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투어의 여행 경로는 도버에서 칼레, 그리고 파리를 거쳐 로마에 이르는 루트가 정석이었다고 합니다. 중간에 스위스니 나폴리니 네덜란드니 독일을 거쳐가는 코스는 여행자 본인의 재량이었다는 듯해요.
현재 읽기로 재미있었던 구절은 영국 여행객들이 파리의 요리가 맛없다고 떠드는 내용. 18세기 영국 요리는 고기의 비중이 커서 더 맛있게 느낀다나요. ....하아? 진짜로?(저자가 영국 요리의 악명을 넌지시 언급해서 웃겼습니다)
또한 그랜드 투어를 하면서 인맥을 넓히는 것 또한 상류계층의 소양... 하지만 너무나 사교에 열중해 교양을 키우는 본분을 잊어선 안된다고 아들을 꾸짖은 체스터필드 경도 있었습니다.
나아가 그랜드 투어는 현대 박물관의 기원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은 그랜드 투어리스트들이 교양을 키울 목적으로 만들었던 스투디올로(=호기심의 방? 귀중품을 모아두는 서재를 일컫는 용어) 트리부나에서 유래했다지요. 오죽했으면 영국의 샬럿 왕비는 이 방을 그려오라고 화가를 보내기도 했을 지경이었으니. 이러한 예술품을 이해하기 위해 예술가를 채용하기도 했는데 당대 예술가들이 정작 미술품에는 관심 없는 고용주 때문에 분통을 터뜨리는 일도 있었다지요.
동행 교사와 하인들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로크와 홉스, 애덤 스미스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그랜드 투어의 동행교사로 뺑이를 치기도 했다니...! 하인 하녀가 말썽(임신이나 비밀 결혼 등)을 피워서 들볶이는 경우도 많았다는 모양이에요.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 로버투 무디라는 하인은 모시는 도련님을 출세시키고자 [고귀한 배너스티 메이너드의 여행]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드물었겠지만....
해외여행은 과연 자신을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랜드 투어리스트 중에는 고국인 영국이 얼마나 좋은지 느끼기 위해 나간다거나, 나가서도 다른 나라 사람들을 실컷 혐오하는 글을 남기는 등 아주 지랄염병을 떠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외국물이 너무 들어서 오는 젊은이들을 영국에서는 마카로니라 부르면서 멸시하기도 했다니.....
이러한 그랜드 투어는 미국인이 참가하고, 기차와 증기선이 등장하여 여행이 대중화되며, 교양을 갖춘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루소 여행', '바이런 여행' 등 흥미 분야를 핀포인트로 다루는 테마 패키지 여행이 등장하면서 점차 쇠퇴합니다.
자기네 영역이 침범당하자 상류층은 남프랑스의 니스, 온천 도시인 바스, 해수욕장인 브라이턴에 건설된 로얄 파빌리온 등으로 향하지만... 이 모든 시설 또한 현대에는 누구나 즐길 수 있지요.
여행이 가져다주는 배움과 변화, 그리고 기쁨, 저자는 시종일관 그것을 따수운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자, 다음은 어디로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