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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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사랑이 전부였던 때가 있다. 유행가 가사처럼 어려도 아픈 건 똑같으니,사랑을 모르는 게 아니란 말이다. 나를 버리고 사랑을 택한 삶은 영원히 행복할까. 영원한 사랑은 없을지 모르나 사랑이란 게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는 건 맞다.  여기 그런 생을 산 두 여자가 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한 사람을 사랑했다. 천샹과 예러우가 사랑한 남자는 시인 망허였다.  
 
 시인를 사랑한 여자 - 천샹 
 중국 문학을 전공한 문학 소녀 천샹은 망허와의 단 한번의 만남이 다였다. 그 만남으로 시인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대학 선배와 결혼한다. 시인의 피가 흐르는 아이를 볼 때마다 그녀는 행복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평생을 함께 하지 않아도 순간의 기억으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망허의 새 시집에 실린 사진을 보고 자신이 사랑한 망허가 가짜라는 사실에 분노하고 절망한다. 절망은 삶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멍허의 아이가 아닌 아들 역시 그녀에게 아무런 존재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던 남편과 이혼을 한다. 

 시인이 사랑한 여자 - 예러우 
 예러우와 망허는 첫 눈에 운명을 느꼈다. 논문을 쓰기 위래 지방을 다니며 현지답사를 하는 예러우 앞에 나타난 시인 망허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유랑의 길에 나선 길이었다. 하룻밤의 사랑만 남기고 예러우는 자신의 길로 떠났고 망허는 그녀의 찾아 떠난다. 재회의 순간, 말 그대로 길 위에서 만난 그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본 것이다.  망허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추스리려 홀로 떠났지만 결국 둘은 하나가 되기로 한다.  

 둘은 중국의 여러 마을을 함께 다닌다. 끝도 없는 길을 걷고 걸어서 도착한 마을들은 1980년대 중국이 그러했듯 가난했고 순수했다. 낯선 타인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내주고 서슴없이 자신들의 삶을 들려주었다. 예러우와 망허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통해 경이로움을 느낀다. 장윈은 그들의 힘든 여정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어쩌면 그것은 연인과 함께했기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 모든 나무와 꽃들은 얼마나 눈부셨겠는가.

 ‘낭창낭창 늘어진 물버들이 여기저기서 수풀을 이루어 멀리서 보면 보랏빛, 초록빛, 담황빛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그건 분명 남부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버들가지마다 새순이 파릇파릇 돋아나 있었다. 당버들은 북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교목이었지만, 이곳의 당버들은 유난히 깨끗하고 힘 있게 뻗어 있었다. 연녹색 잎사귀에 통통하게 물이 오르고, 줄기는 자작나무의 그것처럼 희고 깨끗했다.’ p. 158  
 
 그러나, 자궁 외 임신으로 예러우는 망허의 곁을 영영 떠나버린다. 예러우를 잃고 망허는 그만의 길을 떠난다. 길 위에 남겨진 사랑은 그들을 기억할까. 시간이 흘러 21세기에 산촌의 소학교의 교장인 천샹은 학교를 후원하는 건축 회사의 사장인 망허와 마주한다. 천샹의 대접으로 마을의 토굴에서 하루를 보내며 시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제가 예전에 시인이었답니다.” 
  “그러시군요. 저도 예전에 시를 좋아했었죠.” 
  “그런데 전 시인이었지만, 한 번도 시를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사실 시는 참 잔인한 거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제게 물으시는 건가요?” 
  “네.” 
  “원래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잔인하죠”. p. 271~ 272 

 그들의 시라 부르며 말한 그것은 사랑이었고 삶이었다. 잔인하고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들. 책을 다 읽고 나니 박용재의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란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정말 그랬다. 예러우와 천샹은 망허를 사랑한 만큼 살았던 것이다. 천샹에게 시인 망허는 삶 그 이상이었다. 예러우는 어떠한가. 망허와의 만남에서 그와의 운명적 사랑을 예감한 그녀는 그 결말이 불행이라는 걸 알았지만 사랑을 놓지 못했다. 잔인한 시를 닮은 그들의 사랑이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 박용재의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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