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하실의 애완동물 - 김나정 소설집
김나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런 책이 있다.  읽는내내 책속으로 빠져들게 하여 책과 하나가 되어 읽고 난 후에도 한참동안 긴 여운이 감도는 책. 아무나 붙잡고 이 책을 읽어봤냐고 말을 건네고 눈을 반짝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처음 만난 작가 김나정의 <내 지하실의 애완동물>은 나를 기분좋은 흥분으로 이끌었다. 이 말에 재미있는 이야기라 오해할지 몰라 미리 말하자면, 김나정의 단편들은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먼 소설이다. 

 바닷가 작은 도시 여인숙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비틀즈의 다섯번째 멤버>. 여인숙엔 한 소녀가 있다. 주인 남자가 소녀를 거두고 일을 주고 보호해주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실체는 달랐다. 소녀는 학대받고 있었고, 몇 차례 유산을 했다. 남자는 은인이었지만, 악인이었다. 건조한 소녀의 일상은 자살을 결심하고 투숙한 여자에 의해 흔들린다. 소녀는 약을 먹은 여자를 살리려 하지 않고, 여자의 신분증과 기타 케이스를 메고 여인숙을 나온다. 

 <《》> 은 특이한 부호의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도 괄호였다. 괄호는 크리스마스에 길 위에 쓰러진 여자를 자신의 집 지하실로 옮겨온다.분명 처음엔 구조의 의도가 있었겠지만, 결국 괄호는 경찰서에 신고하는 대신 여자를 켵에 두고 욕정을 채운다. 그러면서 괄호는 자신의 여자의 생명을 구했음을 강조한다. 비열하고 치졸한 자기 방어를 김나정은 적당하게, 기막히게 그려낸다. 

 - 저기요.
불러도 여자는 괄호 쪽을 보지 않았다. 벽만 보고 있었다.
괄호는 여자에게서 떨어져 서서
-골목에 쓰러져 있는 댁을 내가 여기 데려다 놓았거든요.
그대로 두면 얼어 죽었을 거예요. p 73


 여자가 임신을 하자, 괄호는 산부인과를 찾아가보고, 간장을 억지로 먹인다.  재개발이 확정되어  골목의 이웃은 모두 떠났고, 괄호의 집도 이사를 떠난다. 지하실의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주관식 생존문제>는 이미 두 번 파양을 경험한 11살 소년의 세 번째 입양 이야기. 입양도 파양도 소년의 의지가 아니었고, 잘못이 아니었다. 세 번째 양부모의 말을 거슬르지 않는다. 토할 것 같은 삼계탕을 열심히 먹었지만, 세 번째 양부모는 파양을 결정하고, 고아원에 도착하자 소년은 필사적으로 자동차 문을 잠근다. 

 놀이터에서 같이 놀던 동생이 유괴되어 죽고, 붕괴된 가족의 모습을 담은 <구>. 주인공 수인은 일상에서 동생을 유괴한 여자를, 무심히 바라본 여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명확하지 않은 기억 속 여자는 너무 많았다. 오늘까지 나는 아홉 명의 여자를 만났다. 그녀들은 조금씩은 닮았다. 그러나 조금씩 다르기도 했다. 어디까지 닮았고, 어디부터 달라지는지 선을 그을 수 없다. 모두가 그녀 같았고, 전부 그녀가 아닌 것 같았다. p 239  수인의 절실함과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소설은 일상이라는 악몽을 가혹하게 다룬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와 뉴스의 현장을 보는 듯한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와 닮았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이 없는 약자 중에 약자였고, 김나정은 그들의 일상을 세밀하고 침착하게 관찰하는 관찰자였다. 그랬다. 작가는 그저 관찰자에 불과했다. 주인공인 약자의 편이 아니었다. 어떤 희망이나 행복의 결말을 안겨주지 않았고, 오히려 강자의 편인 양 강자의 위선과 뻔뻔함을 슬그머니 수긍하는 듯 보였다. 악을 판단하고 집행하하는 건 사회의 몫이라 그랬을까. 아니, 독자라면 어떻게 했을지 묻고 있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