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p 9  

 김연수의 말대로  정말 그렇다.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의 인생이라는 퍼즐. 제 자리를 잡은 조각들은 지나온 내 삶의 슬픔과 기쁨을 기억하고 있다. 하루 하루가 설렘으로 가득했던 사랑이 시작되는 날들은 생각하노라면 정현종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그게 활자의 모습으로 있거나/망막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거나/풀처럼 흔들리고 있거나/그 어떤 모습이거나/사람으로 붐비는 앎은/슬픔이니……’ 어쩜 정작 그 날들은 설렘보다는 불안하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지나고 나니 그 시절 나는 수줍었고 블그스레한 낯빛을 가졌고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많았었다.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산문집은 김연수만의 추억이 담겼고 그만의 문장으로 채워졌다. 그의 문장을 읽으면서 잠시 주춤하는 것은 그의 이야기 속에 겹쳐지는 나를 만나기 때문이다. 세대가 같다는 것, 비슷하다는 것은 같은 추운 겨울 스케이트를 타고 누나가 사준 떡복이를 먹는 기억에 나도 큰 언니와 처음 쫄면을 먹었던 날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김광석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 번 보았다는 것, 허름한 자취방에 두둑하게 쌓아올린 연탄으로 겨울을 시작했던 가난한 대학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 김연수를 만든 문장이 아닌 사람 김연수를 만든 문장을 읽으면서 그가 느꼈을 슬픔, 외로움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전해지는 듯하다. 느닷없이 맞이한 사촌 조카의 죽음, 빛나던 청춘의 푸르름은 어두운 보라빛으로 시든다. 그리고 그가 만난 이시바시 헤네노의 시 ‘매미소리 쏴-/아이는 구급차를/못 쫓아왔네.’ 이 짧은 시 속에 죽음이, 절망이 있었다.  쫓아갈 수 없는 죽음. 김연수는 이렇게 썼다.
‘겪은 사람이라면 저대로 잊지못하는 순간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잊으라고 소리쳤지만, 정작 나만은 아직도 그 절대적인 공허와 그 절대적인 충만의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 시간은 흘러가고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p92

 영원히 지속되는 누군가의 부재를 채울 수 없어 많은 밤을 술과 함께 견뎌낸다고 믿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부재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을 꺼내는 이유,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으니까.

 김연수는 자신의 문장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  그러나 그가 쓴 글은 이제 누군가의 문장이 된다.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p122 이 문장은 그의  소설 <스무 살>에서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 라는 문장의 연속이었다. 청춘은 불안하기에 아름답다. 어떻게 변화하여 무엇이 될지 모르기에 신비롭다. 그의 청춘을 지탱해준 많은 문장들을 읽으며 지금 그의 곁에 있는 문장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이제 더 이상 청춘이라 불릴 수 없는 나는 그의 문장을 읽고, 심보선의 시, 삼십 대를 읽고,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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