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
차윤정.전승훈 지음 / 지성사 / 199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이과 출신들은 무식하다' '교수회의를 하면 자연대, 공대 교수들은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더라 등등등
그런데 요즈음에는 뛰어난 필력을 자랑하는 자연계 학자들이 눈에 띈다. 박상진, 최재천,전영우, 이유미, 차윤정, 정재승 등 자기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감수성으로 자연과학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물리, 생물, 나무, 풀 이야기를 쉽게 하고 있다. 전문성에 글 솜씨까지 아이고 부러워라.

우리는 동물의 왕국, 내셔널 지오그래피, 기타 다른 특집 방송들에서 동물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식물의 한 생을 다룬 이야기는 동물들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다.
차윤정(공저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거의 혼자 쓴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은 신갈나무 투쟁기를 통해 신갈나무의 한 생과 그와 더불어 사는 식물 이야기, 숲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책머리에서는 존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정확한 이름 불러주기를 말한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배고픔을 덜어주는 식물들에 참꽃, 참나물, 참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참꽃, 참나물에 비해 참나무는 한가지 종의 나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참나무류의 여러 나무들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를 가리킨다. 이들 중에서도 숲의 주인으로 당당히 자리하는 참나무류의 대표적인 나무 신갈나무의 치열한 일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나무의 이야기를 딱딱하지 않게 신갈나무의 입장에 선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신갈 나무의 탄생과 성장, 죽음에 이르는 일대기를 소설처럼 쓰고 있다. 원래 이 책의 원고는 여느 과학책과 다르지 않았으나 독자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지은이의 뜻을 전하고 싶어했던 편집자가 전기형식을 빌린 새로운 형식으로 다시 써 볼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지은이는 편집자의 권유를 받아들여 생생한 신갈나무의 투쟁기를 그려냈다.

우리는 나무가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있다는 것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식물국회(식물처럼만 일을 해봐라)라는 치명적인 말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치열하게 투쟁하는가.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날라가기도 하고 무엇엔가 달라붙어 가기도 하고 맛있는 과육을 제공하기도 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기도 한다.
나무가 죽어서 남기는 나이테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기록하는가. 일제침략기에 나무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지 않는가. 우리 자생식물들의 학명에 나까이라는 일본 식물학자의 이름이 많이 붙었다는 사실을 알고 느꼈던 분노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비대해진 꽃송이를 자랑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장미에 대한 격한 이야기와 제철과일, 채소에 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끌고 단일품종 재배에 대한 위험도 경고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기근과 이디오피아의 기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일품종의 재배는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이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신갈나무이다. 그러나 신갈나무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숲에 사는 여러 식물들 또한 주인공이다. 그래서 신갈나무가 생을 다하고 죽어도 신갈나무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주인공들을 더욱더 풍부하게 해준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고 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숲은 결코 고즈넉한 쉼터가 아니라 역동적인 삶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숲에 다가서기 위해서 나무에게 말 걸기를 시작할 때 이 책을 읽고 식물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시작한다면 숲과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다는 말처럼 우리가 식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면 보이지 않았던 조그만 꽃들도 우리 눈에 보일 것이고 절대 구별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무들도 구별이 될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나무 구별에는 많이 서툴지만 예전에는 오로지 꽃으로만 구별을 했던 나도 지금은 잎도 한두장씩 따서 만져 보기도 하고 수피도 만져보면서 느끼기 위해 노력하니 그만큼 더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책 사이사이 식물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부분과 사진이 있어 전문용어나 이름과 실제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자생식물원이 있다. 어느 날 그곳을 관리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는데 자생식물에 대한 애정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종 수도 많지 않고 작게만 보이지만 그런 분들의 노력으로 자생식물이 곳곳에서 자라게 될 거라고 희망한다. 그리고 행정책임자들의 무지로 전혀 환경에 맞지 않는 수종의 나무들이 가로수로 선택되고 있다는 사실도 그 분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전문인력이 제 곳에 배치되어 그런 만행은 더 이상 없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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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바람 2005-02-1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숲에 대해, 식물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은데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제목이 특이해서 한 번 읽어봐야지 하면서 계속 안 읽고 있거든요.... 참, 오늘 제가 즐겨찾는 서재를 쭉~ 보다가 로자님 서재의 '빨간머리 앤' 사진이 눈에 띄어 들어와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