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연구 발제. 존 롤즈, 『사회정의론』(황경식 옮김) 5장 요약>

 

41. 정치경제학에 있어서의 정의의 개념

 

   롤스는 이 절에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비롯한 여러 정의의 원칙들이 제도, 정책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칙에 가해지는 비판이 어떤 점에서 옳지 않은지에 대해 답변한다. 정의의 원칙들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실제 시행되는 정책들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롤스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칙이 지니는 계약론적 성격이 부정의한 현실적 체제를 정당화해줄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원초적 입장에 대한 해석, 그리고 다른 정의관들 역시 이상적인 정의로운 인간에 대한 관점에 합의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들어 반박한다. 그러므로 정의의 두 원칙을 포함해 정치경제학은 실증적 연구이면서도 동시에 반드시 정의에 관한 특정한 관점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이 절의 내용이다.


   정치경제학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적용될 제도나 정책을 고안하는 학문이다
. 그러므로 어떤 정책이 다른 정책에 비해 더 낫다는 점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반드시 요청되고, 이것이 공공선의 기준이다. 그러므로 정치경제학은 단순히 경제적 측면 뿐만 아니라 도덕적, 정치적 측면까지도 고려하게 된다. 롤스는 자신이 제시한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칙이 정치경제학에서의 공공선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의의 두 원칙은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적용되는 것인데, 이 구조는 어떻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지, 그리고 나아가서는 어떤 욕구가 충족될만한 것인지 또는 충족되어서는 안되는지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정의의 원칙은 그 구조가 어떤 상태일 때 정의로운지에 관한 기준이며, 이를 통해 어떤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지 또는 충족될 수 없는지에 관한 관점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정의의 두 원칙은 정치경제학적인 한 입장이 되고, 공공선의 기준이 된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기본적으로 원초적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 도출해낼 합의라는 계약론적 성격을 지닌다
. 그러나 정의에 관한 계약론적 입장은, 사람들이 실제로 지금 믿고 있는 신념에 대한 합의가 정의에 대한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 즉 정의에 관한 아르키메데스의 점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롤스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에서 제시되는 정의의 두 원칙은 계약론적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지금 구체적으로 믿고 있는 신념을 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계약론에 대한 위와 같은 비판을 피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의의 두 원칙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사회적인 기본적 가치 이외의 구체적인 다른 가치들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들을 알지 못한다고 가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을 알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특정한 가치에 대해 편파적일 수 없고 따라서 이들이 합의하는 원칙 또한 특정한 가치에 대해 편파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약론적인 방식으로 정의의 원칙이 설정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 첫째는 그 정의의 원칙이 좋은 것에 관한 관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부정의한 것에 관한 욕구가 그 계약에 의해 도출된 원칙에 의해 제한되거나 부정된다는 것이다. 둘째, 제도는 그 정의의 원칙에 반대되는 부정의한 행위들을 규제하고, 반대로 그 원칙에 부합하는 행위들을 권장하도록 조직된다. 이런 측면에서 정의의 원칙과 제도는 그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회에서 존중받을만한 사람의 모습을 규정한다.


   그러므로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계약론적이라고 해서
, 그 때문에 사람들이 지금 실제로 믿고 있는 신념에 의해 정의의 원칙이 좌우될 것이라는 비판은 받을 수 없다. 또한 정의의 두 원칙은 이상적인 인간의 모델을 완전주의적으로 미리 설정하지 않고서도 사람들이 실제로 믿는 신념과 독립된 정의에 관한 기준, 그리고 그러한 기준을 준수하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델을 제시한다. 말하자면, 정의의 두 원칙은 현실적인 좋은 것들이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유를 희생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적인 정치적 상황에서 이런 선택들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이것은 정의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정의에 관해 숙고할만한 적절한 상황에 놓인다면 그의 정의감은 반드시 정의의 두 원칙을 선택하도록 그를 인도할 것이다.


   현재 정의에 관한 유력한 입장인 공리주의는
, 이런 식으로 이상적인 인간의 모델을 설정하지 않고 모든 욕구를 동등하게 취급한다는 이유로 비판받는다. 롤스가 보기에 이런 비판은 옳지 않다. 정의에 관한 공리주의적 관점 역시 전체의 일반적인 효용을 증가시키는 행위를 하는 사람으로 이상적인 인간의 모델을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리주의적 관점이 놓치고 있는 것은, 전체의 일반적인 효용이 좋은 것에 관해 사람들이 지금 믿고 있는 신념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공리주의적인 정의는 그 내용이 바뀌며, 그 신념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다.


   반면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합의해야 하는 당사자들로부터 구체적인 정보들을 배제하는 과정을 통해서 정의에 관한 독립적 기준을 제공한다
. 또한 이런 기준은 거의 모든 합의 당사자들에 의해 합의될 것이라고 간주한다. 이런 식의 독립적이고 계약론적 동의가 가능한지 묻고, 그것이 이상주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칙들은 단지 정의에 관해 생각하는 과정에서 배제해야 할 요소들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것을 실제로 수행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정의에 관해서 동일하거나 아주 유사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정의의 두 원칙은 그런 결론이 반영된 관점에 관한 표현이다. 이런 모습은 정의에 관한 전통적인 연구들에서도 유사한 과정을 거쳐 어떤 '적절한 관점'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적절한 관점 사이의 차이, 즉 정의에 관한 입장의 차이는 정의에 관해 생각하는 과정에서 배제해야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의 차이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칙이 지니는 특징 또한 그런 요소들이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 즉 원초적 입장에 대한 해석에 의존한다

 


42.
경제 체제에 대한 논의

 

   이 절에서는 정의의 두 원칙에 부합하거나 또는 이를 지지하는 경제 체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고 그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재산소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이 둘에 해당한다. 이 둘의 차이는 생산 수단의 사유의 비율에 따라 나타나며, 각 체제에 알맞는 공공재 생산의 방식이 있다. 사회의 기본적 제도는 공공재의 생산을 결정하는데, 이는 공공재가 지니는 무임승차자 문제와 외부성 문제 때문에 그 생산에는 반드시 강제와 의무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를 통해 롤스는 특정한 경제 체제에서 시행하는 제도, 정책과 정의의 두 원칙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의의 두 원칙이 받아들일만한 경제 체제를 지지한다는 것이 밝혀지면, 우리는 이 정의의 두 원칙을 정치경제학에서의 정의의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체제는 재화의 생산과 소비의 방식과 수량 등을 규정하는 제도를 뜻한다
. 그러므로 특정한 경제 체제는 공공재를 생산하는 특정한 방식을 지닌다. 만약 정의의 두 원칙이 정치경제학에서 정의의 원리로 인정된다면, 공공재의 생산은 정의의 두 원칙에 따라 규제되어야 한다.


   공적 영역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진다
. 하나는 생산 수단의 소유와 관련된 영역이다.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서는 공적 영역의 생산 수단 소유 비율이 높으며, 재산소유 민주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반대로 그 비율이 낮다. 다른 하나는 공공재의 불가분성과 공공성이다. 사람들은 다들 공공재를 원한다는 점에서 공공재는 공적이고, 공공재는 사유재처럼 임의적인 비율로 나눌 수 없고 모두가 똑같은 양을 받아야한다는 점에서 불가분적이다. 이 두 가지 특성 때문에 공공재의 생산은 정치적인 과정을 통해서 규제되어야 한다.


   공적 영역의 문제는 이 두 성격의 조합으로 나타난다
. 하나는 무임승차 문제다. 만약 공공재를 생산하는 제도만 유지된다면, 공공재는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모든 사람들은 그 혜택을 입게 된다. 그런데 생산되는 공공재에서 개인이 내는 비용의 비율이 매우 적다. 그 비용을 내든 내지 않든 공공재는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제공된다. 따라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공공재를 향유하려 시도한다. 그러므로 공공재의 생산에 따르는 비용을 모으고 그것을 부담하지 않으려 할 때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국가 또는 특정한 기관에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런 구속력은 타인도 자신처럼 행위할 것이라는 신뢰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다른 하나는 외부성이다. 공공재의 생산과 소비는 개인적 차원에서 이뤄지지만, 그 생산과 소비는 그 개인이 계산에 넣은 자기 자신의 복지 향상 이외의 다른 공공적 차원에 영향을 미친다. 보통 이런 외부적 요소는 그것을 처리하는 데 실제로 드는 비용보다 훨씬 낮은 가격이 매겨지고 있다. 따라서 법과 제도는 이런 외부성을 교정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로 인해
, 아무리 정의로운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공공재의 생산과 소비는 정부의 규제 아래 놓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사람들에게 그런 정의가 언제나 지켜진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는 그러한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고립과 확신의 문제와 연결된다. 아무리 정의로운 개인이라고 하더라도, 고립된 상태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고립된 상태에서도 전체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도와 정부의 역할이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행위한다는 확신이 있을 경우, 정의로운 행위는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그 체제가 모든 이의 관점에서 볼 때 우월하며(고립된 상태에서의 판단), 그것이 없을 때 생겨날 상황보다 더 낫다는 데 대한 공공적 확신(자신의 판단에 관한 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상벌을 다루는 어떤 방도가 확립되어야 한다.


   공공재의 생산과 생산 수단의 공유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 공공재의 생산 수단이 사유되었을 경우, 우리는 공공재의 생산에 따르는 비용을 그 소유자에게 지불함으로써 필요한 만큼의 공공재를 얻을 수 있다. 그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치적 과정을 통해 결정한다. 반면 생산 수단이 공유되었을 경우,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를 협의함으로써 필요한 만큼의 공공재를 얻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필요한 만큼의 공공재를 얻을 수 있는, 윤리적으로 적절한 정치적 절차가 있다.


   공공재와 사유재를 가리지 않는 재화 전체에 관해 고찰해보면
, 이는 반드시 시장 체제의 문제와 결부된다. 그러나 롤스가 보기에 일반적으로 재화의 생산과 분배에는 시장 체제가 쓰일 것이라고 가정한다. 재산소유 민주주의의 경우 소비시장에서 나타난 선호가 생산과 분배의 척도가 될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시장과 비슷한 방식으로 선호가 반영된 민주적 결정이 재화의 생산과 분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재화의 생산과 분배의 척도가 되는 자유로운 시장과 생산 수단의 사유 사이에는 큰 연관이 없으며, 이 둘이 동시에 등장한 것은 우연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유로운 시장과 생산 수단의 사유를 결부시켜 시장을 설명하는 일반균형이론이 시장의 상태를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수는 있다
. 그 이론은, 그 두 가지 요소의 결부와 아울러 가정되는 몇 가지 조건을 통해, 가격이 생산과 분배의 적절한 지표가 되고 사람들이 그에 따라 생산행위와 분배행위를 하는 방식에 관해 설명한다. 물론 이 조건들이 실제로 달성되기 힘들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조건들은 순수하게 절차적인 정의가 달성되는 한 방식에 관한 설명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시장 체제는 필요한 몇 가지 제도가 동반될 경우 정의의 두 원칙에 부합하는 경제 체제가 된다
. 특히 직업선택의 자유가 매우 중요하다. 경쟁 체제에서 생기는 것 같은 수입의 차이가 없을 경우, 우리는 명령으로 통제되는 사회의 특정한 측면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가 어렵다. 또한 시장체제는 재화를 분산시킨다. 생산 수단의 소유의 여부와 관계 없이, 생산 수단을 운영하는 사람은 가격을 지표로 삼아 생산 계획을 작성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경쟁 환경에서 기업은 기술 발전에 따른 원가 절감 이외에 다른 시장지배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 시장을 규제하는 제도와 법률은 민주적인 정치적 제도에 따라 설정된다.


   반면 사회주의적 제도
(생산 수단의 공유)와 자유로운 시장이 결부될 경우, 가격의 기능을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 가격은 특정한 재화를 생산한 사람에게 돌아갈 보상을 표시해주는 동시에, 어떤 재화가 누구에게 어떻게 돌아가야 가장 잘 활용될 것인가를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경제적 효율을 위해 민주적인 정치적 과정을 거쳐 가격을 설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원활한 경제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적인 정치적 과정이 동반된 사회라면 경제 체제가 재산소유 민주주의적이든 사회주의적이든 자유 시장은 꼭 필요하다
. 각 경제 체제에서 시장의 역할은 다르다. 이 둘 가운데 실제로 어느 쪽에 가까운 제도나 법률을 설정할지에 관한 것은 그것을 결정하는 공동체의 역사적 특성에 맡겨진다. 단지 여기에서 시장이 중요성을 띄는 이유는 그것이 이상적인 순수하게 절차적인 정의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기반한 재산소유 민주주의가 정의의 두 원칙에 부합하는 여러 제도들 가운데 더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에 기반한 설명이 자주 등장할 것이다.

 


43.
분배적 정의과 배경적 제도

 

   롤스는 이 장에서 재산소유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이뤄지는 여러 정책들이 어떻게 정의의 두 원칙을 실현하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이 제도는 적절한 배경적 제도들과 이 제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관들에 의해 경제 활동이 정의의 두 원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적절히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이런 배경적 제도들과 기관들 없이 사회가 운영된다면 이는 결국 정의의 두 원칙을 이탈하는 지배적인 힘이 나타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경제 활동을 조정하는 배경적 제도는 적절한 정치적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받는 사회에서 시행된다고 가정된다. 여기에서 적절한 정치적 자유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비슷한 능력과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 그에 필요한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 등을 의미한다.


   이런 배경적 제도에 필요한 부속기구는 일반적으로 네 개로 분류할 수 있다
. 첫째는 할당 기구다. 이들은 가격이 재화의 수요와 공급을 나타내는 정확한 지표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시장의 효율성을 항상 가장 좋은 상태로 유지하도록 규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둘째는 안정화 기구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직업 선택의 상황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셋째는 이양 기구이다. 시장은 사람들의 최소 필요를 고려하지 않은 분배 방식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최소 필요에 해당하는 재화를 사람들에게 이양해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최소 필요의 양이 얼마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구체적인 사회 각각마다 다르며, 만약 이것이 정해진다면 그 이외의 재화는 시장을 통해 할당하고 분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넷째는 분배 기구다
. 이 기구에는 특별히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과세와 재산에 관한 정책을 통해서 정의의 두 원칙을 위협할만한 정도의 부의 축적을 방지하고,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각 소유자의 부의 양을 조정하고 부를 되도록 널리 분산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의의 두 원칙을 실현하려는 집행 과정에 필요한 재화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런 정책을 세우면서도 동시에 정의의 두 원칙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 입법부의 과제이다. 이런 역할을 하는 데는 소득세보다는 비례소비세가 더 적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재화를 생산하는 데 기여한 것보다 재화를 소비하는 데에서 세금의 원천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람들의 상식적 정의관 그리고 모두를 동일한 세율로 대한다는 점에서의 평등의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구체적인 정치적 상황에서는 다소간 부정의한 방법도 사용된다. 분배 기구의 두 영역은 정의의 두 원칙으로부터 도출된다. 첫째는 자유를 해치지 않을 만큼의 정돈되고 넓은 범위에 퍼진 재산 소유의 정도를 통해 기본적 자유를 지켜야 한다. 둘째는 재정을 마련해 차등 원칙을 실현시켜야 한다.


   재산소유 민주주의의 경우 이러한 배경적 제도가 갖춰지면
, 정의의 두 원칙에 따르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런 제도를 통해 사회주의자들로부터 가해지는 비판을 상당한 부분 면할 수 있다. 나아가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또한 정의의 두 원칙을 지지한다. 이런 제도 아래서는 가격이 아닌, 민주적으로 정치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재화의 정의로운 분배가 달성될 수도 있다.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분배의 과정으로서의 시장 자체가 문제가 있으며
,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타적인 인간들이 모여 있어야 한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롤스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측면에서, 시장 이외의 구상 가능한 분배의 방법(관료제)이 시장보다 더 정의롭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의의 두 원칙은 인간의 이타적 측면이 어디까지 발휘되는가에 관한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하여 설정된 것이다. 만약 완전히 이타적인 사람들이 제도를 설정한다면 그것은 정의를 넘어선 사회와 제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된다.


   마지막으로 롤스는 다섯 번째 기구인 교환 기구가 필요한 경우에 관해서 논의한다
. 정의의 두 원칙에 부합하게 제도와 정책이 설정되어 운용된다고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재화의 생산과 분배가 공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 같은 재화를 시장을 통해 생산하고 분배할 때보다 더 큰 이익이 생길 수도 있다. 이 경우, 정의와 관계없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공적인 비용을 부담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럴 때 교환 기구가 개입해 공공적 비용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생긴 이익이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정책을 고안한다. 하지만 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야만 하는 난점이 있다. 이런 공공적 정책을 통해서 발생하는 이익은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이 고려할 수 없고, 따라서 원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44.
세대 간의 정의 문제

 

   이 절에서 논의할 내용은 세대 간의 정의 문제, 특히 저축의 문제를 논하고 있다. 저축의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는 저축 문제가 정의의 두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저축은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를 위해 자원의 일부를 비축해두는 것인데, 이 상황에서 저축을 시작하는 세대는 모든 세대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이득을 본다. 윗 세대로부터 받은 것 없이 비축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축은 가장 이점이 적은 세대인 저축을 시작하는 세대에 이득이 되지 못하므로 정의롭지 못한 제도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롤스는 세대가 이어지는 것이 언제나 똑같은 방향이고, 저축의 목적을 부의 증가가 아닌 정의로운 사회의 유지라고 본다면 저축은 원초적 입장에서 합의될 수 있는 제도, 즉 정의로운 제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의에 관한 모든 논의는 세대 간의 문제를 고려해야만 더 견고한 논의가 될 수 있다
. 이런 측면에서 원초적 입장에서 합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여러 대표적 개인들은 한 개인이 아닌 여러 세대를 대표한다. 그리고 이들은 미래 세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장기적인 전망이 더욱 나아지도록 합의하려고 한다. 저축은 이런 의미에서 중요한데, 적절한 비율로 설정해야 현재 세대의 정의를 위한 사람들의 욕구를 떨어뜨려서 정의로운 상태가 침해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미래 세대가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게끔 하기 위한 자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익 전체에 대한 저축의 비율을 수치로서 확정하는 것은 사회에 따라 다르며
, 그 자체를 정확히 도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롤스는 이것의 구체적인 수치가 아니라 정의롭게 이것을 확정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공리주의적인 정의의 원칙에 따라 저축에 접근하는 것은, 특정한 경우 우리의 도덕적 감정과 일치하지 않는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다. 예를 들어 기술의 발전이 상당한 수준의 효용의 창출을 보장하기만 한다면, 공리주의의 정의의 원칙은 현재 세대들에게 최소 필요와 무관하게 수입의 거의 전부를 저축하라고 결론지을 것이다.


   반면 롤스의 정의의 두 원칙은 저축의 문제를 원초적 입장에서부터 접근하기 시작한다
. 이들은 자신이 실제로 살고 있는 사회의 구체적인 경제적 상황에 관해 알지 못하므로, 그런 상황에 알맞은 저축의 비율을 각각 계산하는 원칙을 선택할 것이다. “국민이 가난하고 저축이 어려우면 낮은 비율의 저축이 요구되어야 하고 반면에 보다 부유한 사회에서는 실제 부담이 작을 것이므로 보다 큰 저축이 합당하게 기대될 수 있다.” 정의의 두 원칙에 부합하는 사회가 될수록 저축율은 0에 가까워지는데, 이는 저축의 목적이 정의의 두 원칙에 부합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물질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축과 원초적 입장을 관련시키는 것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 하나는 원초적 입장의 대표적 개인들은 몇 세대를 대표할 뿐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어떤 세대에 속할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세대에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한다는 점이다. 이는 저축을 시작한 세대를 제외한 모든 세대가 자신의 이전 세대에게 받은 양과 동등한 양을 미래 세대에게 물려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저축의 목적이 미래 세대의 부의 증대가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을 뒷받침해줄 물질적 기초의 제공에 있으며, 그러므로 이렇게 정의로운 사회에 점점 더 다가가는 데 필요한 부담을 모든 세대가 동등하게 지게끔 하는 것이 저축에서의 정의라는 점이다. 이런 저축에서의 정의는, 사람들이 실제로 저축을 할 때 자신이 윗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토대로 자신이 미래 세대에 물려줄 것을 계산하고 이 과정이 지속될 때 실현된다. 그러므로 가장 마지막 세대는 저축율이 0이며 동시에 가장 정의로운 상태에 도달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최초의 세대에게는 이것이 부정의로 남는다
. 자신들은 받는 것이 없으면서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스가 보기에 이는 어쩔 수 없는 자연적인 조건이며, 이것을 역행할 수 있는 방식이 없다. 정의의 원칙은 이런 조건을 다루는 방식이 정의롭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이며, 따라서 이것을 부정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최초의 세대를 제외한 다른 모든 세대가 이익을 본다는 측면에서 원초적 상황에 있는 대표적 개인들은 저축에 관해 이와 같은 원칙을 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저축은 차등의 원칙이 아닌 다른 접근법을 택해야 하지만, 그 접근법은 여전히 원초적 입장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정의의 두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또 같은 세대 안에서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을 고려하는 원칙이 차등의 원칙이라면, 세대 사이의 문제에서 이를 고려하는 원칙은 저축의 원칙이 된다.

 


45.
시간에 대한 선호

 

   이 절에서 롤스는 원초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선호가 없으며, 이것이 왜 정의의 원칙을 고안하는 데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시간에 대한 선호란, 여러 시점의 이익들에 관해 시점에 따라 이익을 각기 다른 비중으로 계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원초적 입장의 대표적 개인들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각각의 시점에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어야 할지 결정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리주의와 정의의 두 원칙 사이의 공통점이지만, 해석에서 약간의 차이가 난다.


   우선 공리주의에서 시간에 대한 선호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살펴보자
. 공리주의적인 정의의 원칙에서 효용을 계산할 때 시간에 대한 선호는 고려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시점은 단지 시간의 앞과 뒤의 문제이며 효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특정한 시점에서 발생하는 일정량의 효용이 다른 시점에서 발생하는 일정량의 효용보다 더 낫거나 더 덜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


   원초적 입장에서 시간에 대한 선호는 그것이 일반적이지 못한 기준이기 때문에 배제된다
. 시간은 시점에 따라 상대적이다. 만약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현재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고려할 경우, 어떤 시점은 다른 어떤 시점에 비해 미래이기 때문에 중요하지만 또 반대로 어떤 시점에 비해서는 과거이기 때문에 덜 중요해지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특정한 시점은 다른 어떤 시점에 비해 우월해질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이는 특정한 세대를 다른 어떤 세대들에 비해서 비중있게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선호를 배제하는 것은 우리가 실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으로 간주하는 민주주의적 원칙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 구체적 개인은 현재에 대한 선호를 바탕으로 미래 세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을 결정한다. 완전히 민주적인 과정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선택을 배제할 수는 없다. 롤스는 만약 이를 부정하는 방법으로 시간에 대한 선호를 배제하려고 한다면, 그보다 더 큰 부정의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롤스는 시민의 불복종을 제시한다. 민주주의적 제도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 제도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언제나 정의로운 판단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그가 생각하기에 만약 민주주의적 제도가 충분히 민주주의적이라면, 이 제도는 정당한 방식으로 합의되었지만 명백하게 부정의한 정책에 관해 항의할 수 있는 합법적 방식을 규정해놓았을 것이 틀림없다. 어떤 정책을 명백하게 부정의하다고 판단한 사람은 이런 방식에 따라서 항의하거나, 정책이 제시하는 행동에 따르지 않고 정책을 변경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있다.


   공리주의적인 정의의 원칙에서는 시간에 대한 선호를 고려함으로써 공리주의적인 원칙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상식과 어긋나는 결과들을 교정한다
. 예를 들어 미래에 대한 선호를 줄임으로써, 현재 세대에게 가해지는 저축에 대한 무리한 강요를 교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그 자체가 원칙인 것이 아니라, 부정의한 결과를 교정하는 것이다. 이에 비춰볼 때 공리주의적인 정의의 원칙은 기본적인 원칙이 아니라 부차적인 원칙으로 그 역할을 제한해야 한다. 또한 공리주의적인 정의의 원칙이 우리의 삶과 부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에 대한 선호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등) 부차적인 원칙들을 채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원칙으로서의 정의의 두 원칙이 우월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46.
우선성에 관한 그 밖의 사례

 

   이 장에서 롤스는 정의의 두 원칙에서 분명하게 제시된 축차적 우선성에 대해 반박으로 제시될만한 논증을 검토하고 있다. 하나는 저축의 원칙을 선정하는 데에서 지적될만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욱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 정치 엘리트들에 대한 것이다. 만약 자유의 우선성을 무시하는 이런 제도들이 제대로 시행된다면, 미래 세대 또는 현재 세대는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롤스는 이것이 오해에서 비롯했거나 또는 잘못된 반박이라고 주장한다.


   저축의 원칙을 정할 때 우리는 각 세대에 그 분담이 동등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 또한 같은 세대 간에 자원의 분배 또한 공평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현재의 저축이 훨씬 더 많은 미래의 부를 창출하게 되므로 현재 세대가 더 부담을 져야하고, 동시에 특정한 계층에게 훨씬 더 많은 분배가 이뤄지는 것 권장되기도 하는데, 케인즈가 설명한 1차 대전 이전의 자본 축적 과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기술과 경제는 나날이 급속하게 성장했기 때문에 더 많은 저축이 권장되고, 상류 계층은 소비보다는 투자에 주력했기 때문에, 분배받은 자원 모두를 소비하는 하류 계층보다는 상류 계층에 부를 더 많이 분배하는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해 권장되었다는 것이 이런 입장의 주요한 논증이다.


   그러나 이렇게 저축에서의 정의의 원칙을 어긴다면
, 하층 계급에게 그 원칙을 어기지 않을 때보다 더 적은 피해가 돌아가는가? 저축에서의 정의의 원칙에 반박하기 위해서는 단지 역사적으로 그런 사례가 있었다는 것을 밝혀야 할 뿐만이 아니라, 저 질문 자체에 논증적으로 그리고 당위적으로 답을 해야 한다. 이 사례를 밝힌 케인즈 스스로는, 그 시기에 노동자들의 아픔이 미래 세대들의 부의 증가로 정당화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우선성의 원칙에 반대되는 또 하나의 논증은 정치 엘리트이다
. 이들은 탁월한 능력을 타고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언제나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 그러므로 이들의 결정은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된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더 많은 정치적 결정에 관한 권리를 주어야 공동체를 위한 더 올바른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런 교육이나 자질이 없는 사람이 결정에 참여할 경우, 그것은 올바르지 못한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자유의 원칙을 위배하면서 정치 엘리트 계급의 제도가 정당화된다. 이 경우에도 위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들이 이득을 볼 것이라는 주장은 우선성에 대한 반박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 우선성에 대해 반박하려면, 만약 이렇게 정치적 자유를 불공평하게 분배할 경우, 그렇게 하지 않고 공평하게 분배했을 때보다 기본적 자유를 훨씬 더 많이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정의의 두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라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목표와 의도를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닌데, 이런 차이는 타고난 자질이나 가정환경 등의 우연적 요소에 의존하기 때문에 지금의 논의에서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런 논의들을 요약하면 우선성에 관한 논의가 확정된다
. 이렇게 확립된 우선성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상적인 상태에 관한 설명으로서 실제의 제도를 측정한 기준이 될 수 있다.

 


47.
정의에 대한 신조들

 

   이 절에서 롤스는 정의의 두 원칙과 정의에 대한 우리의 평범한 신조 사이의 관계를 검토한다. 이 믿음은 하나는 노력에 의한 분배이고, 다른 하나는 기여에 따른 분배다. 이 둘은 노동 시장을 통한 재화의 생산과 분배에 관한 평범한 신조다. 그러나 이 둘 모두 기본적인 원칙으로는 채택할 수 없다. 우리는 두 믿음을 적절한 비율로 조절하거나, 또 다른 배경적 제도를 통해서 통제해야한다. 사회가 정의의 두 원칙에 부합하도록 조직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여기에 부합하는 배경적 제도가 필요하다. 이 제도는 순수하게 절차적인 정의로서, 제대로 자리잡고 운영되기만 한다면 그 결과는 언제나 정의롭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실제로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이 제도가 우리가 평범하게 믿는 정의에 관한 신조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또는 이런 제도가 정의에 관한 신조에서 비롯한 합리적인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정의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신조에는 노력에 의한 분배와 기여에 따른 분배가 있다
. 만약 어떤 기업이 임금을 책정하려 한다고 생각해보자. 먼저 고려해볼 것은, 그 기업이 조정하려는 임금의 양은 그들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재화의 양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재화의 생산량과 노동력의 양은 일반적으로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이 생산했는가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 있다. 이것이 기여에 따른 분배다. 이 방식을 택하면 숙련된 노동자나 기술이 뛰어난 노동자가 더 많은 분배를 받는다. 반면에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직업 훈련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그것을 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거나, 고용이 불안하다거나, 위험한 작업환경이 갖춰져 있는 등의 제약이 있을 경우, 그것을 임금에 반영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일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힘을 들이거나 감수해야 하는 것들을 참아내는 것에 관해 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 있다. 이것이 노력에 의한 분배다

   그러나 이런 신조들은 서로 조율할 수 없고 충돌하기도 한다
. 상식적인 믿음은 이 두 가지를 임의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때로는 이 둘을 더해 노력에 따른 생산, 필요에 따른 분배라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사정들을 고려해보면, 이 둘을 조정할만한 독립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정의의 두 원칙은 이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 두 신조에 각각 적절한 비중을 부여한다.


   서로 다른 정의에 관한 생각이 동일한 정의에 관한 신조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 이 두 신조에 각각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정의에 관한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배경적 제도의 형태, 경제 환경의 추이,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 이 비중은 변화하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 일정 정도의 비중을 각각의 신조에 부여하고 있다면, 그것은 위에 언급한 변화들이 축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육 등을 통해 기회 균등이 보장되는 제도가 있는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공 가능한 노동력의 수준이 거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여에 따른 분배라는 신조는 거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반대로 그것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기여에 따른 분배가 매우 비중있는 신조가 될 것이다.


   반면에 이 두 신조는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적용되는 원칙으로서는 역할을 할 수 없다
. 기여에 따른 분배 신조를 살펴보자. 여기에서 노동자가 분배받을 양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장이 원하는 재화의 종류와 양, 그리고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노동자의 숫자이다. 만약 이것을 가장 기본적 원칙으로 채택하게 된다면, 그가 분배받을 재화의 양은 우연적인 시장의 조건에 의해 변하게 된다. 정의의 원칙들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우연적 요소의 배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신조과 왜 원칙이 될 수 없는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의의 두 원칙에 따라, 이런 요소들을 분배의 과정에서 배제해줄 수 있는 배경적 제도가 이런 신조에 우선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나아가서 재화의 생산과 분배
, 노동의 공급과 수요를 시장 체제에 의존할 경우 반드시 착취가 발생한다는 견해도 있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여기에 세 가지 측면에서 답변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에서는 언제나 배경적 제도를 통한 적절한 규제가 강조된다는 점이다. 이런 제도는 이상적인 형태로서, 지금 운영되는 제도가 어떤 의미에서 부적절한지를 판가름하며 또 어떻게 고쳐야할지 보여준다. 둘째로 시장은 가격을 지표로 삼아 재화와 노동을 조정하는데, 착취가 발생한다는 것은 가격이 올바르지 않은 지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의 두 원칙의 입장에서 이는 부차적인 실패이며, 다른 부차적인 제도를 통해 보완될 여지가 있다. 셋째는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는 부차적인 제도로서 다른 것 보다는 시장이 자유에 더욱 부합하는 제도다. 시장은 기본적 자유에 포함되는 여러 요소들, 즉 직업 선택의 자유라든가 생산 계획의 자유 등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48.
합법적 기대치와 도덕적 응분

 

   롤스는 노력에 의한 분배와 기여에 따른 분배와는 별개로, 분배의 방식으로서 전통적으로 거론된 도덕적 덕에 따른 보상으로서의 분배를 논한다. 그가 보기에 이렇게 분배를 논하는 것은 그 기준을 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합법적 기대치와 도덕적 응분을 혼동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정한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때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게끔 만들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그 행위 자체가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복을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러나 정의의 원칙들은 그에 따라 잘 조직된 사회를 조성하기 위해 채택되는 것이지 도덕적 행위를 권장하려고 고안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도덕적 처벌과 합법적 보상을 대응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분배가 도덕적인 보상으로서 이뤄지는 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다
. 이는 전통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왔으며, 그 사람들은 이런 사회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정적으로 이런 의견은 분배의 과정을 시장에 의존하지 않기 위한 의도에서 발생했다. 한 사람의 도덕적인 가치는 재화의 생산과 분배,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변화와 관계가 없다. 이는 우리의 상식적인 도덕적 판단에서 중요하게 고려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의의 문제는 내가 공동체에 속해서 일정 정도 기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와 그에 대한 분배에 관해서 다루는 것이다
. 따라서 분배의 문제는 사회의 기본적 구조와 제도가 규정한 의무와 권리를 통해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지, 사람의 도덕적인 가치에 따라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상식적인 도덕적 판단은 단지 그런 가치를 항상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을 뿐, 원칙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또한 분배의 문제는 도덕적으로 우연적인 것과 항상 결부되어 있다. 이런 우연적인 것은 도덕적인 능력과 거의 독립적으로 자신의 영향을 발휘한다. 정의의 두 원칙은 이런 우연적인 것을 처리하는 방식이며, 이에 따라 잘 조직된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정의감을 가지고 제도와 정책을 올바르게 실천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모두 정의감을 같은 정도로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분배를 같은 정도로 해야 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보상이라는 것은 부차적인 원칙이지
,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될 수 없다. 이는 사유재산 제도와 형법의 절도죄 사이의 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 절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유재산 제도가 필요하다. 사유재산 제도는 분배의 방식을 가리키는 원칙이며, 절도죄는 지켜져야 하는 사유재산을 지키지 않고 빼앗음으로써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인 보상이 기본적인 원칙이 된다는 것은, 절도죄를 처벌하기 위해서 사유재산 제도를 고안하는 꼴이 된다. 또 정의의 두 원칙에서 중요한 것은 그 제도 아래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모두 다른 삶의 목표를 가지고서 좋은 것들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런 각자의 삶은 제도에 의해서 존중되고, 그에 필요한 것을 분배받는다. 이를 위반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 위반으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을 권리가 생겨난다. 정의로운 체제가 정당한 각자의 몫을 확보해준는 것은, 실제로 도덕적인 가치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바로 위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합법적인 기대치와 도덕적인 보상 사이를 더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서
, 권리가 있다는 말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을 구분해보도록 하자. 어떤 개인이 특정한 재화를 분배받기 위한 어떤 목표를 달성하려고 충분히 애를 썼다면, 그는 그 재화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그는 그런 분배를 받을 권리가 없다. 만약 주변 환경이 조금 더 이상적이라면, 충분히 애를 쓰면 거의 모두 목표가 달성될 것이며 분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도덕적인 가치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제도가 보장해주는 바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혼동이 생기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분배적 정의와 응보적 정의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비도덕적인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그 처벌을 통해 제도적으로 도덕적인 의무를 강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하지, 그런 비도덕적인 행위를 합리적 계산을 통해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행위로 간주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하지는 않는다.

 


49.
절충론과의 비교

 

   이 절에서 롤스는 공리주의적인 정의의 원칙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제한해서 생겨나는 절충적 생각과 정의의 두 원칙을 비교한다. 이런 절충적 생각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의의 두 원칙과 마찬가지로 최소필요에 관해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제도와 정책을 이끌어내는 데 더 좋은 기준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의의 두 원칙보다 절충적 생각을 더 선호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최소필요에 관해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은 정의의 두 원칙 역시 마찬가지이며, 제도와 정책에서 효용을 이끌어내는 데 사용되는 여러 원칙들을 엄밀하게 들여다보면 결국 불확실하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절충적 생각은 공리주의적인 정의의 원칙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규제한다
. 여기에서 공리주의적인 접근은 부차적인 원칙이 되고, 여러 규제들이 제1원칙이 된다. 그러므로 롤스가 보기에 이런 절충적 생각들에 대해서는, 고전적 공리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이었던 자유의 우선성이 유효하지 않다. 절충적 생각은 충분히 자유의 우선성을 고려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공리주의적인 원칙을 규제한다. 이런 점 때문에 상식적인 수준에서 절충적 생각은 주목받는다. 정의의 두 원칙이 절충적 생각에 비해 선호될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고전적 공리주의에 대한 반박과는 다른 논증이 필요하다.


   자유의 우선성을 인정하는 평균 공리의 원칙이라든가
, 편차를 보정한 평균을 적용하는 것으로 차등의 원칙을 대체하는 것이 이런 절충적 생각에 해당한다. 이른바 평균 공리를 통해서 최소필요를 설정하고 모든 이에게 그만큼은 공평하게 확보해주려는 것이 이런 절충적 생각의 의도다. 그러나 롤스가 보기에 그 결과 만들어질 제도들은, 사실 차등의 원칙이 적용되었을 때 만들어질 제도들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리에 관한 왜 다른 원칙들 대신에 평균 공리의 원칙을 선택하게 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 롤스는 바로 이 이유가 차등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도덕적, 윤리적 선택에 의해서 평균공리의 원칙이 채택된다. 우리는 누군가 제도와 정책을 구상할 때 실제로 그 두 원칙 가운데 어느 것을 기준으로 삼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런 논증을 통해서 평균 공리의 원칙이 차등의 원칙보다 더 선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알 수 있다. 평균의 편차를 보정하여 가장 이점이 적은 이들의 위치를 더욱 더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런 보정의 기준을 어디에 둘 지는 다소 임의적이다. 또한 이 방법이 표방하는 것 역시 그들의 지위를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차등의 원칙과 그 의미가 같다.


   차등의 원칙은 평균 공리의 원칙 등이 요청되는 근거에 관한 설명이다
. 또한 다른 부차적인 원칙들과 결합해서 정의로운 제도와 정책을 조직하고, 사람들의 일상적인 정의감에 부합하는 결과를 이끌어낸다. 다른 원칙들의 경우 일상적인 정의감이 갈등을 일으키는 많은 다양한 구체적 사례들에서 조정에 실패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 반해서, 정의의 두 원칙은 명확한 우선성을 통해 이런 조정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롤스가 생각하기에 정의의 두 원칙은 이런 측면에서 다른 정의의 원칙들에 비해 그 적용의 범위가 훨씬 넓고,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사례들에 관한 판단도 포함한다. 또한 이런 측면은 공공의 이익에 호소한다는 민주주의적인 상식에도 부합한다. 공공의 이익이란 특정한 계층이나 집단의 이익이 아니며, 특히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들에게 주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절충적 생각은 차등의 원칙이 제기하는 엄격한 요구를 피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도 주목받는다
. 그러나 절충적 생각은 이런 엄격한 요구를 피해가는 대신 효용의 적절한 수치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다는 문제를 일으킨다. 개인들은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다른 집단의 이익보다 더 높게 평가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런 평가에 완전히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계산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공리주의적인 원칙은 이런 의견들을 조정할만한 기준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반대로 정의의 두 원칙은 그런 기준을 제공해줄 수 있다.


   이런 계산의 부정확성에 대해
, 한정된 범위 내에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몇몇 이론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개인은 효용의 몇몇 수준을 구분할 줄 알고 이는 모든 개인에게 공통적이라고 가정한다면 적절한 효용 계산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또 다른 이론에서는 개인의 기대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선택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이 그런 복잡한 관계를 모두 이해하는 상태에서 그것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수학자적인 수준에서나 가능할만한, 비현실적 가정이다. 결국 행복과 복리의 개념은 충분할 만큼 명확한 것이 아니며 적절한 기수적 척도를 정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는 그것이 쓰이게 될 도덕 이론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개인의 효용이 계산이 부정확한 만큼
, 전체의 효용 또한 계산이 정확하지 않다. 보통 사용되는 방법은 특정한 상황 아래 놓인 한 사람의 효용 최소치를 0, 최대치를 1로 계산하고 각 사람들의 효용 수치를 더하는 것이다. 효용 최소치를 0으로 두고, 모든 대안들의 효용의 합을 1로 두는 방법도 있다. 앞쪽은 고전적 공리주의의 원칙에, 뒤쪽은 평균 공리 원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계산법은 사람들이 모두 동일한 선호체계와 만족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가정하며, 공리의 개념을 특수하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개인 효용을 더하는 계산법을 채용할 경우, 사람들을 가난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것이 효용을 더 늘리는 방법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다. 또한 여러 경우에 관한 확률 계산이 효용 계산에 개입할 경우, 사람들이 편향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롤스는 이런 부정확함이 해결되어도 절충적 생각이 정의의 원칙으로서 채택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 개인의 효용을 계산하는 방법이든 전체의 효용을 계산하는 방법이든 그들 사이에 주어지는 도덕적 비중은, 적어도 공리주의적인 원칙 아래에서는 동일하다. 이들의 옳고 그름 또는 비중을 판별해줄 기준은 이런 계산법에 대해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가치 판단의 과정이다. 또한 공리주의적인 원칙을 택했을 경우 발생할 문제는 명백한데 반해 정의의 두 원칙을 택했을 때 발생할 법한 것으로 간주되는 결과는 불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관한 정의의 원칙으로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택해야 한다.

 


50.
완전성의 원리

 

   롤스는 이 절에서 정의에 관한 목적론적인 생각의 한 특수한 형태인 완전주의, 그리고 그 완전주의가 완화된 형태로서의 직관주의에 대해 논한다. 완전주의와 직관주의는 그들이 표준으로 삼은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형태로 분배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최대한으로 달성한 삶은 완전한 삶, 좋은 삶의 표상이 된다. 그러나 롤스가 보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삶이 완전한 삶인가에 관한 유일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완전한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공리주의적인 정의의 원칙이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들에게 분배되는 것을 정당화하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완전주의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이점이 적은 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다른 정의의 원칙들에 비해 더욱 빈약하다.


   완전성의 원리는 엄밀한 것과 느슨한 것 두 가지로 나뉜다
. 엄밀한 완전성의 원리는 다양한 탁월함을 성취하는 것이 극대화되게끔 분배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개인들은 어떤 개인들이 이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하며, 제도는 이런 성취를 달성할 수 있도록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다. 느슨한 완전성의 원리는 이런 다양한 탁월함이 사회, 문화적 환경 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지니는 것으로 간주되게끔 분배하는 것의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탁월함은 특별한 가치를 부여받고, 이것을 성취하려는 활동은 단순한 욕구의 충족을 위한 활동에 비해 더 높은 지위를 부여받는다. 따라서 최소 필요량을 제외한 경우, 언제나 탁월함을 성취하려는 활동에 더 많은 분배가 이뤄진다. 약한 완전성의 원리는 그 자체가 강한 완전성의 원리의 한 변형일 수도 있지만, 부차적인 원칙으로서 차이의 원칙을 대체할만한 것이기도 하다.


   정의에 관한 원칙들을 분류해보면
, 우선 목적론과 비목적론으로 나눌 수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 이상을 고려하는 것과 욕구를 고려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공리주의는 목적론이면서 욕구를 고려한다. 완전주의는 목적론이면서 이상을 고려한다. 반면 정의의 두 원칙은 비목적론적이면서 이상을 고려한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비목적론적인 정의에 관한 이론인 계약론적 접근을 통해서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재화의 분배가 되도록 공평해야 한다는 이상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와 완전주의의 사이에 위치한다.


   엄밀한 완전성의 원리는 그것이 정의에 관한 한 사람의 관점일 수는 있다
. 그러나 사회의 기본적 구조에 적용되는 관점이 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추구하는 탁월함에 대한 기준 또는 삶의 방식을 신념으로 지닌다. 이들은 서로 다르며 때로는 충돌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 가운데 특정한 탁월함을 기준으로 제도와 정책을 편성한다면 반드시 다른 삶의 방식과 그 신념을 침해하게 된다. 원초적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무지의 베일이 걷힌 후에 자신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상황이 올 것을 바라지 않는다. 따라서 원초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엄밀한 완전성의 원리를 정의의 원칙으로서 택하지 않는다.


   대신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가장 넓은 범위의 자유를 우선적인 원칙으로 택한다
. 이는 자유의 우선성을 지지하는 논증과 동일하다. 그러나 롤스는 자신이 보통 완전주의적인 관점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많은 탁월함들이 실제로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은 구체적인 인간의 삶 속에서는 충분히 비중있게 고려될만한 이유가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단지 탁월함에 관한 그런 비중을 원초적 상황의 대표적 개인들이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탁월함들은 정의의 두 원칙에 부합하는 정의로운 체제 안에서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모임에 의해 충분히 추구될 수 있으며, 그것은 매우 권장할만한 일이다. 단 그들이 그런 탁월함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재화는 정의로운 방식으로 분배받은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탁월함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권리는
, 한 편으로는 모든 인간이 도덕적 존재라는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완전주의적 가치 판단으로부터 주어지고, 다른 한 편으로는 계약에 의해 규정된 정의로운 제도가 요구하는 의무를 이행할 경우 제도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로서 주어진다. 정의의 두 원칙으로서의 계약론적 입장은 제도적 자유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반면에, 완전주의적 가치 판단은 제도적 자유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이 전제 없이도 충분히 자유의 제도가 성립하는 경우가 있고, 또 그 전제만으로 자유의 제도를 확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인간들을 자유롭게 한다고 해서 그들이 자신의 탁월함을 모두 뛰어나게 발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완전주의적 정의는 이런 탁월함을 더욱 높이 성취하기 위해 이점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많이 분배받는 것을 허용한다
. 여기에서는 고전적 공리주의의 경우에서처럼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도 않는데, 이런 탁월함들은 오히려 효용이 체감되지 않고 정비례하거나 증폭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완전성의 원리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용인하기 때문에, 원초적 입장의 대표적 개인들은 이 원리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정의에 관한 직관주의적 생각
(또는 느슨한 완전성의 원리) 역시 엄밀한 완전주의와 동일한 문제에 부딪힌다. 이들은 특정한 전통이나 환경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다른 전통이나 환경에서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또한 우선성의 문제를 남겨둠으로써, 실제로 정의의 원칙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풀지 못한다. 탁월함에 관한 생각은 개인들, 집단들, 사회들 사이에 언제나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정의의 원칙은 이들을 조정할만한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롤스는 직관주의와 완전주의는 이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지만,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이들을 조정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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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학기 중국현대철학연습 발표문>

 

   아편전쟁(1,2차 중영전쟁)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근대의 기점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전쟁을 전후해서 중국과 동아시아 세계는 본격적으로 전세계적 시장경제체제의 한 부분이 되었다. 반대로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이 사건은 중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중화주의적 이념, 사회, 정치적 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정치적 질서가 자리잡는 계기였다. 특히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이념적 기반이었던 유학의 지위를 흔든 사건이었다. 서양의 사상에 비해 현실적인 힘이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정치, 사회적인 개혁 못지않게 사상적 대응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중국의 경우 전반적으로 기존의 이념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당시의 권력자들 또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소수의 지식인들은 서양의 사상을 학습하거나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건으로 태평천국운동(太平天國運動)과 양무운동(洋務運動), 그리고 변법운동(變法運動)을 꼽을 수 있다. 태평천국의 지도자 홍수전(洪秀全)은 기독교에 기반해 종교활동 및 정치활동을 전개했다. 양무운동은 기본적으로는 서양식 무기를 생산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됐지만, 그 무기를 다루게 될 인재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서양의 사상이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소개되었다. 특히 국비 유학생 출신이며 사관학교 교사였던 엄복(嚴復)이 서양의 학술서적들을 많이 번역했다. 그 가운데 천연론(天演論)과 이를 통해 소개된 사회진화론은 당시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변법운동을 대표하는 정치인인 강유위(康有爲)는 유학의 경전을 다른 시각에서 해석하고 그 안에 서양식 정치체제를 예비하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 세 사람의 생애와 사상은 서양의 사상에 대해 긍정적이었거나 수용하려는 태도를 취했던 당시 중국 지식인의 모습을 대표할만한 것이다
. 이 글에서는 홍수전과 엄복의 천연론, 강유위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당시 중국 지식인들의 문제의식과 그에 대해 제시한 해법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해보고자 한다.

 

 

1. 홍수전과 태평천국운동

 

(1) 홍수전과 배상제교(拜上帝敎)

 

   홍수전은 객가(客家) 출신의 지식인으로, 14세 때 과거에 응시했으나 합격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방황하던 와중에 중국인 선교용 개신교 책자인 권세양언(權世良言)을 접했다. 이 책자에는 예수보다는 유일신 여호와의 위엄과 능력, 죄악과 우상숭배에 대한 비난, 구원과 파멸의 극단적 대비를 강조하는 성경 구절이 많이 편집되어 있었다. 또한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과거에 응시하였다. 그러나 4번째 낙방 이후에는 더 이상 치지 않았다. 이 즈음 자신이 꿈에서 상제 즉 하느님을 보았고 나의 둘째 아들, 예수의 동생이 되어 이 세상에 천국이 임하게 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교주가 되어 본격적으로 전도에 나섰다. 이 종교가 바로 배상제교이다. 태평천국운동의 태평천국이라는 말은 이 꿈에서 비롯된 것이다.


   『
권세양언이라는 책자가 모태가 되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홍수전이 스스로 그리스도라고 선포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배상제교의 구체적인 실천적 조목은 개신교와 거의 일치했다. 이 시기에 주목할만한 것을 두 가지다. 하나는 효와 정직에 대한 강조, 살인·간음·사기 등에 대한 비난, 물질적인 것에 대한 금욕 등 전통적인 유학의 가르침에 합치하는 여러 덕목을 실천함으로써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신교의 우상숭배 금지의 원칙 또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중국의 민간신앙은 부정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홍수전은 전도에 나선 뒤에 공자의 위패를 부수는 행위를 저질렀는데, 이것이 반란을 모의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그는 초기 개종자들과 함께 처벌을 받았다.


   홍수전이 처벌을 받는 기간 동안 배상제교의 조직은 정치적 성격이 강화됐다
. 이는 배상제교의 교리에 현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이념인 유학을 우상숭배로 치부하고 부정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들의 종교적 실천은 곧 정치적 실천이었던 것이다. 이런 본격적인 변화를 주도한 사람은 양수청이다. 그는 광서성 출신의 숯가마 노동자였는데, 배상제교에 입회한 이후 주요 인물이 되었다. 홍수전은 출소한 이후 그를 비롯한 몇몇을 자신의 명령 즉 하느님의 명령을 집행하는 대리자로 인정했고, 따라서 그의 입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2) 태평천국운동의 전개와 결말

 

   이런 충돌이 격화되자 청나라 조정은 이들을 탄압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1850년 홍수전은 양수청을 통해 광서성 지역 배상제교 교인들의 소집을 명하고, 이듬해 태평천국의 수립을 선언했다. 교인들을 구성하는 주요 계층은 광서성의 객가 집단, 광산과 불가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소집에 응한 모든 교인들의 재산을 배상제교 앞으로 귀속시키고 평등하게 나누었으며, 남녀가 모두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등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다. 반면 군대의 편제는 전통적인 예법(주례)을 따랐다.


   봉기 초기에는 제대로 된 무기조차 갖추지 못해
, 태평천국군의 실제 전투력은 아주 열악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팔기와 녹영은 봉기 초반에 이들도 제대로 진압할 수도 없을 만큼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임칙서는 본격적인 임무수행도 하기 전에 사망하였고, 그 이후엔 제대로 된 군사지도자도 등장하지 않았다. 반면 태평천국군은 자신의 세력권 안에서 술·담배·아편·남녀의 교류를 금지하는 엄격한 금욕주의를 표방했고, 전족의 금지, 여성에 대한 관직의 허가, 변발폐지와 장발령 등을 선포했다. 특히 배상제교의 목표인 천국의 실현을 위해서는 경제적 평등이 매우 중요했는데, 이를 위해 귀족들의 재산을 배상제교 앞으로 귀속시키고 교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나눠주었다. 이 때문에 가난한 자작농과 소작농, 노동자들에게 환영받았다. 봉기군은 1853년 남경을 점령하고, 이 곳을 수도로 삼은 태평천국의 수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이들이 구상한 경제
, 사회 정책의 구체적인 모습은 천조전무제도라는 책자를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다. 태평천국운동은 기본적으로는 전통적인 예법에 기반해 전제군주적 정치체제의 모습은 유지하고자 했으며, 신분제도 고수하려 했다. 그러나 사유재산은 인정되지 않으며, 모든 생산물은 국가에 귀속된다. 이들은 각 개인의 필요에 따라 지출되며, 그 이상의 지출은 인정되지 않는다. 토지 또한 기본적으로 국가에 귀속된다. 단 자신이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면 국가는 그에게 토지를 할당하며, 다시 환수하지는 않는다.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천조전무제도에서 볼 수 있는 태평천국운동의 지향점은 중앙집권적 전제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정부가 모든 재화를 독점하고 균등하게 분배하는 제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런 급진적인 정책과 유학의 부정 그리고 자신들에게서 재산을 빼앗아가는 행태들 때문에 청 조정를 비롯한 지배계층에게는 태평천국군이 아주 위험한 집단으로 간주되었다
. 그런데 이들을 막아야 할 조정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세태를 비판하고 현재의 질서를 수호하고자 하는 지배계층의 사람들은 반봉기집단을 조직하여 태평천국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지켜내야 했다. 이들 가운데는 본격적으로 태평천국군에 대립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증국번(曾國藩)의 상군(湘軍)과 이홍장(李鴻章)의 회군(淮軍)이었다. 상군은 호남성의 사대부(紳士)들을 중심으로, 회군은 강소성의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집단이다. 이들은 조정을 대신해서 태평천국의 세력 확장을 막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그 지역의 군사통제권을 공식적으로 획득했다.


   또한 태평천국의 위기는 내부에서부터도 찾아왔다
. 양수청은 홍수전을 넘어서 태평천국의 지도자 자리에 올라서려 했고, 그를 제외한 다른 초기 지도자들이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이는 유혈사태로 번져서, 1856년 양수청은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군사들과 함께 남경에서 숙청당했다. 또한 몇몇 초기 지도자들은 대오에서 이탈해 독자적인 군사행동에 들어갔지만 청의 군대에 괴멸당하는 등의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결국 남경에 남은 지도자는 홍수전 한 사람 뿐이었고, 그는 이런 참혹한 사태를 목도한 뒤 광신적으로 바뀌어 정치적 업무에 거의 등을 돌리다시피 했다.


   이 와중에도 홍수전의 조카인 홍인간
(洪仁玕)을 중심으로 태평천국운동을 다시 일으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1858년 태평천국군은 상군을 상대로 한 전면전에서 크게 이겼다. 이 과정에서 홍인간은 서유럽과 미국의 외교관, 선교사들을 접촉하며 자신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줄 것을 여러 번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번엔 열강들이 태평천국운동을 외면했다. 태평천국운동 초기에 열강들은 개신교 선교세력이 중국을 장악해가고 있다는 것을 환영했다. 그러나 그들은 태평천국운동의 경제개혁정책과 금욕주의적 성향 등이 상공업활동에 이로울 것이 없다고 판단했고, 태평천국군의 진압을 빌미로 상당한 이권을 넘겨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한 청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겉으로는 내전에 개입하는 것은 안된다는 식으로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다.


   결국
1860년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청의 요청을 받아들여 태평천국운동의 진압에 개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이 제공한 신식 무기와 영·프 연합군, 그리고 이들로부터 훈련받은 청의 군대에는 상승군(常勝軍)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상군 휘하에 편입되었다. 진퇴를 거듭한 끝에 1864년 남경이 상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태평천국운동은 사실상 끝을 맺었다. 홍수전은 함락되기 전에 병에 걸려 죽었으며, 홍인간을 비롯한 후기 태평천국 지도자들은 모두 전사하거나 처형당했다.

 

(3) 태평천국운동의 사상사적 의의

 

   태평천국운동의 과정에서 나타난 홍수전의 종교적 신념은 서양 사상의 대표격인 개신교를 대폭 수용한 것에서 그 주요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청의 몰락 속에서 위기의식을 느꼈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배상제교라는 사상을 제시했다. 그것은 종교적 색채가 다소 강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접한 말세를 강조하고 유일신을 찬양하는 개신교의 일면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찾아냄으로써 강력한 종교적·정치적 운동을 일으킨 사상이 되었다. 또한 그렇게 구상한 제도가 경제적 파탄을 마주한 민중들의 감정에 호응해, 조정을 뒤흔드는 운동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상적 전형은
, 증국번과 이홍장과 같은 사람들이 취하는 보수적 태도다. 이들은 분명히 전통적인 사회의 이념을 수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경제적인 타격과는 별개로, 그들에게 태평천국운동의 이념은 사회를 무너뜨리고 사람들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사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청 조정은 이를 막아내지 못할 만큼 무능했고, 외국의 힘을 빌어야만 겨우 진압할 수 있을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


   따라서 청 정부는 이제 더 이상 그 모습을 그대로 지켜야 할 대상이 될 수 없었고
, 일정 정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리고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지식인들은 서양의 무기가 어떤 성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똑똑히 지켜보았다. 이는 진압을 주도한 증국번과 이홍장 같은 이들이 양무운동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양무운동의 정신은 우리의 정신과 제도는 지키되 기술은 배우자고 말하는, 중체서용(中體西用) 내지는 동도서기(東道西器)론으로 표현되었다.

 

 

2. 엄복과 천연론

 

(1) 유학파 지식인 엄복과 천연론

 

   1861년 태평천국운동을 진압하는 와중에 양무운동이 시작되었다. 양무운동의 핵심은 서양의 군사기술을 배우고 신식 무기를 만드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각지에는 탄광, 철광, 제철소, 무기공장이 세워졌다. 특히 열강들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서는 해군을 양성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군함을 사들이고 조선소를 건립하는 것도 양무운동의 중요한 과제였다. 더불어 이런 기술을 가져다주고 외교 업무를 관장하는 외국인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을 양성해야만 했는데, 이를 위한 기관들이 이러한 공장에 덧붙여서 세워졌다. 1862년 북경에 세워진 동문관(同文館), 1863년 상해에 세워진 광방언관(廣方言館), 1864년 광주에 세워진 광주동문관(廣州同文館), 1867년에 세워진 복주선정국(福州船政局) 부설 선정학당과 강남제조국(江南製造局) 부설 번역관 등이 그 예다.


   1872
년 증국번과 이홍장은 조정에 국비유학생 파견을 건의했다. 서양의 문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직접 가서 체험해보고 와야 한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이 계획은 곧 추진되었고, 첫 유학생 30명은 미국으로 떠났다. 국비유학이었으므로 대개는 중산층 내지는 하급 사대부의 자제들로 이뤄져 있었는데, 이들은 완전히 서양의 학문에 물들어 귀국했다. 따라서 추가 유학 계획은 반대에 부딪혔다. 양무운동을 추진하던 이들은 이런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장소를 유럽 지역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고, 1876년에 출국한 국비유학생 30명은 유럽을 향해 가게 되었다.


   이
30명 가운데 한 사람이 엄복이다. 그는 유학생 시절을 영국의 왕립 해군학교에서 보내고, 귀국 이후에는 북양해군의 북양수사학당에 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부교장을 거쳐 교장이 되었고, 해군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청일전쟁 이후 북양해군이 전멸하면서 직장을 잃었고, 한동안 방황하다가 언론인 겸 번역자로 다시 세상에 등장한다. 이 기간동안 그는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적 사회과학에 매료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양의 학문 자체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파악한 듯 하다. 천연론은 그런 생각에서 나온 번역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그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논리학의 체계,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학 연구,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등도 번역·출판했다.


   『
천연론은 토마스 헉슬리의 강연록 진화와 윤리를 번역한 것이다. 이 강연록의 대체적인 내용은, 생물학에서 이야기하는 진화를 무턱대고 인간을 지배하는 원리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이런 자연적인 진화를 인간의 힘이 닿는 한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으로 인간다운 모습이며, 그것이 우리의 인간다움 즉 윤리적 측면을 나타낸다고 역설한다. 이는 사회진화론적 사회과학, 생물학적 진화와 인간 사회의 원리 사이의 연속성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복은 반대로 헉슬리의 입장에 반대하고 스펜서의 입장을 옹호하며 주석을 달아놓는다. 헉슬리는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에 대해 잘못 파악하고 있으며, 스펜서의 주장처럼 자연의 순리에 맡겨놓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는 것이다. 헉슬리의 주장처럼 인위적인 것을 강조하다보면, 실제로 더 좋고 적합한 것이 인위적인 것에 의해 배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천연론의 특징과 의의

 

   『천연론의 번역에서 보이는 특징은 엄복이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를 격의(格義)했다는 것이다. 격의는 불교가 처음 중국에 들어올 때 불교의 개념과 용어들을 도가의 개념과 용어를 사용해 번역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천연론의 경우에는, 서양의 개념과 용어들을 중국의 전통사상인 유··도가에서 쓰는 개념과 용어들로 번역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격의했다는 말을 쓸 수 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궁극적인 이치는 시대와 장소에 상관없이 동일하고 따라서 그것을 표현하는 말은 다르더라도 깊이 이해하면 그것은 동일한 이치에 대한 다른 표현이며, 그렇기 때문에 서양 학문의 깊은 뜻을 이해하려면 우리의 학문의 깊은 뜻과 서로 맞춰보아야 하고 그래야 그 깊은 이치가 밝혀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서양의 논리학에서 쓰이는 방법인 연역과 귀납을 각각 주역의 체계와 춘추의 체계에 비추어 설명·이해하고 있다.


   또한 그는 번역의 원칙으로 원문에 충실해야 하고
(), 의미를 전달해야 하고(), 문장이 규범에 맞아야 한다()는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가운데 엄복이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은 두 번째 원칙인 의미의 전달인 것으로 보인다. 그 스스로도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고 하더라도 읽는 사람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면 번역을 하지 않은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또한 원문에 없는 절 나누기라든가 상당한 분량의 번역자의 주석 등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헉슬리가 드는 여러 사례들도 중국의 고사나 경우에 맞게 고치는 것도 이런 경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내용상의 번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세상의 모든 생물들을 지배하는 원리는 진화(天演)이다. 자연이 소화할 수 있는 생물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 소화할 수 있는 양은 크게 증가하지 않지만 생물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따라서 자연 속의 생물이 포화상태가 되면 그 환경에 잘 들어맞는 개체만이 성장할 기회를 제공받고, 그렇지 않은 개체들은 아예 사라지게 된다. 이것은 진화론에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의 개념인데, 엄복은 이것을 천택(天擇)으로 번역했다. 이런 기회를 제공받기 위해서 생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생존경쟁(struggle for existence)은 물경(物競)으로 번역되었다. 이렇게 경쟁하면서 그 환경에서 더 잘 살아남기 위해 생물들은 스스로 변화(variation)를 꾀하는데, 이것은 추이(趨異)로 번역되었다. 이 세 가지가 자연에서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다.


   이 원리가 인간사회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스펜서와 엄복의 입장이다
.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인간이 부족한 자원을 놓고 경쟁해야하는 일이 생기고, 그 경쟁 속에서는 자연과 사회 등 환경에 딱 들어맞는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에 딱 들어맞아야 한다. 현재 인류의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의 선택을 받은 종족은 서양인들이다. 만약 서양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맞닥뜨렸을 때 그들이 자연선택을 받지 않았다면 그만큼 세력을 확장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물계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벌어지는데, 이미 조성된 어떤 생태계에 더 잘 맞는 생물이 들어갔을 경우 다른 생물이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따라서 우리의 변화의 방향 또한 서양인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핵심은 그들의 정치 제도가 백성들의 지식(民知)과 덕성(民德) 그리고 체력(民力)을 기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기른다면 우리 또한 국제사회라는 생태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이 계속 진행되다 보면 결국 가장 좋은 재원들이 인류사회에 남게 될 것이고, 더욱 더 발전하고 진보된 사회가 출현할 것이다.


   엄복은 이런 입장에서 헉슬리를 비판한다
. 그에 따르면 스펜서의 입장이 하늘의 원리를 따르고(任天) 인간들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진화의 원리에 충실하고 행복한 사회를 지향한다. 반면에 헉슬리는 이런 원리를 거슬러(勝天) 인간의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인위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따라서 헉슬리의 주장은 진화를 통해 성취될 미래의 행복을 지연시키고, 자연선택에 의하면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개체들을 보호하는 논리를 제공한다. 반면 헉슬리는 이런 스펜서식의 주장에 대해 이들이 우생학과 연결되며, 아직 인간에게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인간의 사회에서 자연이 하는 것처럼 사람을 감별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인간이 직접 자연선택을 실천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헉슬리의 견해가 옳아보인다
. 사회진화론적 사회과학이 제국주의와 어떻게 결탁했는지, 사회진화론이 생물학적 진화론을 얼마나 오해했는지, 생물학적 진화론 안에서도 얼마나 다양한 변형이 있으며 또 그들 각각이 진화를 이해하는 방식이 얼마나 판이하게 다른지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엄복의 시선에서 헉슬리의 견해는 오히려 고담준론에 가까워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살아온 시기가 대내적으로 그리고 대외적으로 청나라가 상당한 풍파에 시달렸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펜서의 사회 이해 방식은 당시의 현실과 잘 맞아들어갔고, 그리고 변이라는 방식으로 내가 속한 공동체가 자연선택에 의해 생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식은 단지 엄복 뿐만 아니라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과 일맥상통했다. 그래서 엄복의 천연론은 본인 뿐만이 아닌, 중국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외세의 압박에 시달리는 모든 공동체의 지식인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3. 강유위의 철학사상과 변법운동

 

(1) 변법운동과 강유위의 정치적 활동

 

   강유위는 1858년 광동성 남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과거에 응시했으나 떨어졌고, 뒤이어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도가와 불교사상에 더욱 심취했다. 그리고 그 즈음 서양의 학문을 접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서양의 학문 저술을 읽었다. 이후 1888년 과거에 다시 응시하는데, 이 과정에서 황제에게 직접 올려야한다는 상소를 써서 중앙정부에 파장을 일으킨다. 여기에는 의회와 비슷한 합의제 심의기관을 공식적으로 설치할 것을 주장하는 내용, 즉 변법(變法)을 추진하자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의도와는 다르게 황제에게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양무운동을 반대하던 여론과 반이홍장 성향 조정 대신들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이런 파장을 일으킨 댓가로 그 대신들로부터 당분간 정계를 떠나있으라는 요구를 받았고, 그렇게 자숙하는 시간 동안에 신학위경고를 간행해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선다.


   1895
년 또 다시 과거에 응시한 강유위는, 이번에는 응시자 600여 명의 연서명을 받은 상서를 조정에 제출한다. 공거상서(公車上書)라고 불리는 이 운동은 양무운동을 추진한 세력에게 청일전쟁 패배의 책임을 묻고, 반이홍장 성향의 대신들을 중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이 때 치른 과거에 급제했고, 이후 영국이나 일본의 메이지유신 등을 모델로 삼은 입헌군주정으로의 변법(變法)을 기획한다. 이런 뜻을 전파하기 위해 강학회(强學會)를 세우고 잡지를 발간했는데, 북경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여전히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양무운동파 대신들에게 탄압을 받아 규모가 다소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연과 학술활동을 이어나갔다.


   1898
년에는 사대부들의 모임인 보국회를 조직하고 본격적인 변법운동에 나섰다. 그리고 황제에게 직접 상소를 올려 자신을 비롯한 변법파 인사들을 관리로 등용하고, 평범한 백성들의 직접 상소 허용, 상업 진흥, 신식학교 설립 등을 건의했다. 반면 종래에 주장하던 의회와 비슷한 합의제 심의기관에 대한 내용은 없었으며, 대신 군주의 권한을 강화하고 여기에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내용이 들어간 것으로 보아 개혁의 방법론을 바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자신의 개혁에 동참하지 않는 대신들을 파면할 것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그러나 이것을 황제와 조정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서태후가 광서제를 연금하고 변법파에 대한 체포령을 내림으로써 변법운동은 막을 내렸다. 강유위는 일본으로 망명했고, 강유위가 추천한 변법파 가운데 양계초를 제외한 모두가 체포당하거나 처형당했다. 그리고 변법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이 서태후의 명에 따라 원상복구되었다.

 

(2) 강유위 철학의 특징과 의의

 

   강유위의 변법운동은 그의 정치사상·철학에 토대를 둔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인 신학위경고(新學僞經考), 대동서(大同書)를 살펴보았을 때, 전통적인 철학에 기반해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변법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 저서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그의 정치적 지향점을 그려볼 수 있고 나아가서 서양의 사상에 대응하는 중국 지식인의 한 전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가장 먼저 완성된
대동서를 살펴보자. 대동(大同)은 소강(小康)과 함께 예기(禮記)예운(禮運)편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뜻하는 말이다. 강유위는 이 개념을 서양의 유토피아 개념에 대응시키고, 서양과 동양에서 논의돼왔던 이상적인 사회에 관한 논의들을 여기저기에 끼워넣는다. 또한 공자가 인류의 진화에 일정한 단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우리는 지금의 혼란한 사회상을 거쳐서 이상적인 사회로 나아간다는 것을 예언했다고 해석한다. 논어(論語)위정(爲政)23이 그러한 예다. 그러나 공자는 혼란한 세상에 살았기 때문에 대동에 대한 설명을 거의 하지 않고 단지 혼란한 사회나 소강에 대한 설명만 할 뿐이다. 따라서 앞으로 올 대동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며, 그것이 자기가 대동서를 쓴 이유라는 것이다.


   유토피아가 반드시 오는 이유는
, 이 세계가 세 가지 변화의 국면을 겪으면서 점점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거란세(據亂世)에서 승평세(升平世), 승평세에서 태평세(太平世)로 바뀐다. 승평세는 소강사회, 태평세는 대동사회에 해당한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지향해야 할 세상은 태평세다. 여기에는 어떤 사람도 고통받지 않고 모두가 행복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다다르지 못하고 여러 원인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데, 이 원인을 강유위는 영토(國界), 계급(級界), 인종(種界), 남녀(形界), 친소관계(家界), 산업의 분화(業界), 법 집행의 부당함(亂界), 사람과 동물 사이의 종적 구별(類界), 생명의 탄생에 따른 이런 고통스런 사회의 연속성(古界) 9가지 경계(九界)라고 진단한다. 만약 이 진단이 맞다면, 이들을 없애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이 없어지고 태평세가 찾아올 것이다.


   공자를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 그가 경전을 해석하는 방법론으로 금문경학(今文經學)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문경학(古文經學)에 대비되는 것인데, 이를 택하는 이유가 신학위경고에 밝혀져 있다. 고문경학은 춘추좌씨전의 정신을 이어받은 해석 방법론으로, 문자 그대로 읽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춘추공양전의 정신을 이어받은 금문경학은, 간략하게 써진 문장 속에 심오한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微言大義) 해석 방법론을 가리킨다. 신학(新學)은 전한과 후한 사이에 왕망이 세운 신나라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유학을 가리키는 강유위의 용어인데, 안타깝게도 이것이 유학의 정통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학의 진정한 정신을 되살리려면 전한과 그 이전의 본래 유학의 정신, 즉 금문경학과 춘추공양전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를 이렇게 예언자에 준하는 사람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은
, 강유위를 비롯해 당대의 많은 유학자들이 추진했던 입교(入敎)운동과 관련이 있다. 이들은 서양의 기독교의 유입에 맞서서 유학적인 종교 사상, 즉 공교(孔敎)를 수립해서 사람들의 신념을 결집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춘추공양전과 금문경학은 이런 활동에 좋은 근거가 되었는데, 공자가 단순한 도덕적 인간이 아니라 그 이상의 초자연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비쳐졌기 때문이다.


   강유위는 이런 철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자신이 살고 있던 시기를 승평세라고 진단하였다
. 그리고 그 승평세에 맞는 군주제는 입헌군주제다. 완전한 민주정 또는 혁명적인 민주주의는 승평세가 아닌 태평세의 정치체제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완전한 민주정을 이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변법운동을 통해 뼈아프게 느꼈기 때문에 내린 결론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진단은 변법운동 당시에는 올바른 결정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이후 사상계의 상황이 급격히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입헌군주제를 고수하며 복벽운동에 가담하는 등 시대착오적인 정치행위를 하도록 만들었다. 한 시대의 끝에 서있던 개혁자가 새로운 시대의 보수주의자로 돌아선 것이다.


   강유위의 철학과 사상은
, 바로 이런 의미에서 그 의의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사실상 유학에 기반을 두고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고, 이를 통해서 서양의 논의를 수용하려고 노력한 마지막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의 정치적 동지면서 동시에 학문적 동반자이기도 한 양계초(梁啓超)는 일본으로 망명한 이후 일본을 통해 수입된 서양사상에 강유위보다 더 많이 경도되었으며, 이후의 학문 세대들은 서양의 학문에 훨씬 더 개방적이고 유학을 배척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그의 사상은 대동서를 통해 동아시아와 서양의 유토피아 사상을 결집한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동아시아의 전통적 지식의 세대의 마지막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예비한 인물의 전형으로서 그 의의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서울대학교동양사학연구실, 강좌중국사Ⅴ』, 지식산업사, 1989

-------------------, 강좌중국사Ⅵ』, 지식산업사, 1989

엄복, 천연론(양일모 등 옮김), 소명출판, 2008

조경란, 중국 근현대 사상의 모색, 삼인, 2003

코지마 신지(小島晋治마루야마 마츠유키(丸山松幸), 중국근현대사(박원호 옮김), 지식산업사, 1998

풍우란, 중국철학사 하(박성규 옮김), 까치,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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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마음의 철학 숙제>

 

   철학에서는 인간의 존재론적 위치가 언제나 문제가 된다. 인간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 각각의 속성은 무엇이며 인간 내부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 인간과 다른 동물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리고 그 차이는 위계를 결정할 정도로 우월한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런 문제에 대한 답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일원론이며, 다른 하나는 이원론이다. 인간은 오직 정신적인 존재라고 하거나 또는 물질적인 존재라고만 말할 때는 일원론적인 입장에 서게 되며, 정신과 물질이 결합되어 있는 존재라고 말할 때 이원론이 된다. 철학사를 살펴보았을 때 이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긴 했지만, 그 입장들 모두를 이 두 입장이 여러 가지로 변형된 형태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과학이 발달한 이후, 인간의 존재론적 위치와 그 속성에 대한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포착되지 않는 존재들은 미신과 독단으로 간주되어 존재에 대해 논하는 철학의 영역에서 더 이상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기존에 영혼의 기능이라고 생각했던 여러 기능들이 물리적 기능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별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위치에는 의문부호가 찍힐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우연히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존재에 불과하며, 단순히 다른 종들과 수많은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세기말의 과학기술은 여기에 논쟁적인 의문을 하나 더 덧붙인다. 과연 인간의 존재가 그 정도라면, 그와 비슷한 혹은 똑같은 존재를 인간의 손으로 창조할 수 있지는 않을까? 물리적 배열만 동일하게 갖춘다면, 우리가 충분히 인간으로서 인정할만한 존재들이 탄생하지는 않을까? 또한 물리적으로 동일하지 않더라도(즉 세포로 이루어져있지 않더라도 또는 유기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적절한 기능과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간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것과 같은 존재들. 그리고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어떤 것들을 더 개발해야하며 또 해명해야 하는가? 이런 기계를 실제로 구현해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적어도 이런 의문에 대한 이론적인 해답은 이미 나온 듯하다. 단정적으로 말해서 이런 기계는 가능하며, 또한 그들을 인간과 다른 - 열등한 존재라고 보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현재까지는) 없다.

이러한 발상의 기본적인 전제는 형이상학적 유물론이다. 만약 이 세계에 물질 이외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고, 인간의 능력 가운데 어떤 것들이 그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의 부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면, 기계는 영원히 인간과 비슷한 능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이 그 다른 차원의 세계에 속하는 존재를 창조할 수 없으며, 기계란 물질적인 부분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생각은 너무나 일반적이기 때문에 의문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또한 두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데, 차원 사이를 이동하거나 간섭할 수 있는 존재는 또한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는데에도 매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형이상학적 이원론은 더 이상 설득력을 지니지 않는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적 유물론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으며, 이에 따르면 인간은 여러 물질로 구성된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 과정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결국 다양한 물질의 운동으로 환원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능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이성을 지목하였다. 이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또 그 기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이 합리적-논리적 추론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은 이 모든 의견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성을 추론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추론이란 다름아닌 계산이다. 그 계산의 대상이 숫자가 아닌 언어라는 점에서 복잡함이 가중될 뿐, 그 과정은 거의 동일하다. 이미 기계는 인간의 계산의 능력을 뛰어넘은 상태이다. 매체의 발달, 프로그래밍 기술의 발달로 이러한 계산은 그 영역을 더욱 다양하게 확대해 나가고 있다.

감정이나 의지 등 인간이 지니고 있다고 간주되는 다른 능력들도, 인간이 지니고 있는 신경체계를 분석함으로써 얼마든지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외부로부터 아무런 자극이 없는 세계에 살고있는 사람에게, 과연 이성이나 감정 또는 의지가 생겨날 수 있을까? 인간의 모든 능력이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본유관념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질문에 .’ 라고 답해야 하겠지만, 이는 상식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특별한 자극이 없이는 별다른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일상적 의미에서든 엄밀한 의미에서든)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했을 때에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 원인이 외부의 자극이며, 행동은 그 원인의 결과이다.

모든 인간들이 같은 자극에 다르게 반응한다고 말하며 그 원인이 사회나 제도 등 비자연과학적 요인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은 특정한 자극에 특정한 자극을 보이게끔 하는 프로그램과 절차로 환원될 수 있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주어져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교육 - 일종의 자기-프로그래밍 알고리즘을 통해 충분히 인간에 준하는 행동 또는 똑같은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이는 마치 자동청소기가 처음에는 아무런 정보도 주어져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작동을 시키면 자신이 가진 감각기관을 이용하여 알아서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면서 특정한 집 구조에 알맞은 청소를 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이것과 인간이 공간을 지각하는 과정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위와 같은 프로그래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감각체계를 분석해야 한다. 감각이란 모든 행동의 원인이다. 인간은 언제나 감각하고, 이를 통해 끊임없이 들어오는 정보를 쉬지 않고 분석하며 이에 대해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이 일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은 뇌와 신경체계이다. 인간의 행동은 신경체계에서 분비한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탐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뇌를 분석하여 그 기능과 작동의 체계를 알아내는 일이다. 만약 이것을 모방할 수 있다면, 인간은 인간과 동일한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유기체인가 혹은 금속과 전기선으로 이루어진 존재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이런 존재가 있는 세계는 얼마든지 상상이 가능하며, 또한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논증이 아무런 모순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기계와 다르다는 여러 논증들은, 사실 인간이 기계와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동어반복적인 성격을 다분하게 띈다. 이런 논증들은 필연적으로 기계는 인간과 같아질 수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또한 그 중요한 근거로 이성, 감정, 의지 등의 심리적, 내적 요소들이 동원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론적으로 자극과 반응, 그리고 특정한 자극과 특정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환원이 가능하며, 실제로도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서 인간의 흉내를 내는 것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따라서 인간에게 남은 과제는, 더 이상 이들이 인간과 다르다(는 말로 위계를 낮추)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이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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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황제들 - 모택동과 등소평 시대의 중국
해리슨 E. 솔즈베리 지음, 박월라.박병덕 옮김 / 다섯수레 / 199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09년 중국연구 과제>

 

중국의 역사는 끝없는 교향시다. 무대 위에 나타났다 사라져간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소리를 역사에 새기고, 그것들이 어우러져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모든 흔적이 악보 위에 글자로 남아서 뒷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다시 사람과 만나 독특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특히 그 가운데도 몸을 격정적으로 울려 큰 파장을 만들어내는 인물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에 비하여 사람들이 더 많이 말하고, 바라보며, 연구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후대에 자신을 남길 뿐만 아니라, 동시대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여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온전히 중국 안의 모든 사람에게 공히 인정받는 인물을, 황제라고 칭한다.

해리슨 E. 솔즈베리가 이 책에 새로운 황제들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바로 이런 까닭일 것이다. 그 울림이 어떤 성격이냐에 상관없이, 모택동과 등소평은 당대의 중국 모든 사람의 삶에 자신의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황제이다. 단순히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이전에 전근대 사회의 왕족들이 살았던 궁에 들어가서 살았기 때문에 황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다. 황제는 그보다 조금 더 깊고 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새로운 황제들은 모택동과 등소평을 중심으로, 그들에게 벌어진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여러 사건을 기술하여 보여주는 작업을 통해, 당시에 중국이 어떤 모습이었는가, 그리고 모택동과 등소평의 황제다운 모습이 어떤 식으로 중국의 역사, 자신들의 주변 인물, 그리고 그들과 같은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표현되었는가를 면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두 사람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기는 하지만, 서술된 양은 모택동에 대한 부분이 훨씬 많다. 이것은 그가 기존의 황제라는 상징에 더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모습이란, 다름아닌 상시적인 대중동원을 통한 변혁의 추구이다. 이것은 그가 역사에 등장한 이후부터, 죽는 그 당시까지 모택동이 선호하고 정치하는 방법으로써 그의 행보에 항상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모택동은 결코 이런 동원방식을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에서 찾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가 선택하는 대중동원 방식은 중국의 혼란기, 혹은 왕조교체기에 보이는 전통적인 모습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보다 중국 역사에 훨씬 밝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사례를 훨씬 많이 접했고, 그것은 곧 중국에 맞는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는 수준을 명확히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마르크스-레닌처럼 혁명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들과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수호지의 양산박을 닮은 기지를 만들고, 노동자가 아닌 농민을 자신과 동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주 중국적인 방식으로 포섭하였다. 마치 직접 농사를 지으며 풍년을 기원하는 왕같이. 집권 후에는 대중 앞에 단순히 대표자가 아닌 지도자, 영도자로서 자신을 나타냈다.

모택동과 그 시대, 그 지역을 같이 사는 사람들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바로 이것이, 그가 여러 부정적인 모습을 비추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요인이다. 전형적으로 중국의 민중들이 좋아했던 여러 왕조의 개창자들과 닮아있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날 새로운 세계를 약속하였고, 자신은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임을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정책을 제시하였고, 실천을 유도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꿈을 심어주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그것은 당대의 중국인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아무런 희망도 제시해줄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가 상징하는 것과 그의 실제 모습이 많이 떨어진 장면을 자주 보여준다. 특히나 인민공화국의 내전 승리 이후 최고 권력자로 우뚝 서는 과정은 그 괴리를 더욱 증폭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모택동의 결점이 아닌 황제의 이면으로서 묘사될 수 있다. 황제는 자신의 비전을 표방하는 것 못지 않게, 그것에 어긋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권력을 놓고 게임을 벌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황제의 모습은, 역사에서 보이는 권력암투의 술수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라고 지정했던 사람을 정적으로 몰아 축출하고, 때로는 죽였다. 팽덕회, 유소기, 임표가 그렇게 황제의 권위를 강변하는 도구로서 전락했다. 문화대혁명은 근대적인 동원체제를 적극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대중을 권력암투의 술수로서 끌어들이는 요소로서 이용하였다.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그는 엄청난 실패를 겪고도 다시 등장할 수 있었다.

이 경계가 바로 모택동의 능력이자 한계이다. 모택동의 황제와 같은 모습, 특히 대중동원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삼는 면모는 마치 모든 왕조의 창업자들이 그러하듯이, 어떤 국가를 새로 여는데 매우 탁월한 능력으로 중요시된다. 하지만 만들어진 정치체제를 유지하는데는 가장 나쁜 능력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미 혼란기에 빠져있을 때는 혼란 속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진보를 약속하는 것이 유능한 지도자로서의 모습이지만, 혼란기가 아닐 때는 의도적으로 혼란을 만드는 것으로써 발전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은 발전이 아니라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그리하여, 건국의 방식으로 그 이후를 도모하던 모택동은 점점 더 부정적인 면모를 드러낼 수 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그의 방식은 중국 현대사에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황제이기에 가능한 상처였고, 황제가 드러낸 상처이기에 더욱 더 깊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 흔적이 남았다. 경제정책은 대약진운동으로써 실패가 드러났고, 대중동원 노선의 총체적인 문제는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으로 부각되었다. 이는 모택동의 총체적인 실패를 의미하기도 한다.

안정과 발전의 책임은 등소평에게로 넘어간다. 모택동의 이념을 보수적으로 지키려는 사람들과, 안정과 발전의 원리에 대해 등소평 이상의 혁신을 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국을 유지해야 했고, 그것은 온전히 그의 재능이었다. 건국의 이념을 보수적으로 지키는 것이든, 거기에 총체적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든 안정과 발전이라는 말과는 근본적으로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이든 사회의 여러 면에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택동의 뒤를 사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등소평은 황제의 그늘에서 자신이 적통이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인증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는 황제가 아닌 다른 사람과 동일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대중으로부터 지도자로서 인정받을 수 없는 한 개인에 불과한 존재로 떨어지고 만다. 그것은 또 다른 혼란을 의미한다.

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등소평의 고민이다. 또한 등소평 이후에 중국을 담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이다. 이 화두가 모택동이 죽은 뒤의 중국을 만들어온 가장 큰 힘이며 동시에 가장 큰 짐이기도 하다. 이 갈등의 폭발이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한 천안문 사건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이 사건은 모택동의 그늘이었으며, 아직 그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사건이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중국은 이 모든 사건이 쌓여 만들어졌다. 그리고 마치 모택동이 역사서의 중국적 사례들을 선례로 삼았던 것처럼, 전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사건을 사례로 삼아 앞으로의 새로운 중국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것은 중국 앞에 놓여진 필연적인 과제이면서, 동시에 중국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을 할 수는 없더라도 가능성으로서의 중국을 바라보게 만드는 이유이다.

최근 중국에는 다시 모택동 열풍이 불고 있다. 등소평의 집권 이후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과 뼈저린 참회가 이어지면서 한동안 모택동은 쉽게 입에 올릴 수 없는 대상이었다. 중국인 전체의 트라우마로서 아주 깊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등소평과 그 이후 등소평이 내세웠던 미래에 대한 비판과 회의가 심각해지면서, 그 반대급부로서 모택동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런 흐름은 최근에 개봉한 건국 60주년 기념 영화 建國大業을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모택동으로, 대장정부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까지 다루고 있다. 정확하게 모택동이 건국의 주인공으로서 긍정적인 대중동원정치를 시행한 시기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중국을 이해하는 데 모택동과 초기 공산당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임을 시사하고 있다. 왜 현재와 같은 중국의 상황이 중국인들로 하여금 모택동을 떠올리게 만드는지, 모택동을 떠올리며 여기에 이입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비전은 무엇인지, 그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그 상황은 모택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단순히 모택동의 정치, 사회사상이나 철학의 체계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이런 경향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모택동의 전부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인 각자는, 사실 모택동을 통해서 다른 어떤 것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행복했다고 느꼈던 때, 그 구체적인 장면과 순간을 추억으로서 떠올리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사망한 지도자에 대한 범국민적인 지지는 좀처럼 생기기 힘들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은 구체적인 수준에서 재현되는 것이지, 사상과 철학을 논하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황제들에 나오는 모택동에 대한 기억, 그리고 모택동의 시대에 대한 기억이 아마도 중국인들이 떠올리는 구체적인 장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책은 인터뷰와 대담을 구성하여 이루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계층의 중국인들이 기억하는 모택동의 원형적인 모습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다. 모택동에 대한 기억은, 모택동이 세워놓은 추상적인 체계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이 책에 나온 여러 장면들처럼 단편적이지만 핵심을 반영한 사건에 대한 각인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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