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 왕과 사대부, 그리고 사관마저 지우려 했던 조선 최초의 자유로운 사상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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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이덕일 지음, 다산초당, 2021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지되고, 300년이 지나 후손이 조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린다면 필시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었거나, 여전히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이 생겨 침묵을 강요당한 것이 아닐까?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지된 사람은 조선 유학자 윤휴이다. 그의 후손은 300여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조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해도 어떤 후손은 조상에 대해 말하기를 꺼렸다. 그래서 윤휴의 일생을 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300여 년 전에 사형당한 한 선비의 궤적을 추적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직도 윤휴를 다시 보려는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현실의 힘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윤휴의 일생을 추적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현대사로 연결된다.(14)

아무리 다른 당파라도 공작 정치로 무고한 남인들을 죽음으로 몬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젊은 서인들이 소론이 되고, 정치 공작을 옹호한 서인 중진들이 노론이 되었다. 이후에도 노론은 자신들과 다른 정견을 가진 국왕 경종을 독살하고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등 정치 공작을 자행했다. 그러면서 윤휴의 북벌론을 송시열 등이 주장한 것으로 역사 바꿔치기를 시도했다. 그렇게 노론은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집권하고, 조선이 멸망할 때는 일제에 가담했다. 그렇게 지금도 국사 교과서는 북벌의 자리에 윤휴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송시열의 이름을 올려놓았다.(396)


조선 시대 막강한 권력을 거머쥔 서인들에 맞선 유학자 윤휴. 서인은 주희의 해석이 절대적이라는 믿음으로 주희와 다른 해석을 용납하지 않았다. 반면 윤휴는 주희와의 다른 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주희가 정리한 중용과 대학도 얼마든지 다르게 분류하고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인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권력에서 몰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목숨을 끊기에 이른다.


군주, 사대부, 백성으로 이어지는 신분제 사회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서인들과 군주와 백성만 있기에 사대부의 특권을 없애려는 청남의 대립은 서인들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집권하고, 일제에 가담하기도 했다 한다. 국가의 안위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를 우선했던 결과가 나라를 잃게 한 단초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


옛날 스승과 제자들도 묻고 대답하는 도리가 있었다. 옛날에 물은 것은 행하려고 묻는 것이었는데 오늘날 묻는 것은 단지 알려고만 하는 것이다.() 묻고 대답하는 데 있어 옛날과 지금이 다른 것이니, 스승과 제자들은 각자 경계할 줄 알아야 한다.(73)


예론은 흔들리는 사회 질서를 양반 사대부의 계급적 이해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김장생, 송시열 등이 주희를 절대화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주희 성리학에는 양반 사대부의 계급적 특권을 절대시 할 수 있는 사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75~76)


<중용><대학>, <논어>, <맹자>와 더불어 사서라고 높여지지만 <논어>, <맹자>와 달리 고대부터 유학의 경전은 아니었다. <중용><대학>은 원래 <예기> 49편 중의 한 편씩이었는데, 남송의 주희가 따로 떼어내어 독립된 책으로 만들어 <논어>, <맹자>와 같은 사서의 반열에 올린 것이었다.(76)


서인들은 이율배반적이었다. 왕실에는 사가의 예법을 적용하면서 사대부들의 계급적 이익은 더욱 강화하려고 한 것이다. 서인들이 조선 후기 성리학의 중심 이론으로 예론을 가져간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93)


윤휴는 선대 왕인 효종과 현종의 유지이기도 한 북벌을 주장한다. 당론으로 북벌을 주장하면서도 실제 실행에 옮기지 않는 서인들과 달리 윤휴는 제도를 정비하고 실력있는 무인을 뽑아 청을 선제 공격하자고 주장한다. 청의 남쪽에서 반란(삼번의 난)이 일어나고 있으니 삼번과 대만()과 협력하면 청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윤휴의 상소를 <대의소>라고 부르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대의는 북벌을 뜻했다. 윤휴의 대의소는 북벌을 주장하는 상소였다. 그것도 때를 기다리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북벌하자는 상소였다. 지금까지 북벌은 서인의 당론이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북벌을 주장하는 서인 실세는 아무도 없었다. 서인에게 북벌은 당의 선명성을 과시하는 구호에 불과했다. () 말로만 북벌을 내세워 조선국왕을 압박하는 한편 백성들에게 군림하는 것이 서인의 당략이었다. 그런데 윤휴가 북벌 대의소를 올리자 자신들의 이중성이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26)

때가 왔는데도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도리어 어지러움을 당하게 되고 하늘이 주는데도 가지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는다(時至不斷, 反受其亂, 天與不取, 反受其殃)”(54)(시지불단, 반수기란, 천여불취, 반수기앙)


윤휴는 조선 후기 사회의 병폐를 목도하며 사회 개혁을 주장했다. 지패법, 오가통법, 호포법을 정비해 민심을 바로잡아 북벌의 기틀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지패법은 당시 신분에 따라 호패의 재질을 달리 사용한 것을 모두 종이로 대체하자는 것이고, 오가통법은 행정단위를 정하는 것으로 신분의 구분 없이 주변의 다섯 가구를 묶어 한 통()으로 정하고, 다섯 개 통이 리(), 여러 개의 리는 면()으로, 여러 개의 면은 군현(郡縣)이 된다. 호포법은 지패법과 오가통법으로 확인된 16~60세 남성 모두에게 군납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당시 양반 사대부는 군포가 면제되고, 일반 백성은 죽은 사람과 아이에게도 군포를 물리고, 도망간 자의 군포를 이웃들에게 물리는 등 군포의 폐단을 없애자고 주장했다.


윤휴는 이런 시대를 개탄했다. 나라보다 당이 중시되는 시대, 군부보다 당수가 중시되는 시대, 국왕보다 스승이 중시되는 시대, 옳고 그름보다 유불리가 중시되는 시대. 윤휴는 이런 시대를 개탄했다. 전체주의적 억압이 판치는 사회에서 고립된 윤휴에게 유일한 피안의 언덕은 학문이었다.(109)


법이나 정책이 백성들 중심으로 재정비되어야 했다. 일반 백성들이 사대부에 비해서 법적, 정책적으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윤휴가 주창한 법이 지패법과 호포법이다.(197)


식구 수의 많고 적음과 재산의 빈부를 논하지 않고 다섯 집을 묶어 한 통을 만든다는 것이다. 빈자는 대부분 일반 백성이고 부자는 양반 사대부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양반과 상민을 구별하지 않고 무조건 이웃 다섯 집을 묶어서 한 통을 만든다는 방침은 획기적인 것이었다.(199)


양반 사대부들이 지배법에 반대한 이유는 반상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종이로 된 지패를 차고 다니게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 오가통법을 반대한 이유도 상민이 통수가 될 수 있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지패법은 호포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양반 사대부들이 강력하게 반대한 것이다. 지패법과 오가통법은 반드시 호포법과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패법과 오가통법은 시행하고 호포법은 연기되면서 혼선이 발생했다.(208)

호포법이란 모든 호가 군포, 즉 병역세를 납부하자는 법이었다. 조선은 16세부터 60까지의 남정들이 직접 군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대신 1년에 2필씩 군포를 납부했다. 문제는 양반 사대부는 군포 납부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이다.(209)


호포법을 시행하면 온 나라가 일어나서 원망할 것이란 말은 온 양반 사대부가 일어나서 원망할 것이라고 말하면 정확한 것이었다. 호포법을 시행하면 원망할 사람은 양반 사대부지 일반 백성들일리가 없기 때문이었다.(219)


사대부들은 윤휴가 주장한 지패법, 오가통법, 호포법을 반대했고, 숙종은 이들의 의견을 절충해 일부 시행했지만, 2~3년 후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다. 적당히 타협한 반쪽짜리 개혁이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켜 안하느니만 못한 꼴이 되었다.


적당히 타협한 반쪽짜리 개혁은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정치는 생물이라며 적당히 타협한 법과 제도가 시행하는 과정에서 전혀 효과가 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할 때 적당히 타협한 법과 제도가 개혁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죽음의 외주화를 막자는 취지로 입법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적당히 타협하며 재해기업보호법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77786.html)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강력 처벌하기 위해 별도의 수사처를 만든다는 공수처법은 야당에 비토권을 주고 적당히 타협해 통과시켰지만, 타협의 산물인 야당 비토권으로 공식 출범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재차 법을 바꿔 공수처장을 임명했지만, ‘수사방해처란 비판을 받으며 아직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https://news.joins.com/article/24034530)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유배지로 가는 윤휴에게 피 묻은 버선을 갈아 신으라고 권하자거절하며 자손들에게 시대의 형세를 알지 못하면 우환이 닥친다는 점을 경계하도록 했다. 제 한 몸의 영화와 집안의 부귀만 힘쓰는 것이 시대의 형세이고, 백성의 등골을 뽑아 제 뱃속을 챙기는 것이 시대의 형세였는데, 북벌을 주장하고 사회적 폐단을 없애 개혁하자고 한 것이 우환이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된 오늘 날에 시대의 형세를 따라 망국의 길로 갈 것인지, 시대의 우환을 따라 사회적 병폐를 없애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된 사회를 만들 것인가 묻는 것 같다.


(유배지로 가는 윤휴에게) 피 묻은 버선을 갈아 신으라고 권하자 윤휴가 거절했다. “그대로 두어라. 자손들 가운데 시대의 형세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시대의 우환을 범한 자에게 경계가 되게 하리라(可作子孫之不識世勢妄犯世患者之戒)(383)(가작자손지불식세세망범세환자지계)


대부분의 사대부들이 제 한 몸의 영화와 제 집안의 부귀만 힘쓰는 것이 조선의 형세였는데 이를 무시하고 북벌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 시대의 우환을 범한 것이었으며, 사대부들이 힘없는 백성들의 등골을 빼서 제 배를 채우는 것이 시대의 형세였는데 양반들에게도 군역을 부과해야 한다고 나선 것이 시대의 우환이었으며, 입으로 주자학을 외우는 것으로 학문이 완성되었다고 자부하는 것이 시대의 형세였는데 천하의 이치를 어찌 주자 홀로 안다는 말이냐!”라면서 새로운 학문의 길을 열려고 했던 것이 시대의 우환이었다. 주자학 절대주의 사상으로 가는 것이 시대의 형세였는데 다른 사상도 용인함으로써 사상의 자유를 꾀하려 했던 것이 또한 시대의 우환이었다.(383~384)


술은 마셔야 맛을 제대로 느끼고, 말은 표현해야 뜻을 이룰 수 있다 생각했다. 말의 의도와 뜻이 분명하게 전달했어도 듣는 사람은 듣고 싶은대로 취사선택해 듣는다. 이해시키려 할수록 오해만 쌓인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가 더 맛있고, 말은 하지 않을 때가 더 뜻깊다는 윤휴의 탄식에서 선한 의지를 가진 개혁가의 후회와 좌절이 느껴지는 한편, 사고의 깊이를 더해 말과 행동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도 느껴진다.

술 마시는 맛이 술을 마시지 않는 맛보다 길지 못하다.飮之爲味 不若不飮之爲味長也
말을 하는 뜻이 말을 하지 않는 뜻보다 깊지 못하다.言之爲趣 不言之爲趣深也 (104~105)(음지위미 불약지음지위미장야 언지위취 부언지위취심야)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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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타협한 개혁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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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 새로 읽는 한미관계사
김준형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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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사에서 미국의 역할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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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 새로 읽는 한미관계사
김준형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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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김준형 지음, 창비, 2021


우리나라 교육에서 아이러니한 것이 세 가지 있다. 학교를 졸업 후 대다수는 노동자로 살아가지만 학교에서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대다수는 세입자로 살아가지만 학교에서는 세입자의 권리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역사는 6년 이상 가르치지만, 대한민국 수립 이후의 역사는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한국의 현대사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분단의 역사와 같다. 한국 현대사를 1919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시기부터 보더라도 1백년의 현대사 중 70여 년을 분단된 상태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의 역사이니 분단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역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학교는 분단의 역사는 물론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한미관계와 한반도 국제정치 분야 전문가인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펴낸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은 부제 새로 읽는 한미관계사가 말해주듯 영원한 동맹이라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한미관계의 신화, 특히 군사동맹의 신화와 맹목의 친미주의에서 벗어나고자 집필했다고 한다.

조미수호통상조약, 8.15해방, 한국전쟁, 4.19혁명, 5.16 쿠데타, 12.12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항쟁, 6.10 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많은 장면에서 쉽게 납득되지 않는 장면들에 미국이라는 조각을 끼워 넣으니 퍼즐의 윤곽이 선명히 드러난다. 정확히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다. 한미일 삼각 체계를 통한 동북아 패권 유지라는 미국의 전략은 대한제국말이나 한국 전쟁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고, 한미일 삼각 체계를 위해서는 독재와 반민주도 용인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위안부합의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은 공식적으로는 내내 부인하다가 갑작스레 발표해 깜짝 깜짝 놀라게 했는데, 그 배후에도 한미일 삼각 체계 구축을 위한 미국의 영향력이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가쓰라-테프트밀약이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만든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한국과 미국의 매우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첫 조약 체결 후 23년 만에 한국이 미국에 배신을 당하게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를 확인하듯이 미국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강제병합이 확정되자 두번 다시 뒤돌아보지도 않고 서구 열강 중에서 가장 먼저 한국과의 인연을 끊어버렸다. 미국은 또한 1905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강제적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가장 먼저 공사관을 폐쇄한 나라였다.(44)


미국은 전범국가인 독일과 일본을 친미정권으로 부활시킨 다음, 이들을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미국 패권의 세력권으로 재건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집단동맹 체제나 아시아에서의 샌프란시스코동맹 체제 역시 미국이 먼저 구축했고, 소련은 나토에 대응하여 바르샤바조약기구를 그리고 한žž일 삼각 체제에 대응하여 북žž러의 북방 삼각 체제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58)


미국은 냉전질서의 구축자였고, 반공지상주의에 지배되어 있었다. 친미와 반공만 내세우면 독재정권이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지지하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중남미 니카라과의 악명 높은 독재자 소모사에 대해 “(그가) 개자식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개자식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는데,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까지 1백년 동안 마치 미국 외교정책의 사운드트랙처럼 이를 반복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102)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은 한국과 미국이 처음 마주해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부터 역대 정권의 대북정책과 한미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물론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변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평가도 다루고 있어 한반도 문제에 대한 메타인지를 가능케 한다.


북방정책이 전개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는 물론이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교착 상황에 빠진 2020년 초반 역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무력도발만 일삼는 비이성적인 집단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제임스 릴리 대사를 이어 북방정책의 시기인 1989년부터 주한 대사직을 수행했던 도널드 그레그는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에서 한국과 미국을 모두 사랑한다면서도, 남북 대결의 비극 뒤에는 늘 미국의 책임이 있다는 과감한 고백을 했다.(206)


동맹 국가 사이에서 상대방의 문제에 연루되는 연루 딜레마와 상대로부터 배제되는 방기 딜레마가 작용하는데,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에서 연루보다는 방기에 대한 우려가 유난히 커 맹목적인 대미 의존이 한미동맹을 신화로 만들었다는 진단은 한미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하게 해준다.


동맹이 전형적인 딜레마인 연루’(entrapment)방기’(abandonment)의 문제가 개입한다.() “동맹의 안보딜레마”() 방기의 두려움이란 다극체제에서 동맹국은 끊임없이 동맹 상대국에 의해 버려지는 두려움에 처하는 것() 연루의 두려움이란 자국에 공유되지 않는 동맹 상대국의 이익을 위한 분쟁에 어쩔 수 없이 휘말려 들어가는 것() 방기의 비용이 일련의 안보에 관한 손실이라면, 연루의 비용은 자율성 손실의 강력한 형태이다.(330~331)


동맹의 형성부터 지금까지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에서 한국은 동맹국에 대한 연루보다 유난히 동맹의 방기에 대한 우려가 컸고, 이것이 맹목적인 대미 의존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이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에서는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 거의 없다는 점() 미일동맹이라는 대체제의 존재 때문이기도 하다.(331)


판문점 정상회담, 정전 이후 처음으로 북미 정상이 만나는 등 해빙 무드가 무르익어 정전을 넘어 종전 선언평화 협정을 기대하게 했다. 북미 간 신뢰를 쌓지 못해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 안타깝다. 다만 남북, 한미, 북미, 동북아 국가 사이의 신뢰가 쌓인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 생각한다. 신화화된 한미 관계는 이들 관계에 결코 신뢰가 쌓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한반도 평화협정, 남북 관계, 동북아 관계, 한미 동맹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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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 - 대한민국 대표 석학 8인이 신인류의 지표를 제시하다 코로나 사피엔스
김누리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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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 김누리/장하준/홍기빈/최배근/홍종호/김준형/김용섭/이재갑 지음, 인플루엔셜, 2021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기술 혁명으로 일상이 변화되는 것으 보며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절감했었다. 코로나19는 일상이 하루 아침에도  변화시킬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니 딴 세상이 된 꼴이다.


코로나19 초기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금방 예전의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라 믿었다. 독감과 같이 겨울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 믿었다. 1년 여를 훌쩍 넘긴 지금은 예전의 일상으로의 복귀는 어렵다고 여겨진다.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다를 것이고, 매년 독감이 유행하듯 코로나가 일상인 세상을 살게 될 것이라 한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이며, 바뀐 세상에 우리는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걱정이다.


<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은 경기도,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CSB가 함께 기획한 <2020년 경기도 지식(GSEEK) 콘서트> 강연 중 8명의 강연을 담은 책이다. ‘위드 코로나시대의 전망과 대응법을 전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넘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앞으로의 경제는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 불확실성의 시대에 필요한 뉴딜과 그린뉴딜이 바꿀 세계 경제는 어떤 모습인지,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지, 변화된 국제질서 속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 비대면이 일상이 된 우리는 세계와 어떻게 연결될지, 위드 코로나 시대에 다음 팬데믹에 대응할 준비가 되었는지 등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던진 과제가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전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경고도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코로나 옐로라고 부릅니다.() 첫째 사회적 가치, 둘째 공공적 가치, 셋째 생태적 가치에 대한 준엄한 경고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22~23)


오만과 이기심은 경쟁에서 이기는 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승자독식의 원리만을 가르치는 경쟁절대주의 교육이 빚어낸 참상 그 자체였습니다.() ‘오만과 모멸의 구조’() 공정은 경쟁과 능력주의를 전제하는 개념입니다. 이 공정함에는 연대와 협력이 빠져있어요.() 정의는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며, 불의에 분노하는 것이며, 억압에 저항하는 것입니다.(28)


코로나19의 미래는 그 정도와 시간에 따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다음 두 가지 사항에서는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 곁에 계속 머문다는 것, 그리고 코로나19의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86)


20세기 중후반까지만해도 경제 성장을 하면 환경 오염이나 생태계 파괴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던 우리에게 팬데믹의 역설은 경제 활동을 하되 환경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주었습니다.(145)


세계화는 국경이 열리고 각국이 협력하면서 시장자본주의를 중심으로 전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세계화는 전성기를 지나 이미 20여 년 전부터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습니다.(166)


민주주의가 후퇴하게 된 가장 커다란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불평등의 심화를 꼽습니다. 시장자본주의에 의한 자유무역으로 전 세계의 부가 크게 확대되었지만, ‘빈부격차라는 그늘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170)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이른바 기득권층이라 할 만한 사람일수록 익숙한 과거를 놓지 않으려고 하지요.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엄청난 재난이 우리를 익숙한 과거와 결별하고 모든 것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길로 이끌었습니다.(192)


<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은 그동안 유지했던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부추기며 승자독식의 양극화를 초래했고, 기회는 가진 자에게만 주어지고, 위기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더욱 파괴하며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 의해 자연생태계가 파괴는 인류가 접하지 못한 감염병에 보다 빈번하게 노출될 것임을 경고한다. 코로나19 뒤에 찾아 올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더 큰 재앙으로 닥칠 것임을 예고하기도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일상의 변화도 서서히 진행될 것이라 믿었다. 어쩌면 내가 죽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생각했다. 내 다음 세대도, 그 다음 세대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믿었다. 코로나19를 겪은 지금은 내가 죽기 전에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코로나19인류 종말판도라 상자가 열려 곳곳에서 절망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화들짝 놀라 덮은 판도라 상자희망이 남았듯, 우리에게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도 제목과 같이 인류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음을 전한다. 연대와 공감을 통해 공동체의 가치를 되살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경쟁 일변도의 교육에서 탈피해 연대와 공감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29)


라이피즘(lifism)은 자본주의가 개인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삶(life), 사회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생존(life), 생태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생명(life)을 파괴하는 안티라이프 체제라는 점에 주목합니다.(43)


어떤 사람은 복지와 성장은 상충한다고 말하는데,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복지와 성장이 그렇게 상충하는 것이라면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복지국가들이 미국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62)


노동력과 자본 투입으로 성장을 이끌었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향후 경제는 혁신의 토대인 청년 세대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일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줄여주고, 줄어든 시간만큼 소득의 감소를 보존해줘야 합니다. 그 최소한의 출발점이 기본소득입니다. 기본소득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사회적 투자입니다.(100)


그린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선 녹색 회복이 절실합니다.(142)


이제부터라도 또 다른 팬데믹 상황을 맞았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계획을 잘  세워서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 취약계층에 더 많은 고통과 피해가 몰리지 않도록 하려면 방역 체계와 더불어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부분까지 포함해서 전방위적인 이해관계자 간의 토론과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필요합니다.(236)


<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은 불확실한 시대에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 준다. 판도라 상자에 담긴 희망 마저 날려 보낼 것인지, 아니면 희망을 씨앗으로 세상으로 뻗어 나간 욕심, 질투, 질병을 다시금 그러모을 것인지는 나와 당신,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된다고 믿으면 안 될 수도 있지만, 안된다고 믿으면 될 일도 안된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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