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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Feynman
짐 오타비아니 지음, 이상국 옮김, 릴런드 마이릭 그림 / 서해문집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알라딘 신간평가단 9월 주목신간> 

  어려운 학문을 하면서 복잡하게 살았던 사람의 삶을 쉽게 표현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파인만의 삶을 만화로 그려낸다는 것은 바로 그런 작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쉽게 쓰여진 책이라고 해도, 속된 말로 ‘문돌이’, 그것도 문돌이 중에서도 문돌이라는 철학도인 내게는 그의 물리학 강의가 넘어설 수 없는 커다란 벽이었다. 그런 책을 쓴 사람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만화]라. 어떤 느낌일지, 게다가 이번 신간평가단을 진행하면서 가장 처음 선정된 과학 분야의 도서인지라 더욱 흥미로운 눈길로 살펴보았다.

  파인만의 삶을 만화로 그려내는 데는, 내 생각에 풀어야 할 숙제는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첫째는 그의 (유쾌했다고 널리 알려진) 복잡다단한 삶을 간명하게 잘 풀어낼 것, 그리고 둘째는 그가 과학분야에서 정확하게 어떤 업적을 남긴 것인지 정확하게 표현할 것. 이 책은 과학 분야로 분류되는 책이긴 하지만 결국 과학이론에 대한 책이 아니라 과학자의 삶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둘째 문제는 일단 뒷전으로 미뤄둔 듯 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물론 그가 강의하는 것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나오는 여러 대사들은 다소 전문적이며, 이 부분을 내가 알아듣기에는 조금 버거운 면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그가 직접 내뱉은 말에서 그리고 그의 주변 사람들이 들려주는 말을 바탕으로 각색된 삶의 주요한 사건들이 그려져있다. 미국식 카툰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책을 읽다시피 그림을 뜯어보아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비교적 평이하게 그의 삶을 그려낸 듯 하다.

  이런 만화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역할이 있다면, 아마도 만화가 아니라 글로 그의 삶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아무래도 그림의 함축성보다는 글의 세밀함이 삶에 대한 분석과 감상으로는 더욱 알맞을 매체일테니 말이다. 이 만화의 뒤에 제시된 여러 참고문헌들은, 자신들이 이 만화를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그리고 이 만화를 읽은 뒤에 또 어떤 책들을 읽으면 좋은지에 대해 괜찮은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확실히 그의 삶에는 특이한 부분들이 많았다. 주로 내 눈에 띄는 부분들은 그가 사회적 상황과 어떻게 상호작용하였는지, 그리고 과학 이외의 학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하는 것들이었다. 특히 그 어떤 계기보다도, 주목받은 천재과학자이지만 동시에 그 유능함 때문에 맨해튼 프로젝트에 개입하기도 했던 사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과연 그 만화에 기술된 것처럼, 단순히 독일보다 먼저 원폭을 개발해야 하고 원폭의 강대함을 독일이 선취해서는 안된다는 계산에서 그 연구가 시행되었던 것일까? 또 적어도 파인만이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까? 이것은 그가 직접 쓴 글과 여러 전기적 자료,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취합하면 대체로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화에서의 이 부분은 간단히 생략해버린다는 느낌이 강했다.

  또 다르게 주목한 부분은,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한 그의 시선이었다. 그는 나이가 한참 들기 전까지는 분명하게 과학 이외의 학문에 대해 흥미도 없었으며 그것들에 대해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 이 만화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내게는 철학을 오컬트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장면이 정말 화가 났다. 하지만 그 같은 자연과학자가 이런 시선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예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과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된 뒤에야 예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나아가서는 그 예술로 자연과학에 필요한 여러 창의적 아이디어들을 고안하거나 기술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그의 기본적인 태도는, 자연과학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다. 그의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아마도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

  이 책에서 단점을 꼽는다면, 각 연도 별로 많은 사건들을 기술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옮겨놓는데는 성공했지만 그의 삶에서 결정적인 것이라고 여겨질 것에 대한 주목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런 꼼꼼함이 약간은 만화 자체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삶에서 해마다 일어났던 일은, 이렇게 만화에서 다루지 않더라도 책에서도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의 연구방향 또는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국면들을 그려내는 것으로도 그의 삶에 대해 흥미를 일으키는 데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만화보다는 책을 읽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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