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너는 커서 뭐가 될래?
-<태풍태양>을 보다

* 소요네 집으로 달려가는 스케이터들.
생에 있어 빛나던 한 순간을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엊그제 청소를 하면서 발견한 사진들. 10년도 더 된 사진 속에는 열일곱 빛나던 한 때가 초롬히 새겨져 있었다. 그때는 내가 청춘인지 몰랐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내가 청춘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는다. 그래서 나는 성장영화를 본다.
<고양이를 부탁해>처럼 이번 영화도 난리를 치면서 예매를 하고 보았으나, 역시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화면과 사운드가 0.1초씩 일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아주 좋았다. 성장영화에는 일단 별 세 개부터 주고 들어가는 습관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영화는 단순히 말하면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청년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복잡하게 말해도 그런 얘기이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의 가슴 속에 있는, 혹은 있었던 스케이트에 관한 영화란 말이다.
네 스케이트는 잘 지내?
감각적인 카메라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고,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건들거리며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네 스케이트는 잘 지내?
실은, 성장영화를 보는 재미는 쓰린 가슴을 쓸어내리는 데 있다.
까짓 스케이트가 대수냐며 그냥 지나쳐온 날들에 대한 후회, 빛났던 그날들에 대한 소회,
성장영화가 아닌 영화가 있겠느냐마는
어떤 영화를 보든, 아주 좋게 말하면,
등장인물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고, 극 자체도 성장하고, 그도 안되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라도 성장을 하게 되는 법이니,
따지고 보면 성장영화가 아닌 영화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굳이 "성장영화"로 분류되는 영화들이 있는 것은 유치해보일 수 있는 실수와 고민은 여과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
그리하여 성장영화를 보려거든 마음을 열고 보아야 할 일이다.
소년, 너는 커서 뭐가 될래?
영화 안에 소요가 있다. 소요는 나이상으로는 사춘기가 끝나갈 무렵이지만, 극상에서는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것 같다.
그리고 모기는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나이에 비해서 참 늙었다. 갑바도 그렇다.
같은 목적지를 향하더라도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같은 스케이트를 품었다고 해서 같은 곳으로 가라는 법은 없다.
혼자 가면 그걸 모른다. 여럿이 어울려 가다 보면 그걸 알게 된다. 같은 곳으로만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 또한 한 가지 길을 정하고, 그것이 나에게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또 새로운 길을 만나기도 하였다.
끊임없이 소통을 하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그 자체가 고통이기도 하지만 즐거움이기도 하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게 될 것이다.
영화의 끝에 소요는 혼자 길 위에 섰다.
소요는 이제 다 컸지만, 다시는 그때처럼 혼란스럽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바닥까지 가 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나의 스케이트
몇 년 전에 나에게도 인라인스케이트가 있었다. 그때 사귀던 박과 함께 구입했던 것이다.
작년 12월 이후로 나에겐 스케이트가 없다. 그것은 박의 집에 있기 때문이다.
스케이트를 챙겨오지 못한 것은 이렇게 두고 두고 후회가 된다. 별별 순간에 후회가 다 된다.
한낮의 극장은 조용했고, 극장을 빠져나오니 햇살이 눈부셨다.
- DJ Soulscape-Love is A Song. * Lovers/2003
- 소요와 모기가 웃통을 벗은 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때 삽입되었을 지도 모르는 음악.
* 덧붙임
1. 2005년 6월 6일 오후 두시 사십분 김과 함께 태풍태양을 보았다. 태풍태양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다려왔던 터였다.
2. 나는 실은 삼년 이내로 서울을 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에 나오는 콘크리트들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영화안에서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김상혁이 콘크리트에 물을 붓는 장면과 그 애가 그랬는지 다른 애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콘크리트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의미는 너무나 달라진다.
3. 스케이트 타는 장면들의 카메라워킹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