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의 외교 담판 - 역사상 가장 성공한 외교
장철균 지음 / 살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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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근무하는 곳에 클라이언트와 직원이 책친구로 결연하고 같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말이죠....

야심차게 책을 초이스한다고 해도 클라이언트도, 직원도 제나름 바빠서 도저히 만날 일이 없다는 사태. 그나마 의욕이 있으면 막판에 몰아서 달리거나 하고, 파토나는 일도 비일비재한 이벤트입니다. 이른바 책이산가족. 책노예. 책원수.(어?)

당연히 클라이언트 중심이므로 제가 원하는 책 장르가 될 확률은 대단히 낮지만.. 그나마 읽을 만한 편입니다, 이 책은....

저자는 외교관. 마찬가지로 외교관 출신 저자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언젠가 백업하겠죠, 이 책도...)라는 책을 읽었습니다만, 단순히 정규 교육과정에서 다룰 이유가 없는 내용을 대단히 혁신적인 양 써두어서 좀 별로였던 기억이 있었죠. 이 책도 그런 부류일까봐 상당히 걱정했는데....

반면 추천사에서 가라사대 인류 역사는 갈등과 유혈의 역사이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관이 등장했다느니, 1980년대 북방 정책을 서희의 외교와 연결지으면서 외교관으로서 구성주의적 관점으로 역사를 본다고 평하여 나름 기대를 안고 독서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본문 시작 전 일러두기에서 용어와 지역명을 제대로 분석하는 점은 대단히 호감이네요!

그리고 서문에 이르면 저자는 요르단의 역사로부터 해방과 분단 극복의 지혜를 얻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여 우리 역사를 다시 고찰해서 외교안보의 새로운 관점을 세우겠다고 역설...! 무엇보다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초상화를 그려야 하며 국수주의의 비이성적 요소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추상화가 된다며 꽤나 재미있는 비유를 합니다.

전체적으로 유목 문화와 농경 문화가 경합하는 동아시아사의 특징, 조공 책봉의 성격 등 개념을 폭넓게 다루는 점도 호감이네요. 이어 거란의 초기 역사와 발해의 멸망, 고려의 건국과 왕건의 북방정책을 사료를 바탕으로 조명하는데 외교 용어를 쓰면서도 사료를 제대로 인용하고, 교차검토까지 빈틈없이 마치고 있습니다.

나아가 [속 자치통감]에서 등장하는 서역승 말라의 기사를 통해 고려와 후진이 거란을 협공하고자 중개했으며 이 내용이 왜 한반도 사료에는 나오지 않았는지 고찰합니다. 성종 대 거란의 침입으로 불탔을 거라나요. 그리고 시기를 보아 만부교 사건이야말로 왕건이 후진을 향해 어필한 외교적 제스츄어라 하니... 정석적인 역사 이론에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상당한 설득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목계 사건- 고려가 송 사신에게 출병이 불가함을 설명한 사건도 분명히 짚고, 강동 6주의 위치를 다룬 사료며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옮기지 않고 불확실한 부분은 확실히 언급하거나, 금에 사대하고 난 뒤 얻은 점도 제대로 설명하는 점도 호감입니다. 참고 문헌과 주석 또한 중실하며, 지도에 연표, 연보까지 꼼꼼하게 수록하고 있으니 외교관 저자라 하여 미심쩍게 본 제가 다 송구해질 정도....

가장 흥미진진한 파트는 제5장. '역사는 반복되는가'라는 표제로 6.25를 경인동안, IMF 경제 위기를 을축환란이라 새로운 용어로 부르는 점이 좀 재미있었네요. 현재 우리나라의 통일과 외교 문제를 고려 왕건, 서희의 외교와 비교하고 있는데 정말은 이 파트를 쓰고 싶었구나 하는 느낌이 팍팍 왔습니다.

...물론 기분이 앞서서 비약이 되는 감도 없지는 않지만... 뭐 전체적인 밸런스를 보면 참을 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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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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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년 전이군요. 클라이언트가 추천해주어 읽기로 하였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리고 보니 미국에서 그 해 가장 탁월한 아동문학에게 준다고 하는 뉴베리상, 보스턴 글로브 포 북 아너 상 등을 수상했다나요. 아니, 수상 이력에는 별 관심 없는디....

배경은 근미래 디스토피아 SF. '마을'이라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주인공과 주변인들은 규칙을 반드시 지키도록 교육받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장 적성에 맞는 임무(직업)를 받으며, 이를 다 하지 못하거나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면 '임무 해제'가 됩니다. 이미 더 이상 역할을 다 할 수 없는 노인들은 이를 명예롭게 여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끔찍하게 두려워합니다...

.....아마 죽이는 거죠, 이거?

가족 간에도 저녁에 자신이 한 일과 느낌을 나누는 '공식 대화' 시간이 있으며,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이유불문 즉각 '공식 사과'를 합니다. 아이들은 연령별로 모둠을 이루어 교육을 받으며, 8살이 되면 자원 봉사를 하여 다양한 임무를 체험합니다. 어느 임무에 봉사할지 정하는 것이 아이들이 유일하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입니다.

12살이 되면 비로소 임무를 부여받으며, 성욕을 느끼면 알약을 먹어 억제합니다.

신생아는 어떤 임무에도 적성을 보이지 못한 건강한 여성이 낳는데 3명을 낳은 후에는 육체 노동자가 됩니다. 태어난 신생아는 번호가 붙여 키워지다가 각 가정에 분배(?)됩니다. 부모 2인과 아이 2인이 기본이라나요....

그리고 주인공 조너스는, 임무를 부여받는 12살.... 거의 부여받는 사람이 없는 '기억 보유자Reciever'의 임무의 적합자가 되어 선대 기억보유자... 기억전달자가 된 노인에게 임무에 대한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되는 조너스. 그의 앞에 펼쳐져 있는 운명은-

......아니 뭐 여기까지는 평범한(?) 디스토피아 월드인데요.... 왜 세계가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세계 밖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전혀 설명이 없어서 이런 쪽 팬인 저는 다소 난처했습니다.

뭣보다 기억전달자가 기억을 전달하는 방법만이 묘하게 판타지. SF라기엔 조금 니어미스??!!

아무리 아동용 작품이라지만 결국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후속작도 있다지만 이상할 정도로 뒷 내용이 궁금하지 않네요....=ㅁ= SF라면 세계를 구하거나 멸망시켜야죠!(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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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인포그래픽
Dominic Roskrow 지음, 한혜연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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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포그래픽이라는 개념에 흥미가 생겨서 말이지요....


[인포그래픽, 제인 오스틴]과 [인포그래픽, 셜록]도 전자책으로 구입했지만 읽었다고 하긴 뭣할 정도로 설렁설렁 넘겼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여기에 원래부터 흥미 있었던 위스키라는 주제를 다룬다니오! 표지에 각종 위스키 보틀의 귀여운 도안과 제조공정이 돋음인쇄로 묘사되어 있어 이 또한 기대감을 드높입니다!

....그런데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뙇 나오는 위스키의 주기율표. 뼛속까지 문과인 나는 이 시점에서부터 웃을 수 없는 농담이네요.....

그래도 서문인 '저자의 말'에 드러나는 위스키 덕심이 굉장해서 가까스로 기댓줄을 붙잡은 채 독서에 돌입했습니다.

책의 구성은 위스키를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부터 시작하여 제조법으로 싱글몰트, 블랜디드, 블랜디드 몰트로 분류. 원료로 버번, 옥수수, 테네시 위스키와 라이 위스키, 그레인 위스키 등을 분류하여 다룹니다.

나아가 여러 위스키의 알콜 도수, 원료, 캐스크, 간단한 설명 및 입수 난이도에 따라서 별 1개~3개가 달린 추천 위스키를 소개하고, 위스키의 원자구조 도안으로 해당 위스키의 특징을 알리는데-

.....이 원자구조 도안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단 말이에요....

테이스팅 노트나 추천 증류소 로고, 흥미로운 점을 일러스트로 묘사하는데 아무래도 그림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어서 텍스트가 덕지덕지 붙으니 더욱 난해한 꼴이 되어버립니다. 마인드맵 구성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터무니없이 조악해!!! 인포그래픽이라는 표현방식에 어떻게든 정보를 구겨박으려는 양상이지만 텍스트는 그냥 따로 정리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스페셜 피니시 같은 개념은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인도에서도 위스키를 제조한다든가(위스키 추출물이나 사탕수수 즙으로 만드는, '실제로는 전혀 위스키가 아닌' 물건이지만...) 가르니아와 지방 분해에 좋다는 슈럽으로 만드는 다이어트 위스키를 맥도월즈에서 출시했다든가. 옥수수로 만든 밀주 컨셉의 위스키인 Moonshine(뿜음), '작가의 눈물Writer's Tears' 같은 위스키는 꼭 마셔보고 싶네요(....)

가장 흥미로웠던 파트는 '위스키계의 이단아'. 5종류의 곡물을 섞은 위스키, 귀리 위스키, 퀴노아(!) 위스키며 훈연 위스크, 맛을 추가한 위스키 등.... 꿀이야 제가 무척 좋아하는 드럼뷔나 잭다니엘 허니에도 보편적으로 들어가는 편이라 위화감이 없는데 칠리(!!!)는 좀.... 저자는 가장 불쾌했던 위스키 경험으로 꼽고 있습니다.

다른 잡다한 지식도 알게 되었네요. 왜 버번 위스키와 테네시 위스키를 엄격하게 구분하나 했더니, 테네시 위스키는 새로 만들어진 위스키를 그을린 메이플 나무 벽 위에 부어서 통과시키는 공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다지 상관없지만 잭 다니엘 본인은 금고를 발로 찼다가 발가락에 패혈증이 생겨서 사망했다네요. 그 금고는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지요. ....위스키랑 정말이지 상관없네!!!

이런저런 사실을 알고 위스키를 마시면 좀 더 맛있는 기분이 들어요. 오라방이 예전에 사다 준 에버펠디가 위스키 치고는 무척 부드럽고 맛있어서 신기했는데 마데이라 캐스크였고, 이 책에서 마데이라 캐스크의 매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니 그 맛의 까닭을 알게 되어 더욱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위스키는 그 숙성된 시간까지 포함하여 역사를 마시는 것이지요. 아는 만큼 더더욱 맛있어진답니다.

위스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증류주와 음료 중에 위스키 같은 것은 없다. 이것은 열정을 쏟게하고, 일생을 함께 할 긴 우정을 고취시킨다.

나에게 있어 누군가가 위스키의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마치 누군가가 카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두 경우 모두 너무 포괄적이며, 같은 카테고리라도 전혀 스타일이 다른 수많은 위스키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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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이 깃든집 1 - 오노 후유미의 공포작품집
오노 후유미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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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이 깃든 집 / 오노 후유미 지음 ; 이정숙 옮김; 조은세상 2004

아아아 오래간만의 독서 일기입니다-!!! 쓰고 싶었어... 쓰고 싶었어....OTL

여러 가지 괴로운 일에 시달린 끝에, 마침내 이제야 간신히 도서관에서 대출한지 2주 반납일이 임박한 오노 후유미의 호러소설 [악몽이 깃든 집]을 읽게 되었습니다. 길었어요....ㅠㅠ

[십이국기]와 [시귀] 등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오노 후유미는 꽤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뭐랄까 인간의 추한 면을 표현하는 필력이 굉장해요. 그게 추한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의 심리를 속속들이 보여주기 때문에, 가볍게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기보다는, 눈을 땔 수 없는... 그 호흡을 따라가는 것 같은 감각. 끝까지 가고 나서도 찝찝하거나 짜증난다기보다는 맥이 탁 풀리는 듯한 기분. 정말이지 무릎을 꿇고 옷깃을 여밀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십이국기]에서는 그 추한 것을 풀어버리는 카타르시스가 탁월해서~ 가난한 지갑사정때문에 비원을 이루진 못했지만 구매예정도서 상위권입니다. 아아 시리즈물은 슬퍼요ㅜㅜ

이번 [악몽이 깃든 집]은 새로운 시리즈가 아니라, 예전에 10대 소설로 쓰여졌던 [고스트 헌트] 시리즈의 뒷이야기 같은 거라고 해요. 이 [고스트 헌트] 시리즈는 번역되어 나온 바는 없지만 만화화한 작품은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그림도 꽤 괜찮고 공포의 묘사도 나무랄 데 없어서 추천 만화입니다. 만화 쪽을 보신 분들이 이 작품을 보면 의문이 풀리고, 소설부터 보신 분들도 만화의 생동하는 캐릭터들을 보는 것은 제법 쏠쏠한 재미일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라기보다 이왕 볼 거라면 꼭 보세요, 둘 다!진냥으로서는 만화의 최대 의문이 풀려버렸기 때문에 아주 속이 시원했습니다. 다음 권이 출간될지 어떨지도 모르는데 애타게 기다리는 것보다 이렇게 알아버리는 쪽이 상쾌해요.

가장 시원스러운 점은, 역시 [고스트 헌트] 최대의 미스터리 '마이의 꿈에 나와서 실실 쪼개는 나르'

.....

마이는 마음에 든 모양이지만 나르의 캐네가지 나르시즘에 직면한 독자로서는

저게 나사라도 빠졌나

...라는 기분이 한 8할 정도?

그런데 [악몽이 깃든 집]을 보고 나니까 이해가 가게 되었습니다. 유진이었군요, 그 녀석....

그리고 나르의 정체라든가, 시리즈 내내 언급되던 올리버 데이비스박사의 정체라든가, 여러 가지 진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하고 있어서 더욱 시원스러워졌습니다.

그러고보니 만화 고스트 헌트에서는 꽤 신선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나르의 보디가드겸 비서겸 감시역인 린 고죠... 홍콩 태생의 중국인입니다만. 만화에서 마이랑 대화할 때 '나는 일본이 싫다. 일본이 중국에서 한 일을 모르느냐. 도저히 좋아할 수 없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장면이 있었지요. 일본만화를 이것저것 봐왔지만 이런 식으로 언급하는 일은 별로 본 적이 없는 같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주변 국가에서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이걸 제대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오노 후유미가 존경스러운 작가인 것 같습니다.

(아아, 난징대학살을 명시한 작품은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라가 불탄다])

(.....그 건을 서술했다는 것만으로 연재중지되었습니다만.(먼 눈))

그에 대해서 마이의 대답은 '영원히 원망만 품고 있는 것은 슬프다'라는 것이었습니다만...

....글쎄, 저도 원망하는 일은 아주 질렸습니다.

하지만 용서하려 해도, 용서받을 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면-

...그땐 정말 원망밖에 할 것이 없게 되어버리는 걸지도요.

.....결론은, 그래도 오노 후유미는 진냥 기준에서 좋은 작가다, 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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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투어 - 엘리트 교육의 최종 단계
설혜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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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귀족의 생활](이것도 언젠가 백업본이...)에서 흥미롭게 여긴 그랜드 투어라는 개념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읽기로 한 책입니다.

그런데 읽고 나서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글루스와 트위터에서 게임 전문 기자로 활동하시는 분이 대학 시절에 이 분의 강의를 매우 즐겁게 들으셨다고요. 리포트로 역사 소설(비유가 아닌 진짜로!)을 써서 내기도 했다니 과연 부러운 강의입니다...!!!

저자는 남동생도 박사로, 영락없는 학자 집안입니다. 그런데 모친께서 '네 책 너무 어려움' 드립을 시전하고, 부친과 남동생까지 동의했다나요. 그리하여 가족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지요. 그 책이 바로 이것!

1장은 그랜드 투어... 정확히는 학문 습득을 위한 여행의 역사를 다룹니다.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여행자는 헤로도토스. 나아가 로마 시대부터 그리스 고전에 등장하는 장소를 여행하는 관광이 유행하였답니다. 중세야 말할 나위 없이 성지 순례가 유행이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산티아고의 조가비 같은 기념품, 패키지 순례 상품(....) 등이 등장했다나요. 나아가 중세 말~르네상스에 이르러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유산이 일약 주목받는 한편 17세기 이후 종교 갈등이 완화되고 각국이 정치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데다 경제적 풍요가 이루어지면서 그랜드 투어의 밑바탕이 마련된 겁니다. 최초의 그랜드 투어 경험자는 필립 시드니!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 시대 명문가 자제로 32세에 요절하였지만 그의 유고로 그랜드 투어의 안내 책자인 [유익한 가르침]이 출간되면서 동경을 한 몸에 모았다지요.

브루스 레드퍼드가 정의한 그랜드 투어는 영국의 젊은 남자 귀족 및 젠트리가 주체로 동행 교사를 두고 로마를 최종 목적지로 하여 2~3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여행입니다. 나중에는 가족, 불륜 여행도...=ㅁ=

이러한 여행은 선현의 가르침... 여행 안내서를 참고하여 계획을 짜고 실행했다고 합니다. 여행 필요 물품이라든가... 하지만 아무래도 귀족이 되놔서. 빌링턴 백작은 가방을 878개나 꾸려서 다녔다는걸요.... 또한 여행 루트 뿐만 아니라 배워야 할 것, 현지에서 해야 할 질문 리스트 등 정석적인 소개에서부터 자신의 관심, 타국인이나 자신의 혐성(....), 진실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내용이 바뀌어갔다고 하네요.

예전에 시공 디스커버리에서 오스만 제국의 술레이만과 문화를 소개한 [술레이만] 책자를 흥미롭게 읽은 바 있는데, 여기에서 인용된 오스만 제국의 하렘에 관한 사료를 남긴 영국의 여성 여행자 메리 몽태규도 이 책에서 언급됩니다! 상당히 기구한 삶을 살았더군요... 남편은 돈 버는 데에 열중해 그녀를 소홀히 대하고, 아들은 방탕에 빠지고 딸은 반대하는 결혼을 강행. 결국에는 그녀 자신도 사랑의 도피를 하고 맙니다. 두 번이나!... 두번째 상대는 이탈리아의 음악가 알가로티였는데 그는 프리드리히 2세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떠났다고요. ....엄청난!!! 막드!!!

그랜드 투어의 여행 경로는 도버에서 칼레, 그리고 파리를 거쳐 로마에 이르는 루트가 정석이었다고 합니다. 중간에 스위스니 나폴리니 네덜란드니 독일을 거쳐가는 코스는 여행자 본인의 재량이었다는 듯해요.

현재 읽기로 재미있었던 구절은 영국 여행객들이 파리의 요리가 맛없다고 떠드는 내용. 18세기 영국 요리는 고기의 비중이 커서 더 맛있게 느낀다나요. ....하아? 진짜로?(저자가 영국 요리의 악명을 넌지시 언급해서 웃겼습니다)

또한 그랜드 투어를 하면서 인맥을 넓히는 것 또한 상류계층의 소양... 하지만 너무나 사교에 열중해 교양을 키우는 본분을 잊어선 안된다고 아들을 꾸짖은 체스터필드 경도 있었습니다.

나아가 그랜드 투어는 현대 박물관의 기원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은 그랜드 투어리스트들이 교양을 키울 목적으로 만들었던 스투디올로(=호기심의 방? 귀중품을 모아두는 서재를 일컫는 용어) 트리부나에서 유래했다지요. 오죽했으면 영국의 샬럿 왕비는 이 방을 그려오라고 화가를 보내기도 했을 지경이었으니. 이러한 예술품을 이해하기 위해 예술가를 채용하기도 했는데 당대 예술가들이 정작 미술품에는 관심 없는 고용주 때문에 분통을 터뜨리는 일도 있었다지요.

동행 교사와 하인들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로크와 홉스, 애덤 스미스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그랜드 투어의 동행교사로 뺑이를 치기도 했다니...! 하인 하녀가 말썽(임신이나 비밀 결혼 등)을 피워서 들볶이는 경우도 많았다는 모양이에요.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 로버투 무디라는 하인은 모시는 도련님을 출세시키고자 [고귀한 배너스티 메이너드의 여행]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드물었겠지만....

해외여행은 과연 자신을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랜드 투어리스트 중에는 고국인 영국이 얼마나 좋은지 느끼기 위해 나간다거나, 나가서도 다른 나라 사람들을 실컷 혐오하는 글을 남기는 등 아주 지랄염병을 떠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외국물이 너무 들어서 오는 젊은이들을 영국에서는 마카로니라 부르면서 멸시하기도 했다니.....

이러한 그랜드 투어는 미국인이 참가하고, 기차와 증기선이 등장하여 여행이 대중화되며, 교양을 갖춘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루소 여행', '바이런 여행' 등 흥미 분야를 핀포인트로 다루는 테마 패키지 여행이 등장하면서 점차 쇠퇴합니다.

자기네 영역이 침범당하자 상류층은 남프랑스의 니스, 온천 도시인 바스, 해수욕장인 브라이턴에 건설된 로얄 파빌리온 등으로 향하지만... 이 모든 시설 또한 현대에는 누구나 즐길 수 있지요.

여행이 가져다주는 배움과 변화, 그리고 기쁨, 저자는 시종일관 그것을 따수운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자, 다음은 어디로 갈까요?


그랜드 투어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해외여행의 근대적 출발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전에 인간이 떠나왔던 길고 긴 여정을 투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인류는 그 발걸음을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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