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 새로 읽는 한미관계사
김준형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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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김준형 지음, 창비, 2021


우리나라 교육에서 아이러니한 것이 세 가지 있다. 학교를 졸업 후 대다수는 노동자로 살아가지만 학교에서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대다수는 세입자로 살아가지만 학교에서는 세입자의 권리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역사는 6년 이상 가르치지만, 대한민국 수립 이후의 역사는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한국의 현대사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분단의 역사와 같다. 한국 현대사를 1919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시기부터 보더라도 1백년의 현대사 중 70여 년을 분단된 상태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의 역사이니 분단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역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학교는 분단의 역사는 물론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한미관계와 한반도 국제정치 분야 전문가인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펴낸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은 부제 새로 읽는 한미관계사가 말해주듯 영원한 동맹이라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한미관계의 신화, 특히 군사동맹의 신화와 맹목의 친미주의에서 벗어나고자 집필했다고 한다.

조미수호통상조약, 8.15해방, 한국전쟁, 4.19혁명, 5.16 쿠데타, 12.12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항쟁, 6.10 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많은 장면에서 쉽게 납득되지 않는 장면들에 미국이라는 조각을 끼워 넣으니 퍼즐의 윤곽이 선명히 드러난다. 정확히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다. 한미일 삼각 체계를 통한 동북아 패권 유지라는 미국의 전략은 대한제국말이나 한국 전쟁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고, 한미일 삼각 체계를 위해서는 독재와 반민주도 용인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위안부합의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은 공식적으로는 내내 부인하다가 갑작스레 발표해 깜짝 깜짝 놀라게 했는데, 그 배후에도 한미일 삼각 체계 구축을 위한 미국의 영향력이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가쓰라-테프트밀약이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만든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한국과 미국의 매우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첫 조약 체결 후 23년 만에 한국이 미국에 배신을 당하게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를 확인하듯이 미국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강제병합이 확정되자 두번 다시 뒤돌아보지도 않고 서구 열강 중에서 가장 먼저 한국과의 인연을 끊어버렸다. 미국은 또한 1905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강제적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가장 먼저 공사관을 폐쇄한 나라였다.(44)


미국은 전범국가인 독일과 일본을 친미정권으로 부활시킨 다음, 이들을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미국 패권의 세력권으로 재건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집단동맹 체제나 아시아에서의 샌프란시스코동맹 체제 역시 미국이 먼저 구축했고, 소련은 나토에 대응하여 바르샤바조약기구를 그리고 한žž일 삼각 체제에 대응하여 북žž러의 북방 삼각 체제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58)


미국은 냉전질서의 구축자였고, 반공지상주의에 지배되어 있었다. 친미와 반공만 내세우면 독재정권이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지지하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중남미 니카라과의 악명 높은 독재자 소모사에 대해 “(그가) 개자식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개자식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는데,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까지 1백년 동안 마치 미국 외교정책의 사운드트랙처럼 이를 반복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102)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은 한국과 미국이 처음 마주해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부터 역대 정권의 대북정책과 한미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물론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변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평가도 다루고 있어 한반도 문제에 대한 메타인지를 가능케 한다.


북방정책이 전개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는 물론이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교착 상황에 빠진 2020년 초반 역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무력도발만 일삼는 비이성적인 집단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제임스 릴리 대사를 이어 북방정책의 시기인 1989년부터 주한 대사직을 수행했던 도널드 그레그는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에서 한국과 미국을 모두 사랑한다면서도, 남북 대결의 비극 뒤에는 늘 미국의 책임이 있다는 과감한 고백을 했다.(206)


동맹 국가 사이에서 상대방의 문제에 연루되는 연루 딜레마와 상대로부터 배제되는 방기 딜레마가 작용하는데,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에서 연루보다는 방기에 대한 우려가 유난히 커 맹목적인 대미 의존이 한미동맹을 신화로 만들었다는 진단은 한미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하게 해준다.


동맹이 전형적인 딜레마인 연루’(entrapment)방기’(abandonment)의 문제가 개입한다.() “동맹의 안보딜레마”() 방기의 두려움이란 다극체제에서 동맹국은 끊임없이 동맹 상대국에 의해 버려지는 두려움에 처하는 것() 연루의 두려움이란 자국에 공유되지 않는 동맹 상대국의 이익을 위한 분쟁에 어쩔 수 없이 휘말려 들어가는 것() 방기의 비용이 일련의 안보에 관한 손실이라면, 연루의 비용은 자율성 손실의 강력한 형태이다.(330~331)


동맹의 형성부터 지금까지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에서 한국은 동맹국에 대한 연루보다 유난히 동맹의 방기에 대한 우려가 컸고, 이것이 맹목적인 대미 의존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이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에서는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 거의 없다는 점() 미일동맹이라는 대체제의 존재 때문이기도 하다.(331)


판문점 정상회담, 정전 이후 처음으로 북미 정상이 만나는 등 해빙 무드가 무르익어 정전을 넘어 종전 선언평화 협정을 기대하게 했다. 북미 간 신뢰를 쌓지 못해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 안타깝다. 다만 남북, 한미, 북미, 동북아 국가 사이의 신뢰가 쌓인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 생각한다. 신화화된 한미 관계는 이들 관계에 결코 신뢰가 쌓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한반도 평화협정, 남북 관계, 동북아 관계, 한미 동맹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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