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외면한 채, 조용히 날들을 보냈다. 금요일에는 케이블 티비에서 해주는 코요테 어글리를 보고, 지직거리는 비디오테잎으로 러브 액추얼리를 보았다. 토요일에는 자다, 자다 잘 수가 없어서 저녁에 부업을 하나 하고 돌아왔고, 또 다시 걸려올 전화가 두려워 전화기를 꺼 놓았다. 오늘 역시, 자다 자다 더 이상 잘 수가 없어서 오래 밀린 설거지를 하고 밥을 하고, 반찬을 해서 동생이랑 먹었다. 그리고도 할 일이 없어서 동생 간식을 만들어 주고, 한 달 끊어 놓고 한 번 밖에 가지 않은 헬스장에 갔다. 내일이 마지막 날이란다.
사실, 정신적으로 좀 피곤하다. 대강 지난 수요일 만났던 이씨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는 오년도 더 지난 기억을 안고 불현듯 나를 찾아왔다. 그에게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좀 불안했다. 그가 다시 내 일상으로 들어올까봐. 다행히 그는 오년 전의 기억만 풀어 놓은 채, 아마 어제 시골로 떠났을 것이다. 그와 만나던 날, 새벽에 장염때문에 응급실에 갔었다는 그와, 미친듯이 술을 마셨다. 새벽 네 시가 넘은 시간, 티비에만 있던 서울역 쪽방으로 그는 간다고 했다. 그를 보내 놓고, 장충동 어딘가 매끈한 건물의 벽을 잡고 한참이나 토악질을 했다. 돌아오는 길엔 나에게 말걸지 않았던 모든 것들과 대화를 해댔다.
정리되지 않는 것은 그대로 두자, 자기 회피라고 해도 좋고, 욕심이 많아서라고 해도 좋다. 어쨌든 그때 정리되지 않은 것이 지금 정리될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나, 보고, 어쩌라고.
그날 이후로, 사실 편치 않다. 어설픈 방황을 하느라, 일도 밀려버렸고,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안은 채, 자다, 자다 더 잘 수 없는 주말을 보내고 말았다. 그가 그렇게 보낸 세월이 오년이라고 하니, 나의 오일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조금 전엔 엠비씨에서 하는 뮤직다큐멘터린가 뭔가 하는 것을 보았다. '하루'랜다. 건전하고, 촌스럽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조금 죄책감을 느낀다. 페이퍼를 쓰려고 하다가, 일주일 전에 김씨가 이번 주가 마지막 방송이라고 했던 게 떠올라 라디오를 켰다. 의식하던 그렇지 않던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매일 누군가와 헤어진다.
이씨야, 잘 가라. 가서 잘 살아라. 나도 한 번 잘 살아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