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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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타이틀이든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는 어려운 숙제를 남겨둔 느낌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이름에 따라붙는 수식어로 독자들이 갖는 기대감을 직접적으로 느낄 것이기에. 그 대표적인 작가가 2007년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정한아. 한 권의 소설은 그녀를 단숨에 커다란 풍선으로 만들어버렸다.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것 이상으로 커져버렸다. 동시에 그것이 절대 터져버리지 않을 꺼라는 믿음을 준 작가다.

<나를 위해 웃다>는 <달의 바다>가 안겨준 숙제를 잘 풀어낸 소설이다. 어떤 독자라도 작가의 성실성을 느낄 수 있다. 8개의 소설은 우울함을 달래주는 코코아처럼, 보드라운 감촉을 떠올리는 사프란의 향기처럼 독자를 기분좋게 만든다.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라서가 아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씩 벗겨내려는 몸짓이 있기 때문이다.

잉태됨과 동시에 죽음을 염두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그에 맞서듯 거대하게 성장해 버린 엄마의 삶을 이야기하는 <나를 위해 웃다>도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자신을 찾는 모습을 보게 되지만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며 살아내려는 <아프리카>, 동생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잊지 않으려 요리를 하는 아빠 의식을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을 담은 <마테의 맛>도 사실, 파고들면 그 본질은 고요하고 슬픈 상처와 맞닿는다. 그러나 작가는 고여있는 슬픔들을 퍼내기 시작해 그 슬픔의 크기를 점점 줄여 나간다.  

 거대병을 앓는 엄마의 배속에서 자라는 또 하나의 생명, 독자적으로 살아남는 아프리카 동물처럼 자신만의 삶을 꿈꾸고, 상처를 드러내어 서서이 딱지를 떠어내도록 유도한다. 엄마를 닮아 거대한 몸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고, 지금의 삶보다 더 고통스러운 생활이 이어질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슬픔도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버릴 수 있는, 어떤 이는 강하게 부정할 그들의 삶에 막연하지만 희망과 긍정을 심어둔다. 

 슬픔이든 두려움이든 견뎐낼 때까지 고된 일들로 몸을 쉬지 않게 하여 감정을 소모시키는 <첼로농장>, 자기 자신을 더이상 사랑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남자와 그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임을 알아버린 <의자>, 어떤 의지로도 달라질 수 없는 육체의 고통을 가진 아빠가 엄마의 구두를 닦아주고 품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자전거에 엄마를 태우고 달리는 그 자체가 황홀한 댄스인 <댄스댄스>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지쳐있다. 고단함에서 벗어나려 자신을 포장하려 애쓰는 엄마의 모습,  간질거리는 봄날처럼 편안함과 부드러움으로 기억되는 의자를 찾아나서는 이는 우리가 가진 그러나 마주할 수 없는 그림자와 같은 것.

 포기하고 놓아버리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은 달래는 방법을 작가는 알고 있는 양, 끝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내던져 지지 않게 심지어 큰 소리로 싸움을 내지도 않으며 가만가만 그들을 토닥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준다. 결코 쉽지 않은 세세한 감정을 작가는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까. 어쩌면 내일이라는 삶이 너무도 두려워, 오늘만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작가.

 분명, 이 소설은 <달의 바다>를 뛰어 넘는다. 더 성숙해졌고 유려해졌으며 따뜻하다.  간절하게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한 것이, 그 간절함을 요란스럽지 않게 담담하게 표현하려 한 것을 느낄 수 있어 독자는 감사하다. 이제 정한아에게 가졌던 조금은 걱정스러웠던 시선은 걷어두어도 좋다.
그저 지금처럼 그녀의 소설을 기다려주고 읽어주고 같이 느끼면서 작가와 함께 성장해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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