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사나이 - 제1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기홍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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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연주나, 노래에 매혹되면 한동안 그 음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해서, 블로그의 배경음악이나 CD를 구매해서 반복해서 듣곤 한다. 몹시 화가 났을 때, 울적할 때, 슬픔을 가누지 못할 때, 음악은 큰 위로가 된다. 음악은 감성의 자극 이상으로 영혼까지 흔드는 힘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장황하게 늘어 놓는 이유는, 소설 <피리부는 사나이>때문이다. 쥐를 몰아내기 위한 피리 소리를 듣고 어디론가 사라진 아이들. 무엇이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갔을까?  <피리부는 사나이>는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소설은 주인공  ‘
나’가 2004년 대학에 입학하고 새로운 만남과 일상에서 시작한다. 스무 살, 대학 신입생의 일상은 잦은 환영회와 술자리로 이어진다.  대학은 새로운 세계라 할 수 있다. 어느 세계든 그 곳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였다. 하여, 하숙집 친구인 ‘우진’과 도서관에서 만나게 된 ‘수연’과 어울렸다. 그러다 예기치 못한 술자리로 하룻밤 신세를 진 같은 과 동기 정현과 좋지 않은 소문에 휩싸이게 된다. 드러내 놓고, 해명을 하지 않았기에 소문은 더 커지고 결국 정현을 비롯하여 동기들과의 관계는 멀어진다.

 그럴수록 수연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축제 때 우연하게 타로 점을 보게 되고, 수연은 자신이 뽑은 카드를 보고 놀라며 그 이후로 소식을 끊는다. 수연에 대해 하는 것이 없었던 나는 힘든 시간을 보낸다. 다시 만난 수연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자신을 지배하는 듯한 운명적인 피리 소리에 대해, 그 이후의 삶에 대해. 피리를 불던 남자를 잊지 못한다고. 나는 점점 그 남자가 궁금하고,
그러던 차에 묘한 기타 연주를 만나게 된다. 놀랍게도 정현의 연주였다. 불편한 사이였던 정현에게 기타 연주를 배우면서  그 음악을 만든 정현의 오빠, 여행에서 돌아온 하숙집 형 이반에 대해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레 친하게 지낸다.

 방학을 맞아
우진은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수연은 휴식을 위해 유럽 여행을 떠난다. 정현은 수연이 잊지 못하는 피리부는 남자를 찾아보자고 말한다. 수연이 피리 소리를 들었던 파티 장소를 시작으로 그 남자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하며 소설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남자의 정체와 배후에 세계를 무력으로 변화시키려는 테러집단이 있었다. 수연의 행방은 묘연해지고, 나는 수연을 찾으러 런던으로 향한다. 런던에선 놀랍고도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소설은 아주 섬세하고 차분하게 나의 일상의 변화를 그렸으나, 다소 지루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비밀스런 수연이 이야기를 잘 이끌고 있다. 수연이 들었던 피리소리는 아이들을 사라지게 한 피리소리와 같은지 그 진위를 확인하고 싶게 한다. 더불어 정현의 기타 연주도 그러하다.  또한 소설은 나와 맺어지는 관계의 확장으로  인한 내면의 성장과 ‘피리 소리’란 문을 통해 새로운 변화된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작가는 ‘피리 소리’를 몽환적인 상징으로 그 소리가 열어주는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나는 옷을
챙겨입고, 운동화 끈을 꽉 묶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 발짝, 한 발짝, 아직은 멀리 있는 그들을 향해.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또다른 세계를 향해. p 319

 주인공이 만나게 될 또다른 세계는 과연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 세계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계가 아닐까.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한 2004년을 전후로 세계엔 폭탄 테러와 자연 재해가 있었던 해로, 작가는 주인공 나의 개인적인 시선과 경험을 통해 사회,더 나가 세계적인 폭력과 무력의 문제가 결코 남의 문제만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비해,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만남과 관계에 있어 작위적이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젊은 작가가 긴 호흡으로 다채로운 스토리를 엮어내고자 했음은 대단하다. 해서, 다음엔 더 탄탄한 소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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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은 타로 카드 뒷장처럼 겹겹이 펼쳐지는지. 물위
                   에 달리는 꽃잎들 맴도는지. 어쩌자고 벽이 열려 있
                   는데 문에 자꾸 부딪히는지. 사과파이의 뜨거운 시럽
                   이 흐르는지, 내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지. 유리공장
                   에서 한 번도 켜지지 않은 전구들이 부서지는지. 어
                   쩌자고 젖은 빨래는 마르지 않는지. 파란 새 우는지,
                   널 사랑하는지, 검은 버찌나무 위의 가을로 날아가는
                   지. 도대체 어쩌자고 내가 시를 쓰는지, 어쩌자고 종
                   이를 태운 재들은 부드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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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두 - 함정임 소설집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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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임은 아직 내게 익숙하지 않은 작가다.  중단편 <아주 사소한 중독>으로 처음 만났고, 하나의 단편을 더 만난게 전부였다. 환영(幻影)이라 뜻의 곡두와 묘한 표지가 왠지 끌렸다. 소설은 곡두라는 제목처럼 잡히는 것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10편의 소설 중 <곡두>, <자두 >, 상쾌한 밤>은 연작소설과 같은 흐름을 갖었고,  다른 소설 <환대>, <구름 한 점 - 환대2>도 마찬가지였다. 함정임의 소설속 인물들은 정착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여기 저기 삶의 언저리를 떠돌거나, 다시 정착할 어딘가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들이었다.

 <곡두>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동거 이야기로 시작한다. 남자의 어머니가 결혼을 허락하면서 여자는 결혼식에 함께 들어가야 할 사람이라며, 노모가 수소문한 이복 오빠의 흔적을 따라 다닌다. 그러나 도착한 곳마다 그는 이미 떠난 상태였고, 사람들의 말을 통해 오빠의 일상을 듣든다. 한 번도 만나적 없는 오빠의 존재가, 그녀에겐 곡두가 아니었을까.

 <곡두>가 여자의 이야기라면, <자두>는 남자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곡두>보다 구체적인 상황이다. 남자와 여자는 둘 다 이혼경력이 있으며 여자에겐 아이도 있다. 남자는 결혼과 함께 이사를 하려고 집을 내놓는다. 화가였던 전처의 그림이 거실에 걸려있는 집은 쉽게 팔리지 않고, 남자는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새로게 펼쳐질  삶을 생각한다.

 <상쾌한 밤>은 여자의 오빠 이야기라 하겠다. IMF로 인해 떠돌이가 된 그, 결혼을 앞두고 자신을 만나려 하는 이복 여동생, 상견례 참석 소식을 전하는 아내. 위장 이혼인 아내가 완전한 결별을 통보할까 그는 두려워한다. 단편은 뚜렸한 결말 없이 흘러간다. 

 <환대>, <구름 한 점 - 환대2>는 죽음으로 인한 부재, 이별을 말한다. <환대>는 여동생이 모시고 있던,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큰 딸 안서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상한다. 자신을 유독 아꼈던 아버지와 불화가 시작되었던 시절,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 빈자리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 안서는 생각한다.  <구름 한 점- 환대2>는 안서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우연하게 근처 요양소에서  자신을 딸로 착각하는 노인 달자씨를  통해 안서는 돌아가신 아버지,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곡두>,<자두>,<상쾌한 밤>이 난해한 꿈의 느낌이 강한 반면에 두 편의 소설은 소설보다는 일상의 기록처럼 다가온다. 꾸며지지 않은 우리네 모습처럼 담담하다. 

 함정임의 <곡두>는 특정 지명이 곳곳에 등장한다. 인상깊었던 곳은 <환대>, <구름 한 점 - 환대2>에서 등장하는 추리문학관, 달맞이언덕, 송정, 오륙도, 등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나머지 소설 <달콤한 눈물>,<행인>, <킬리만자로의 눈[目]>,<백야>에서도 목포, 슬라이고의 이니스프리 호수섬,아프리카 등 불쑥 불쑥 길을 떠나고, 떠도는 군상들이다. 지친 일상을 달래기 위한 휴식이나, 여행을 위한 떠남이 아니라, 정착할 이유를 찾기 못해, 부유하는 삶이다. 하여, 사랑하는 연인, 가족이 있어도 그들은 모두 쓸쓸하고 외롭다. 

 <곡두>인 양, 함정임의 소설은 낯설고 어렵다. 존재하나, 잡히지 않는, 환상과 환영의 세계, 그 곳에 함정임의 소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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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하실의 애완동물 - 김나정 소설집
김나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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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책이 있다.  읽는내내 책속으로 빠져들게 하여 책과 하나가 되어 읽고 난 후에도 한참동안 긴 여운이 감도는 책. 아무나 붙잡고 이 책을 읽어봤냐고 말을 건네고 눈을 반짝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처음 만난 작가 김나정의 <내 지하실의 애완동물>은 나를 기분좋은 흥분으로 이끌었다. 이 말에 재미있는 이야기라 오해할지 몰라 미리 말하자면, 김나정의 단편들은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먼 소설이다. 

 바닷가 작은 도시 여인숙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비틀즈의 다섯번째 멤버>. 여인숙엔 한 소녀가 있다. 주인 남자가 소녀를 거두고 일을 주고 보호해주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실체는 달랐다. 소녀는 학대받고 있었고, 몇 차례 유산을 했다. 남자는 은인이었지만, 악인이었다. 건조한 소녀의 일상은 자살을 결심하고 투숙한 여자에 의해 흔들린다. 소녀는 약을 먹은 여자를 살리려 하지 않고, 여자의 신분증과 기타 케이스를 메고 여인숙을 나온다. 

 <《》> 은 특이한 부호의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도 괄호였다. 괄호는 크리스마스에 길 위에 쓰러진 여자를 자신의 집 지하실로 옮겨온다.분명 처음엔 구조의 의도가 있었겠지만, 결국 괄호는 경찰서에 신고하는 대신 여자를 켵에 두고 욕정을 채운다. 그러면서 괄호는 자신의 여자의 생명을 구했음을 강조한다. 비열하고 치졸한 자기 방어를 김나정은 적당하게, 기막히게 그려낸다. 

 - 저기요.
불러도 여자는 괄호 쪽을 보지 않았다. 벽만 보고 있었다.
괄호는 여자에게서 떨어져 서서
-골목에 쓰러져 있는 댁을 내가 여기 데려다 놓았거든요.
그대로 두면 얼어 죽었을 거예요. p 73


 여자가 임신을 하자, 괄호는 산부인과를 찾아가보고, 간장을 억지로 먹인다.  재개발이 확정되어  골목의 이웃은 모두 떠났고, 괄호의 집도 이사를 떠난다. 지하실의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주관식 생존문제>는 이미 두 번 파양을 경험한 11살 소년의 세 번째 입양 이야기. 입양도 파양도 소년의 의지가 아니었고, 잘못이 아니었다. 세 번째 양부모의 말을 거슬르지 않는다. 토할 것 같은 삼계탕을 열심히 먹었지만, 세 번째 양부모는 파양을 결정하고, 고아원에 도착하자 소년은 필사적으로 자동차 문을 잠근다. 

 놀이터에서 같이 놀던 동생이 유괴되어 죽고, 붕괴된 가족의 모습을 담은 <구>. 주인공 수인은 일상에서 동생을 유괴한 여자를, 무심히 바라본 여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명확하지 않은 기억 속 여자는 너무 많았다. 오늘까지 나는 아홉 명의 여자를 만났다. 그녀들은 조금씩은 닮았다. 그러나 조금씩 다르기도 했다. 어디까지 닮았고, 어디부터 달라지는지 선을 그을 수 없다. 모두가 그녀 같았고, 전부 그녀가 아닌 것 같았다. p 239  수인의 절실함과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소설은 일상이라는 악몽을 가혹하게 다룬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와 뉴스의 현장을 보는 듯한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와 닮았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이 없는 약자 중에 약자였고, 김나정은 그들의 일상을 세밀하고 침착하게 관찰하는 관찰자였다. 그랬다. 작가는 그저 관찰자에 불과했다. 주인공인 약자의 편이 아니었다. 어떤 희망이나 행복의 결말을 안겨주지 않았고, 오히려 강자의 편인 양 강자의 위선과 뻔뻔함을 슬그머니 수긍하는 듯 보였다. 악을 판단하고 집행하하는 건 사회의 몫이라 그랬을까. 아니, 독자라면 어떻게 했을지 묻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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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의 눈을 달랜다 -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ㅣ 민음의 시 160
김경주 지음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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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한 달에 한 권이상 시를 읽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어렵다는 이유로 실천하지 못한 달이 여러 달 계속되었다. 다시 시를 읽는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세계에서 길을 잃었다. 달콤한 어지러움, 그 세계에서 길을 잃은 일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시를 이해하려 애쓰는 일은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하여, 시를 읽는 순간, 그 행위가 지속되는 시간, 시와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김경주는 시를 읽는 순간 마저도 어려움을 동반했다. 실은 김경주의 <기담>을 읽는데도 그랬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기담을 읽다가 멈추었다. 김경주는 풀기 어려운 숙제, 엉커진 실타래라 하면 맞을까.

 
문학계가 주목하는 시인, 김경주의 <시차의 눈을 달랜다>는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이었다. 읽기 조차 버거운 시라는 예상했지만, 버거움의 크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젊은 시인의 시를 읽는다는 건, 신선함이라 하기엔 보편의 그것과는 차이가 컸다. 그의 언어를 쫓아가 보리라는 마음은 접었다. 김경주가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그리고 싶은 세상이 무엇일까. 의문만 커진다. 난해하고 낯선 시, 그 와중에 따뜻한 시를 만났다.

새들이 마주 오는 죽은 새들을 마주칠 때
그들은 서로의 속눈썹을 얼굴로 쓰다듬고 지나간다

바람은 그 높이에선 늘 눈을 감는다

서로 다른 붓털이 만나서 만들어 가는 하나의 획

이상하게 한 획을 긋는 붓에서는 바람 냄새가 난다

붓을 삶는다

삶은 붓은
혈압에 좋다   -  획(畵) p 36 

 ‘붓을 삶는다’, ‘삶은 붓은 혈압에
좋다’ 라는 구절이 좋아서, 이 부분을 반복해서 읽고, 읽으면서 웃었다.  나만의 붓을 삶고 싶은 소망이 자라는 기분이랄까. 또 이런 시도 만났다. 시 때문에 죽고 사는, 시가 지배하는 삶, 그 안에 담긴 절절한 시인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 해서, 순간, 멈칫하며 나도 따라 울먹이게 하는 시.   

시 때문에 죽고 살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자꾸 엄마는 시를 놓으라고 울고 나는 고양이를 울린다
자꾸 시 가지고 생활을 반성하는 놈 좀 없었으면 하는데
시 때문에 30분을 책상에 앉아 있다가도 참혹해지고
시 한 편 발표하고 나면
몰래 거리에 쓰레기 봉기를 두고 온 기분이 든다

시 때문에 살 일 좀 생겼으면 하는데
사형수가 교수대를 향해 걸어가면서
뛰따라오는 간수들에게 갑자기
자꾸 밀지 말라고 울먹이는 광경처럼  

(……)

시 때문에 울먹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   -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 의 일부 p 112


 <시차의 눈을 달랜다>란 제목에서 시인이 살고 있는 세계, 시간을 생각한다.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똑같이 주어진 시간속에 있으면서도 시인의 눈은 우리의 눈과 분명 다를 터. 그 다름의 간격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간격이 나를 위로함을 안다. 익히지 않은 날 것의 차갑고도 생경한 김경주의 읽으면서 끝까지 읽지 못했던 시집 <기담>을 다시 만나겠구나 싶다. 또한 시집을 마주하고 맴돌던 ‘김수영’의 ‘풀’ 을 소리내어 읽는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의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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