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투어 - 엘리트 교육의 최종 단계
설혜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영국 귀족의 생활](이것도 언젠가 백업본이...)에서 흥미롭게 여긴 그랜드 투어라는 개념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읽기로 한 책입니다.

그런데 읽고 나서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글루스와 트위터에서 게임 전문 기자로 활동하시는 분이 대학 시절에 이 분의 강의를 매우 즐겁게 들으셨다고요. 리포트로 역사 소설(비유가 아닌 진짜로!)을 써서 내기도 했다니 과연 부러운 강의입니다...!!!

저자는 남동생도 박사로, 영락없는 학자 집안입니다. 그런데 모친께서 '네 책 너무 어려움' 드립을 시전하고, 부친과 남동생까지 동의했다나요. 그리하여 가족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지요. 그 책이 바로 이것!

1장은 그랜드 투어... 정확히는 학문 습득을 위한 여행의 역사를 다룹니다.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여행자는 헤로도토스. 나아가 로마 시대부터 그리스 고전에 등장하는 장소를 여행하는 관광이 유행하였답니다. 중세야 말할 나위 없이 성지 순례가 유행이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산티아고의 조가비 같은 기념품, 패키지 순례 상품(....) 등이 등장했다나요. 나아가 중세 말~르네상스에 이르러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유산이 일약 주목받는 한편 17세기 이후 종교 갈등이 완화되고 각국이 정치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데다 경제적 풍요가 이루어지면서 그랜드 투어의 밑바탕이 마련된 겁니다. 최초의 그랜드 투어 경험자는 필립 시드니!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 시대 명문가 자제로 32세에 요절하였지만 그의 유고로 그랜드 투어의 안내 책자인 [유익한 가르침]이 출간되면서 동경을 한 몸에 모았다지요.

브루스 레드퍼드가 정의한 그랜드 투어는 영국의 젊은 남자 귀족 및 젠트리가 주체로 동행 교사를 두고 로마를 최종 목적지로 하여 2~3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여행입니다. 나중에는 가족, 불륜 여행도...=ㅁ=

이러한 여행은 선현의 가르침... 여행 안내서를 참고하여 계획을 짜고 실행했다고 합니다. 여행 필요 물품이라든가... 하지만 아무래도 귀족이 되놔서. 빌링턴 백작은 가방을 878개나 꾸려서 다녔다는걸요.... 또한 여행 루트 뿐만 아니라 배워야 할 것, 현지에서 해야 할 질문 리스트 등 정석적인 소개에서부터 자신의 관심, 타국인이나 자신의 혐성(....), 진실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내용이 바뀌어갔다고 하네요.

예전에 시공 디스커버리에서 오스만 제국의 술레이만과 문화를 소개한 [술레이만] 책자를 흥미롭게 읽은 바 있는데, 여기에서 인용된 오스만 제국의 하렘에 관한 사료를 남긴 영국의 여성 여행자 메리 몽태규도 이 책에서 언급됩니다! 상당히 기구한 삶을 살았더군요... 남편은 돈 버는 데에 열중해 그녀를 소홀히 대하고, 아들은 방탕에 빠지고 딸은 반대하는 결혼을 강행. 결국에는 그녀 자신도 사랑의 도피를 하고 맙니다. 두 번이나!... 두번째 상대는 이탈리아의 음악가 알가로티였는데 그는 프리드리히 2세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떠났다고요. ....엄청난!!! 막드!!!

그랜드 투어의 여행 경로는 도버에서 칼레, 그리고 파리를 거쳐 로마에 이르는 루트가 정석이었다고 합니다. 중간에 스위스니 나폴리니 네덜란드니 독일을 거쳐가는 코스는 여행자 본인의 재량이었다는 듯해요.

현재 읽기로 재미있었던 구절은 영국 여행객들이 파리의 요리가 맛없다고 떠드는 내용. 18세기 영국 요리는 고기의 비중이 커서 더 맛있게 느낀다나요. ....하아? 진짜로?(저자가 영국 요리의 악명을 넌지시 언급해서 웃겼습니다)

또한 그랜드 투어를 하면서 인맥을 넓히는 것 또한 상류계층의 소양... 하지만 너무나 사교에 열중해 교양을 키우는 본분을 잊어선 안된다고 아들을 꾸짖은 체스터필드 경도 있었습니다.

나아가 그랜드 투어는 현대 박물관의 기원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은 그랜드 투어리스트들이 교양을 키울 목적으로 만들었던 스투디올로(=호기심의 방? 귀중품을 모아두는 서재를 일컫는 용어) 트리부나에서 유래했다지요. 오죽했으면 영국의 샬럿 왕비는 이 방을 그려오라고 화가를 보내기도 했을 지경이었으니. 이러한 예술품을 이해하기 위해 예술가를 채용하기도 했는데 당대 예술가들이 정작 미술품에는 관심 없는 고용주 때문에 분통을 터뜨리는 일도 있었다지요.

동행 교사와 하인들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로크와 홉스, 애덤 스미스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그랜드 투어의 동행교사로 뺑이를 치기도 했다니...! 하인 하녀가 말썽(임신이나 비밀 결혼 등)을 피워서 들볶이는 경우도 많았다는 모양이에요.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 로버투 무디라는 하인은 모시는 도련님을 출세시키고자 [고귀한 배너스티 메이너드의 여행]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드물었겠지만....

해외여행은 과연 자신을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랜드 투어리스트 중에는 고국인 영국이 얼마나 좋은지 느끼기 위해 나간다거나, 나가서도 다른 나라 사람들을 실컷 혐오하는 글을 남기는 등 아주 지랄염병을 떠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외국물이 너무 들어서 오는 젊은이들을 영국에서는 마카로니라 부르면서 멸시하기도 했다니.....

이러한 그랜드 투어는 미국인이 참가하고, 기차와 증기선이 등장하여 여행이 대중화되며, 교양을 갖춘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루소 여행', '바이런 여행' 등 흥미 분야를 핀포인트로 다루는 테마 패키지 여행이 등장하면서 점차 쇠퇴합니다.

자기네 영역이 침범당하자 상류층은 남프랑스의 니스, 온천 도시인 바스, 해수욕장인 브라이턴에 건설된 로얄 파빌리온 등으로 향하지만... 이 모든 시설 또한 현대에는 누구나 즐길 수 있지요.

여행이 가져다주는 배움과 변화, 그리고 기쁨, 저자는 시종일관 그것을 따수운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자, 다음은 어디로 갈까요?


그랜드 투어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해외여행의 근대적 출발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전에 인간이 떠나왔던 길고 긴 여정을 투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인류는 그 발걸음을 계속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