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머리에
나는 글을 쓸 때 두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개인적인 이해타산이 포함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글을 써왔기 때문에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볼 때가 가끔 있다. 그리고 10년 전, 20년 전의 글을 읽으면서 지금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음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만약 그 당시 처해 있던 상황을 타개하고자 이해타산의 마음으로 글을 썼다면, 지금의 나는 떳떳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거창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글은 '역사의식'을 가지고 써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은 죽어도 글은 남기 때문이다.

2. 21
어떤 일을 선택할 때는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 아무리 커다란 성공을 하였든 혹은 치명적인 실패를 하였든 간에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항상 현실에 중심을 두고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나 자신도 발전할 수 있고,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으며,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직결된다. 아무리 성취감과 보람이 있는 일이더라도 열정을 가질 수 없다면 계속해서 그 일을 하기는 힘들며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는 더더욱 힘들다.
 
3. 21
처음 회사를 만들 때, 경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회사 설립을 권유한 사람에게 물었다.
"저는 사람을 만나고 외부 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프로그래밍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회사를 만들어도 제가 좋아하는 일만 계속할 수 있을까요?"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사장 위에는 아무도 없잖습니까? 당연히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지만 그 한마디가 회사 설립에 대한 결심을 굳혀준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회사를 세운 후 진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장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으며, 해서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기보다는 회사의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장이 해야 하는 일이다.

4. 29
2000년이 저물어갈 때쯤, 미국 출장 중에 짬을 내어 보게 된 <컨텐더(The Contender)>란 영화에서 기대하지 못한 감동을 받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미국 부통령이 갑작스럽게 죽자 한 여성 상원의원이 부통령 후보로 지목된다. 그러나 그녀는 대학교 때 섹스 파티를 열었다는 스캔들에 휘말리고 여론의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시종일관 노코멘트로 일관한다. 주변에선 부인하지 않으면 불리하다고 조언했으나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스캔들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고, 부통령에 오른다. 대통령은 그녀에게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대답했다.
"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사생활이 아니라 능력이라는 게 제 소신입니다. 스캔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제가 말하는 순간 부통령 자격 조건에 사생활이 포함된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정치 생명이 위협받는다고 해서 저의 원칙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5. 34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항상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단어가 있다. 바로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이다. '뜨거운 가슴'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결국은 잘될 것이라는 열정을 뜻하며, '차가운 머리'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뜻한다. 서로 모순되는 의미 같지만 열정과 냉철함이 동시에 갖추어질 때 올바른 선택과 좋은 결과가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6. 38,39

일이 잘못되었을 때, 이러한 절반의 책임과 함께 생각해야 할 문제가 바로 '내 일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주는 폐해이다.
그러한 개인적인 사고 방식은 같이 일하는 사람이나 조직을 불행에 빠뜨린다. '내 일만 잘하면 되고, 우리 팀만 잘하면 되고, 우리 부서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곧 '내 일은 잘되는데, 우리 팀은 잘되는데, 우리 부서는 잘되는데'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잘못의 책임을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고 그것은 결국 불신의 벽을 쌓게 된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기본적이며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만약 동료와의 상호 존중이나 고객 또는 외부와의 약속지키기로 이어지지 않고 자기가 맡은 부분만 열심히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결국 그 사람이나 그 조직은 외부로부터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하는 일을 혼자서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나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조직을 위해서나 '절반의 책임' 마인드를 가져야 하며, '나만 잘하면 된다'는 소극적인 인식을 버릴 때만이 진정으로 발전하는 개인, 발전하는 조직이 생겨날 것이다.

7. 62
커뮤니케이션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한 몇 가지의 원칙들은 존재한다.
1. 상대와 나의 상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상식이라 생각했던 부분이 상대방에게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서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상식만을 고집하고 알아듣지 못한다고 답답해 할 것이 아니라 나의 상식이 상대방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2. 사용하는 말의 뜻이 사람마다 다를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다. 같은 용어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정의를 달리 하거나 심지어 반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3.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책을 읽을 때도 그렇지만, 특히 이야기를 할 때도 자기가 알고 있고 경험한 정도만큼만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4. 감정이나 체면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견을 개진하기 전까지는 매우 유연한 태도를 보이다가도, 일단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한 다음에는 어떤 경우에도 그 입장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8. 106
자기 개발을 하는 데 조직의 도움이 없다거나 일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불평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런 외부의 도움이 없어도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스스로의 의지와 동기부여, 그리고 자기 관리를 통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에게 조직에서 교육과 같은 발전의 기회를 제공해 주면 그 사람에게는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될 것이다. 반면에 의지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조직에서 아무리 많은 기회와 도움을 주어도 발전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 여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지인 것이다.

9. 118
다양한 일들을 해야 하는 관리자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자질은 무엇일까? 서로 생각과 경험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서 하나의 일을 이루어가기 위해 필요한 품성과 능력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으로는 전문 지식, 문제해결 및 개선 능력, 업무 파악 능력, 전략적 사고, 커뮤니케이션 능력, 그리고 정서에 대한 포용력 이렇게 여섯 가지를 들고 싶다.

10. 123
손자병법』'실패하는 장수의 다섯 가지 유형'
장수에는 다섯 가지 위험한 유형이 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장수(전략적인 사고 없이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관리자)라면 죽이기 쉽다. 자기만 살려고 애쓰는 장수(조직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관리자)는 포로로 잡으면 된다. 화를 잘 내는 장수(부하 직원에게 감정을 잘 드러내는 관리자)는 모욕을 주면 된다. 청렴결백한 장수(지나치게 자신만의 원리원칙에 집착하는 관리자 또는 고집 센 관리자)는 욕을 보이면 된다. 백성을 사랑하는 장수(마음 약한 인사 관리자)라면 백성을 괴롭히면 된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상대방 장수의 약점을 잘 살펴서 이를 역이용하면 된다."

11. 141
경쟁력 없는 기업이 쉽게 퇴출되기 힘든 산업 구조도 상황을 악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업이 잘 망하지 않는 나라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있다. 기업도 어려워지면 망하는 것이 정상이며, 어려워진 기업이 적절한 시기에 정리되는 것이 이해 관계자 모두에게 그리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한데 현실을 그렇지 않다.
국내 기업이 망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금융권에서 기업에 대출할 때 대표이사의 연대 보증을 요구하는 관행이다. 기업의 신용도를 평가하기 힘드니 대출 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기업이 망하면 기업의 빚이 전부 대표이사 개인의 빚이 되어버리고 만다. 기업을 정리할 적절한 시기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대표이사인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업을 계속 끌고 갈 수밖에 없다.
속된 표현이지만 '눈먼 돈'도 망할 기업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여러 가지 공공 자금 덕분에 수명을 연장한 기업은 손해가 나는 사업이라도 당장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참여한다. 부실한 업체가 오히려 덤핑에 적극적인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건실하던 업체도 계속 가격 경쟁에서 밀려 계약을 따내지 못하게 되고 결국 부실한 업체로 전락하여 전체적인 하향 평준화로 이어진다. 공공 프로젝트의 가격이 아무리 낮더라도 손해가 안 나니까 참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공공 기관의 이야기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12. 176
유비쿼터스(ubiquitous) 환경이란 언제 어디서나 모든 지능형 기기들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환경을 말한다.
유비쿼터스 환경이 도래하여 가전제품들까지도 인터넷에 연결된다면 더 희안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맞벌이 부부를 위해서 전기밥솥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밥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밥을 태우는 바이러스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미래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류를 위해서 전기밥솥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이다'라는 이야기를 독수리 오형제인 양 말하곤 한다.

13. 201
♣내가 전공한 분야는 의학 연구 분야였는데,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길은 유명한 외국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잠자리에 들어 하루를 정리하는데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내 경쟁 상대들은 세계 각국의 실험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다. 내가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도 미국에 있는 내 경쟁자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초조함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밤중에 일어나서 책을 뒤적이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잠을 줄여가면서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위기감과 함께 느꼈던 것은 공부가 단순히 지식을 덛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것이 많은지를 절감하게 된다. 또한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으며, 또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해가는지를 느끼게 한다.
이와 정반대의 경험도 해보았다. 군대에 들어가 장교 훈련을 석 달간 받고 나서 부대에 배치되었는데, 그러다보니 훈련 기간은 물론이고 부대에 배치된 처음 얼마간은 공부와는 담을 쌓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점점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그렇게 급박하게 변해가던 세상이 마치 지구가 자전을 멈춘 것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마음도 아주 편안해지고 세상에는 걱정할 것이 없는 것 같아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서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해가는지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부하지 않다보면 자신이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를 느끼지 못하고 마음 편하게 있다가, 어느 순간에 경쟁에서 밀리고 결국 도태되고 마는 것이다.

14. 220,221

'Perception is Reality'라는 말이 있다. 인식되는 것이 진실이라는 말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진실이라 해도, 주위에서 모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진실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사회생활에서 나를 규정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내가 아닌, 상대방이 인식하는 나이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자신에 대해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에는, 아무리 조목조목 사실을 나열하고 설명을 하더라도 일단 자리잡은 인식은 바뀌기 힘들다. 인식은 말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자리잡은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상대방이 잘못 알고 있다고 해서 억울해 하고 상대방에게 불평을 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15. 242
청소년이나 학생이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조언 여섯 가지
1. 자신에게는 엄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라
2.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살지 말라
3.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라
4. 매순간을 열심히 살아라
5. 미래의 계획을 세우라
6. 각자 자신에게 맞는 삶의 철학, 즉 원칙을 가져라

16. 249
주어진 일이 하기 싫은 것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은 학생 때 싹튼 것이다. 2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학생으로 지내다보니 인생의 대부분이 시험의 연속이었다. 근데 이상한 것은 영어 시험 때가 되면 수학책이 재미있어 보이고 수학 시험을 쳐야 할 때가 되면 반대로 영어가 재미있어 보이는 게 아닌가.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자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 재미있는 일이나 더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또 다른 핑게를 댈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반면에 아무리 하기 싫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일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면, 상황이 좋아질 때는 더 잘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17. 251,255,257

의과대학 예과 2학년 때, 본업이 아닌 취미 하나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바둑을 배웠다.
일단 바둑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서점에 가는 일이었다. 나는 인류가 쌓아놓은 세상의 모든 지혜는 책 속에 있다고 믿으며, 사람이 세상에 남기는 유일한 흔적이 글이라고 믿는다. 책 속에는 그 책을 쓰기까지 저자가 고민한 세월과 시행착오의 노력이 담겨 있다. 종류별로 50권 정도의 바둑 관련 책을 사서 무턱대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좋은 책을 만나면 밤을 새워가며 읽는다. 언젠가부터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때엔 항상 책을 통해서 먼저 그 세계를 간접 경험하는 원칙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독일의 유명한 문호 마틴 발저의 말처럼, 책은 우리 인간이 '어떤' 것을 이루고 '무엇'인가가 되는 데 가장 유익한 길잡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는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면서 고민하고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이해한다. 바로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라는 말의 진정한 뜻이기도 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春) 2005-05-06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TV, 책을 말하다에서 이 책을 다뤘는데요. 방송이 끝나고 나니, 마치 강의를 들은 것 같더군요. 제 자신이 안철수연구소의 백신 프로그램 구매자면서도 안철수의 책에 관심을 가진 적이 한번도 없는데, 어제 다뤘던 부분들이 모해짐님의 밑줄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군요. 책이 괜찮으셨나 봐요. 밑줄이 꽤 긴 걸 보니... ^^

진진 2005-05-07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보고 싶은 프로그램인데 아직 한번도... 기대했던것보다는 설렁설렁한 책이었답니다. ^^
 

1. 20
 『뇌 연구 최전선』을 예로 들면, 이 글을 쓰기 위해 대략 대형 책꽂이 1개 반 정도의 책을 읽었습니다. 다른 테마의 글을 쓸 때도, 큰 주제라면 대개 이 정도의 책을 읽습니다. 제 작업실에 있는 책꽂이는 한 단에 40권 정도의 책이 들어가는데, 이런 단이 7개 있으니 책꽂이 하나에 약 300권 정도의 책이 들어갑니다. 따라서 책꽂이 1개 반 정도의 분량이라면 테마 하나에 약 500권 정도의 책을 읽고 있는 셈입니다.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은 아니고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읽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여기에 잡지의 기사나 논문, 인터뷰 등의 자료도 활용하므로 입력과 출력의 비율은 낮게 잡아도 100대 1 정도 되지 않을까요?

2. 41
하나는 독서 그 자체가 목적인 독서, 또 하나는 독서를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독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목적으로서의 독서란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이자 즐거움인 책읽기인데, 대표적인 예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단으로서의 독서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독서를 통해 책 속에 담겨 있는 지식이라든가 정보 혹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책을 읽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로 요리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어 요리책을 보는 것을 들 수 있으며, 비즈니스 관련 서적, 자연과학 서적 등의 독서도 이 범주에 포함됩니다.

3. 42
젊은 시절에는 오직 목적으로서의 독서가 중심이어서 대학 시절에 수업도 빠지고 아침부터 잠까지 하루 종일 원하는 책만 읽었습니다. 당시 읽었던 책들 중 대부분은 문학 서적, 교양 서적이었습니다. 특히 문학 서적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구미 문학에 관해서는 당시 일본 독서광 100명 중 한 사람에 포함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독서는 학창 시절에 한정된 것이었고, 이후에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한두 권 읽기도 하였습니다만, 학창 시절에 읽던 양에 비하면 아마 4%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4. 44
그래서 월급의 대부분을 책 사는 데 쓰면서, 학창 시절에 문학 서적이나 교양 서적을 열심히 읽었던 것처럼 엄청난 양의 논픽션 서적을 탐독하였습니다. 이처럼 논픽션 서적을 탐독하면서 문학가의 상상력이라는 것이 살아 있는 현실과 비교할 때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학창 시절에 왜 그렇게 쓸데없는 책을 읽는 데 열중하였는지 도리어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건 한가운데로 직접 뛰어들어가 그 사건을 내 눈으로 직접 복, 생생하게 사건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직접 이야기를 나눌 때면, 활자화된 논픽션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물며 빈약한 상상력의 산물인 픽션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전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눈앞에 살아 있는 생생한 현실의 거대함에 거의 압도당하여, 결국 저는 문학 작품을 읽지 않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가끔 문학 서적을 구입하기는 하지만 읽어보면 거의 대부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이것이 반복되니까 생쥐가 조건반사 하듯이 점점 문학 작품을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날의 문학 부진 현상의 근본 원인들, 독자가 문학 작품에서 멀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을 현대 문학 속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데서 찾고 싶습니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독자가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이는 상황을 전혀 엉뚱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5. 58
'중앙공론'에 연재하고 있는『뇌사』를 쓰기 위해서 구입한 의학서는 금액으로 환산하면 50만 엔을 가볍게 넘어 버리고, 한 권 한 권 쌓아 올리면 높이가 3~4m 정도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테마가 큰 일을 맡게 되면, 쌓아올렸을 때 보통 높이 3~4m 정도 되는 관련 자료를 읽는 습관을 가져왔습니다.
...
이처럼 큰 테마의 일뿐만 아니라 작은 테마의 일을 맡게 되더라도 서점에 가서 신간 서적을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전부 사 와서 읽어봅니다. 쌓아 올린 높이로 치면 1m 정도이며, 구입비로 6만엔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6. 59
어떤 분야든 최첨단 정보를 얻고 싶을 때, 예를 들어 원수이학에 관한 것일 경우 대략 높이 1m에 구입비 5만 엔 정도의 자료를 읽으면 대강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반복해 가는 가운데 커다란 재미와 즐거움을 느낍니다. 소설 종류는 읽을 틈도 없고 읽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어떤 영역에 좀더 깊이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지면, 그 일이 그다지 크게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맡아서, 그것을 구실로 관심이 가는 영역을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합니다.

7. 65,66
어학을 배우려면 직접 가정교사를 고용하여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학을 배우려면 집중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일주일에 한 번 1년 동안 하는것보다 매일 매일 한 달 동안 하는 편이 낫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대체로 어학은 어학 이외의 다른 것을 모두 잊고, 오직 어학에만 정신을 집중하여 매달리는 방법을 택한다면 한 달 동안만 공부해도 어느 정도 효과를 얻을 수 있다.

8. 69,71
대부분의 분야에는 교과서적인 입문서로 정평이 나 있는 책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 분야에서는 사무엘슨의 『경제학』을 들 수 있다.
이런 교과서적인 입문서를 세 권 정도 골라 구입하는 것이 좋다.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경향이 서로 다른 책을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9. 98
그토록 기대하던 서고 겸 작업실이 마침내 만들어졌다. 집에서 가까운 10평 정도의 토지에 철근 4층 건물(지상3층,지하1층)의 빌딩을 신축하여 지하 1층은 서고로 꾸미고, 지상 1층과 3층은 작업실, 2층은 사무실로 꾸몄다. 각 방들은 약 7평 정도로 좁다. 그러나 공간을 철저하게 활용하였기 때문에 서가의 총 길이를 합치면 700m에 이르며, 약 35,000권 정도의 책을 꽂을수 있다.

10. 105,117,119,120

나의 비서 공모기
'연령,학력 불문,주부도 가능'

사람 됨됨이는 면접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자주 보는 TV 프로그램. 최근 본 TV 프로그램 중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 것.
*지금 두 시간과 2만 엔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잘 웃는가?
*최근 옆구리가 아플 정도로 웃은 일. 최근 정말 화났던 일.
*최근 운 일.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

처음 자기 소개를 하는 프리젠테이션에서 가장 돋보였다. 다른 지원자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이력서에 A4 용지 한 장 정도의 자기 소개서를 첨부하는 정도였는데, 사사키 씨는 자신이 직접 독자적인 서식을 만들어 8쪽에 이르는 경력 사항을 적어 보내왔다. 이런 독자적인 서식을 만들어 보내 온 사람이 몇 명 더 있었으나, 사사키 씨의 경우에는 내용이 아주 훌륭하였다. 간결하면서도 요점이 분명하여 읽으면서 재미가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모집 요강에 '연령,학력 불문'이라고 기재하였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조건을 붙였다면 (고졸이었던) 사사키 씨는 분명 면접 대상에서 밀렸을 것이다.

11. 122,132,134,137,158,162,169

이 곳 다치바나 씨의 작업실, 일명 '고양이 빌딩'은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 말 그대로 책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3만 권 정도 된다고 하는데, 이처럼 방대한 책을 읽음으로써 다치바나 씨는 폭 넓으면서도 철저하게 일을 하실 수 있는것 같습니다.

Q: '대문학'을 읽은 것이 나중에 다치바나 씨가 하시는 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A: 여러 가지 의미에서 영향을 주었습니다. 첫째, 글을 써서 생계를 꾸려 가는 직업을 선택한 것 자체가 이미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요. 글을 읽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으니 말입니다. 우선 제대로 된 소비자가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생산자가 될 수 없습니다. 문학을 통해 정신 세계를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래도 사물을 보는 눈이 사려 깊지 못합니다. 사물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식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문학이라는 세계는 처음 겉으로 나타난 것을 한 번 뒤집어 보면 다르게 보이고, 다시 그것을 뒤집어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그런 세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표면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문학인 것입니다.

Q: '주간 문춘'에서 2년 반 정도 근무하신 뒤,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대학에 들어가셨다고 들었습니다만.
A: 당시 여러 가지 이유로 일이 싫어졌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너무 바쁘다는 것이었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 놓고 읽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 자신이 점점 바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대개의 경우 즐기면서 책을 읽을 때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일 때문에 필요해서 읽을 때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어 갑니다. 그러나 일만을 위해 책을 읽게 되면 좀처럼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무렵부터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있는데, 작업하던 일의 테마를 잠시 비켜 놓고 일을 핑계삼아 읽고 싶은 책을 읽는 방법입니다. 어떤 분야의 책이 읽고 싶어지면, 그 분야의 일을 맡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일거리를 맡게 되면 그와 관련된 책을 빠짐없이 구입하여 꼼꼼히 읽습니다.

Q: 다치바나 씨는 밑줄 친 부분을 전부 외워 버린다는 전설을 들었습니다만.
A: 그렇습니까?(웃음) 젊었을 때는 어느 책 몇 쪽에 어떤 내용이 있다는 것쯤은 잘 기억했죠.
Q: 다치바나 씨와 독서에 대해 함꼐 생각해 볼 때, 가장 큰 특징은 그 방대한 독서량이 현실 속의 힘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서가로 불리는 사람은 많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 속 지식만 커져 현실에 대한 적응력을 잃고 마는 사람도 많으니까 말입니다.
A: 일반적으로 독서가들은 대개 인문 계열의 교양 서적은 많이 읽지만 과학 서적, 기술 서적 등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한편, 과학 기술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은 일반 교양 서적을 거의 읽지 않습니다. C.P. 스노우가 말한 두 문화의 괴리는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양쪽 모두의 소양을 가진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Q: 다치바나 씨의 책에는 매우 인상적인 수사법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만.
A: 바로 거기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습니다. 어떤 부분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떠오를 때까지가 정말 힘듭니다. 저의 책을 막힘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궁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입니다. 원고를 집필하는 에너지의 3분의 1은 이처럼 좋은 표현을 찾는 데 소비하고 있습니다. 단 1,2분을 위해 몇 시간을 소비하는 셈입니다.

Q: 다치바나 다카시의 '마지막 한 권'은 과연 어떤 책이 될까요?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A: 오히려 심플한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은 어떤 사실을 말하기 위해 그것이 옳다는 논증을 전개하면서 집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책에는 그런 논증 없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단순한 제 생각만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같은 스타일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플라톤의 『대화편』같은 스타일도 좋을 것 같고요. 하지만 아직 먼이야기입니다.

12. 183
퇴사의 변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은 할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내 경우, 하고 싶은 일이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생각에 잠겨 보는 것뿐이다. "그 정도라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
학창 시절부터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고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책을 사는 데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을 책상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그 산을 점령해 갔고, 산을 다 점령하고 나면 또다시 서점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책을 구입하여 책상에 산을 만드는 일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13. 217
이렇게 글을 쓰는 목표는 책을 읽는 사람에게 그 책을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하여, 서점의 판매대에서 그 책을 반견하였을때 펼쳐 보도록 하는 데 있다. 또한 그 책을 사야겠다는 기분까지는 들게 하지 못하더라도 그 책이 어떤 책인가를 알려 주어, 그 안에 실려 있는 정보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작은 지식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지적 우주를 확대해 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오호라'하며 마음속에서 놀라움의 탄성을 지를 수 있게 하는 한 구절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14. 220
일반적으로 읽는 것 자체를 즐기기 위한 책은 속독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천천히 읽어야 책 읽기를 좀더 오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5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젊은이였지만, 어쩐지 이제부터는 미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싶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다음, 거기에 이르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내가 이루어 낸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에는 차츰차츰 무일푼으로 전락해 아파트마저 잃고 길바닥으로 나앉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만일 키티 우라는 여자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 당시는 내가 그녀를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지만, 나는 마침내 그 기회를 내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조건의 한 형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나 자신을 구하는 방법으로 보게 되었다. 그녀를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로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휠체어에 의지한 노인에게서 일자리를 얻었고,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유타 주에서부터 캘리포니아 주까지 걸어서 사막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그것은 물론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나는 지금도 그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내 삶의 출발점으로서.

2. 6
그 아파트에서 나는 1천 권이 넘는 책들과 함께 살았다. 그 책들은 원래 빅터 외삼촌 소유로, 그가 근 30년에 걸쳐 한 권 두 권 사 모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대학으로 떠나오기 바로 전, 그는 무슨 충동에서인지 헤어지는 선물로 내게 그 책들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사양을 하려고 별의별 애를 다 썼지만, 외삼촌은 다정다감하고 아낌없이 내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 수중에는 너한테 줄 만한 돈이 없다. 또 충고도 한 마디 해줄 수 없고. 그러니 네가 이 책을 받아 준다면 기쁘겠구나."
나는 그 책들을 받기는 했지만 그 뒤로 1년 반 동안은 그 책들이 담겨 있는 상자를 하나도 풀지 않았다. 내 속생각은 그를 설득해서 책들을 다시 가져 가도록 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때까지는 책들을 조금이라도 손상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3. 26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얼마나 이상하게 생겨 먹었던가를 알 수 있다. 말라빠진 몸집에 헝클어진 머리칼을 하고 분명히 세상에서 비켜 선 과격한 젊은미. 그러나 사실 나는 세상에 적응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내 동료 학생들이 나를 괴짜로 여기더라도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보기 드물게 지성적이고 다투기 좋아하고 자기 주장이 센 미래의 천재,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악의 화신이었다. 그 당시에 내가 취했던 우스꽝스런 태도를 떠올리면 지금까지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그때 나는 소심함과 자만심이 기괴하게 뒤섞인 상태에서 길고 어색한 침묵과 격력하고 제멋대로인 발작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내킬 때면 밤새도록 술집들을 돌아다니며 담배를 피우고, 죽기로 작심한 사람처럼 술을 마시고, 16세기 무명 시인들의 시를 인용하고, 중세 철학자들에 대해 라틴 어로 뜻 모를 말을 하고, 친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하려고 들었다. 열여덟은 끔찍한 나이여서 나는 내가 다른 급우들보다 어쨌든 더 어른이 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돌아다녔지만, 실제로는 단지 더 어려지는 다른 방법을 찾았을 뿐이었다.

4. 136
빅터 삼촌이 오래 전에 얘기했듯이, 대화는 누군가와 함께 공던지기 놀이를 하는 것이나 같다. 쓸 만한 상대방은 공이 글러브 안으로 곧장 들어오도록 던짐으로써 여간해서는 놓치지 않게 하고 그가 받는 쪽일 때에는 자기에게로 던져진 모든 공을, 아무리 서툴게 잘못 던져진 것일지라도, 능숙하게 다 잡아낸다. 키티가 바로 그랬다.

5. 160
나로서는 그 눈이 볼 수 있는지 아닌지 알기가 어려웠다. 어느 순간에는 그것이 모두 속임수이며 그는 나처럼 잘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순간에는 그가 완전히 앞을 못 본다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것이 바로 에핑이 원했던 방식이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모호한 신호들을 발한 다음 사실을 절대로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고 하면서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불확실성을 한껏 즐겼다.

6. 184
마침내 그(토머스 에핑)가 말했다.
"나는 그걸 해 봤고 지금은 그게 모두 내 머리 속에 있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황무지 한가운데서 혼자 몇 달 몇 년씩 살아 봤지...... 일단 그러고 나면 평생 동안 그걸 절대로 잊지 못해. 나는 어디로도 갈 필요가 없어.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리로 돌아가 있으니까. 거기가 요즘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야. 아무도 없는 곳 한가운데로 돌아가서......"

7. 298
"어르신 말씀은 그러니까 우리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낯선 사람들에게 50달러짜리 지폐를 건네 주자는 건가요? 그런다면 폭동이 일어날 텐데요. 사람들은 미칠 거고 우리를 잡아 찢을 겁니다."

8. 316
그(토머스 에핑)가 말했다.
"자네는 몽상가야. 자네 마음은 달에 가 있어. 그런데 세상 돌아가는 걸로 봐서는 그래 가지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자네는 야망도 없고 돈에도 전혀 관심이 없고 예술을 느끼기에는 너무 철학적이야. 내가 자네를 어떻게 해야 하지? 자네한테는 뒤를 봐 주고 뱃속에 음식이 들어 있는지, 호주머니에는 돈이 좀 있는지 보살펴 줄 사람이 있어야 해. 내가 죽고 나면 자네는 곧장 시작했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말 거야."

9. 328
-유골을 뿌리는 장면을 보며-
찰리가 자기의 누이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나한테도 저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 리타. 내가 죽은 뒤에 나를 태워서 공중에다 던져 줬으면 좋겠어. 멋진 장면이야. 동시에 모든 방향으로 춤을 추며 흩어지다니.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면이야."

10. 350
그(솔로몬 바버)를 보고 웃거나 그 자리에 얼어붙는 사람들 사이를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는 풍선처럼 부푼 청년이었다. 그렇기에 책은 일찍부터 그를 위한 피난처, 그가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뿐 아니라 그 자신의 생각으로부터도 그랬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자기가 그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누구 책임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자기 앞에 있는 책장의 글자들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그는 자신의 몸을 잊을 수 있었고, 그것이 자신에ㅣ 대한 비난을 한옆으로 제쳐놓는 데 무엇보다도 더 도움이 되었다. 책은 그에게 떠오를 기회, 마음속에서 자신을 띄워 올릴 기회를 제공했고, 책에 완전히 몰두하는 한 그는 자기가 자유롭게 풀려났다고, 그를 끔찍한 닻에 묶어 놓고 있는 밧줄이 끊어졌다고 자신을 속일 수 있었다.

11. 353
매일 아침마다 그는 러시아워의 유클리드 가를 따라 걸어가면서 자신을 시험했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반드시 웨이예 공원으로 나가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입을 쩍 벌리고서 쳐다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자기에게 쏟아지는 눈길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외톨이, 자신의 비틀거리는 의식을 헤치고 터벅터벅 걷는 둥근 달걀 모양의 단세포 생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효과가 있어서 그는 더 이상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혼돈 속으로 뛰어듦으로써 그는 마침내 솔로몬 바버, 내노라 하는 중요한 인물, 자신을 극복하고 스스로 창조한 세계가 되었다.

12. 412
나에게 현실로 존재하는 사람은 키티 하나뿐이었는데, 그녀가 없다는 것이 너무도 절실하고 뼈저리게 와 닿아서 다른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매일 밤이 똑같은 고통, 똑같은 숨막힘, 그녀의 손길을 다시 느끼려는 가슴 저밀 듯한 욕구로 시작되었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미처 알아차릴 틈도 없이 나는 온몸의 피부 밑에서 나를 지탱하고 있는 조직들이 이제 막 폭발하려는 것 같은 동통을 느끼곤 했다. 그것은 가장 갑작스럽고 가장 절대적인 형태의 박탈감이었다. 키티의 몸은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있어서 그녀의 몸이 내 곁에 있지 안고는 내가 나 자신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마치 내 몸의 일부가 잘려 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13. 434
"나는 매순간마다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도 그건 알고 있겠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리 2005-02-10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처음으로 읽은 폴 오스터의 책이지요. 음, 딴지는 아니지만 '내노라'는 '내로라하는'이 맞는 거 아닌가요....

진진 2005-02-10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내노라로 알고 있었다는..--;;; 도망가야게따 ㅋㅋ 감사해용 저도 처음 읽은 폴 오스터..
 

 

 

 

 

2월7일 잠실세종문고구입 39,000
문학인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강석경 외, 열화당, 2004년 12월)
회사 ♣공주를 키워주는 회사는 없다♣ (박성희, 황금가지, 2005년 1월)
소설 ♣바늘♣ (천운영, 창비(창작과비평사), 2001년 11월)
인사 ♣내 일을 향해 쏴라!♣ (이윤석, 새로운제안, 2004년 10월)

 

 

 

 

 

2월10일 알라딘구입 40,750
('이주의마이리뷰','마이리스트' 당첨 7만원 적립금+마일리지=21,560)
문학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01년 5월)
독서 ♣소년의 눈물♣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돌베개, 2004년 9월)
미술 ♣클림트, 황금빛 유혹♣ (신성림, 다빈치, 2002년 7월)
뉴욕 ♣뉴요커♣ (박상미, 마음산책, 2004년 10월)

 

 

 

 

 

2월17일 알라딘구입 38,470
역사 ♣거의 모든 것의 역사(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까치글방, 2003년 11월)
문학 ♣1984(Nineteen Eighty-Four)♣ (조지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민음사, 2003년 6월)
사랑 ♣그 남자 그 여자♣ (이미나, 중앙M&B-랜덤하우스중앙, 2003년 12월)
컴퓨터 ♣행복한 프로그래밍♣ (임백준, 한빛미디어, 2003년 5월)

 

 

 

 

 

2월26일 알라딘구입 31,570
('이달의 마이리뷰 우수작' 당첨 7만원 적립금 사용)
문학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전승희 옮김, 민음사, 2003년 9월)
독서 ♣서재 결혼 시키기(Ex Libris)♣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지호, 2002년 10월)
잔혹 ♣LAST♣ (이시다 이라 지음,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2004년 7월)
수필 ♣신현림의 희망 블루스♣ (신현림, 휴먼&북스, 2004년 12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태우스 2005-02-0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참 많이 사시네요. 적립금 다 쓰셨겠어요???^^

진진 2005-02-07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고싶은건 많은데 언제나 읽는속도가 따라가지 않네요.ㅎㅎ.며칠전부터 주문하려고 했는데 설이라 알라딘도 쉰다고 해서..--;..그전에 오프라인서점에 들러야 할듯여..적립금 만원정도 남은것 같아요. ^^*

나른한 오후 2005-02-28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한꺼번에 많이 사두는 게 좋데요. 그래야 읽을 의지가 생긴다고..^^

진진 2005-02-2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한 100권쯤 한번에 살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
 

 

 

 

 

9.  (가족/미국소설) ♣달의궁전♣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00년 3월) 20050130-0201
10. (독서/일본수필)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1년 9월) 20050127-0203
11. (경영/한국수필)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철수, 김영사, 2004년 12월) 20050115-0205
12. (비평/한국수필)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새움, 2004년 7월) 20050119-0206

 

 

 

 


13. (일본/프랑스소설) ♣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 지음, 전미연 옮김, 2002년 6월) 20050206
14. (인사/한국수필) ♣내 일을 향해 쏴라!♣ (이윤석, 새로운제안, 2004년 10월) 20050207
15. (직장/한국수필) ♣공주를 키워주는 회사는 없다♣ (박성희, 황금가지, 2005년 1월) 20050207-0209
16. (미술/뉴욕수필) ♣뉴요커♣ (박상미, 마음산책, 2004년 10월) 20050213-0214

 

 

 

 

 

17. (독서/일본수필) ♣소년의 눈물♣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돌베개, 2004년 9월) 20050214
18. (미술/한국수필) ♣클림트, 황금빛 유혹♣ (신성림, 다빈치, 2002년 7월) 20050214-0216
19. (문학/미국소설)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01년 5월) 20050215-0216
20. (SF / 미국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행복한책읽기, 2004년 11월) 20050216-0217

 


 

 

 

 

21. (사랑/한국수필) ♣그 남자 그 여자♣ (이미나, 중앙M&B-랜덤하우스중앙, 2003년 12월) 20050218-0220
22. (독서/한국수필) ♣장정일의 독서일기 3♣ (장정일, 하늘연못, 1997년 1월) 20050205-0222
23. (작가/한국수필)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강석경 외, 열화당, 2004년 12월) 20050208-0223
24. (바늘/한국단편) ♣바늘♣ (천운영, 창비-창작과비평사, 2001년 11월) 20050209-0227


<달콤한향을남기고간 내게는 新人>
▶폴 오스터◀
▶다치바나 다카시◀
▶이명원◀
▶서경식◀
▶신성림◀
▶테드 창◀

<내마음을훑고지나간 제목>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뉴요커◀
▶클림트, 황금빛 유혹◀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