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 제6회 채만식문학상, 제10회 무영문학상 수상작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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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특정 지역에 대한 추억이 있거나 갈망이 있다. 대부분 자신이 자라 온 고향이거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준 곳이 그러하다. 소설에서 만나지는 지역은 소설의 배경임과 동시에 작가에게 소중한 곳이 되는 경우다. 소설가 조경란은 단편 ‘나는 봉천동에 산다’에서 자신의 터전인 서울의 봉천동을 구체적으로 묘사했고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의 작가 윤대녕은 집필 내내 제주도에 머물렀다고 한다. 소설가 전성태에겐 몽골이 그러했다. 소설집 <늑대>는 몽골에 의해 탄생된 몽골을 위한 소설집이 아닐까. 
 
 열 편의 소설 중  실린 차례대로 <목란 식당>, <늑대>, <남방 식물>, <코리언 솔저>, <두번째 왈츠>, <중국산 폭죽> 6편의 단편은 모두 몽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목란 식당을>은 몽골에서 여행사를 하고 있는 주인공 나와 화가인 나의 삼촌과 즐겨찾는 북한 음식 전문점인 <목련 식당>에 관한 이야기다. 교민 신문에 평 옥류관 출신 요리사가 온다는 광고가 실리면서 식당 분주해진다. 식당을 찾은 교민들과 관광객은 북한 출신 요리사는 장사 수단이라며 수입금이 북으로 유입되냐고 묻는다. 식당의 여사장은 사정이 생겼는지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목란 식당>은 식당일뿐인데, 몽골에서 북을 대표하는 이미지화 되는 현실이 씁쓸한 소설이다.

 표제작인 <늑대>는 광할한 몽골을 그대로 드러난다. 캠프촌 게르에 늑대 사냥꾼들이 도착하며 시작되는 소설은 화자가 바뀌며 전재된다. 사냥꾼의 길잡이를 역할을 하는 촌장과 그의 딸 치무게, 늑대 사냥을 온 늙은 기업가와 함께 온 여자 허와, 사원의 라마, 늑대 사냥을 도와주는 카자르.  각자의 시선으로 늑대 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광활한 초원에서 말과 낙타를 기르며 살고 있던 촌장에게 몽골의 시장 경제 도입은 삶을 변화시켰다. 

 < 한 잔 수태채가, 게르에서 하룻밤 잠이 돈으로 계산되었습니다. 장작을 패는 노동이, 늑대를 쫓는 동행이 벌이가 되었습니다. 그뿐입니가. 게르 천장으로 빛나는 별과 스미는 달빛이, 지나는 바람과 흩날리는 눈이 역시 돈의 현영(現影)처럼 손님들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필요한 것, 때로는 여자가지 도시로 나가 사야 했지요. 그 볼모의 대지에 살을 부리며 나는 내 생에 좋은 일을 다 끝났음을 깨닫곤 했습니다. > p 38 

 늙은 사업가는 몽골의 사회주의체제가 남긴 써커스를 상업화 시켜 돈을 번다. 써커스에 필요한 늑대를 원하지도 하지만 그는 강력하게 말한다.  <나는 늑대 앞에 숙명적인 라이벌처럼 마주서기를 원합니다.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이니 죄의식이니 연민이니 하는 것들이 없는 절대공간에서 독대하기를 원하니다. 스스로 자신을 사냥하듯이 이루어졌으면 싶습니다. 어쩌면 나는 가징 사냥다운 사냥을 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p 46

 그믐밤 늑대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라마의 말을 들었지만 사냥꾼들은 검은 수컷 늑대를 원한다. 늑대를 유인하기 위해 카자르는 양들을 몰아준다. 늑대 사냥은 결국 늑대를 떠나게 만들 것이라는 것에 안타까운 촌장. 늑대는 결국 몽골과 같은 것이었다. 늑대를 쫓는 사냥군이 늘어나고 그들로 인해 돈을 버는 캠프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몽골은(늑대는) 본연의 모습을 지키기란 어려운 것이리라.

 한국을 꿈꾸는 몽골인과 반대로 몽골을 꿈꾸는 한국인의 모습을 그린 <남방 식물>, <코리언 솔저>에서도 정착되지 않은 시장 경제 체제속에서 혼란스럽고  폐쇠적인 사회를 만날 수 있다.  몽골은 과거 우리가 걸어온 경제 발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발전에 가려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되볼아보게 한다. 

 그외 단편 <강 건너는 사람들>에서는 죽음을 불사하고 자유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누구 내 구두 못 봤소?> 에서는 남과 북에 모두 아내를 둔 한 남자의 슬픔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이미테이션>이라는 단편은 혼혈아의 외모를 가졌지만 정작 부모는 모두 한국인이기에 결국 자신의 외모를 근거로 외국인 행세를 하며 학원 강사를 하는 주인공을 통해 진짜를 원하지만 진짜를 구별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은 몽골이라는 광활한 초원을 활주하는 늑대와 징키스칸의 후예를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제 초원은 사라졌고 전성태는 이렇게 썼다. <몽골은 내게 특별한 고통과 영감을 주었다. 시원(始原)의 이지미를 간직한 광활한 대지에서 맞닦드린 고독감은 세계 바깥을 보고 온 듯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흥미로웠던 것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이향한 몽골사회였고, 기이하게도 그것은 우리 사회를 되비춰주는 거울이 되곤 했다.>
몽골에서 돌아온 그의 가슴에는 아마도 한 마리 늑대가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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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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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연이 딸과 살아가는 다큐를 시청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을 만났다.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이라는 경로는 더더욱 그러하다.  김연은 방송을 통해 마지막 보험이 죽음이라고 했다. 지금 17살인 딸이 스무 살이 되고 자신의 나이 쉰에 자신을 위한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엄마가 아닌 이제 그녀 스스로를 위한 삶을 꿈꾸는 그녀. 홀로 딸을 키워가는 그녀는 고독하고 외로워 보였으나 행복해 보였다.   김연처럼 우리 주위에는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다. 여전하게 세상은 아직도 그녀들에게 많은 편견을 갖고 있지만 그들을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고 있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의 원제는  On My Own.  이 책의 저자 플로렌스 포크는 두 번의 이혼으로 혼자가 된 자신의 이야기와 심리치료사가 되어 상담해온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말한다.

 연인이 있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결혼이라는 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마법의 문처럼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다.  나도  한 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은 원하는 대로, 계획하는 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혼자 남겨져 살아야 한다는 것, 정확하게 말하면 둘이었다가 혼자가 된 상실감은 크다. 연인과의 이별, 남편과의 이별이든 대부분의 여자들은 결별의 이유를 자신에게 찾으려고 애쓴다. 사랑했기에 믿었기에 때로 배신감은 더 클 수 있다. 

 저자는 ‘혼자라는 것은 하나의 기회다’ 라고 말한다.  혼자만의 공간을 통해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연인으로써 존재가 아닌 여성으로써의 존재를 발견할 기회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기혼 여성들이 베란다나, 부엌 한 켠에 자신의 공간을 마련하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자 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혼자라는 것의 확장은 고독과 이어지는데,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었다. 고요하고 안정된 마음을 넘어 초월적이고 창조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순간, 나는 고독해지고 싶어졌다. 

 혼자라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여성들에게는 자신만의 트라우마가 존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어린 시절 부모나 주위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가 연장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아픈 부모가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고 떠나버렸을 때, 친구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믿었던 어른에게 폭력을 당한 상처들이 그러했다. 특히나 ‘상실의 원인이 무엇이든 아이는 잘못한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 p 115 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작가는 어린 시절 그 상처를 견디기 위해 찾았던 비밀의 정원을 기억하라고 한다. 당신을 위해 썼던 일기, 책 읽기,  빨간 머리 앤의 상상하기도 비밀의 정원의 형태인 것이다.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길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갈림길이 있다느 것을,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잘할 때까지 똑같은 걸음을 반복하며 연습함에 따라, 갈림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 p 247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반복도 연습도 하지 못한 채 갈림길에서 주저앉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믿음을 바탕으로 변화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면 피나는 노력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찾은 여성들에게 있어 창조적인 삶이란 자신의 비밀스러운 삶을 찾아내는 행위이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행위라는 것은 고독의 참의미가 된다는 것을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고독은 풍요로운 상태다. 나와 주변의 고요함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는 상태다.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는 상태, 생각이 왔다 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앞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물이 그 자체로서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 바람이 불어 그 상태를 흩뜨려놓지 않는 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한, 우리는 고독의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간다. ’p 298  아, 정말 멋진 말이다. 물론 온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문장이지만, 나는 흥분하고 있다.

 책이 주는 특별함은 여성들만의 위한 상담,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의 고민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생이거나 후배, 언니나 엄마, 할머니가 될 수 있는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 물론 소개된 것이 여성들을 위한, 혼자인 여성들을 위한 삶의 정석은 아니겠지만 여성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세 가지다. 인식하고, 이름 붙이고, 표현하라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욕망과 감정을 인식하고 그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권리가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을 위해 표현하라. 

 어려운 책이지만, 여성이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힘겨워 멈추기도 했고 공감하기도 했다.  또한 내가 감추고 있었던 나의 감정 상태도 체크할 수 있었다. 내 안의 깊은 우물을 들여다 보게 한 이 책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성인 당신에게, 당신을 위한 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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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ㅣ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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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p 9  

 김연수의 말대로  정말 그렇다.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의 인생이라는 퍼즐. 제 자리를 잡은 조각들은 지나온 내 삶의 슬픔과 기쁨을 기억하고 있다. 하루 하루가 설렘으로 가득했던 사랑이 시작되는 날들은 생각하노라면 정현종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그게 활자의 모습으로 있거나/망막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거나/풀처럼 흔들리고 있거나/그 어떤 모습이거나/사람으로 붐비는 앎은/슬픔이니……’ 어쩜 정작 그 날들은 설렘보다는 불안하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지나고 나니 그 시절 나는 수줍었고 블그스레한 낯빛을 가졌고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많았었다.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산문집은 김연수만의 추억이 담겼고 그만의 문장으로 채워졌다. 그의 문장을 읽으면서 잠시 주춤하는 것은 그의 이야기 속에 겹쳐지는 나를 만나기 때문이다. 세대가 같다는 것, 비슷하다는 것은 같은 추운 겨울 스케이트를 타고 누나가 사준 떡복이를 먹는 기억에 나도 큰 언니와 처음 쫄면을 먹었던 날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김광석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 번 보았다는 것, 허름한 자취방에 두둑하게 쌓아올린 연탄으로 겨울을 시작했던 가난한 대학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 김연수를 만든 문장이 아닌 사람 김연수를 만든 문장을 읽으면서 그가 느꼈을 슬픔, 외로움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전해지는 듯하다. 느닷없이 맞이한 사촌 조카의 죽음, 빛나던 청춘의 푸르름은 어두운 보라빛으로 시든다. 그리고 그가 만난 이시바시 헤네노의 시 ‘매미소리 쏴-/아이는 구급차를/못 쫓아왔네.’ 이 짧은 시 속에 죽음이, 절망이 있었다.  쫓아갈 수 없는 죽음. 김연수는 이렇게 썼다.
‘겪은 사람이라면 저대로 잊지못하는 순간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잊으라고 소리쳤지만, 정작 나만은 아직도 그 절대적인 공허와 그 절대적인 충만의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 시간은 흘러가고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p92

 영원히 지속되는 누군가의 부재를 채울 수 없어 많은 밤을 술과 함께 견뎌낸다고 믿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부재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을 꺼내는 이유,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으니까.

 김연수는 자신의 문장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  그러나 그가 쓴 글은 이제 누군가의 문장이 된다.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p122 이 문장은 그의  소설 <스무 살>에서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 라는 문장의 연속이었다. 청춘은 불안하기에 아름답다. 어떻게 변화하여 무엇이 될지 모르기에 신비롭다. 그의 청춘을 지탱해준 많은 문장들을 읽으며 지금 그의 곁에 있는 문장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이제 더 이상 청춘이라 불릴 수 없는 나는 그의 문장을 읽고, 심보선의 시, 삼십 대를 읽고,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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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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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입식 교육처럼 무서운 것이 있을까. 나의 초등교육은 아직도 북한에 대해 가슴 밑바닥에는 우리와는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남겨두었다. 통일문학이라는 소설 <국가의 사생활>을 마주하며 국방부에서 이 책도 혹시 금지 목록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이런 저런 생각과 동시에 소를 몰고 평향으로 향하며 통일을 바랐던 고인이 된 기업인이 문득 떠올랐다. 원하던 대로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룬 대한민국의 서울,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열심히 노래했지만, 통일에 대해 구체적은 생각이 없었기에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에 기대가 컸는지도 모른다. 가까운 시점, 2011년에 통일을 시작으로 그 후 대한민국을 조명한다고 할까? 

 대한민국이 조선인민주의 공화국을 흡수한 후 2016년, 서울이다. 소설은 북한에서 서울로 내려온 사람들의 시선이 주가 된다. 잠시 평양에 다녀온 리강은 동료 림병모의 죽음을 듣는다. 예상치 못한 죽음에 의문을 갖고 사건을 은밀하게 조사한다. 리강이 속한 ‘대동강’은 6층의 광복빌딩속에 자리한 조선 인민군 출신의 폭력 조직이다.  같은 빌딩엔 이북 여자들로 구성된 접대부를 두고 장사를 하는 고급 술집인 ‘은좌’도 있다. 대동강의 많은 접대는 은좌에서 이뤄졌고 지하에는 조직의 또 다른 공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고문과 죽음, 그리고 화장까지 모든 것이 이뤄지는 끔찍한 광기의 공간. 통일은 이러했다. 이북의 엘리트들은 자살을 했고, 남한의 투기꾼들은 재빠르게 이북 땅으로 움직였고, 남한으로 유입되는 이북 사람들에 대한 배려나 구체적인 복지도 없이 그들은 방치되는 암울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대동강의 조직원은 독립운동자의 손자이자 인민의 영웅이었던 리강을 중심으로 북한에서 가장 끔찍한 수용소를 보고 온 ‘대동강’의 1인자 오남철, 겉으로 보기엔 소년이지만 신을 접한 장군도령, 리강을 시기하고 제거하려는 반란을 꿈꾸는 조명도, 평양에서는 최고의 수재였지만 통일된 후 고아 이상으로 전락해 버린 김동철. 그들은 통일된 이 나라에서 이북의 혁명을 꿈꾸듯 조직에 가담했다.

서울의 경찰은 이미 범죄와 손을 잡았고 이북 출신 폭력 조직배들이 난무하며 전산회되지 않은 많은 이북 사람들을 이용해 신종 마약을 유통시킨다. 이러한 과정중에 임병모가 죽은 것이다. 리강은 이북에서 좋은 출신 성분으로 화가의 삶을 살았지만 결국 고급 접대부가 된 림병모의 애인인 서일화를 만나고 조금씩 사건을 전모를 밝혀나간다.  리강의 움직임을 알아챈 오남철과 조명도는 리강을 향해 총을 겨눈다. 쫓기고 쫓는 시간들, 무엇을 위해 총구를 겨누는지도 모르고, 여기 저기 피가 낭자한 세상.  소설은 한 편의 느와르 영화를 보는 듯하다.

소설은 통일된 한국이 얼마나 혼란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 여과없이 보여준다. 우리가 바라던 통일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소설일 뿐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세계의 하나뿐인 분단국가, 우리가 이뤄야 할 통일에 대해 양지만이 아닌 음지의 모습도 봐야 한다고,  잔인한 현실이지만 외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정부는 통일 후에 누리게 될 경제성장이라는 패만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숨겨진 패, 그 진실은 소설 속에 있다.

 “나는 너를 만나서 좋았다. 좋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것과는 다르지. 행복은 불행 속에는 있을 수 없지만 좋다는 것은 불행 속에서도 있으니까. 나는 너를 만나서 좋았다. 여자 없인 살아도 좋지 않으면 살 수가 없지. ” p 256

 불면증을 위해 마약 레드아이를 리강에게 거래했던 이선우는 결국 조국을 떠났고 리강은 어둠으로 얼룩진 조국에 남았다. 이선우가 남긴 메일 문장 속 나와 너는 남과 북을 대신한다. 그런데 과연 남과 북은 행복하기 이전에 좋기는 한 걸까.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의 소설이었지만,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남과 북이 하나가 되었을 때 이 소설이 어떻게 회자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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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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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타이틀이든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는 어려운 숙제를 남겨둔 느낌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이름에 따라붙는 수식어로 독자들이 갖는 기대감을 직접적으로 느낄 것이기에. 그 대표적인 작가가 2007년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정한아. 한 권의 소설은 그녀를 단숨에 커다란 풍선으로 만들어버렸다.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것 이상으로 커져버렸다. 동시에 그것이 절대 터져버리지 않을 꺼라는 믿음을 준 작가다.

<나를 위해 웃다>는 <달의 바다>가 안겨준 숙제를 잘 풀어낸 소설이다. 어떤 독자라도 작가의 성실성을 느낄 수 있다. 8개의 소설은 우울함을 달래주는 코코아처럼, 보드라운 감촉을 떠올리는 사프란의 향기처럼 독자를 기분좋게 만든다.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라서가 아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씩 벗겨내려는 몸짓이 있기 때문이다.

잉태됨과 동시에 죽음을 염두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그에 맞서듯 거대하게 성장해 버린 엄마의 삶을 이야기하는 <나를 위해 웃다>도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자신을 찾는 모습을 보게 되지만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며 살아내려는 <아프리카>, 동생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잊지 않으려 요리를 하는 아빠 의식을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을 담은 <마테의 맛>도 사실, 파고들면 그 본질은 고요하고 슬픈 상처와 맞닿는다. 그러나 작가는 고여있는 슬픔들을 퍼내기 시작해 그 슬픔의 크기를 점점 줄여 나간다.  

 거대병을 앓는 엄마의 배속에서 자라는 또 하나의 생명, 독자적으로 살아남는 아프리카 동물처럼 자신만의 삶을 꿈꾸고, 상처를 드러내어 서서이 딱지를 떠어내도록 유도한다. 엄마를 닮아 거대한 몸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고, 지금의 삶보다 더 고통스러운 생활이 이어질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슬픔도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버릴 수 있는, 어떤 이는 강하게 부정할 그들의 삶에 막연하지만 희망과 긍정을 심어둔다. 

 슬픔이든 두려움이든 견뎐낼 때까지 고된 일들로 몸을 쉬지 않게 하여 감정을 소모시키는 <첼로농장>, 자기 자신을 더이상 사랑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남자와 그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임을 알아버린 <의자>, 어떤 의지로도 달라질 수 없는 육체의 고통을 가진 아빠가 엄마의 구두를 닦아주고 품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자전거에 엄마를 태우고 달리는 그 자체가 황홀한 댄스인 <댄스댄스>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지쳐있다. 고단함에서 벗어나려 자신을 포장하려 애쓰는 엄마의 모습,  간질거리는 봄날처럼 편안함과 부드러움으로 기억되는 의자를 찾아나서는 이는 우리가 가진 그러나 마주할 수 없는 그림자와 같은 것.

 포기하고 놓아버리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은 달래는 방법을 작가는 알고 있는 양, 끝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내던져 지지 않게 심지어 큰 소리로 싸움을 내지도 않으며 가만가만 그들을 토닥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준다. 결코 쉽지 않은 세세한 감정을 작가는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까. 어쩌면 내일이라는 삶이 너무도 두려워, 오늘만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작가.

 분명, 이 소설은 <달의 바다>를 뛰어 넘는다. 더 성숙해졌고 유려해졌으며 따뜻하다.  간절하게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한 것이, 그 간절함을 요란스럽지 않게 담담하게 표현하려 한 것을 느낄 수 있어 독자는 감사하다. 이제 정한아에게 가졌던 조금은 걱정스러웠던 시선은 걷어두어도 좋다.
그저 지금처럼 그녀의 소설을 기다려주고 읽어주고 같이 느끼면서 작가와 함께 성장해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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