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황제들 - 모택동과 등소평 시대의 중국
해리슨 E. 솔즈베리 지음, 박월라.박병덕 옮김 / 다섯수레 / 199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09년 중국연구 과제>

 

중국의 역사는 끝없는 교향시다. 무대 위에 나타났다 사라져간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소리를 역사에 새기고, 그것들이 어우러져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모든 흔적이 악보 위에 글자로 남아서 뒷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다시 사람과 만나 독특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특히 그 가운데도 몸을 격정적으로 울려 큰 파장을 만들어내는 인물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에 비하여 사람들이 더 많이 말하고, 바라보며, 연구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후대에 자신을 남길 뿐만 아니라, 동시대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여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온전히 중국 안의 모든 사람에게 공히 인정받는 인물을, 황제라고 칭한다.

해리슨 E. 솔즈베리가 이 책에 새로운 황제들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바로 이런 까닭일 것이다. 그 울림이 어떤 성격이냐에 상관없이, 모택동과 등소평은 당대의 중국 모든 사람의 삶에 자신의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황제이다. 단순히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이전에 전근대 사회의 왕족들이 살았던 궁에 들어가서 살았기 때문에 황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다. 황제는 그보다 조금 더 깊고 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새로운 황제들은 모택동과 등소평을 중심으로, 그들에게 벌어진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여러 사건을 기술하여 보여주는 작업을 통해, 당시에 중국이 어떤 모습이었는가, 그리고 모택동과 등소평의 황제다운 모습이 어떤 식으로 중국의 역사, 자신들의 주변 인물, 그리고 그들과 같은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표현되었는가를 면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두 사람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기는 하지만, 서술된 양은 모택동에 대한 부분이 훨씬 많다. 이것은 그가 기존의 황제라는 상징에 더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모습이란, 다름아닌 상시적인 대중동원을 통한 변혁의 추구이다. 이것은 그가 역사에 등장한 이후부터, 죽는 그 당시까지 모택동이 선호하고 정치하는 방법으로써 그의 행보에 항상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모택동은 결코 이런 동원방식을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에서 찾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가 선택하는 대중동원 방식은 중국의 혼란기, 혹은 왕조교체기에 보이는 전통적인 모습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보다 중국 역사에 훨씬 밝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사례를 훨씬 많이 접했고, 그것은 곧 중국에 맞는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는 수준을 명확히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마르크스-레닌처럼 혁명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들과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수호지의 양산박을 닮은 기지를 만들고, 노동자가 아닌 농민을 자신과 동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주 중국적인 방식으로 포섭하였다. 마치 직접 농사를 지으며 풍년을 기원하는 왕같이. 집권 후에는 대중 앞에 단순히 대표자가 아닌 지도자, 영도자로서 자신을 나타냈다.

모택동과 그 시대, 그 지역을 같이 사는 사람들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바로 이것이, 그가 여러 부정적인 모습을 비추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요인이다. 전형적으로 중국의 민중들이 좋아했던 여러 왕조의 개창자들과 닮아있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날 새로운 세계를 약속하였고, 자신은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임을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정책을 제시하였고, 실천을 유도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꿈을 심어주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그것은 당대의 중국인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아무런 희망도 제시해줄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가 상징하는 것과 그의 실제 모습이 많이 떨어진 장면을 자주 보여준다. 특히나 인민공화국의 내전 승리 이후 최고 권력자로 우뚝 서는 과정은 그 괴리를 더욱 증폭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모택동의 결점이 아닌 황제의 이면으로서 묘사될 수 있다. 황제는 자신의 비전을 표방하는 것 못지 않게, 그것에 어긋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권력을 놓고 게임을 벌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황제의 모습은, 역사에서 보이는 권력암투의 술수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라고 지정했던 사람을 정적으로 몰아 축출하고, 때로는 죽였다. 팽덕회, 유소기, 임표가 그렇게 황제의 권위를 강변하는 도구로서 전락했다. 문화대혁명은 근대적인 동원체제를 적극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대중을 권력암투의 술수로서 끌어들이는 요소로서 이용하였다.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그는 엄청난 실패를 겪고도 다시 등장할 수 있었다.

이 경계가 바로 모택동의 능력이자 한계이다. 모택동의 황제와 같은 모습, 특히 대중동원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삼는 면모는 마치 모든 왕조의 창업자들이 그러하듯이, 어떤 국가를 새로 여는데 매우 탁월한 능력으로 중요시된다. 하지만 만들어진 정치체제를 유지하는데는 가장 나쁜 능력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미 혼란기에 빠져있을 때는 혼란 속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진보를 약속하는 것이 유능한 지도자로서의 모습이지만, 혼란기가 아닐 때는 의도적으로 혼란을 만드는 것으로써 발전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은 발전이 아니라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그리하여, 건국의 방식으로 그 이후를 도모하던 모택동은 점점 더 부정적인 면모를 드러낼 수 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그의 방식은 중국 현대사에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황제이기에 가능한 상처였고, 황제가 드러낸 상처이기에 더욱 더 깊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 흔적이 남았다. 경제정책은 대약진운동으로써 실패가 드러났고, 대중동원 노선의 총체적인 문제는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으로 부각되었다. 이는 모택동의 총체적인 실패를 의미하기도 한다.

안정과 발전의 책임은 등소평에게로 넘어간다. 모택동의 이념을 보수적으로 지키려는 사람들과, 안정과 발전의 원리에 대해 등소평 이상의 혁신을 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국을 유지해야 했고, 그것은 온전히 그의 재능이었다. 건국의 이념을 보수적으로 지키는 것이든, 거기에 총체적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든 안정과 발전이라는 말과는 근본적으로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이든 사회의 여러 면에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택동의 뒤를 사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등소평은 황제의 그늘에서 자신이 적통이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인증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는 황제가 아닌 다른 사람과 동일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대중으로부터 지도자로서 인정받을 수 없는 한 개인에 불과한 존재로 떨어지고 만다. 그것은 또 다른 혼란을 의미한다.

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등소평의 고민이다. 또한 등소평 이후에 중국을 담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이다. 이 화두가 모택동이 죽은 뒤의 중국을 만들어온 가장 큰 힘이며 동시에 가장 큰 짐이기도 하다. 이 갈등의 폭발이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한 천안문 사건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이 사건은 모택동의 그늘이었으며, 아직 그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사건이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중국은 이 모든 사건이 쌓여 만들어졌다. 그리고 마치 모택동이 역사서의 중국적 사례들을 선례로 삼았던 것처럼, 전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사건을 사례로 삼아 앞으로의 새로운 중국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것은 중국 앞에 놓여진 필연적인 과제이면서, 동시에 중국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을 할 수는 없더라도 가능성으로서의 중국을 바라보게 만드는 이유이다.

최근 중국에는 다시 모택동 열풍이 불고 있다. 등소평의 집권 이후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과 뼈저린 참회가 이어지면서 한동안 모택동은 쉽게 입에 올릴 수 없는 대상이었다. 중국인 전체의 트라우마로서 아주 깊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등소평과 그 이후 등소평이 내세웠던 미래에 대한 비판과 회의가 심각해지면서, 그 반대급부로서 모택동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런 흐름은 최근에 개봉한 건국 60주년 기념 영화 建國大業을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모택동으로, 대장정부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까지 다루고 있다. 정확하게 모택동이 건국의 주인공으로서 긍정적인 대중동원정치를 시행한 시기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중국을 이해하는 데 모택동과 초기 공산당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임을 시사하고 있다. 왜 현재와 같은 중국의 상황이 중국인들로 하여금 모택동을 떠올리게 만드는지, 모택동을 떠올리며 여기에 이입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비전은 무엇인지, 그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그 상황은 모택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단순히 모택동의 정치, 사회사상이나 철학의 체계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이런 경향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모택동의 전부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인 각자는, 사실 모택동을 통해서 다른 어떤 것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행복했다고 느꼈던 때, 그 구체적인 장면과 순간을 추억으로서 떠올리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사망한 지도자에 대한 범국민적인 지지는 좀처럼 생기기 힘들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은 구체적인 수준에서 재현되는 것이지, 사상과 철학을 논하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황제들에 나오는 모택동에 대한 기억, 그리고 모택동의 시대에 대한 기억이 아마도 중국인들이 떠올리는 구체적인 장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책은 인터뷰와 대담을 구성하여 이루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계층의 중국인들이 기억하는 모택동의 원형적인 모습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다. 모택동에 대한 기억은, 모택동이 세워놓은 추상적인 체계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이 책에 나온 여러 장면들처럼 단편적이지만 핵심을 반영한 사건에 대한 각인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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