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본 문헌 속의 이순신 표상 ㅣ 민속원 아르케북스 209
김준배 지음 / 민속원 / 2022년 1월
평점 :
민속원 출판사의 신작을 주기적으로 검색하는 병이 발증해서 달리다가 대박을 발견했습니다....!!!
예전부터 궁금했더랬지요. 일본인이 가장 숭앙하는 인물 중 하나인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이순신을 가장 존경하는 제독으로 꼽았음은 유명한 일화이지만, 대관절 어디에서 이순신에 대해 알게 된 것일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이러한 시각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박약하고, 더욱이 공적인 역사서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지요. 따라서 저자는 여러 시대에 걸쳐 일본 문헌 속 이순신의 묘사를 통해 당대 일본인들의 시대 의식, 문화 등을 이해하고 이순신 자체에 관해서도 일본인의 시각이라는 필터를 통해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하며 일본 문헌을 통해 세계에 퍼진 이순신 담론을 탐구하는 데에 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1부는 근세! 군기물이나 에혼요미에서 묘사된 이순신 담론을 다룹니다. [그림이 된 임진왜란]과 연결되는 부분도 많아서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게다가 [징비록]이 당시 일본에서 그토록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서 놀랐습니다. 1695년 일본에서 번역출간된 이래, 저자 표현대로라면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이라나요.
이러한 사료+19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 붐으로 군담물이나 에혼요미물이 많이 출간되었고, 이때부터도 '해전의 묘를 터득했다'라느니 '손오의 전술을 얻었다'라느니 이순신을 긍정적으로 서술한 점이 신기합니다. 물론 세 번으로 분열하는 칠천량 해전(....)이라든가 갈대밭에서 육박전으로 이루어진 명량해전(.......)은 쓴웃음을 넘어 폭소 레벨이지만요......
반면 역사서로 보면 19세기 미토학의 영향을 받아 조선을 낮추어 보는 내용이 많습니다. 예외적으로 '무가의 시대사'라 볼 수 있는 [일본외사]의 경우 한산도 해전의 가치를 폄하하지 않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네요.
메이지 시대에 들어오면 청과 조선을 두고 대립하면서 식민사학이 태동하고 해군력을 강화해야한다는 의식이 싹트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인식은 신문연재소설에까지 침투하는데....
....그 중에 가장 뿜기는 작품이 [고후사카제 후편]......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일본인과 중국인의 혼혈인 원의달(미나모토노 요시아키). ......이름을 보고 대번에 짐작하신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의 조상이야말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겐페이 전쟁 후 죽지 않고 장백산으로 이주, 원씨 가문을 이어나갔으며 애신각라 씨는 그 방계로 국호를 청淸이라 한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판관편애에 미쳐버려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칭기스칸 썰 같은 걸 진지한 역사 담론으로 밀었던 적도 있었음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옆구리를 직격하는 변화구를.....(웃겨서 옆구리가 결림)
줄거리로 보면 애신각라 씨가 직계인 원씨가 언젠가 청을 지배하리라는 소문을 믿고 원씨를 박해하여, 원의달은 신분을 감추고 숨어지내다가 성장하여 여행을 떠나 전편의 주인공(얘는 또 일본인과 조선인의 혼혈)과 만나 북방에 대원국을 세우고 타이완과 손잡고 청을 몰아붙인다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덧붙여 이 책에 실리게 된 까닭은 원의달이 방랑 중 아산에 들러 이순신을 생각하며 애잔해지는 장면이 있어서라고요.
....엄청 웃기지만 만주국 생각하면 웃는 입가가 경직되네요.
또 메이지 해군에서는 이순신을 조선의 넬슨이라느니, 인격적인 면으로 보면 넬슨조차 미치지 못한다고 하거나, '반도 고금의 명장'이며 '팔도무쌍의 명장', '조선을 평안케 할 인물' 등으로 극찬하는 저작을 내놓습니다. 너야말로 팔도무쌍이다!(게임 아님)
....뭐 앞서 말했듯이 일본 정부가 제국주의 행보를 걷게 되면서 해군력을 확충하려는 메이지 해군의 입장을 담고 있는 칭찬입니다만.
나아가 한일병합기(이 책 표현)에 이르면 강제병합 이후 정치적 목적성이 줄어들어 오히려 순수 연구의 비중이 늘어나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왜곡할 필요가 없어져 패전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고찰하면서 이순신을 재고하게 됩니다.
이 시기 역사서는 식민사관에 의해 조선의 국민성을 폄하하긴 하지만, 도저히 디스하기 어려운 이순신의 업적만큼은 마지못하게 인정하는 느낌입니다. 도쿠토미 소호- 일본 군국주의의 괴벨스라 일컬어지는 인물로, 전후 A급 전범 용의자까지 되었다고 하는 사상가까지 이순신에 주목하다니요. [근세 일본 국민사]를 저술하는 과정에서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와의 인연으로 한산도, 통영, 충렬사를 답사하고 영국의 제임스 머독이 발간한 [A History of Japan]에서 한산도 해전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해전 중 하나, 한국의 살라미스라 표현한 내용을 인용하면서 나름 인정하고 있습니다.
재조 일본인으로서 식민통치 합리화를 위한 어용 단체인 '조선 연구회'.... 단군이 스사노오의 아들 이소타케루라든가, 김수로가 시오노리쓰히코라 주장하는 집단입니다만. 여기에 몸담은 아오야기 쓰나타로는 이순신을 '충용절륜한 인물'이라 묘사하며 가토 기요마사도 그와 싸웠다면 물고기밥이 되었을 거라며 오히려 매료된 모습을 보입니다. 나아가 조선사 편수회 편수관으로서 사료를 채방하려다 조선인의 비협조와 맞닥뜨려 '사료 체방 내규'를 제정하고 이순신의 후손들과 친교를 쌓으며 이순신 유보를 정리하면서 당쟁에 대한 내용을 삭제하는 등의 조선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인물조차 만주사변 이후에는 관학 아카데미즘 풀스로틀~
만주사변 이후에는 해군 관계자 오가사와라 야쓰타카나 아리마 세이호, 심지어 육군 소장인 스기무라 유지로까지도 이순신을 비판하는 저술을 합니다. 스기와라의 경우 이순신의 전술이 준비가 안 된 일본군을 거북선으로 쳤을 뿐이고 칠천량 해전에서는 '때마침' 감옥에 있었을 뿐, 패전은 일본 장수들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네요. 이순신의 대단한 점은 철저한 정보 수집과 준비로 이길 수밖에 없는 시간과 장소를 만드는 능력이지만?ㅋ
오가사와라는 이순신을 극찬하되 '철저하게 적을 쳐부순다'는 인식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도고 대장에게 미치지 못한다며, 규슈를 선제 공격했어야 진정 훌륭한 제독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과연 인천 앞바다에서, 뤼순에서, 류탸오후에서, 루거우차오에서, 진주만에서 다른 나라를 기습하면서 전쟁을 시작한 나라 해군 다운 평론입니다만....
저기저기, 나가사키랑 히로시마는 어떻게 생각해??? 어떤 기분이야???
아리마 세이호는 더 굉장해서 이순신이 명령 체계에 따르는 행동을 고수할 뿐 아군을 돕지 않았다고 비난합니다. 허어.... 전근대는 그렇다 치고라도 근대 군인이 명령 체계를 멋대로 위반해도 된다는 발상 괜찮은 걸까요?..... 그리고 제해권 상실이 육상군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해군 소장이면서 해군 무용론에 빠져드는 자승자박을 스스로 해치우네요(....) 그리고 패전의 원인을 일본 장수들이 전공을 다투어서라고 서술하지만 이 또한 왕성한 공세 정신이라고 미화합니다 .....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인적 요소라나요.
과날카날에서 길가의 잡초 한 뚝배기 하실래예-?
한편 패전 이후의 이순신 인식은 거의 다루지 않은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저자의 총평을 따르면 이순신의 영웅담은 일본인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만큼 고전Classic의 매력이 있는 이야기랍니다. 엄청나게 방대한 문헌을 탐독한 것치곤 결론이 심플한 점도 허전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