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비파 레몬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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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와 남자가 꿈꾸는 연애는 다르다. 하여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만나는 연애에 때로 빠져들게 된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실현되기 어려운 사랑이나  한 번쯤 저지르고 싶은 일탈의 행위가 아름답게 미화되기 때문인데 일본 소설에서 특히 자주 만나 볼 수 있다. 에쿠니 가오리는 지극히 여성적인 글을 쓰지만 절대 보편적이지 않다. 그래서 고정적인 여성 팬들이 많다.  그녀의 감각적인 글을 만날 때마다 그녀의 연애와 결혼이 궁금하기도 하다.

 <장미 비파 레몬>도 역시 연애 소설이다. 9명의 여자들(도우코, 소우코, 미치코, 에미코, 레이코, 에리, 사쿠라코, 마리에, 아야)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다. 꽃집을 운영하는 에미코, 전업주부인 도우코, 일을 하는 레미코는 종종 점심을  함께 즐기는 친구다. 겉보기에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속사정은 모두 다르다. 꽃집 동업자를 남편으로 둔 에미코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자신과 맞지 않음을 알고 이혼을  결심하고 실행한다. 외출용 옷까지 자신의 취향으로 입어야 하는 남편을 둔 도미코는 안정적인 생활에 만족하는 듯 하다. 남편의 일과 사적인 부분에 대해 암묵적인 선을 두고 사는 레미코는 홈 파티를 통해 스스로  불안을 잠재운다.

 소우코는 언니(도우코)의 결혼 생활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랑하는 애인과 헤어지고 선을 본 남자와 결혼한 언니.  언니의 옛 애인을 좋아한다.  유부남이지만 그의 아내 마치코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소우코는 이런 자신의 감정을 사랑에 연연하지 않는 선배 마리에에게 조언받기도 한다. 연애를 하거나, 연애가 두렵거나,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끝내고 싶은 여자들이다.

 이제 그녀들의 남자들을 볼까? 아니, 남자들의 여자를 만나는 게 맞다. 레이코의 남편은 바람둥이다. 그가 만나는 여자,  모델인 에리는 편모 가정에서 자랐고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원한다. 함께가 아니더라도 아이만은 낳고 싶어한다. 다른 여자 사쿠라코는 레미코의 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려 하지만 우유부단하다. 당당한 사쿠라코는 레이코에서 남편과의 관계를 말하고 레미코는 이혼을 한다.

 9명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해야 겠지만 도우코가 중심에 있다. 애완견 검둥이를 산책시키면서 우연하게 만난 남자를 치과에서도 만난다. 그를 만날 때마다 남편과는 다른 느낌으로 설렌다. 사랑의 표현에 격정적이고 뜨거움을 즐기는 자신을 발견한다. 도우코와 사랑을 나누는 남자의 아내, 아야는 평범한 여자다. 둘째 아이로 딸을 낳기를 바라며 에미코의 꽃집에서 종종 꽃을 사고 오며 가며 개와 함께 있는 도우코를 본다.

 이들의 관계를 그려보면 친구이거나 이웃이다. 레이코의 파티에서 친구의 친구로, 이웃의 이웃으로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한 사이. 그 안에 은밀한 연애가 있고 차갑게 식어가는 애정이 있다. 소설은 이렇다 할 결말이 없다. 도우코의 설렘을 멈추라고 강력하게 말리는 이도 없다. 스스로가 정리할 시간을 알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슬픔과 상처도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담담하고 솔직하고 다양한 그녀들의 연애방식 인 것이다.  사랑에 대해 이별에 대해 미리 걱정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흐르는 물처럼 지나갈 것을 알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려 한다. 그래서 읽는 이도 읽는 동안 가볍게 그들의 사랑을 상상하면 그뿐이다.  때로 과한 것보다 부족한 것이 더 나으므로.


* 좋아하는 지인에게 연말에 선물받은 책인데, 계절이 두 번 바뀌어 버렸다. 나의 게으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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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11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책제목에서 상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에쿠니 가오리군요.

자목련 2009-06-12 10:2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고맙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책의 제목은 언제나 묘한 끌림이 있는 것 같아요.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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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5월을 훗날 역사는 어떻게 말하까? 우리가 1980년의 5월의 진실을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절규와 노력이 있었는지 잘 안다. 서울 광장 앞을 가로막은 경찰과 시민들의 모습은  비약이 심할지 모르지만, 그 시절의 울부짓던 청춘을 떠올렸다.  그래서 일까, 역사의 현장 1980년 5월 광주를 몸소 격은 청춘들의 이야기인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주인공 마해금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삼삼오오 친구들과 모여 수다를 떨고 빵집에서 미팅을 하던 소녀. 수선화라는 모임으로 만난 9명(해금, 정신, 승희, 태용, 승규, 만영, 진만. 경애, 수경)의 친구들을 만나는게 마냥 즐거웠던 여고생. 광주에 살지 않았다면, 그 현장에서 친구를 잃지 않았다면 해금의 인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9명의 친구 중 경애와 수경을 잃고 나머지 7명은 어떤 스무 살을 맞이할까? 대학을 가기도 했고, 재수를 하기도 하며 해금이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기도 한다. 기다리던 딸 대신 찾아온 해금이 품에 안겨우니 승희 엄마는 말한다.

  “악아, 우지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지를 마라.”p 65

 엄마를 잃고 엄마가 되버린 스무 살의 승희는 버스 회사에 취직을 하며 생활 전선에 뛰어든다. 승희의 아들 승춘을 제 자식처럼 아끼는 만영은 승희와 함께하는 꿈을 꾼다.  대학 진학을 했지만 노동 현장에 들어간 정신, 그런 정신을 바라보는 승규 역시 운동권 학생이다. 해금은 우연하게 만난 환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사랑하는 환은 삶을 포기하려 하고 해금은 힘들기만 하다.  사는 게 죄가 아님을 알게 되는 때는 언제이며 과연 이 청춘들에게도 오기는 할까.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 들어간 해금은 새로운 세상을 본다.  정신과 승규가 하고 있는 운동, 환의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던 진혁이 수배로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문을 당하고 군대에 들어간 승규가 싸늘한 죽음으로 돌아오고 이제 6개의 수선화만 남았다. 그들은 각기 다른 수선화가 될 것이다. 조금 늦게 꽃을 피우는 수선화가 되기도 하고  꺽이기도 할 것이며 예쁜 정원에 피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 공선옥은 단편 <라일락 피면>을 통해 광주 항쟁을 쓰기도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라일락 피면>에서 하지 못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질펀한 사투리와 80년대를 사로잡았던 음악 다방, 화려했던 의상들을 추억하게 한다. 꼭꼭 담아 두었던 청춘이 부활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공선옥은 슬픔을 빚어 희망을 만들어 낸다. 승희에게 승춘이라는 희망이, 만영에게는 그런 승희가 희망이 된다. 환이 때문에 빛났던 시절, 해금은 기억하고 가슴에 새긴다.  이제 청춘은 알게 된다.
 
 “빛은 어둠 속에서 나온다는 거, 아름다움은 슬픔에서 나온다는 거, 모든 행복은 고통 뒤에 온다는 거. 진짜 빛이 있고 진짜 아름다움이 있고 진짜 행복이 있다면 말야.”p 199 

 스무 살, 청춘의 시작점을 기억하는가?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연습하고 있었을 눈부신 청춘들의 이야기. 시대의 고통을 직접 경험하고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30년 가까이 시대를 뛰어넘은 우리네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것은 어떤 모양으로든 청춘은 아름다우며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해금이 가장 예뻤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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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 제6회 채만식문학상, 제10회 무영문학상 수상작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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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특정 지역에 대한 추억이 있거나 갈망이 있다. 대부분 자신이 자라 온 고향이거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준 곳이 그러하다. 소설에서 만나지는 지역은 소설의 배경임과 동시에 작가에게 소중한 곳이 되는 경우다. 소설가 조경란은 단편 ‘나는 봉천동에 산다’에서 자신의 터전인 서울의 봉천동을 구체적으로 묘사했고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의 작가 윤대녕은 집필 내내 제주도에 머물렀다고 한다. 소설가 전성태에겐 몽골이 그러했다. 소설집 <늑대>는 몽골에 의해 탄생된 몽골을 위한 소설집이 아닐까. 
 
 열 편의 소설 중  실린 차례대로 <목란 식당>, <늑대>, <남방 식물>, <코리언 솔저>, <두번째 왈츠>, <중국산 폭죽> 6편의 단편은 모두 몽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목란 식당을>은 몽골에서 여행사를 하고 있는 주인공 나와 화가인 나의 삼촌과 즐겨찾는 북한 음식 전문점인 <목련 식당>에 관한 이야기다. 교민 신문에 평 옥류관 출신 요리사가 온다는 광고가 실리면서 식당 분주해진다. 식당을 찾은 교민들과 관광객은 북한 출신 요리사는 장사 수단이라며 수입금이 북으로 유입되냐고 묻는다. 식당의 여사장은 사정이 생겼는지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목란 식당>은 식당일뿐인데, 몽골에서 북을 대표하는 이미지화 되는 현실이 씁쓸한 소설이다.

 표제작인 <늑대>는 광할한 몽골을 그대로 드러난다. 캠프촌 게르에 늑대 사냥꾼들이 도착하며 시작되는 소설은 화자가 바뀌며 전재된다. 사냥꾼의 길잡이를 역할을 하는 촌장과 그의 딸 치무게, 늑대 사냥을 온 늙은 기업가와 함께 온 여자 허와, 사원의 라마, 늑대 사냥을 도와주는 카자르.  각자의 시선으로 늑대 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광활한 초원에서 말과 낙타를 기르며 살고 있던 촌장에게 몽골의 시장 경제 도입은 삶을 변화시켰다. 

 < 한 잔 수태채가, 게르에서 하룻밤 잠이 돈으로 계산되었습니다. 장작을 패는 노동이, 늑대를 쫓는 동행이 벌이가 되었습니다. 그뿐입니가. 게르 천장으로 빛나는 별과 스미는 달빛이, 지나는 바람과 흩날리는 눈이 역시 돈의 현영(現影)처럼 손님들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필요한 것, 때로는 여자가지 도시로 나가 사야 했지요. 그 볼모의 대지에 살을 부리며 나는 내 생에 좋은 일을 다 끝났음을 깨닫곤 했습니다. > p 38 

 늙은 사업가는 몽골의 사회주의체제가 남긴 써커스를 상업화 시켜 돈을 번다. 써커스에 필요한 늑대를 원하지도 하지만 그는 강력하게 말한다.  <나는 늑대 앞에 숙명적인 라이벌처럼 마주서기를 원합니다.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이니 죄의식이니 연민이니 하는 것들이 없는 절대공간에서 독대하기를 원하니다. 스스로 자신을 사냥하듯이 이루어졌으면 싶습니다. 어쩌면 나는 가징 사냥다운 사냥을 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p 46

 그믐밤 늑대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라마의 말을 들었지만 사냥꾼들은 검은 수컷 늑대를 원한다. 늑대를 유인하기 위해 카자르는 양들을 몰아준다. 늑대 사냥은 결국 늑대를 떠나게 만들 것이라는 것에 안타까운 촌장. 늑대는 결국 몽골과 같은 것이었다. 늑대를 쫓는 사냥군이 늘어나고 그들로 인해 돈을 버는 캠프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몽골은(늑대는) 본연의 모습을 지키기란 어려운 것이리라.

 한국을 꿈꾸는 몽골인과 반대로 몽골을 꿈꾸는 한국인의 모습을 그린 <남방 식물>, <코리언 솔저>에서도 정착되지 않은 시장 경제 체제속에서 혼란스럽고  폐쇠적인 사회를 만날 수 있다.  몽골은 과거 우리가 걸어온 경제 발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발전에 가려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되볼아보게 한다. 

 그외 단편 <강 건너는 사람들>에서는 죽음을 불사하고 자유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누구 내 구두 못 봤소?> 에서는 남과 북에 모두 아내를 둔 한 남자의 슬픔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이미테이션>이라는 단편은 혼혈아의 외모를 가졌지만 정작 부모는 모두 한국인이기에 결국 자신의 외모를 근거로 외국인 행세를 하며 학원 강사를 하는 주인공을 통해 진짜를 원하지만 진짜를 구별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은 몽골이라는 광활한 초원을 활주하는 늑대와 징키스칸의 후예를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제 초원은 사라졌고 전성태는 이렇게 썼다. <몽골은 내게 특별한 고통과 영감을 주었다. 시원(始原)의 이지미를 간직한 광활한 대지에서 맞닦드린 고독감은 세계 바깥을 보고 온 듯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흥미로웠던 것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이향한 몽골사회였고, 기이하게도 그것은 우리 사회를 되비춰주는 거울이 되곤 했다.>
몽골에서 돌아온 그의 가슴에는 아마도 한 마리 늑대가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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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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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연이 딸과 살아가는 다큐를 시청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을 만났다.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이라는 경로는 더더욱 그러하다.  김연은 방송을 통해 마지막 보험이 죽음이라고 했다. 지금 17살인 딸이 스무 살이 되고 자신의 나이 쉰에 자신을 위한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엄마가 아닌 이제 그녀 스스로를 위한 삶을 꿈꾸는 그녀. 홀로 딸을 키워가는 그녀는 고독하고 외로워 보였으나 행복해 보였다.   김연처럼 우리 주위에는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다. 여전하게 세상은 아직도 그녀들에게 많은 편견을 갖고 있지만 그들을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고 있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의 원제는  On My Own.  이 책의 저자 플로렌스 포크는 두 번의 이혼으로 혼자가 된 자신의 이야기와 심리치료사가 되어 상담해온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말한다.

 연인이 있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결혼이라는 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마법의 문처럼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다.  나도  한 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은 원하는 대로, 계획하는 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혼자 남겨져 살아야 한다는 것, 정확하게 말하면 둘이었다가 혼자가 된 상실감은 크다. 연인과의 이별, 남편과의 이별이든 대부분의 여자들은 결별의 이유를 자신에게 찾으려고 애쓴다. 사랑했기에 믿었기에 때로 배신감은 더 클 수 있다. 

 저자는 ‘혼자라는 것은 하나의 기회다’ 라고 말한다.  혼자만의 공간을 통해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연인으로써 존재가 아닌 여성으로써의 존재를 발견할 기회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기혼 여성들이 베란다나, 부엌 한 켠에 자신의 공간을 마련하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자 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혼자라는 것의 확장은 고독과 이어지는데,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었다. 고요하고 안정된 마음을 넘어 초월적이고 창조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순간, 나는 고독해지고 싶어졌다. 

 혼자라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여성들에게는 자신만의 트라우마가 존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어린 시절 부모나 주위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가 연장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아픈 부모가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고 떠나버렸을 때, 친구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믿었던 어른에게 폭력을 당한 상처들이 그러했다. 특히나 ‘상실의 원인이 무엇이든 아이는 잘못한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 p 115 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작가는 어린 시절 그 상처를 견디기 위해 찾았던 비밀의 정원을 기억하라고 한다. 당신을 위해 썼던 일기, 책 읽기,  빨간 머리 앤의 상상하기도 비밀의 정원의 형태인 것이다.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길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갈림길이 있다느 것을,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잘할 때까지 똑같은 걸음을 반복하며 연습함에 따라, 갈림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 p 247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반복도 연습도 하지 못한 채 갈림길에서 주저앉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믿음을 바탕으로 변화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면 피나는 노력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찾은 여성들에게 있어 창조적인 삶이란 자신의 비밀스러운 삶을 찾아내는 행위이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행위라는 것은 고독의 참의미가 된다는 것을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고독은 풍요로운 상태다. 나와 주변의 고요함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는 상태다.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는 상태, 생각이 왔다 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앞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물이 그 자체로서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 바람이 불어 그 상태를 흩뜨려놓지 않는 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한, 우리는 고독의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간다. ’p 298  아, 정말 멋진 말이다. 물론 온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문장이지만, 나는 흥분하고 있다.

 책이 주는 특별함은 여성들만의 위한 상담,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의 고민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생이거나 후배, 언니나 엄마, 할머니가 될 수 있는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 물론 소개된 것이 여성들을 위한, 혼자인 여성들을 위한 삶의 정석은 아니겠지만 여성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세 가지다. 인식하고, 이름 붙이고, 표현하라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욕망과 감정을 인식하고 그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권리가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을 위해 표현하라. 

 어려운 책이지만, 여성이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힘겨워 멈추기도 했고 공감하기도 했다.  또한 내가 감추고 있었던 나의 감정 상태도 체크할 수 있었다. 내 안의 깊은 우물을 들여다 보게 한 이 책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성인 당신에게, 당신을 위한 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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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ㅣ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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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p 9  

 김연수의 말대로  정말 그렇다.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의 인생이라는 퍼즐. 제 자리를 잡은 조각들은 지나온 내 삶의 슬픔과 기쁨을 기억하고 있다. 하루 하루가 설렘으로 가득했던 사랑이 시작되는 날들은 생각하노라면 정현종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그게 활자의 모습으로 있거나/망막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거나/풀처럼 흔들리고 있거나/그 어떤 모습이거나/사람으로 붐비는 앎은/슬픔이니……’ 어쩜 정작 그 날들은 설렘보다는 불안하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지나고 나니 그 시절 나는 수줍었고 블그스레한 낯빛을 가졌고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많았었다.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산문집은 김연수만의 추억이 담겼고 그만의 문장으로 채워졌다. 그의 문장을 읽으면서 잠시 주춤하는 것은 그의 이야기 속에 겹쳐지는 나를 만나기 때문이다. 세대가 같다는 것, 비슷하다는 것은 같은 추운 겨울 스케이트를 타고 누나가 사준 떡복이를 먹는 기억에 나도 큰 언니와 처음 쫄면을 먹었던 날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김광석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 번 보았다는 것, 허름한 자취방에 두둑하게 쌓아올린 연탄으로 겨울을 시작했던 가난한 대학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 김연수를 만든 문장이 아닌 사람 김연수를 만든 문장을 읽으면서 그가 느꼈을 슬픔, 외로움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전해지는 듯하다. 느닷없이 맞이한 사촌 조카의 죽음, 빛나던 청춘의 푸르름은 어두운 보라빛으로 시든다. 그리고 그가 만난 이시바시 헤네노의 시 ‘매미소리 쏴-/아이는 구급차를/못 쫓아왔네.’ 이 짧은 시 속에 죽음이, 절망이 있었다.  쫓아갈 수 없는 죽음. 김연수는 이렇게 썼다.
‘겪은 사람이라면 저대로 잊지못하는 순간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잊으라고 소리쳤지만, 정작 나만은 아직도 그 절대적인 공허와 그 절대적인 충만의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 시간은 흘러가고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p92

 영원히 지속되는 누군가의 부재를 채울 수 없어 많은 밤을 술과 함께 견뎌낸다고 믿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부재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을 꺼내는 이유,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으니까.

 김연수는 자신의 문장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  그러나 그가 쓴 글은 이제 누군가의 문장이 된다.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p122 이 문장은 그의  소설 <스무 살>에서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 라는 문장의 연속이었다. 청춘은 불안하기에 아름답다. 어떻게 변화하여 무엇이 될지 모르기에 신비롭다. 그의 청춘을 지탱해준 많은 문장들을 읽으며 지금 그의 곁에 있는 문장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이제 더 이상 청춘이라 불릴 수 없는 나는 그의 문장을 읽고, 심보선의 시, 삼십 대를 읽고,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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