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 - 디즈니 문화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교육적 대안
헨리 지루 지음, 성기완 옮김 / 아침이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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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키, 미니, 플루토, 도날드 덕과 그의 조카들 휴이, 루이, 듀이. 어린 시절 즐겨봤던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들이다.  지금처럼 만화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않고 만화 하는 시간도 하루 3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때 디즈니 만화는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일요일 아침 디즈니 명작 만화는 하이디, 코난 등의 일본만화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공주가 나오는 만화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그림이 서구의 미인형 그림들이었기 때문에 예쁘다는 생각을 갖고 봤던 같다.
그런 만화를 즐겨보면서 디즈니 월드는 꼭 가보고 싶은 이상향--학생대백과에서 본 디즈니랜드의 코끼리(덤보) 놀이기구 타는 사진은 어린 시절 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다--이 되고 디즈니월드가 있는 미국은 세계 최고의 나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나라로, 그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함을 원망하면서 그렇게 자랐던 것 같다.  내 어린 시절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들에게 보여지는 만화영화, 책은 그저 단순한 만화 한편, 책 한 권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다 자신들의 의도를 마음먹고 풀어 논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헨리 지루는 순수함을 가장한 디즈니의 진짜 모습은 탐욕스러운 기업의 모습이라고 한다.                       
아이들 책을 보게 되면서 애니메이션 동화의 문제점과 더불어 디즈니 동화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편 동화의 축약, 다른 해석, 다른 결말, 정형화 된 주인공, 현란한 색의 그림까지 이 모든 것들 때문에 우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동화를 싫어한다. 그러면서 또 이런 말도 한다. 책의 정지화면은 그림이 빛을 흡수하고 채도의 변화 없는 원색만을 보여주지만 만화영화는 구성, 전개 방식도 뛰어나고 화면 또한 아름답다고. 그래서 우리는 별 생각 없이  <니모를 찾아서>를 보여주고 캐릭터 장난감을 사준다.

영화 보여주기를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에만 의의를 두기에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 가치관 이런 것들은 너무 강하다. 그래서 다른 진보적 문화비평가들처럼 헨리 지루는 경고한다. 디즈니 만화영화에 담겨진 인종차별, 여성의 수동적 역할, 아동에 대한 상업화, 더 나아가 보수적인 세계관을 심으려 하는 의도에 대해서 말이다.

디즈니 만화를 극장에서 처음 봤던 것이 미녀와 야수(1990년)였다. 감미로운 음악과 숲 속의 나뭇잎 하나 하나가 흔들거리는 멋진 장면들은 디즈니의 기술에 감탄하기에 충분했고 씩씩하고 자기주장 강한 벨이 너무 예뻐서 LP까지 샀던 기억이 있다. 그냥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던 영화 속에 그런 의도가 숨겨져 있다니... 가려 볼 줄 아는 안목과 비판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드림웍스는 슈렉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디즈니 영화나 캐릭터 상품들은 누구나 쉽게 접근 할 수 있다. 그들이 지향 하는건 백인 중산층들의 쉼 없이 소비하는 윤택한 생활이라고 하지만 그 캐릭터들은 너무나 우리들 가까이에 있다.                                미국에서는 디즈니 만화 벽화를 그린 유치원을 디즈니가 고소해 못 그리게 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디즈니는 너무너무 흔하다. 특히나 길거리에서 파는 옷을 보자. 디즈니 캐릭터들이 판을 친다.  그렇게 싼 맛에 사 입힌 아이 옷의 그림을 아이들은 보고자라고 그러면서 친근감을 느끼고 디즈니가 주고자 하는 그런 가치관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너무 큰 과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베트남전에 관한 영화를 보면 나와 백인 미군병사를 동일시하면서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을 한편 두 편 보다보면 전쟁으로 가장 고통받는 베트남 사람의 시선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되고 외관은 많이 달라 보이는 영화들도 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어느 정도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감독들이 만든 영화에서조차 베트남 사람들은 미국인에 의해 철저하게 타자화 되어있고 그들은 거의가 있으나마나한 존재들이다.
굿모닝 베트남이 디즈니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그 영화를 봤을 때도 알고 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책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로빈 윌리암스의 연기에 취해 베트남전쟁을 비판하는 영화라고 재미있게 봤는데 지루의 구체적인 분석을 보니 역시나 뭔가를 가장한 오락영화였던 것이다.

지루는 공교육 붕괴와 모든 공공부문의 약화를 경고한다. 공공의 것이 약화되었을 때 그 피해는 소수민종, 하위계층 만이 받는 것은 아니다. 소비행위가 주는 쾌락과 도피적 오락과 기업의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에 사회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현실을 경계한 것이다. 지루는 기업 귀족 디즈니에 대항하기 위해 학부모, 교육가, 문화활동가, 일반인들의 강력한 연대와 비상업적이고 비영리적인 공공영역 확대를 위한 다각적 활동과 독립 미디어가 상업적인 영역을 벗어나 성장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디즈니가 주는 메시지를 비판 할 수 있고 복합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를 이해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 습득을 위해 비상업적인 공공영역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한다.

디즈니는 공공부문을 약화시키고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지향점은 백인 충산층 가정이다. 디즈니의 모든 전략은 백인 중산층들이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게 하고 더 나아가 사회성원들의 가치관까지 혼란스럽게 한다. 그리고 중산층은 더욱 더 보수가 된다. 자신들의 것은 하나도 잃지 않으려 하고 소수민종, 하위계층을 사회악으로 여기고 공화당에 투표를 한다. 그러고 보니 디즈니와 공화당 조지 부시는 닮지 않았는가?

지루는 비판적 의식을 가르치는 공공영역을 창조하고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다양한 공공영역과 연관된 민주적인 미디어 체계를 창조하기 위한 자원을 제공하기 위해 디즈니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하자고 한다.
<디즈니의 순수함과 거짓말>은 긍정적으로만 보기 쉬운 산학연대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자본주의 이념을 민주주의의 이상으로 인식하게 하는 탐욕스런 기업들의 숨겨진 본심을 날카롭게 지적해내고 있다. 지루가 강조하는 연대의 중요성, 공개적인 토론, 비판능력을 길러내는 충분한 학습, 공공영역의 강화와 확대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디즈니가 제 3세계나 우리나라에서는--신식민지건 반식민지건 종속된 어떤 형태건--문화제국주의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우리식대로 디즈니를 해석하고 대안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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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0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먹고 쓰셨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