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균형 ㅣ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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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인도를 소재로 한 소설, 영화가 화제다.  <적절한 균형> 이전에 <그저 좋은 사람>, <상실의 상속>, <슬럼독 밀리어네어>, <화이트 타이어>를 통해 인도의 과거와 현재를 만날 수 있었다. <적절한 균형>은 1975년에서 1977년 국가비상사태 체제인 인도의 모습을 담았다. 900쪽에 가까운 책은 마넥, 디나, 이시바, 옴 네 명의 삶을 통해 그 시간, 인도를 낱낱히 보여주는 보고서와 같았다.  

1975년 인도는 ‘국가비상사태’로 국가가 개인의 삶을 지배한다. 개발이라는 이유로 빈민굴을 부수고, 사람들을 강제로 노동 현장으로 이끈다. 그 속에 이시바와 옴이 있었고, 그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천민계급이었던 이시바와 옴은 디나의 집에서 재봉일을 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꿈꾼다. 화려한 식사가 아닌 한끼의 먹을 거리, 다리를 뻗고 누울 잠자리만 있어도 이사바와 옴은 행복했다. 그랬기에 디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앞으로의 삶이 예정되었던 카스트 제도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이시바와 옴을 고용한 디나도 형편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인도사회에서 미망인으로 산다는 것, 스스로 자립하여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빠의 도움에서 벗어나 셋집을 지키기 위해 동창의 아들 마넥을 하숙생으로 들이고, 재봉사를 고용한다. 그녀 역시 부유한 삶이아닌 지금 그대로의 삶을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여,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이시바와 옴과 철저하게 거리를 두지만, 점점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 마넥이 있었다. 재봉사와 디나에 비하면 마넥의 삶은 평온해 보인다.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 공부하러 대학에 왔지만, 마넥의 눈에 비친 인도의 사회는 절망적이었다. 이사바와 옴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디나에게 연민을 느낀다.  

처음에 갖었던 오해와 편견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나눈 대화로 사라지고, 그들은 한 지붕아래, 한 식구처럼 서로를 이해가고 살아간다. 디다는 다시 웃을 수 있었고, 이시바와 옴도 미래를 계획할 수 있었고, 마넥도 그들과의 생활이 행복했다. 계급도 지위도 아닌 평등과 존중이 있었다. 그러나 삶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셋집의 주인은 디나를 몰아내 오빠 집으로 들어가고, 강제로 불임수술로 이시바는 불구가 되고 옴과 거지 생활을 하게 된다. 삶은 계속되고 힘겨운 일상에서 디나와 이시바와 옴은 그 안에서 또 다른 희망을 갖는다.

읽는 동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이 많았다. 재봉질을 하다 남은 천을 만지며 이시바의 말은 가슴에 통증을 불러왔다. ‘왜 삶은 이렇게 부드럽고 매끄러울 수 없는 걸까? ’p 271

소설은 분명 인도의 사회를 묘사하고 있었다.돈으로 매수되는 공권력, 하루 아침에 살 집이 붕괴되고, 버스에 태워져 어디론가 끌려가는, 개혁과 발전을 이유로 권력을 휘둘러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 현장이 낯설지 않은 것은 과거 우리가 그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고통과 절망의 삶을 이겨낼수 있었던 것은 마넥과 디나가 만난 변호사의 “희망이야 항상 있죠. 우리의 절망에 균형을 맞출 만큼 충분한 희망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끝장이죠.” p803 말처럼 절망에 균형을 맞출 만큼 충분한 희망이 있기 때문일까. 적절한 균형과 충분한 희망은 어디에서 오며 정말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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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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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이라는 제목에서 단호함이 느껴진다. 김숨은 짧은 단편으로만 만났고 장편은 처음이다. 단편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기에 기대가 컸다. 사실, 단편집 <투견>, <침대>에 대해 쉬이 읽혀지지 않는다는 평을 접했기에 살짝 긴장을 했지만, 소설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라고 할까. 

 소설은 시골 마을에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용하고 면밀하게 관찰하여 기록한다. 거대한 조선소는 작은 마을을 변화시킨다. 누군가는 발전이라고 할 것이다. 일자리가 생겼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주었다. 조선소에 다니는 아들, 남편을 둔 사람들은 모두에게 부러운 존재였다.  아이들이 자라 조선소에서 일하는 것을 꿈꿨다. 하여, 너도 나도 철선을 만드는 조선소에 취직을 하고 싶어했다. 다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 중에 ‘꼽추’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소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마을을 조선소에 다니는 푸른 작업복을 입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구분되었다. 

 조선소의 주인과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철선에 대해서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매일 같이 출근을 하는 사람들 조차 알지 못했다. 출근하여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자신의 일이 아니었기에 무시했다.  마을엔 철로 가득했다. 철문, 무쇠 식칼, 무쇠 솥, 무쇠 가위, 쇠로 만든 관, 틀니까지 무쇠로 만들었고, 심지어 철을 약처럼 복용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모두가 조선소를 신봉했으나, 단 한 사람 ‘꼽추’는 예외였다. 그는 자신을 무시한 조선소와 마을 사람들을 증오했고, 틀니를 팔아 돈을 모았다. 

 시간이 지나고, 철옹성과 같았던 조선소는 어느 순간 사람들을 쫓아냈고, 마을에서 쇠를 빼앗아간다. 조선소에서 폐병으로 병원에 감금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조선소는 더이상 꿈이 아니었다.마을은 농사를 지을 수도 동물을 키울 수도 없게 되었다.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파괴되는 지난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김숨은 조선소라는 거대한 자본에 지배되는 삶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노동에서 소외된 인물 ‘꼽추’가 그들을 상대로 돈을 모으고 집착하는, 조선소에 속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을 대조적으로 그렸다. 조선소에서 쫓겨난 아버지들을 통해 신성하다고 여겨졌던 노동이 한낱 소모품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절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조선소와 철선에 의해 마모되어 철저하게 버려지고 소외되는 삶. 

 아침부터 까끌까끌하고 불그스름한 먼지가 북쪽에서 불어와 마을을 휩쓸었다. 그 먼지는 공기 중으로 번져나갔다. 대낮에도 마을은 급작스럽게 불어 닥치니 먼지로 인해 초저녁처럼 어두웠다. 시큼하고 비릿한 쇠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가 녹(綠)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녹을 한 숟가락씩 복용하는 늙은이들도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것이 녹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p 49

 김숨의 소설은 우리 이웃의 모습이자 나의 모습이었다. 우리의 삶은 여전하게 자본의 지배 속에 있다. 소설속 조선조는 또 다른 이름의 수많은 조선소로 여전하게 존재한다. 삶이 지속되는 한 노동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철선을 보는 이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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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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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시작되고 지속되는 시간에도 늘 외로운 사랑이 있다.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 혼자만의 사랑이 그렇다. 반드시 타인에게 인정받아야만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랑은 축복 속에 있을 때 더 눈부시지 않을까. 사랑으로 고독하고 아파해도 사랑을 멈출 수 없었던 기억을 있다면, 유리조각을 손에 쥔 듯, 베이고 피가 나도 버릴 수 없는 그것이 사랑이라 말할 것이다. 그렇게 시퍼런 멍이 번져, 때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도록 아픈 소설을 만났다. 전경린, 감각적인 언어로 사랑을 탐미하는 그녀가 다시 사랑으로 돌아왔다.  

 소설은 어둠을 닮은 여자, 누경의 이야기로 한 편으로는 통속적인 사랑이야기와 자아 성장을 그렸다. 평범하고 조용하게 자신의 삶의 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랑과 과거의 사랑을 동시에 보여준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어떤 사람도 받아들일 수 없는 여자. 그녀가 사랑한 남자, 서강주.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 기현이 있다.  

 소설은 누경이 왜 그토록 불안하게 살아왔는지, 고통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그녀의 일기를 통해 보여준다. 열 여섯 폭행으로 인해, 그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기를 기록해야 했던 슬픔이 전해져 누경은 곧 내가 된다. 그런 누경에게 서강주가 없었다면 그녀는 금세 녹아버렸을 것이다.  

 2월 3일
 그가 전화를 했다.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옆 빌라에 사는 노부인 둘이 우산을 쓰고 나란히 아카시아나무들이 서 있는 낮은 언덕을 내려갔다. 옛날 여학생들 같았다.
“괜찮니?”
 “뭐가요?”
 “비가 내리니, 너의 빈 상자들이 걱정돼”
(……)
 “우린 마음이 같을까요?”
내가 물었다. 그가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같아.”   - p153


 누경과 서강주는 먼 친척관계였다.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와 아내가 있던 서강주와 누경은 처음부터 사랑이라는 말에 속해선 안될 사람이었다. 누경은 서강주라는 빛으로 존재하는 그림자와 같았다. 위태로운 둘의 관계, 시작이 끝이었야 했던 사랑이었지만, 누경은 그로 인해 숨쉬고 있었다.

 그런 누경을 지켜주고 싶은 기현은 자신을 밀어내도 여전하게 그 곁에 머문다. 아픈 누경을 간호하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겠다고 한다. 사랑은 어긋났는지 모르나, 서로의 진심을 알았기에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싶다.

 지독하게 외로운 소설이다. 전경린만의 쓸 수 있는 그런 소설. 누경의 일기를 쓰면서 그녀는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 처럼 자연스레 누경에게 다가오는 일상과 사랑이 평온하길 간절히 바랐겠지 싶다. 그 간절한 바람으로 나도 응원한다. 연두빛 봄날, 그 안에서 빛날 누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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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파티 - 영국 ㅣ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캐서린 맨스필드 외 지음, 김영희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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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을 떠올리면 오래 전, 우리집에도 세계 문학 전집이 있었다. 꽤 묵직했고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깨알처럼 작은 글씨가 가득했다. 내가 읽은 건 겨우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레 바퀴 밑에서가 전부였다.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고 싶었지만, 그건 무리였다.  그 뒤로 세계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문학을 읽는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 만나는 것이다. 

 창비 세계 문학 전집 영국편에는 <크리스마스 케롤>로 유명한 ‘찰스 디킨즈’ 을 시작으로 ‘토머스 하디’, ‘조피프 콘래드’, ‘제임스 조이스’, <여자의 방>의 ‘버지니어 울프’, ‘D.H 로렌스’,‘캐서린 맨스필드’,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도리스 레씽>까지 만날 수 있다.  

 찰스 디킨즈의 <신호수>나 토머스 하디의 <오그라든 팔>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환상을 다루었고 뒤를 이은 작가의 소설들은 그 시대의 영국의 변화를 작품속에서 함께 볼 수 있었다.  영국엔 유독 여성을 소재,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사회상을 담은 소설이 많았다. 아마도 계급이나 신분에 따라 차별을 받았던 사회상이 반영해 세상에 고발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오그라든 팔>, 버지니어 울프의 <유품>과  D.H 로렌스의 <차표 주세요>,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타피>다. 

 <오그라든 팔>을 보면 한 남자를 두고 벌이는 두 여자의 이야기로, 두 여자 간의 미묘한 감정과 그들의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 가정 환경을 엿 볼 수 있다. 아이까지 낳았지만, 남자와 살지 못하는 여자가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한 젊고 아름다운 미모의 아내를 질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자가  꿈에 아내를 공격하고, 그것이 현실에서 실제로 나타난다. 정작 두 여연은 만남과 동시에 서로에게 끌리나, 결국 남자의 사랑을 얻기 위한 증오는 커지고, 기묘한 결말에 이른다.

 죽은 아내의 일기장을 통해 아내의 외도를 알게되는 <유품>, 바람둥이 남자에게 농락당한 여자들이 합심하여 남자를 벌하는 <차표 주세요>는 무척 현실적이었다. 자신만이 최고인 줄 알고 무시했던 아내에게 뒤통수를 맞은 남편, 여자들의 진심을 쥐고 흔든 바람둥이 남자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조롱을 당하는 모습은 같은 여자로 살짝 통쾌하기도 했다.

 <가든 파티>는 부유한 집안의 소녀가 파티를 준비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빈부 격차를 실랄하게 보여준다. 화려한 파티가 시작될 무렵, 빈민가에서 죽은 남자의 소식을 듣고, 소녀는 추자고 말하지만, 가족들은 개의치 않는다. 파티가 끝나고 소녀는 그 집을 방문하게 된다.소설은 소녀의 시선을 통해 수직적 관계의 사회를 비춘다.

 창비 세계 문학의 특징을 꼽자면, 단편의 시작전 작가의 이력을 수록한 점과 마지막에 ‘더 읽을거리’라 하여, 다른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장들의 단편을 통해 영국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었고, 특히 캐서린 맨스필드와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을 더 만나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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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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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한 색채, 상실감으로 가득찬 여자의 눈빛. 표지만으로도 깊은 슬픔이 전해진다. 이미 1997년 아카데미 9개 부분을 수상한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원작소설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소설은 아주 천천히 속내를 드러냈다. 소설은 내게 집중을 요구했다.  

 소설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만난 네 명의 이야기다. 수도원에 사막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화상을 입은 영국인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간호사 ‘해나’가 있었다.  그녀를 찾아온 ‘카라바지오’는 죽은 아버지의 친구이며 첩자이자 도둑이었고, 그곳에 지뢰와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공병 ‘킵’이 찾아온다. 

 심한 화상으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화상 환자는 자신을 돌봐주는 해나에게 사막과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를 영국인이라 굳게 믿고 있는 해나에게 카라바지오는 그가 영국인이 아닐 꺼라 주장한다. 전기가 끊긴 수도원은 그들에게 안식처와 같았다. 카라바지오가 구해오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때로 춤을 추며, 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쟁으로 인해 그들의 삶은 완전하게 변화하였고, 전쟁이 끝난다 해도 그들은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었다. 전쟁으로 해나는 그녀 자신과 아버지를 빼앗겼다. 절망과 상실감으로 해나는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거울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읽는 동안 몇 몇 문장은 머리 속으로 장면을 그려본다. 어둠이 가득한 수도원, 희미한 촛불에 의지하여 영국인 환자 머리맡에 앉아 책을 읽어주는 해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한 여자와 사막을 이야기하는 남자.  가족과 형제를 떠나 낯선 나라의 공병이 된 청년 킵, 첩자 활동 중에 손가락을 잃은 카라바지오. 그들은 어느새 서로를 의지하게 되고, 해나와 킵은 사랑을 나눈다. 그들의 사랑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처절하며, 강렬하다. 사랑은 참으로 작아서 바늘귀도 들어갈 수 있다(p381)는 글처럼. 

 소설은 잔잔한 음률이었고, 따뜻한 포옹이었다. 그들의 앞 날은 어떻게 펼쳐질까?  각자의 나라에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전쟁으로 인한 상실은 치유될 수 있을까. 끊임없는 의문의 끝에는 여전하게 삶이 있었다. 의사가 되었고, 가정을 이룬 킵이 해나를 떠올리는 장면은 영화의 엔딩이었을까?   

 이제는 식사 시간에 그녀와 다시 이야기하고 그들이 천막 안에서나 영국인 환자의 방에서 가장 친밀감을 느꼈던 그 단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요동치는 강같은 공간을 포함하고 있었던 두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를 회상하자 그는 그녀에게 매료되었던 것만큼 자기 자신에게 매료되었다. 소년답고 진지한 사람. 나긋나긋한 팔은 그가 사랑에 빠져버린 소녀를 향해 허공으로 뻗는다. 젖은 장화는 끈을 한데 묶어 이탈리아의 문가 옆에 서 있다. 그의 팔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침대 위에는 엎드린 인물 형상이 있다.p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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