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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 - 현대 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 아우또노미아총서 27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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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측면

  이 글의 제목은 이 책의 내용을 환기시키기 위한 의문문이 아니다. 정말 인지자본주의가 무엇인가 물어보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인지자본주의를 초기 자본주의,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로 대표되는 산업자본주의에 이은 제3의 자본주의의 물결로서 정의하고 있으며, 이것으로 특징지어지는 사회에서 등장하는 여러 사회현상들을 마르크스의 『자본』을 해석하여 분석하고 있으며, 그것이 각 사회현상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적용해보고 있다. 

  그가 현재의 자본주의를 인지자본주의로서 규정하는 이론적 근거는 스피노자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기존의 자본주의 분석의 틀과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우, 잘 알려진 틀에 따라서 토대와 상부구조를 이원적으로 분리하고 그 각각에 대한 고찰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속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우 토대를 열심히 분석하고 상부구조의 여러 요소들을 토대로 환원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반대로 서구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는 독특한 흐름은 보통 상부구조가 어떻게 하부구조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기술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들이 대상을 바라보는 여러 측면들은 동일한 실재의 다양한 양태들이다. 그 가운데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실재의 속성이 사유라는 것과 그 양태가 물질이라는 것이다. 이 구조를 차용하면, 토대와 상부구조 역시 동일하게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두 측면일 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스피노자의 이런 이론적 측면은 마르크스주의에 두 가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자본주의는 이 세계(그리고 그것을 작동시키는 개인)를 지배하면서 물질적인 생산의 측면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통제하고 지배하는 영역은 실재 그 자체인데,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정신의 영역, 즉 인지의 영역까지 지배한다. 저자는 인지의 영역을 매우 넓게 잡고 있는데, 요약하자면 인간의 모든 정신적 활동이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길을 따라서, 그 정신적 활동은 역시 언제나 물질적 활동과 맞물려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흔히 심리철학에서 인지라고 부르는 그 개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헤겔이 말하는 정신의 활동에 더 가까워보인다. 이것은 일종의 통합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 안에서도 충분히 정신의 문제에 대해서 고찰할 수 있는 연합전선이다.

  둘째 가능성은, 서비스 노동에 대한 분석이다. 굳이 마르크스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자본주의가 진전함에 따라 상품생산노동에서 용역생산노동으로 노동의 구조가 변화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여전히 세계의 중심은 자연에 노동을 투여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이론, 즉 노동가치설에 대한 부정은 마르크스주의 이론 전체에 대한 부정과도 같을 만큼 그것은 그 이론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듯 이것은 19세기적 한계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포스트포드주의를 분석하는 이론적인 틀로서는 무언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이론은 여기에 대한 교정이다. 용역생산노동이 어디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 노동을 실재와 결합되어있는 일원론적 차원에서 고찰함으로써 노동가치설을 버리지 않고도 서비스노동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노동이 더 이상 사용가치와 잉여가치를 더한 고전적 판매가격에 따라 결정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노동 역시 노동시장이라는 영역이 새로 산출됨으로써 순전히 교환가치로서 평가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자연과 아무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용역생산노동에게 임금을 지급해야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그것의 수요와 공급이 분명히 창출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생산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수요가 있느냐가 그것이 노동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전술한대로 서비스노동이 임노동으로서 발돋움하게 되었다는 의미와, 동시에 노동시장 자체를 수요를 창출하는 자본(또는 자본가)이 결정하는 단계에 옴으로써 사회 전체가 자본(가)에게 더욱 충실하게 귀속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의미 또한 담고 있다.

  분명 이 책의 저자의 이러한 입장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에는 분명 정신적 측면 - 이 책의 용어에 따르면 인지적 측면 - 에서 약점이 있었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러가지 시도를 했다. 그것은 수정주의일 수도 있고,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일수도 있으며, 저자의 입장과 비슷할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면을 ‘인지자본주의’라는 말로 새로 정의할 만큼 정말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는가? 그것은 조금 의문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자본주의는 그 탄생에서부터, 아니 자본주의가 아니더라도 모든 경제체제는 언제나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정신적 측면들을 동반해서 사람들을 지배해왔다. 자본주의 경제는 그 시작에서부터 여러가지 이데올로기적 기제들이 그 체제를 잘 작동시킬 수 있도록 사람들을 여러 형태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것은 막스 베버의 말처럼 종교적 윤리일 수도 있으며, 아담 스미스가 말한 자유 속에 자리잡히는 질서의 원리에 대한 신뢰일 수도 있고, 또 그 밖의 다른 것일 가능성도 상존한다. 이러한 국면은 자본주의가 전개되는 곳곳에 배여있는 것이지, 현재 국면에서 그것이 유독 독특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인지자본주의’라고 정의하는 개념은, 사실 어떤 특정한 국면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자본주의 특유의 인지구조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더 옳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다보면 드는 느낌은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일종의 이론적 짜깁기. 내가 각각의 이론에 대해서 잘 모르는 탓도 있거니와, 사실 스피노자와 바렐라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는 것인지 대체 이 책만 보아서는 잘 모르겠다. 위에서 썼듯이, 그가 해석하는 바렐라의 인지 개념은 어떤 과학적 측면에 기반을 한 것이라기보다는 상당히 철학적인 수준의 논의인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내게는 헤겔의 내음이 더욱 많이 느껴졌다. 또한 다양한 사회학적, 철학적 분석이 인지자본주의라는 개념 아래 재배치가 되어있는데, 그 일관성을 잡아내기가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은 작업이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대체 인지자본주의란 무엇입니까?’  

 

실천적 측면

  만약 자본주의적 경제체제 내에서 우리가 인지적 측면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면, 그것은 용역생산노동이라는 독특한 노동의 형식일 것이다. 인지자본주의의 측면에서, 서비스 노동은 양가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삶의 위치가 불안정해지고, 언제나 비정규직 이상의 삶을 살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 이유는, 위에서도 기술했듯이, 철저하게 자본포섭적인 노동의 형식이기 때문에, 사회적 일자리 조절이 최대의 이윤을 목표로 삼는 자본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더 이상 고전적인 노동개념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가치창출이 가능한 영역으로서도 주목할 수 있다. 이 가치창출은 자본의 포섭을 당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이러한 노동의 조건 하에 놓인 사람들을 다중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이 다중들은 이런 조건 아래서 각각이 혁명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표면화되지 않으며, 가끔은 매우 산발적인 형태로 일어난다. 그 산발적인 형태가 곳곳에서 출현할 때, 그것이 바로 그 조건이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는 형태까지 진행되었다는 징후이며 동시에 혁명의 전조이기도 하다. 그는 이 틀거리를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혁명적 시위나 운동들에 적용하여 고찰하고 있다. 그 핵심은, 사람들의 인지구조 그리고 자본주의 자체에 내재하고 있다고 간주되는 모순 그 자체가 폭발하는 것, 그리고 그 폭발을 이끌어내는 주체 개개인의 혁명적 능력에 대한 신뢰인 것 같다.

  이런 논의가 정말 옳은 해석인가 하는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정말 이런 이론구조를 따라간다면 혁명은 발생하는 것일까? 나는 여기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의 입장을 요약하자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예견한 토대에서부터 폭발하는 모순이 상부구조에 영향을 주어 만들어지는 혁명적 정국이라는 것은, 사실 그 모순의 폭발이 상부구조라고 부르는 인지의 영역에서도 동시에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에 경제 자체의 파괴적 징후는 곧 인지구조에서의 혁명의 징후이기도 하다는 어떤 희망적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적으로, 자본주의가 그만큼이나 만만한 체제이던가, 가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오히려, 저자의 입장은 그의 이론적 분석의 연역적 결론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희망을 투영한 어떤 미래상같다는 느낌을 더욱 많이 받았다. 그와 반대로 해석하자면, 물질구조를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인지구조 또한 아주 강력하고 근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결론에 다시 이를 수 있다. 또한 그 인지구조는 경제위기 자체를 자본의 순환에 따르는 단순한 국면으로 만들어버리거나, 혹은 월가와 미국의 부동산 업자들이 결탁하고 세계적으로 자본을 수집해 돈잔치를 벌인 정도에 불과한 사건으로 축소시킬 수도 있다. 또한 현재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이 되고 있기도 하다. 자본 자체의 문제는 윤리의 문제로 환원되거나 치환되거나 대체되고, 자본의 문제는 감추어진다. 사실 그것이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인지구조이기도 하다.

  게다가 실제 그것이 어떤 모순을 사람들의 내부에서부터 폭발시키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폭발은 양태의 측면 혹은 토대의 측면에서 다시 가로막혀 좌절하는 경우 또한 숱하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희망사항을 최근의 등록금 시위나 서남아시아 이슬람 국가들의 민주주의 혁명 등에서 보려고 하는 듯 하지만……. 리비아는 여전히 내전중이고, 시위에 나가야할 많은 다른 학생들은 역시나 시위보다는 아르바이트를 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중의 힘을 믿기보다는, 혁명적 지도자나 전위세력의 힘을 더욱 신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욱 큰 효과를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짧은 내 생각이다. 

 

덧댐 : 자본론 분석에 대하여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론가들에 대하여 거의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술술 읽어내려가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대해서 이해하기도 대단히 힘들었습니다. 특히나 아직 자본론을 직접 읽어본 적은 없고 입문서 정도만 뒤적거려본 정도로서는, 자본론을 상세하게 인용하면서 지대와 이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논하는 장에서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느낌만 들었고요. 

서평으로 적은 이 글은, 그래서 이 책의 내용에서 내가 알 수 있는 것, 아는 이론가들에 대해서만 서술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이론적 학습의 수준을 더욱 높인 뒤에, 다시 도전해봐야 하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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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meral 2011-08-3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 내용을 메일로도 보내드렸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웹진 <자율평론>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정연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박효진 님이 작성하신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서평글을 오는 9월 초 발행 예정인 <자율평론> 36호 게재할 수 있을지 문의를 드립니다.

<자율평론>은 2002년부터 지금까지 총 35호의 웹진을 발행한 계간 정치철학 웹진이며,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는 copyleft 웹진입니다. 그간 <자율평론>에 게재되었던 모든 원고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aam.net/xe/autonomous_review

<자율평론>은 인문학 강좌 공간인 다중지성의 정원, 독립 출판 활동을 하는 갈무리 출판사, 세미나 공간 다중지성 연구정원의 마디 단위로, 위 공간들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지적 활동들의 성과들을 모아내고, 우리들의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원고료를 드리기는 어렵지만, 게재를 허락해 주신다면 웹진이 발행되는 대로 PDF 파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모쪼록 긍정적인 검토를 부탁드리며, 더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다면 아래 연락처로 언제든지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자율평론> 편집위원회 김정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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