승 교수가 ‘세대’라는 화두를 내세운 이유는, 퀵서비스에서도 말씀드렸듯 특정 세대가 우리 사회에 있는 여러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을 통계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소득이나 자산 등 경제적인 측면, 노동조합이나 각종 단체 등 사회적인 측면 등등에서 386 세대가 독보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고 이 상태가 앞선 시대에 비해 길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산업화 세대와 386 세대가 갈등을 일으키고 있던 1990년대에 두 세대의 평균 소득 격차보다, 386 세대와 MZ세대가 갈등을 일으키는 2010년대 두 세대의 격차가 훨씬 크다는 식입니다.

이 책은 이런 현상이 벌어진 원인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일단 외부적인 충격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386 세대는 1998년 IMF 구제금융과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경제위기라는 두 번의 경제 충격에서 피해를 상대적으로 적게 보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IMF 경제 위기 때는 직장인이 된 지 5년도 채 되지 않은 신입 상태였기에 해고당하지 않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때는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자신들의 직장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피한 것입니다. 다른 면에서 보면 이 세대 구성원 숫자 자체가 많은 것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혹시 2020년 신생아 수가 30만명도 안된다는 뉴스 보셨나요? 386세대가 태어난 해인 1960~70년대엔 한 해에 100만명씩 태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퇴한 산업화 세대의 자리를 상대적으로 빨리 채워나간 동시에 기대수명까지 늘어나 계속해서 경제생활을 유지하는, 일종의 적체 현상까지 벌어진 것이죠. 여기에 더해, 이런 견해는 약간 조심스럽긴 한데, 자원을 독점하겠다는 일종의 암묵적 합의까지 이 세대가 이룬 게 아닌가, 라고 의심합니다.

만약 저자의 분석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세대 정의라는 철학적 개념을 꺼내들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80년대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이 없다면, 그리고 최소한 특정한 세대에게 많은 자리를 마련해준 외부충격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면, 그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주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 아닐까요? 하지만 이런 세대정의를 실현하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선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과연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에게 세대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원을 빼앗는 정책에 동의하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을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카를 만하임의 <세대 문제>입니다. 오늘 다룬 책 불평등의 세대 저자는 세대라는 개념을 사회학적으로 유의미하다고 간주하고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이 입장 자체가 매우 논쟁적입니다. 흔히는 세대보다 계급이 우선 아닌가, 성정체성이 우선 아닌가 부터 시작해 한 세대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과연 동질적인가 하는 의문까지 다양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죠. 카를 만하임의 세대 문제라는 책은 ‘세대’를 사회학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시도를 다룬 고전적인 논문이라서,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필수 도서 목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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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히드라 이야기
페르낭 브로델 지음, 김홍식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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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도 명시된 우리나라를 통치하는 원리는 두 가지입니다. 경제적 자유주의로서의 자본주의, 그리고 정치적 평등주의로서의 민주주의죠. 이 두 가지 원리 모두 서양에서 생겨나 우리나라로 전파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란 대체 무엇이고 어디에서부터 왔을까요? 이건 전파를 받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자본주의를 만들어낸 지역이라는 서양의 인문학자들도 끊임없이 던져 온 질문입니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자본주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고 역사 속에 소수로서 항상 존재해왔다, 다만 1500년대 이후 여러 우연이 맞물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경제생활이 자본주의 체제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브로델은 근대 초기에 자본주의적으로 움직였던 거상들의 연결망을 보여주며 자본주의가 언제나 존재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거상들과는 전혀 관련 없이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려 합니다. 그리고 이 둘의 접점이 만들어지고, 끝내 거상들의 자본주의적 영향력에 경제생활이 포섭당하는 과정을 보여주려 합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라는 책의 내용에 대한 구상을 간단히 그려내 보여주는 강연록,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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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물질생활, 시장, 자본주의입니다. 이 세 단어는 사람들의 경제생활의 영역을 구별하고 그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제시한 개념입니다.

물질생활은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에 맞게 자연을 변형해서 사용하는 것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표현을 써도 괜찮다면, 이건 어느 정도는 인간의 본질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숙명에 가깝습니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인 먹을 것을 확보하는 일조차도 자연에 변형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시장은 인간의 물질생활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교환을 위해 나오는 곳입니다. 여기서의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어쩌고 하는 경제학에서의 추상적인 시장이 아니라, 정말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마을 장날을 의미합니다. 이 물건들이 시장에 나오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시장에 나오면서 교환가치를 획득합니다. 이 교환가치는 화폐를 통해 드러나고요. 또 한집 건너 한집에서 비슷한 물건을 팔고 있기에 경쟁자들이 모두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라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인간이 자신을 위해 사는 삶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자본은, 시장과 시장을 연결하는 존재입니다. 도매상, 더 나아가서는 거상이나 자본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되죠. 브로델은 우리가 흔히 ‘시장경제’라고 부르는 경쟁의 원리가 이 영역에 적용된 적은 역사에서 거의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시장과 시장을 연결할 정도로 규모가 큰 존재들에겐 애초에 경쟁자가 있을 리도 없고, 이 정도 조직을 갖추려 하거나 갖춰졌을 땐 이미  국가 권력과 강하게 결합해 영업활동을 보호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비약해서 이야기하자면, 대규모 상업 활동이 경쟁에서 살아남은 뛰어난 수완의 결과라는 말은 거짓말이며, 자본의 본질이 독점이라는 점은 역사적으로 사실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브로델의 관점에서 1500년 이후 유럽의 역사는, 개인의 경제생활이라는 측면에서는 시장과 접점이 늘어나면서 교환의 비중이 늘어나는 과정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이제 일한 대가조차도 교환의 수단인 월급으로 받고 있잖아요? 반대로 자본의 관점에선 화폐를 매개로 삼아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을 사람들의 물질생활 곳곳으로 넓혀가는 과정입니다. 특정한 지역에서 더 이상 독점적 수익을 올릴 수 없을 때는 이를 벗어나 외부로 나아갑니다. 이는 때로는 기업 활동의 해외진출을 통한 경제 잠식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제국주의적 식민지배로 나타납니다. 역사의 관점에서,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특징이라는 게 브로델이 이 강연에서 이야기하려는 요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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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주경철의 <대항해시대>입니다. 브로델을 비롯해서 자본주의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이 독특한 체제의 탄생을 꽤 긴 관점에서 봐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무작정 거슬러 올라갈 순 없지만,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의 여러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시기로 보통 대항해시대를 이야기합니다. 무역 중심의 경제체제라든지, 식민지 본국과 주변국 사이의 경제 불평등,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는 이면을 지니면서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경제 등 여러 모로 우리의 경제체제를 객관적으로 엿볼 수 있게 해주는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이 시대를 종합적으로 포괄적으로 풍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책으로 많은 독서인들이 꼽는 책이 바로 주경철의 <대항해시대>입니다. 아마 청취자 여러분 중에서는 더러 읽으신 분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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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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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면서 한 번쯤은 아픕니다. 정말 말 그대로 몸이 아픈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겠죠. 그래서 몸이 아프면 아프겠거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심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죠. 치료는 병의 원인을 제거하고 몸에 병이 생기기 전의 화학적 상태로 되돌리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병의 원인이 내 몸에 있지 않다면, 어떻게 파악하고 제거해야 할까요? 특정한 직장에 다니거나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특정한 병에 더 많이 걸린다면,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화학적 처방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어떤 의사들은 병의 원인이 사회적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어떤 제도와 정책과 환경과 상황이 병을 일으키거나 심화시키는지 상관관계나 인과관계를 연구합니다. 사회나 정치,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의사들이 이런 연구를 한다는 게 신기하네요. 이런 의사들이 종사하는 학문 분야를 ‘사회역학’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이 분야의 여러 연구를 소개하는 에세이를 담은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을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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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사회역학입니다.

사회역학은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특정 질병이나 특정 집단의 건강 상태를 만들어내는 요인을 사회 제도, 정책, 환경, 상황에서 찾는 의학의 한 분야입니다. 직관적으로는 당연한 것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둘 사이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연관성이 있는지 연구하는 것은 분명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요인은 대체로 두 가지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우선 연관성 자체를 엄밀하게 드러내는 작업이 어렵습니다. 제도, 정책, 환경, 상황이라니 얼마나 애매한 말인지요. 또 이런 연구에서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적인 위치가 불안정하거나 사회로부터 차별받는 사람들이기에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이뤄져야 할 치료작업이 잘 수행될 것이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엄밀하고 잘 증명된 연구가 앞에 주어져도, 사람들의 편견은 공고하고 이런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돈이 들어간다고 하면 ‘내 돈이 그런 데 쓰이면 안 된다’고 덮어놓고 반대부터 하기 마련이니까요.

저자 김승섭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연구대상들은 다들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백혈병 산업재해 피해자들, 트랜스젠더와 성소수자들, 저소득가구 많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 비정규직. 이들은 공개되지 않은 작업환경, 회사의 무분별한 정책, 아픔에 공감해주지 않는 주변인들의 태도, 은밀하거나 대놓고 자행되는 사회적 차별 때문에 신체에 상처를 입습니다. 화학약품 때문에 급성 혈액암을 앓고, 우리 사회 평균보다 비정상적으로 자살률이 높으며, 지나치게 주변을 신경 쓰다 분노를 주체할 수 없거나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회역학을 하는 의사들은, 이 사람들이 단순히 건강관리를 못했다거나 유전자에 이상이 있다거나 운이 나빠서 병에 걸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이런 병을 앓는 원인은 명백하게 사회에 있다는 것이 이들의 ‘진단’입니다. 진단이 내려진 뒤에 이들은 병의 원인을 파악해 치료법을 발견하고 시행하는 의사로서의 의무를 수행하죠. 진단이 사회에 있으니 치료도 메스나 약에 의존하지 않고 제도 개선이나 보완 또는 긴급지원으로 향합니다. 더 나아가 청취자 여러분을 포함해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들의 아픔의 원인인 수도 있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널리 읽힌 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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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같은 작가의 후속작? 격인 작품 우리 몸이 세계라면 입니다. 신체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사고를 모아놓은 책인데요. 이 책과 함께 했을 때 일관된 메시지 하나만큼은 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신체를 바라보는 방식은 우리가 속한 사회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읽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신체의 여러 양상 중에서도 질병이라는 주제에 주목했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 은 다른 양상에 관해서도 주목해 보는 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보통 이런 주제는 역사학 사회학 철학에서 주로 다루던 주제인데, 의사로서 훈련받은 사람이 쓴 글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해볼 만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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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의 역사 - 파란색은 어떻게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는가
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봉만.김연실 옮김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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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은 파란색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시나요? 한 가지로 딱 부러지게 말하긴 어렵겠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내가 받은 그 느낌은 색 그 자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색을 해석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죠. 이 해석엔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관습과 문화가 반드시 반영됩니다.

역사가 미셸 파스투로는 유럽, 특히 프랑스 지역에서 파란색을 이해한 역사를 되짚어 올라갑니다. 검은색과 혼동돼 이름조차 없던 색깔에서 야만인의 색을 거쳐 경건함을 상징하는 색이 되었다가 고귀함을 드러내는 색으로 대우받으며 동시에 가장 대중적이면서 프랑스 자체를 상징하는 색이 되기까지 기나긴 여정을 이 책과 함께 확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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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파랑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었으니 키워드는 당연히 파랑이 돼야겠죠? 막간 상식으로, 프랑스어로 파랑은 르 블루(le bleu)이고, 이걸 복수형으로 레 블뢰(le bleus)라고 쓰면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왜 프랑스 축구대표팀이 레 블레가 됐나 설명해주는 책이기도 하네요.

옛날 사람들은 파란색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 작가 파스투로는 이 주제를 연구하는 게 대단히 어렵다는 점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일단 옛날 유럽의 언어 그러니까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에 ‘파란색’과 일대일로 대응하는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 더 정확히는, 바다색이나 하늘색 같은 단어는 있는데 파란색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하네요. 다른 하나는 철학적 쟁점인데, 과연 그들이 보았던 파란색이 우리가 봤던 파란색과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파란색을 보게 만들어준 조명이 다르고, 수백년을 걸쳐서 그때 당시 파란색을 내는 데 이용됐던 염료의 화학적 성분도 변했을 것이니까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파스투로는 파란색과 관련된 자료를 가능한 많이 긁어모은 뒤 정리해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 결과 우리는 시대별로 파란색이 어떤 대우를 받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해석돼왔는지를 이 짧은 책 안에서 잘 조망해볼 수 있습니다.

고대에는 이름조차 없었던 색이라는 점은 앞에서 말씀드렸는데, 언급되더라도 야만인들과 함께 언급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로마 군단과 전투하는 게르만인들이 푸른색으로 몸을 장식하고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게르만인들이 로마 멸망과 함께 유럽 인구 구성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파란색도 함께 서서히 부상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중세에도 여전히 이름 없는 색이었지만 ‘검은색’과 함께 묶여서 쓰인다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중세의 검은색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신부님 사제 수녀님들이 입는 의례복이 떠오르는데요. 아예 검은색일 때도 있지만, 어른들이 흔히 감색이라고 부르는 짙은 파란색을 ‘검은색’과 함께 분류하는 기록이 종종 보인다고 하네요.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에도 이 색이 많이 쓰이고요.

이런 종교적 이미지를 차용하기 위해 프랑스 왕들 중 몇몇이 자신의 옷을 파란색 천으로 지어 입으면서, 유럽 특히 프랑스 역사의 전면에 파란색이 등장합니다. 이에 따라 1500년대를 전후해 파란색의 이미지엔 경건함에 고귀함이 덧대어집니다. 실제로 천에 파란색을 입히기 위해 유럽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염료의 원료인 꼭두서니가 당시엔 매우 비싸기도 해서, 정말 돈이 많고 고귀한 귀족들만 파란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 근거지를 둔 여러 귀족들이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에 파란색을 입히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고요.

이런 사정이 1600년대 이후엔 완전히 바뀌는데,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우선 더 진하고 쉽게 파란색을 낼 수 있는 인디고 염료가 전 세계적으로 대량생산돼 파란색 물건을 더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결과로, 청바지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입는 바지가 됐죠. 뉴턴의 광학 연구가 색에 대한 기존의 해석 방식을 바꿔버린 것도 한몫했는데, 프리즘으로 빛을 분리했을 때 파란색이 눈에 확 들어오기 때문이었죠.

특히 프랑스의 경우엔, 싼 값에 많이 만들 수 있어서 군인들에게 파란색 군복을 지급했는데 이들이 왕에게서 등을 돌리고 공화국을 건설하는 혁명에 가담해 정치적 의미까지 띄게 됐습니다. 그 결과, 청취자 여러분이 다들 아시는 것처럼, 1789년 프랑스혁명을 상징하는 현재 프랑스 국기에도 파란색이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사람들이 파란색을 바라보는 한 가지 모습에도 이런 두터운 역사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우리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을까요? 이 책을 읽으시면서, 내가 파란색을 해석하는 방식은 어떨까 한 번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해드리는 콘텐츠는 같은 작가, 미셸 파스투로의 빨강의 역사입니다. 파랑의 역사에서도 빨강은 종종 언급되곤 합니다. 색에 대한 해석-느낌은 한 가지 색에 대해 분명히 떠오르기보단, 한 색이 다른 색과 맺은 관계 속에서 해석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빨강과 파랑이 반대인 만큼, 빨강과 파랑이 걸어온 역사도 반대라고 그냥 추정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안타깝게도, 이 책에도 나오는 내용을 말씀드리자면, 빨강과 파랑이 반대라는 것조차 뉴턴의 광학 연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이전 시대에 빨강은 그 자체로도, 다른 색들과의 관계에서도 전혀 다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두 책을 함께 읽으시면 색채에 대해 흥미로운 지식을 얻어가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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