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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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고 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다시 혼자가 되어도 누군가를 찾는 일들을 반복하며 사는 걸까. 태초에 아담과 이브를 만든 신의 뜻을 저버리면 큰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하듯 말이다. 사람들은 사랑이 신이 인류에게 준 가장 큰 행복임과 동시에 가장 큰 저주인지 모른다. 해서,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절망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랑하여 행복하려 한다. 사랑, 참 어렵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어려운 사랑을 혹 하고 있다면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란 소설을 통해 그 사랑은 어떤지 생각할 시간을 가져도 좋으리라. 

 책엔 두 편의 연애 소설이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의 주인공은 누구나 부러워 할 좋은 집안의 남자 아키오다. 아키오는 누가봐도 첫 눈에 반할 외모를 지닌 여자 나즈나와 만나 결혼을 한다. 둘 다 사랑만이 전부였던 결혼이 아니었다. 가문과 형제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아키오는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독립을 원했던 것이다. 나즈나 역시 옛 연인에 대한 복수로 결혼을 선택했다.  

 한 동안 행복했던 결혼생활은 흔들린다. 아내의 옛 애인 때문이다. 아키오는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즈나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아키오에게 직장 선배인 도카이는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도카이가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내세울 것 없는 외모, 이혼, 암투병을 견뎌낸 당당한 삶은 사랑하게 되고 암이 재발한 그녀와 결혼을 한다.

 타인을 소중하게 생각하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자신을 긍정해야 한다. 즉,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p.113      

 아키오나 나즈나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겼는지 모른다. 소설엔 엇갈린 사랑으로 힘겨워하는 주변 인물이 많다. 사랑해선 안 될 상대를 사랑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은 왜 이리 잔인한 것일까.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는 조금은 뻔한 불륜 이야기다. 주인공 미하루에겐 약혼자  세이지와 연인 연상의 이혼남 구로키가 있다. 말하자면, 결혼해도 좋을 남자와 사랑하는 남자가 따로 있는 것이다. 약혼자 세이지는 젊고 능력이 있지만 미하루에게 어딘가 부족하다. 반면, 구로키는 연륜 때문인지 세세한 부분까지 미하루의 마음을 잘 읽는다. 물론 미하루가 선택한 남자는 세이지다. 서로를 갈망하고 사랑하지만 구로키와 미하루는 더이상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 결혼식을 하루 전 날 자신의 마음을 확인한 미하루가 달려간 곳은 바로 구로키였다. 구로키 역시 미하루를 사랑했기에 이미 떠나버렸다.  

 “나는 사실 이런 관계가 제일 좋아.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하고 싶을 때 하고, 그러면 후회도 안 하고, 질투나 집착도 없지. 억지로 함께 살면서, 서로를 얽어매거나 트집 잡는 짓도 하지 않아. 그런 관계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면, 나는 그게 가장 좋은 관계라고 생각해.” p. 286  

 구로키에게 사랑은 습관이었다. 미하루와 헤어지고도 그녀의 생일에 케익을 사둔 것도 벚꽃을 볼 때마다 팝콘같다던 미하루의 말이 떠오르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렇게 그 사람이 자신에게 스며들어 습관으로 남는 것이다. 미하루를 떠난 구로키는 이혼을 선택한 도카이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얼마만큼의 애정』,『지금 사랑해』, 『서른 다섯,사랑』을 통해  이별, 이혼, 불륜, 등 파격적인 소재를 거침없이 묘사한 작가 시라이시 가즈후미. 그가 그리는 사랑은 누구나 꿈꾸는 낭만적이거나 달콤한 사랑이 아니다.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로 예상외의 결말이다. 다시 말해, 과연 이런 선택도 할 수 있구나 싶을 정도다. 어쩌면 그 생각이 맞을지 모른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일이, 계획하는 수순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므로. 설령, 사랑의 결실이라는 결혼으로 이어져도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그리하여,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삶이 있고, 사랑하지 않아도 잘 살아내는 삶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은, 나를 온전히 버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의미가,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의미와 같아야 하기에, 진정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사랑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누구나 한 번쯤 그 사랑에 목숨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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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8 1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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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9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7번국도 Revisited (특별판)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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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모하다’란 말이 어울리던 시절은 이미 내게서 사라졌다. 그 무모함 속에 담겼던 열정,도전도 함께 말이다. 그러니까, 7번 국도 위에 있었던 시절은 기억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 시절 뜨겁다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차갑거나 미지근한 쪽에 속하지 않았다. 20대였고 삶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을 정도의 용기가 있었다.  마흔을 앞둔 지금은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현실에 안주하고, 나름대로의 변명으로 내 삶을 자위한다. 잘 살고 있는지, 잘 살아왔는지 마음이 복잡할 때, 새로운 7번 국도의 문장이 이끄는 대로 길을 나선다.   
 
 자전거를 타고 7번 국도를 여행하는 젊은 청춘들, 그들의 고뇌와 방황이 왠지 안쓰럽다.  7번 국도를 함께 품었던 화자인 나와 재현, 그리고 그들이 사랑했던 세희가 품었던 갈망들,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 이렇게 새로운 소설로 쓰여졌듯 7번 국도는 이제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그건 소설 속 화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하니1997년 7번 국도를 읽고 그 길 위에 섰던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청춘이 아닐 것이다.  

 화자인 나는 어엿한 작가로 학생들과 문학기행을 떠나고 깨질 듯 불안했던 세희는 아이 엄마가 되어 살아간다. 혼자 외롭고 상처받았다 생각했던 시간들을 잘 견뎌낸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시간들을 잊은 건 절대 아니다. 상처받고 상처주고 울고 웃었던, 모든 것이 사랑으로 연결되었던 순간들이 있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지난 날 내가 사랑했던 당신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나를 사랑했던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나도 살아 있을까.
 
 ‘이제는 죽고 없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하는 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인간을 사랑하는 일. 그 모든 사랑이 내게는 공평하고 소중하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은 기억하는 것. 잊지 않는 것. 끝까지 남아 그 사랑들에 대해서 말하는 증인이 되는 것. 기억의 달인이 되어, 사소한  것들도 빼놓지 않고, 어제의 일인 것처럼 늘 신선하게, 거기서 더 나아가 내가 죽은 뒤에도 그 기억들이 남을 수 있도록, 이 세계 곳곳에 그 기억들을 숨겨두는 일.’ p.187 

 때로 흘러가는 대로 나를 맡겨도 좋은 게 생이 아닐까.  소설에서나 소설 밖 우리 생에서 필요한 건 이런 문장과 같은 시간일 것이다. ‘자신이 숨을 쉰다는 사실에만 집중한다. 이런저런 생각들은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둔다. 들숨에 집중해서 숨을 들이마시고, 날숨에 집중해서 숨을 내쉰다. 천천히, 다시 들숨에 집중하고 날숨에 집중한다 그걸 계속 반복하다. 생각들은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면 된다. 어떤 생각들은 오랫동안 떠올라 마음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그럴 때면 격랑이 몰아치는 강가에 앉아서 강물을 바라보듯이 그 생각들을 바라본다. 중요한 건 생각과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두는 일이다.’ p. 192

 7번 국도에서도 그랬듯 소설엔 노래 가사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투명물고기의 <저물다>를 들었다. 강렬하게 타오르던 해도 반드시 저물듯, 투쟁하는 삶도 열병처럼 사랑했던 순간도 언젠가는 저물고 만다. 해서,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충실하고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는 곧 과거로 사라지니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하며 살면 된다. 작가 스스로도 뜨겁던 청춘을 지나왔기에 들려줄 수 있는 말이 정답은 아닐런지. ‘삶은 우야든둥 지금 여게 있는 거지, 어데 멀리 있는 게 아닌 기라예.’ p. 96 

 김연수는 뼈대는 그대로 두고 처음부터 소설을 새로이 썼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역시 13년이란 시간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13년이란 시간의 흐름에 세상도 변하고, 사랑도 변하고, 삶 자체도 변하니까. 그래도 2010년 다시 만나는『7번 국도 Revisited』는 누군가를 다시 길 위에 서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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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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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희경의 『소년을 위로해줘』는 소년, 소녀의 이야기다. 아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 시절을 겪어야 할 아이들과 이미 그 시절을 겪어낸 어른들의 이야기.  내게도 소녀의 시절이 있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가득했던 시절, 그 마음을 토해낼 수 있던 대상은 오로지 친구뿐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이어폰으로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들었고 쪽지를 보내고 비 오는 밤을 우산없이 걷기도 했다. 오르지 않는 성적과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절망에 울기도 많이 울었던 시간이다. 제발 빨리 지나가기만 바라던 시절을 소설을 통해 다시 만난다.  
 
 열 일곱 연우, 채영과 한 살 많은 나이의 태수는 같은 학교에 다닌다. 완벽한 부모아래 숨막히는 일상에 힘겨워하는 채영, 유학시절에 겪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귀국 유학생 태수, 이혼녀인 엄마와 살고 있는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연우. 이사 온 첫 날, 자신의 창문을 올려다보는 소녀 채영과 전학 수속을 하러 간 학교에서 태수를 처음 만난다. 그들을 연결시킨 건 G -그리핀이 부른 노래다. 고등학생의 마음을 잘 전달한 가사의 랩은 완벽했다.   

 연우와 채영은 서로에게 끌리고 태수와 연우는 단짝이 된다. 함께 달리고 음악을 듣고 퍼즐을 마추며 서로를 알아간다. 채영의 슬픔에 다가갈수록, 태수의 아픔을 알아갈수록 연우는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그러나 소설은 무거움이 전부가 아니다. 은희경답게 맑고 경쾌하다. 특히 소설에 가득한 랩과 연우와 태수에게 달리기를 가르치는 재욱과 연우의 엄마 신민아의 역할이 그러하다. 소년의 연장선에 있는 재욱은 연우에게 엄마 이상으로 위로가 된다. 해서 소설은 연우, 채영, 태수의 이야기는 그들의 부모로 이어진다.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삶을 견디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위해 달려주길 바라는 채영의 부모, 아이와 가족을 위해 모든 것 희생할 준비가 된 태수 엄마, 연우를 이해하지만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고 연우 엄마보다는 신민아로 행복하고 싶은 연우 엄마. 고등학생에게 대학입시가 가장 중요한 일이 되버린 시대, 우리는 어떤 가족이며 어떤 부모에 속하냐고 묻는다.    

 “연우야 잘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서 일이 저절로 풀리는 건 아니야. 스스로 일을 잘 풀어가게 되는 거지. 그리고 말야, 서로 사이가 좋아서 가족이 행복한 게 아니라, 각기 제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가족이 사이가 좋아지는 법이야. 그러니까 내가 내 행복을 찾고 있는 건 너를 위한 일이기도 해.” p. 213~ 214

 너무 여려서 단단해지려면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태수가 채영을 태우고 연우를 만나러 자동차를 몰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은희경은 왜 이렇게 큰 아픔을 던져주었을까. 함께 웃고 울며 보낸 여름, 가을, 겨울이 바뀌듯 아이들은 자연스레 성장할 텐데. 어차피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걸 금세 터득할 것을.   

 ‘사실 나는 위로를 잘 믿지 않는다. 어설픈 위안은 삶을 계속 오해하게 만들고 결국 우리를 부조리한 오답에 적응하게 만든다. 그 생각은 변함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거기 실려간다. 삶이란 오직,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이란 것이 생겨나고 변형되고 식고 다시 덥혀지며 엄청나게 큰 것이 아니듯이, 위로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 잠깐씩 짧은 위로와 조우하며 생을 스쳐 지나가자고 말이다.’ p. 485  

 작가의 말을 통해 은희경은 위로에 대해 말한다. 그녀 스스로 위로를 잘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위로 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그녀 또한 소설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었던 건 아닐까. 지금 소녀와 소년이라는 시기를 살아가는 이에게, 한 때 소녀이거나 소년이었던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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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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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사랑이 전부였던 때가 있다. 유행가 가사처럼 어려도 아픈 건 똑같으니,사랑을 모르는 게 아니란 말이다. 나를 버리고 사랑을 택한 삶은 영원히 행복할까. 영원한 사랑은 없을지 모르나 사랑이란 게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는 건 맞다.  여기 그런 생을 산 두 여자가 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한 사람을 사랑했다. 천샹과 예러우가 사랑한 남자는 시인 망허였다.  
 
 시인를 사랑한 여자 - 천샹 
 중국 문학을 전공한 문학 소녀 천샹은 망허와의 단 한번의 만남이 다였다. 그 만남으로 시인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대학 선배와 결혼한다. 시인의 피가 흐르는 아이를 볼 때마다 그녀는 행복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평생을 함께 하지 않아도 순간의 기억으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망허의 새 시집에 실린 사진을 보고 자신이 사랑한 망허가 가짜라는 사실에 분노하고 절망한다. 절망은 삶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멍허의 아이가 아닌 아들 역시 그녀에게 아무런 존재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던 남편과 이혼을 한다. 

 시인이 사랑한 여자 - 예러우 
 예러우와 망허는 첫 눈에 운명을 느꼈다. 논문을 쓰기 위래 지방을 다니며 현지답사를 하는 예러우 앞에 나타난 시인 망허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유랑의 길에 나선 길이었다. 하룻밤의 사랑만 남기고 예러우는 자신의 길로 떠났고 망허는 그녀의 찾아 떠난다. 재회의 순간, 말 그대로 길 위에서 만난 그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본 것이다.  망허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추스리려 홀로 떠났지만 결국 둘은 하나가 되기로 한다.  

 둘은 중국의 여러 마을을 함께 다닌다. 끝도 없는 길을 걷고 걸어서 도착한 마을들은 1980년대 중국이 그러했듯 가난했고 순수했다. 낯선 타인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내주고 서슴없이 자신들의 삶을 들려주었다. 예러우와 망허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통해 경이로움을 느낀다. 장윈은 그들의 힘든 여정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어쩌면 그것은 연인과 함께했기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 모든 나무와 꽃들은 얼마나 눈부셨겠는가.

 ‘낭창낭창 늘어진 물버들이 여기저기서 수풀을 이루어 멀리서 보면 보랏빛, 초록빛, 담황빛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그건 분명 남부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버들가지마다 새순이 파릇파릇 돋아나 있었다. 당버들은 북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교목이었지만, 이곳의 당버들은 유난히 깨끗하고 힘 있게 뻗어 있었다. 연녹색 잎사귀에 통통하게 물이 오르고, 줄기는 자작나무의 그것처럼 희고 깨끗했다.’ p. 158  
 
 그러나, 자궁 외 임신으로 예러우는 망허의 곁을 영영 떠나버린다. 예러우를 잃고 망허는 그만의 길을 떠난다. 길 위에 남겨진 사랑은 그들을 기억할까. 시간이 흘러 21세기에 산촌의 소학교의 교장인 천샹은 학교를 후원하는 건축 회사의 사장인 망허와 마주한다. 천샹의 대접으로 마을의 토굴에서 하루를 보내며 시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제가 예전에 시인이었답니다.” 
  “그러시군요. 저도 예전에 시를 좋아했었죠.” 
  “그런데 전 시인이었지만, 한 번도 시를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사실 시는 참 잔인한 거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제게 물으시는 건가요?” 
  “네.” 
  “원래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잔인하죠”. p. 271~ 272 

 그들의 시라 부르며 말한 그것은 사랑이었고 삶이었다. 잔인하고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들. 책을 다 읽고 나니 박용재의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란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정말 그랬다. 예러우와 천샹은 망허를 사랑한 만큼 살았던 것이다. 천샹에게 시인 망허는 삶 그 이상이었다. 예러우는 어떠한가. 망허와의 만남에서 그와의 운명적 사랑을 예감한 그녀는 그 결말이 불행이라는 걸 알았지만 사랑을 놓지 못했다. 잔인한 시를 닮은 그들의 사랑이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 박용재의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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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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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누구나 욕망의 존재다. 그 욕망을 얼마나 잘 다스리며 사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욕망을 쫓다 보면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진리를 알지만 눈앞에 보이는 욕망을 외면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름답고 화려한 신도시의 편리한 생활과 쓰레기 가득한 변두리의 구도시 중 하나를 택하라면 구도시를 택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화려함으로 위장한 실체를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감춰진 모습을 확인하더라도 과감하게 버리고 떠날 수 있을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쉽지 않은 결정이다.  박범신은 『비즈니스』를 통해 그런 질문을 던진다. 욕망이 가득한 세상,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묻는 것이다.  
 
 소설은 서해안에 위치한 ㅁ시가 거대한 자본의 유입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따라 달라지는 도시의 삶을 이야기한다. 해안도로를 경계로 도시는 나워진다. 권력과 자본으로 비즈니스를 성공시킨 신도시와 구도시는 빛과 그림자였다. 사람들은 빛만 보려 한다. 그에 따른 그림자가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짐짓 모른 척한다. 사람들은 모두 신도시를 향한다. 어떻게 해서든 신도시에 입성해야 성공한 삶이었다. 

  ‘쓰레기차들이 해안도로를 따라 쏜살같이 지날 때 구시가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오로지 신시가지 사람들의 쾌적한 문화생활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비로소 소스라친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잇는 20분간의 그 이동은 공간 이동이라기보다 시간 이동이라고 부르는 게 옳다.’ p. 14~15  

 주인공 ‘나’와 준하는 그림자에 속한 삶이다. 높은 빌딩숲이 아닌 쓰레기가 가득한 오염된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이다. 아들의 학원비를 위해 몸을 파는 나는 구도시의 동백횟집을 지키고자 도둑이 되버린 준하를 고객으로 만난다. 욕망을 채우기 위한 단순한 관계일 뿐이다. 그러나 서로의 아픔을 알아 본 운명이었을까. 새로이 시작된 나와 그의 관계는 점점 긴밀해진다.  

 형사였던 준하는 동료들의 함정에 빠져 모든 것을 내려놓고 ㅁ 시로 내려온다. 선거 활동으로 시장을 도왔고 동백횟집을 차렸지만 신도시로 인한 매립지구로 인해 빚더미에 오른다. 나는 고시공부 하는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이었지만 결과는 남편의 고향인 ㅁ시였다. 

 더 이상 젊지 않았기에 그들은 소박하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신도시의 등장으로 삶은 점점 피폐해졌다. 아들에게만은 이 생활을 절대로 물려줄 수 없었기에 나는 몸을 팔았고, 엄마의 죽음으로 자폐 증상이 심해진 아들 여름을 위해 준하는 신도시 부자들의 집을 턴다. 나와 준하에겐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 같았고, ‘이팝나무’로 통하는 추억이 같았다. 나를 이팝나무라 부르던 남편, 이팝나무를 좋아했던 준하의 아내.  

 준하가 살아온 삶을 통해 나는 지난 날을 돌아보며 지금의 자신과 마주한다. 남편을 믿고 사랑하며 돈이 전부가 아니라 실패가 두렵지 않았던 시절은 어디로 가고 아들만은 신도시 입성을 해야 한다고 몸부림치는 서글픈 현실이 자신의 전부라니.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와 그가 그림자였다면, 나의 친구 신도시에 사는 주리와 그 도시를 만든 시장은 빛이라 해야 할까. 나에게 일을 소개해 준 것도 일찍이 삶은 ‘비지니스’라는 걸 알았던 주리였다. 부와 명예만이 이 시대를 사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시장은 어떠한가, 성공을 위해선 구도시의 삶은 어디에도 없었고, 모든 것이 그에겐 도구일 뿐이다. 과연, 어느 쪽이 행복한 삶일까. 아니, 제대로 살고 있는 삶일까.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속해 살고 있을까.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메아리로 돌아오는 질문들, 삶이라는 게 이토록 씁쓸하고 허망한 것이라니. 

 욕망에 길들인 사람들은 새하얀 이팝나무 하나만으로 행복을 떠올릴 수 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이팝나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이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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